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초대교회가 탄생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하였다, 신앙고백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새로운 칭호가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기독론적 칭호(christological title)이다. 이 칭호들은 이미 예수의 지상적 사역에서 예수 자신이 자기에 대해 사용하신 칭호에서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 의해 붙여진 칭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 칭호들은 바로 역사적 예수의 생애 전체를 포괄한다. 이 칭호들은 그 분이 누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결실이요, 훈장이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과 같은 것이다.
예수의 지상적 사역을 가리키는 칭호들은 “선지자”, “고난의 종”, “대제사장”이다. 이러한 칭호들은 이미 유대교에 있었다. 그리고 예수가 즐겨 사용하던 칭호들은 “인자”와 “고난의 종”이라는 칭호들이었고, “메시아(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들은 비밀로 붙여졌다. 이 칭호들은 이미 예수의 갈릴리 사역에서부터 있었다. 예수의 부활 이후에 이 칭호들 “메시아”(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은 더욱 활성화되었고, 새로운 칭호들, “주(Kyrios)”, “구주(Soter)”, “성육신하신 말씀(Word)”, “성자 하나님(God)”, “심판주”(오실 자)라는 칭호들이 더 붙여졌다.
I. 부활절 이전의 지상적 예수의 칭호
부활절 이전 역사적 예수의 지상에서의 사역에서 그에게 붙여진 칭호들은 “인자”, “고난의 종”,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였다.
1. “인자”
“인자”라는 칭호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예수께서 자신에 대하여 겸허하게 사용하신 용어였다. 이 칭호는 인간과의 본질적 연대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는 섬기러 온 그의 사명을 가르치기 위하여 “인자” 칭호를 사용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는 병 고치는 권세와 관련하여 이 칭호를 사용한다:“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막 2:10). 예수는 변화산의 신비체험 후에 제자들에게 그가 받으실 고난과 관련하여 말씀하실 때 이 칭호를 사용하신다:“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9).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앞으로 받으실 그의 고난과 관련하여 이 칭호를 사용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막 8:31).누가도 이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 9:22).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는 앞으로 다가올 묵시록적 “인자(人子. the Son of Man)의 날”과 관련하여 “인자”가 영광 속에 나타날 것을 시사(示唆)하여 사용하신다. 이 인자는 다름아닌 예수 자신이다. 그 전(前)에 “인자”는 먼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어 이 세대로부터 버림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는 그의 재림과 관련하여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 17:25).
2. “고난의 종”
예수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릴 때 이 칭호를 사용하신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배척과 고발과 심문과 사형언도와 죽임을 당하는 “고난의 종”의 직분이 자신이 부여받은 메시아적 사명이라고 생각하였다. 공관복음서에서는 “고난의 종”이라는 칭호는 “인자” 칭호와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다(막 8:31, 눅 9:22, 마 16:25). 예수께서 “고난의 종”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고난의 종이라는 신분은 예수 자신이 독특하게 자신의 메시아 의식으로 스스로를 이해했던 메시아적 사명이었다. 이러한 “고난의 종”이라는 자기 이해 때문에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를 따르는 많은 군중으로부터 배척받았으며, 제자들에게도 배반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최후에 이르게 된다.
3. “메시아(그리스도)”
“메시아”(Messiah)라는 히브리말은 “그리스도”(Christos)라는 헬라말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라는 뜻이다. 구약에서 왕이나 제사장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 기름 부음이란 그 직책을 위하여 성별되었고, 권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백성을 구원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자이다. 이 칭호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공적으로 사용되었고 역사적 예수는 이를 시인하신다. 복음서 저자 마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들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지상적 예수는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고 난 후에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비로소 인정하시나 곧 다시 비밀에 붙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지상적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것과 사도 바울이 사용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1) 예수 자신에게서 나온 호칭
지상적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칭호를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관계를 나타내셨다. 이 칭호는 예수 자신으로부터 기원한다. 예수는 복음의 진리를 아는 일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시는 것”을 감사하시면서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신다:“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누가도 지상적 예수께서 하신, 이와 거의 동일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눅 10:22). “아들”이라는 칭호 자체는 이미 예수가 갖는 아버지 하나님과의 가장 독특한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함의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자신을 “아들”이라 칭하고 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는 아들의 전권에 관하여 말씀하신다.“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요 5:19-23). 예수께서는 이어서 자신이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 5:25-27).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늘을 우러러보시면서 하신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자신을 아들로서 칭하고 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1-2).
2) 사도 바울의 호칭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로마서와 고린도 전서에서 예수에 관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를 영적 환상으로 체험함으로써 그가 바리새인이었을 때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상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역사적 예수는 이제 사도 바울에게는 더 이상 유대교의 율법을 파괴하려는 자가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인되었다.
II. 부활절 이후의 예수의 칭호
부활절 이후 부활하신 예수에게 붙여진 칭호는 “주”, “구주”, “성육신하신 말씀”, “하나님”, “심판주”등이다.
5. “주” (Kyrios)
“주(퀴리오스)”라는 단어는 죽은 후 신이 된 로마 황제에게 사용한 칭호였다. 초대교회는 이 칭호를 로마 황제 아닌 그리스도에게 사용하였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로부터 박해를 받기에 이른다.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예수를 “주”라고 부르고 있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5-6). 당시 로마시대에는 각 신전마다 많은 신상들이 있었고, 각 나라마다 만신전(萬神殿, pantheon)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만가지 신들을 숭배하였다. 죽은 로마 황제는 “주”라는 칭호로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초대교회는 로마 황제에 대하여 붙이는 “주”라는 칭호를 부활하신 예수에게 붙이고 예수만을 “주”라고 고백하고 로마 황제 숭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고전 16:22).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사도 바울은 당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찬가(Christ hymn)를 인용하면서 예수를 주라고 부르고 있다:“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1).
6. “구주”(Savior, soter)
누가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이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그리고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베드로와 사도들이 유대의 대제사장과 공회 앞에서 예수에 관하여 증언할 때 “구주”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예수의 재림과 관련하여 “구주”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초대교회 서신에서 보는 바같이 역사적 예수는 초대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그분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구주”라는 호칭을 받기에 이른다.
7. “성육신 하신 말씀”
사도 요한은 지상적 예수를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요한에 이르러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호칭되고 있다.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예수는 이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사도 요한은 이 태초의 말씀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인간의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람, 즉 마리아의 아들이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지상적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논쟁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고 반문한다. 이에 대하여 지상적 예수는 대답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이러한 요한의 기록은 예수도 자신이 “태초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발언은 그의 메시아적 자의식(Messianic self-consciousness)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가“태초부터 계시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거듭 증언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8. “하나님”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도마의 신앙고백을 기록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고 의심한다. 8일 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 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고 한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9. “재림의 주”(심판주)
복음서 저자 마태에 의하면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시는데 이 인자는 세계 종말에 심판자로 오실 자이다. 인자는 세계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실 것이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마 25:32). 그리고 인자는 영광의 보좌에 앉으사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실 것이다. 마태는 예수 자신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
이러한 예수의 다양한 칭호는 그분이 행하신 구속 사역의 다양한 측면과 관련된다. 앞으로는 이러한 칭호를 그분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보다 자세히 성찰해 보기로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으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시작은 부활과 더불어 개통되었고, 이어 성령의 오심과 초대교회의 시작과 더불어 역사적 예수의 구속론적 영향력은 그의 제자들이 세운 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로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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