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2011

보는 기름부음의 활성화 - 요나가 얻은 박 넝쿨의 교훈

조금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꼭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이 책을 통하여 은사의 활성화를 받은 모든 성도들이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 동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주님께 잠잠히 계시는 이유를 계속해서 질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은 바로 저희 아버님이 특정 지역을 지나갈 때면 계속해서 보여주신 박넝쿨 환상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아버님은 그러한 환상을 특정 지역에서 자꾸 보여주시는 이유를 알기 위해 기도하셨고 결국 지성소의 한 장식으로 박 넝쿨 장식이 사용되어 졌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셨습니다결국 그 약속의 장소로 교회를 옮기는 대 이동을 결정하셨고 그 결정 이후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모든 성도들이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다라는 감격 속에서 학원을 목적으로 지은 건물을 새로운 성전으로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함께 동참한 성도들에게도 그 가정에 놀라운 재정적인 축복을 주심으로 교회 인근에 좋은 집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지나 갑작스런 국가적인 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교회에는 시련이 닥쳤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이 말을 바꾸어 아버지를 거짓선지자와 같은 자로 비난하였습니다.

비록 우리 교회가 오랫동안 갈라져있던 지역 연합회를 하나로 모으고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시는 연합 부흥회를 연례적으로 개회최도록 하는 놀라운 기적적인 열매를 맺게 하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더 이상 성도들의 경제적 갈함을 채워주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아버님은 모든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그 지역에서 나오셔야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극심한 경제적 고난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늘을 보며 지금 일어난 상황에 관하여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우연히 성경을 읽던 저는 큰 충격을 얻는 한 성경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요나가 사막에서 그가 심지도 않은 박 넝쿨 그늘 아래에서 잠을 자다 갑자기 벌레가 박 넝쿨을 먹음으로 그늘이 없어져 신음하는 요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요나4:9-11)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주님은 저에게 아버지가 박 넝쿨 환상으로 인하여 순종한 결과로 심지도 않은 경제적 축복을 맛보게 하시고 또 갑자기 국가적인 경제안으로 인하여 이 박 넝쿨의 축복이 사라지게 하신 다음 우리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부르짖던 마음과 같이 오늘 잃어버린 니느웨와 같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은사의 활성화는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역자에게 더욱더 값진 열매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은사의 활성화/임동철/HPWM

보는 기름부음의 활성화 –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계속해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럽에서 그를 부르는 한 환상을 본 것이었습니다.

환상은 특별히 우리에게 방향 제시적인 메시지를 가져다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구약에서 특히 선견자라고 불리어지는 선지자들은 구체적인 어떤 사실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향제시적인 기름부음이 특히 넘쳤습니다. 최초의 이스라엘의 왕이어던 사울이 사무엘을 만나게 된 이유는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은 선견자를 찾아 사무엘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삼상9:10-11)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사실 선지자와 선겨자는 넓은 의미에서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삼상 9:9절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해줍니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선지자와 선견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고 사실입니다. 선지자와 선견자가 좁은 의미에서도 완전히 같은 뜻이었다면 대상 29:29에서 사무엘, 나단, 선지자를 선견자선지자로 구분하여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상29:29)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삼하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 선견자는 선지자이지만 선지자라고 해서 모두 선견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기름부음의 차이는 오직 글자 그대로 보는 기름부음의 차이입니다. 선지자들 중 환상을 보는 기름부음이 탁월한 선지자를 선견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환상을 보는 선견자이었기에 잃어버린 짐승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이 강한 선지자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날에고 릭 조이너, 밥 존스, 톰 모리슨, 폴 케인, 짐 골같은 선지자들은 모두 환상을 보는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예언은 아주 예리하고 국가적인 어떤 중요한 사건에 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예언하여 적중한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911사태와 후세인의 검거, 미국 서부지역의 큰 지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저들고 같은 하나님의 강한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을 가진 자들을 일으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대는 너무나 약해져서 여간해서는 하나님을 시인하고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죄가 넘치는 곳에 더 많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넘치는 방향 제시적인 기름부음으로 고전14:23-25을 성취시켜 주실 것입니다.

(고전14:23-25)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일을 초대교회에만 행하시고 오늘날은 포기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분은 극도로 사랑이 마르고 이지주의가 되어 악해진 이 세대에 더욱 더 이러한 기름부음으로 교회가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또 그분은 이러한 그분의 뜻을 믿고 주님 제가 여기있습니다. 그 일에 저를 보내 주십시오.라고 손을 들어 구하는 자들에게 이 기름부음이 넘치도록 활성화 시켜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 니느웨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로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축복, 축복, 축복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역자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풍요롭게 잘 살 것이라고만 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죄악의 도시 니느웨를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은 예언의 기름부음으로 넘치는 요나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은사의 활성화/임동철/HPWM

보는 기름부음의 활성화 - 하나님의 뜻으로 교정시켜줌

예언적으로 보는 기름부음은 특별히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때 교정해주는 하나님의 전략적인 도구 중에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이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닐 때 그를 잘못된 열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도록 그의 생각을 교정해 준 사건은 다메섹에서 주님의 빛을 보고 그 빛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잠시 눈이 멀었지만 영의 눈을 통해서 본 환상을 통해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를 찾아오 안수하고 기도할 때에 그의 눈이 나을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 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9:3-4)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9:11-12)

아나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나니아의 바울에 대한 평가는 하나님의 평가와 너무도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심지어 하나님이 환상 중에 불러 말씀하실 때에도 바울에게 다가가는 것을 주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환상을 통하여 바울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으로 자신을 교정하게 되었습니다.(9:10-19)

심지어 베드로는 내가 깨끗하다 한 것을 네가 왜 더럽다고 하느냐?라는 질책의 음성이 포함된 환상을 체험하고도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방문하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체험한 후 그는 환상을 통한 그의 잘못 된 생각에 관한 하나님의 교정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교에서 교회가 분리되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유대인들만의 구원을 주장하던 초대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완전히 바꾸는 큰 사건이므로 성경을 통하여 자세히 다시 확인하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1가이사라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3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9이튼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때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1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4-17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밖에 서서(10:1,3,5,9,11,14-1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

아직까지도 기독교 안에서 각 교파와 교단의 교리적 논쟁으로 완전한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당시 에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구원의 교리를 받아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예언적 체험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19:26)

은사의 활성화/임동철/HP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