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2009

제 3 성령의 물결 -펜사콜라 대부흥

'성령의 불’ 축제가 시작되다'  - 밤마다 평상시와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쾌하고 사내답게만 보이던 십대 소년들이 성령의 권능아래 억제할 수 없이 진동을 하고, 잘 차려입은 부유한 사업가들이 무릎을 꿇고 울었다. 나이 많은 부인들과 젊은 어머니들은 춤을 추고, 어린 아이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주님을 찬양하면서 웃었다. 마약 중독자들과 창녀들도 마루바닥에 엎드려 회개했다. 1995년 어버이 날 예배를 기점으로, 브라운스빌 교회는 갑자기 타오르기 시작한 부흥의 불길로 인해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매일 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여 미국 전역과 전 세계로부터 펜사콜라 브라운스빌 교회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목적은 하나,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성령의 불’ 축제가 시작된 이후 불과 몇 주일 동안 9만7천명의 남녀노소, 십대와 할아버지 할머니, 친구들과 이웃들과 가족들,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저녁집회에 참석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다. 당회장 존 킬패트릭(John Kilpatrick)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밤마다 낮 익은 사람들과 낮선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자유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수님을 더욱더 사모하며 성령께서 그들의 삶에 역사 하시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주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치켜든 사람들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성령의 생수를 마셨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불의 축제를 주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죠!” 킬패트릭 목사는 자신이 찰스 피니의 믿음도, 아주사 거리의 윌리엄 시무어의 끈질긴 힘도, 조나단 에드워즈의 직감도 없었지만 이런 은총이 임하기를 지난 2년 반 동안 계속 기도했다고 말했다.

조용기 목사의 예언 - 한국의 조용기 목사는 1991년 미국 워싱톤 주 시애틀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그는 미국의 영적 쇠퇴를 깊이 염려하여 미국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 때 조 목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미국 지도를 가져오게 한 후, 손가락으로 좁고 길게 돌출한 플로리다 주의 펜사콜라 도시를 가리켰다. 조 목사는 이렇게 예언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닷가 도시인 펜사콜라에 부흥을 보내려 한다. 이 도시로부터 불길이 일어나 마침내 전 미국이 타버릴 것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다. - 브라운스빌 교회의 담임 존 킬패트릭 목사는 8세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집을 나가버린 후 “하나님, 전 이제 아버지가 없어요.”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 거대한 따뜻한 손이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시원한 물 한 컵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존,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어주마.” 어린 킬패트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고 계시는 것을 알았다. 킬패트릭은 성령 충만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1965년 아놀드 중학교 생물학 시간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존, 오늘 내가 너를 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불렀단다. 너의 삶에 나쁜 영향을 줄 네 이웃의 소년과 소녀들을 멀리 하렴. 그들과 가까이 하면 내가 너를 잃어버리게 된단다. 오늘 네가 나의 말씀을 결코 의심하지 않도록 너에게 나의 부름을 확신시켜 주마.” 그 날 학교 교목은 킬패트릭을 보고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구나, 오늘 네가 다르게 보인단다.”라고 말해주었다. 주님은 킬패트릭의 어머니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오늘 내가 너의 아들을 나의 말씀을 전하도록 불렀다. 아들의 삶에 나쁜 영향을 줄 이웃의 다른 소년 소녀들을 멀리 하게 하라.”

두 천사를 만나다 - R. C. 웨첼(Wetzel) 목사는 큰 키에 당당한 모습이었으며, 온건하고 힘과 지혜가 있는 덕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앞으로 목회자가 될 십대들을 데리고 심야 기도회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2년간 계속 이 기도회를 이끌어왔다. 당시 교회는 분열되고 사회상은 혼란으로 말이 아니었다. 웨첼 목사를 포함해 17명의 기도가 계속됐다. 그러기를 얼마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 졌다. 거룩함이 교회 안에 가득 찼다. 그리고 굳게 채워 놓은 강단 양쪽 문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17명 모두 힘차고, 아름답게 빛나는 두 천사가 들어와서 강단 양쪽에 근엄하게 서는 것을 봤다. 그들의 존재는 마루에서 천장까지 가득 찼다.

