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편 23편 하면 맨 먼저 2절을 떠올린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을
그리라면 누구나 푸른 초장을 그릴 것이다. 우리가 시편 23편을
좋아하는 이유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이 두 단어 때문일 것이다.
“푸른 초장”이라는 단어가 시편 23편의 키 워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은 히브리어로 deshe이다. 이 단어는 다음
구절들에서는 “연한 풀” “새 풀” “새로 돋아난 움” 등으로 번역되었다.
시편 23편에는
대관령이나 뉴질랜드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드넓은 푸른 초장은 없다.
시편 23편의 양들은 넓은 초원에서 푸른 풀들을 뜯어 먹는 것이 아니라 고산 지대나 광야에서 이제 막 움이 돋은 여린
풀들을 뜯어먹는다.
아마도 그 풀은 지난 밤 내린 이슬을 먹고 싹튼 풀들일 것이다.
광야에서는 풀들이 비를 맞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슬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오래된 풀은 질기고 잘 씹히지도 않고 맛도 별로 없다. 그러나 어제나 그저께 나온 풀은 연하고 부드럽고
맛이 있다. 그리고 소화도 잘 된다. 좋은 목자는 그런 풀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서 양들에게 꼴을 먹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다. 그들은 매일 그날그날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던 것이다. 한 번도
하루 이상 묵은 만나를 먹어본 적이 없다. 하루만 지나면 썩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는데, 그
대신 매일 신선한 만나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 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weekly bread가 아니라 daily bread를 먹어야 한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구하는 “일용할 양식”은
단지 하루치 양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빵집에 가서 빵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빵집에 가면 어제 팔다 남은 빵도 있을 거야. 아마 50% 할인해주겠지. 그러나
그 빵은 딱딱하게 굳어서 맛이 없을 거야. 그러니
싸다고 그 빵 사오지 말고, 오늘 아침 새로 구운 빵을 달라고 하거라.”
이런 빵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이다. 우리의 좋은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매일 천국 오븐에서 막 구워낸 따끈따끈하고 신선한 빵을 주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이른 아침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