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원수가 듣기를 방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치로는 무엇이 있는가?
신비사술
신비사술은 매우 두드러진 장치이다. 육체와 사단은 둘 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은사를 모조리 복사한다. 하나님을 듣는 법을 배우게 될 사람들은 모든 신비사술적인 것들, 예를 들어 운세말하기, 별자리점, 카드점, 구슬점, 강신술, 손금 읽기, 마술, 요술, 연금술, 장미십자회의 신비사상, 마법걸기, 맹세와 저주, 자기 체면고 다른 사람 체면 걸기 등등과 결단코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9신18:9-14; 레20:6, 27; 사47:12-14절을 보라) 신비사술에 관련되었던 사람은 누구든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개종 후에 훨씬 더 어려운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신비사술에 연루된 역사가 있는 사람은 2, 3세대 후에 그것이 제거된다 하더라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9신5:9]. 호바트 프리면(Hobart Freeman)은 그의 책[광명의 천사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많은 경우 투시력과 심령적인 세력은 신비사술의 결과로써 보통 2, 3세대 후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점쟁이었던 에드가 케이시(Edgar Cayce)는 어린 나이에 심령적이고 투시적인 여러 다양한 경험들에 관계하면서 신비사술에 굴했던 흔적이 나타난다. 강력한 무당은 “심령적 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의 결과로써, 보통 이런 방식으로 성장한다. 인격과 성격상의 결함들은, 그 부모나 조부모가 행한 신비사슬적인 죄의 결과로써, 후손들에게서 흔히 다음 형태로 나타난다. 병적인 우울 폭력적인 기질, 무책임성, 비도덕성, 만성적 두려움, 히스테리, 신은 인식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과 무신론, 증오, 숙환, 예측불가 행동, 그리고 다른 많은 비정상적인 것들이다』
폴라와 나는 호바트 프리먼이 말한 것이 진실임을 증명할 수 있다, 샌드포드 가계에는 13명의 “기도하는 에스겔’ 샌드포드들이 있는데, 미국 독립전쟁 때 타이콘데로가 점령시 이튼 알렌(Ethan Allen)과 함께 했던 원조 “기도하는 에스겔” 샌드포드로 거슬러 올라살 수 있다. 나의 모계는 오사지 인디언 계열로, 매우 독실하고 신비주의적인데, 그들 가운데는 뱀을 부릴 수 있고 다른 신비주의적인 능력을 가졌던 자도 있었다. 내 부모는 점쟁이가 되는 데 관계되었었고 나중에는 장미 십자외 사상에 빠졌었다. 나 또한 책을 읽으려고 “파니 아줌마”를 보러 갔었고 개인적으로 장미 십자회의 사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폴라와 나는 둘 다, 호기심에서, 강령술적인 책을 몇 권 읽었고(예를 들면 에드가 케이시의 책과 같은), 시카고에서 잘 알려진 아서 포드(Arthur Ford)가 개최한 강신술 모임에 한번 참관했었다.
우리가 개종하자마자, 그 마귀(devil)가 반격을 가했다. 일찍이 내가 가담했었던 것 때문에 내 안에서 거주하고 있던 한 영이 실제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성령세례가 임하자마자, 전쟁이 벌어졌다. 귀신이 표면에까지 떠올랐다.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집에서 행해졌는데, 심지어 고양이가 광포해져서는 온 집을 미친듯이 뛰어다니고, 피아노 위로 뛰어오르면서 똑 같은 공책을 세 번이나 공격했다. 이날 축사로 나는 자유케 되었지만, 전쟁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 의해 공격을 당하기 쉬웠다. 여러 차레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 가위에 눌렸고 온 몸이 마비되어 아무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속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되뇌이면 귀신의 억압이 풀어지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우리는 악한 영에게 나가라고 큰 소리로 명령할 수가 있었다. 가끔씩 나는 신비적으로 보이는 것에, 하지만 성령 안에서가 아닌 것에 빨려 들어가곤 했다. 조상으로부터 온 모든 것은 십자가에서 멈추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고 배운 후에야 그 출입문은 마침내 패쇄되었다(렘31;29-30을 보라).