천사들 주변은 푸른색과 분홍색과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천사들은 5분 가령 서 있더니 서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킬패트릭은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 실제였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거룩한 땅에 서 있었다. 킬패트릭은 이렇게 말했다. “천사들이 섰던 자리에 다가갔다가 모두들 성령의 권능아래 쓰러져버렸어요. 그 권능은 너무나 강력해서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죠. 문들은 열려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새벽 3시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품안에서 평안하게 안겨있었어요. 아침 햇살이 빛날 때가 돼서야 일어날 수 있었답니다.” 그 후 주중 예배 시간에 웨첼 목사가 기도를 시작하자 성령의 권능아래 참석한 38명 모두가 쓰러졌으며, 모두가 성령세례를 체험했다. 이후부터 교회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브라운스빌 교회로 부임하다 기도의 깃발을 만들고 축복을 강조하다 : 킬패트릭 목사는 1982년 펜사콜라에 있는 교인 3백 명의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에 부임했다. 그의 부임 이후 교회가 성장하여 1989년에 보다 큰 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나날이 성장했고 교인들은 성공적인 목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킬패트릭 목사는 공허함,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에 힘쓰며 주님의 말씀에 더 한층 갈증을 느꼈다. 1992년 8월에서 9월 동안 킬패트릭 목사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마태복음 21장 13절 말씀에 의지하여 토요일 밤마다 성령세례를 갈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다. 첫날밤 1백여 명의 교인들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기도를 받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기도를 받았다.

그는 12가지의 기도 깃발을 만들었는데(사31:9), 영적 전쟁 깃발, 가정 깃발, 영혼의 깃발,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한 깃발, 치유 깃발, 목회자들을 위한 깃발, 예루살렘 평화를 위한 깃발, 학교 깃발, 브라운스빌 목회 깃발, 부흥을 위한 깃발, 자녀들의 깃발, 재난의 생존자들을 위한 깃발 등이었다. 주일 밤 예배에 1천여 명의 교인들이 참석하여 각각의 깃발아래 모여 행진하며 기도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깃발 아래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었다.

놀랍게도 주일 밤 예배 참석인원이 20퍼센트나 증가했다. 교인들은 한 깃발 아래서 45분간 기도하고 다음 깃발로 옮겨갔다. 이렇게 기도의 행진이 계속하는 동안 킬패트릭 목사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만일 저들이 이 집을 계속 기도의 집으로 만든다면, 나는 나의 영광으로 이 집을 방문하리라.” 킬패트릭 목사는 부흥의 깃발을 강조하며 더 많이 기도하면서 설교 때에는 축복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더욱 더 갈망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교회를 위해 예비하고 계시는 축복을 부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신약과 구약의 축복을 연구하고 설교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여덟 가지 축복, 유대 전통에서 부모들이 오른 손으로 안수하며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면서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신 것(갈3:13-14),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현상대로 창조하시고 축복하신 일, 아브라함이 이삭을,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손자 요셉의 차남 에브라임을 축복한 일 등 축복에 관한 많은 것을 연구하고 설교했다.

교회에서 천사를 만나다 - 어느 토요일이었다. 성전 문을 열었을 때 킬패트릭 목사는 갑자기 모든 머리카락이 일어서고 온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을 열자마자 어떤 찬란한 힘(아마도 천사의) 속으로 바로 들어간 것 같았었죠. 회중석 옆에 기대 주저앉았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그는 오래 전에 있었던 두 천사의 방문을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몇 시간을 기도하면서 울었다. 그는 이제 큰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으나 그 다음 날 주일에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 그는 토요일 밤마다 성전에 와서 기도했다. 그는 설교할 때마다 교회 부흥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원하지 않는다면, 저는 사임하겠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무관심한 2천 명의 교회를 목회 하느니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50명의 교회를 목회 하겠습니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20여 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1천8백 명이 남았다.

스티픈 힐 목사를 초청하다 - 존 킬패트릭 목사는 브라운스빌 교회의 부흥을 위해 2년 반 동안 기도한 후, 스티픈 힐(Stephen Hill) 목사를 초청하여 부흥 집회를 열었다. 힐 목사는 회심하기 전에 마약 중독 자였으며, 마약을 구하기 위해 훔치는 버릇까지 있었다. 그는 목사가 된 후 아르헨티나 부흥운동을 위해 7년간 사역했으며 남미,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성령 충만한 영국 국교회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성령체험을 했다. 1995년 어버이날 예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힐 목사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아침에 역사 하실 것입니다.”를 반복해서 선포했다. 힐 목사가 기도 받을 사람들을 강단 앞으로 초청하자 1천여 명이 달려 나왔다. 킬패트릭 목사는 힐 목사의 안수기도를 돕기 위해 힐 목사를 따라 강단 오른 편으로 갔다. 힐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하자 킬패트릭 목사는 평상시와는 다른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어오다 - 킬패트릭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힐 목사님의 등에 한 손을 올려놓고 다른 한 손은 한 남자 분의 머리에 얹고 힐 목사님과 함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의 권능아래 그 남자 분은 마루에 쓰러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춤추기도 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억제할 수 없이 떨기 시작했죠.” “갑자기 사도행전 2장에서와 똑같이 바람이 저의 두 다리를 통해서 불어왔습니다.

