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2011

{미드라쉬, 노아이야기, 32} *아브라함의 예언과 성취*

*아브라함이 100살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은 얼마나 귀한 아들인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는 전부요 사라에게는 전부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들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사환을 데리고 3일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산 밑에서 아브라함은 두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 오리라>(창 22:5)

데리고 가면 틀림없이 이삭을 죽이지 못 하게 할 것같으니까 아브라함이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삭과 함께 올라가는 데 이삭이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습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

아브라함은 산으로 오르면서 엉뚱한 말 두 마디를 말했습니다.<이삭과 함께 오리라><하나님이 준비하셨다>그런데 결과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입술의 능력은 이렇게 강한 것입니다.

1. 말에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세포의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말하면 그것이 각인되어 그 말대로 됩니다. 피곤하다고 말하면 피곤하여 지는 것입니다. 종다고 말하면 좋다는 말이 각인되어 좋게 되는 것입니다. 누에고치는 자기 입에서 나온 실 300m로 자기 몸을 감싸게 됩니다. 입의 말은 온몸을 감싸게 되는 각인력이 있습니다.

2. 말에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행일치라고 말하지 행언일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말을 잘하여야 합니다. 그 말이 자기를 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87세된 노인이 트럭에 치어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기력이 왕성하였습니다. 시체를 검안한 의사가 미망인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경의로운 분이십니다.
저런 몸이었다면 벌써 돌아가셔야 할 몸인 데 어떻게 이렇게 장수하셨습니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의학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때 미망인 할머니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낙관적인 생각, 낙관적인 말만 하였따는 것입니다. 잠자기 전에는 꼭 이런 말을 하시고 주무셨습니다. "내일은 기분이 더 좋아 질 것이다"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나님은 좋ㄹ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렇습니다. 말에는 견인력이 있습니다.

3.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자주 말하는 것은 반드시 성취되고야 맙니다. 그거이 그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처녀에게 어느 점장이가 <너는 시집가서 잘 살기는 틀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처녀는 좋은 일이 일어나도 <언젠가는 틀려질거야. 잠시 잘 되는 것뿐이야>라고 비관하였습니다. 잘 안되면 <점장이 말이 맞아! 난 틀렸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폐인이 되었습니다. 말에는 성취력이 있습니다.
어느 수학선생님이 자기가 가리키는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다른 교실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머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의 머리다.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아! 자 풀기 시작하여라>

그러나 다른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문제는 너무나 어렵다.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시도하여 보아라>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할수 있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100%가 그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도 풀지 못 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한 명도 이 문제를 풀지 못 하였습니다. 말은 성취력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주장하셔서 언제나 축복된 말, 소망의 말, 긍정적인 말, 미래를 끌어가는 말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언은 성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