내 조상들이 행한 신비사술이 내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몇 년 동안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이런 일은 어떤 하나님의 성회에서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손을 높이 들고 주를 찬양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있었다. 갑자기, 주님을 기뻐하던 한 가운데서 나는 생각했다. ‘왜?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방해를 받았어. 내게는 기회가 없었다고! 이건 공정하지 않아.’ 나는 손을 내리고, 내 감정대로 ‘흥’하고 내뱉었다! 내가 다시 자유롭게 충만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전까지 가르침을 받아야 할 깊은 교훈이 매우, 매우 많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출생때부터 반역자라는 사실을 배우야만 했다(사48:8). 나는 내 문제들 때문에 하나님을 비난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의 타락한 상태에 영향을 받았던 것에 대해 정말이지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다. 우리는 “아담의 타락으로 우리 모두 범죄했다”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가 어리석어 자기 길을 망치고는 속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잠19:3 우리말 성경). 우리가 결함에 대해 하나님을 탓할 수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소위를 보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신비사슬에서 장난삼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다. 쭉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은 사단의 속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점(店, divination)
점은 미래를 보는 것으로 금지된 일이다. 투시는 일반적으로 사단의 보조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주로 우리 자신의 혼적 힘으로 이뤄진다. 그들은 지혜와 계시, 통찰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로운 선물을 그대로 따라 한다. 사무엘은 사울이 생각했던 그런 단순한 선견자가 아니었음에도, 사울에게 잃어버린 당나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말해준다(삼상9:18-20). 예수님께서 멀러 떨어진 일을 아셨고 사도들도 그랬다는 것은 신약성경 전반에 걸쳐 흔히 등장한다. 사단과 성령님은 모두 사람들이 정상적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와 지혜를 드러낸다. 사단은 함정에 빠트리고 죽이려고 그렇게 한다. 성령님은 생명을 가져다주시려고 그렇게 하신다. 점은 모조품이며, 선악과나무에서 열매를 두 번째 따먹는 행위다. 두려움과 신뢰 부족으로 그렇게 시도하는 것인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고 기꺼이 믿음 안에서 기다릴 것이다.
강신술
(강령술 등)죽은 자의 영과 접촉을 시도하는 모든 것에 더하여, 강신술은 하늘과 땅의 교제를 사단이 모방한 것이다. 천사들과 성도들은 우리를 돌보라고 하나님으로부터 지명되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12:1). 히브리서 1장에 분명히 기록된 대로, 우리가 천사들이나 성도들에게로 행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이나 성도들을 개인들에게 방문하라고 보내실 것이나, 이 모든 방문은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것이지 방문을 받는 사람들이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한 예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어 산 위에 계신 예수님을 방문하게 하셨던 때이다(엘리야는 죽은 적이 없지만, 모세는 죽었었다). 성경 전체에 걸쳐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의 사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만 말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틀어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하기 위해 우리를 보살피는 것을 들었다(시91:11; 사63:9; 단3:28; 막1:13; 눅16:22; 행5:19, 12:7, 27: 23; 히1:14). 하늘과 땅의 교감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서는 그분과 오직 그분께서 그분의 종들을 통해 우리를 보살피시는 것이다. 성도들과 천사들을 경배하거나, 그들에게 기도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우리를 즉시 곤경에 빠드린다. 쟁점은, 우리에게 누가 하나님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중하고도 자유롭게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나 사단은 훔치고 강탈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으로라도 죽이고 빼앗고, 눈을 가리고, 속이고, 기어들어오기 위해서 온다(요10:10; 고후4:4; 계20:3; 요10:1).
마술
마술은 기적과 치유를 사단이 따라한 것이다. 마술은 잘못된 동기들을 가지고서 경이로운 어떤 일이 일어나도도록 하기 위해 심령의 힘으로 우주의 원리들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마술과 기도 사이에는 얇은 경계선이 있다. 사울이 주께 드릴 제사에 부정하게 접근하였을 때에 사무엘이 이렇게 말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삼상15:22-23). 거역은 사술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룩하지 않은 욕구에서 바른 원리들을 작동시킨다면, 심지어 시도에서조차-그것은 사술과 가까운 것인데, 혼적인 힘을 가지고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결과를 낳은 원리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 중 상당수가, 그분의 뜻을 듣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머무르지 않았을 때에,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뜻을 이뤄내기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면 우리의 혼적인 기도들은 위험하게도 사술에 가까워진다.
참된 기도는 겸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고 사람과 하나님 모두 자유롭게 놔둔다.아무것도 통제하지 않는다. 아무 영적 레버들도 끌어올리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설교자들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열거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서 그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기도들에 응답하셔야만 합니다.” 혹은, “당신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는 “당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게끔 하는 방법을 당신에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마술에 근접해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가르치는 것들에 매우 신중해야만 한다. 마술이 바라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심령적인 힘으로 어떤 원리들을 작동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술은 비인격적인 원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기도는 인격적인 예의를 으뜸으로 여긴다. 마술은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침해하고 무시하며, 그 바라는 결과를 강제적으로 얻으려 한다.
참된 능력은 정중함과 협력 하에 자유의지와 힘이 결합하여 나온다. 이는 기적과 치유, 이사와 표적을 낳는다. 마술은 그 동일한 것들을 사랑에서 분리된 채로 얻으려 시도한다. 선의의 마술이란 없다. 모두 악의일 뿐이다. 자유의지에서 분리되어 생명을 작동시키거나 조작하려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사랑에서 벗나간 이용, 조작, 착취이며, 사실 그것의 진짜 이름은 증오이다.1970년대의 텔레비전 쇼 ‘요술쟁이’의 주인공 사만다는 악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악의 속임수이다. “작동시킨” 힘은 무엇이든 그 배후가 사단적인 미혹과 통제이나, 당사자는 그것을 알지도 못할 수 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그의 위에 운행하시며 자유롭게 그에게 기도하도록 권하기 때문에 그가 기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마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언젠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속임의 반지가 그를 꾀어 그렇게 하도록 했고 그것으로 그를 가두어 망령들이 누워있는 땅으로 그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부적, 마법, 주문, 저주, 최면은 다 모든 것이 사랑 안에서 협력하도록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육적으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첫 계명은 정복하는 것이었다(창1:28).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리고 그처럼 서로 복종한다(엡5;21). 자연은 자유롭게 우리에게 그 산물의 중대를 내야만 한다. 모든 주문, 부적, 최면적인 힘들은 동물과 자연, 사람을 사랑 안에서 자유의지의 증대로가 아닌, 통제를 목적으로 의지를 유혹적으로 꾀어서 압도하는 것이다.
최면은 굉장한 효과를 이루어낼 수 있지만, 바른 방법으로 힘의 증진을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복종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른 많은 변형들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염려, 순간이동, 사이코메트리, 체현, 유체이탈, 기타 등등. 이들은 모두 그릇된 신념의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는데, 그 안에서 그들은 사람의 심령의 힘을 작동시킨다. 이는 보통 당사자가 알든 모르든 사단의 원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하나님의 참된 은사의 모조품들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은 증오와 속임, 속박과 미혹, 강압, 그리고 어둠의 능력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랑과 자유, 성령의 능력을 벗어난다. 악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눅6:43).
신비사술적인 것에 참여해왔던 자라면(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혹은 자신의 가계에 관련된 것이 있음을 아는 자라면, 그것을 회개하기 위하여 모든 사건들의 모든 기억들을 찾아내 신비사술과 마귀적인 방식들을 끊어버리는 것이 좋을 테다. 각각의 계약은 반드시 파기되어야만 한다. 오직 십자가와 예수님의 보혈만이 그 결속을 끊고 오물을 씻어준다. <엘리야의 임무(The Elijah Task)/존&폴라 샌드포드/순전한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