강한 바람이 저의 두 다리를 통해서 불어오더니 갑자기 저를 넘어뜨렸습니다. 일어설 수가 없었어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죠.”킬패트릭 목사는 토니 테일러(Tony Taylor) 목사의 도움으로 강단위로 옮겨졌다. 킬패트릭 목사는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들,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여기 계십니다. 모두 앞으로 오세요, 오세요!”하고 외쳤다. 하나님은 브라운스빌 교회에서 드려진 2년 반 동안의 부흥을 위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성령의 불’ 축제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스티픈 힐 목사는 그의 손을 킬패트릭 목사를 향해 흔들면서 단순히 “주님, 더욱 부어주시옵소서!”라고 했다. 킬패트릭 목사는 1톤의 벽돌에 눌린 것처럼 대리석 마루에 나가떨어졌다. 그는 12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마루에 누워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한 것이다. 몇 사림들이 와서 그를 일으켰다. 그는 두 주일 동안 강한 힘에 눌려 있었다.

사람들은 킬패트릭 목사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을 보러 왔다. 사람들은 이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목사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킬패트릭 목사 자신만은 자신의 일을 믿을 수 있었다. 브라운스빌 집회를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이 여러 가지 현상으로 강하게 계속 나타났다. 매일 밤 성령의 역사가 계속 일어났다. 성령의 권능 아래 사람들이 쓰러졌다. 예배시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있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전기에 감전되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찬란한 힘으로 임재하시니 사람들이 견디지를 못하고 쓰러졌으며, 억제할 수 없이 떨기도하며, 울부짖기도 하며, 한없이 웃기도하고,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술 취한 듯 비틀거리기도 하고, 근엄하기도 하며, 춤추고 노래하기도 하며, 환상과 꿈을 꾸기도 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다. 그 결과 생수의 강물을 마시게 되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마약중독자와 창녀가 변화되고, 사업가가 새로워지고, 병자가 치유되고, 마음 약한 자가 강해지는 등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기적이 일어났다. 보기에도 놀라웠다. 조지 휫필드와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 때와 같았다

성령의 기름부음, 세계를 강타하다 - 어버이날의 예배 이후 부흥집회는 계속됐다. 성령의 역사는 기이하고도 감동적인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터치’했다. 몇 개월 후 ‘펜사콜라 뉴스 저널’은 이 부흥운동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부흥운동에 호기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언론은 “1995년 6월 18일 어버이날에 성령의 임재하심과 생수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한 이후 6주 만에 교단의 벽을 넘어 22개국으로부터 3만여 명이 예배에 참석했고, 1만여 명이 회심하였으며, 매일 밤 예배에 2천3백~4천2백 명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는 9만7천 명이, 2000년까지 3백50만 명이 다녀갔으며 회심한 사람만도 35만 명이 넘었다.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펜사콜라 브라운스빌 교회로 모여들었으며, 세계 교회가 변화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브라운스빌 교회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영국을 강타했다. 영국의 카리스마적인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하고자 미국의 펜사콜라에 속속 모여들었다. 1998년 통계에 의하면 1백90만 명 이상이 부흥의 불길을 경험하기 위해 펜사콜라 시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도 영국으로부터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다녀갔으며, 영국의 4만2천 교회 중 1만2천 교회가 토론토와 펜사콜라의 부흥에 영향을 받고 다시 부흥의 불길을 경험했다.

청소년들에게 성령의 불이 붙다 - 브라운스빌 교회의 10대들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하게 나타났다. 타락해 가던 그 곳 청소년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그 결과 청소년을 위한 경배와 찬양예배가 목요일 밤마다 드려졌다. 1995년 1백 명으로 시작한 경배 찬양 예배는 3년만인 1998년에 9백 명으로 불어났다. 청소년들을 위해 매주 기도회를 가졌다. 학생들을 교실에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어 국기 게양대 앞 학교 잔디밭에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1년 만에 3백 명에서 2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기도했다. 10대들이 강단 앞으로 몰려와 담배, 콘돔, 마리화나 봉지, 각종 마약, 복권, 유행가 CD, 이상한 글귀가 새겨진 T셔츠 등 잡다한 현대 청소년 세대의 우상들을 큰 드럼통이 가득 차도록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그 지방 경찰서장은 브라운스빌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여 청소년들이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경찰 서장은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이러한 복음적인 집회만이 미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고 감탄하며 말했다. 몇 주일이 지난 후 경찰서장의 딸도 브라운스빌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게 됐다.청소년 담당 목사인 리차드 크리스코(Richard Crisco) 목사의 청소년 선교와 교육 전략은 감동적이었다. 그는 학생들을 위해 13주간의 제자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제자훈련의 3가지 요소는 첫째, 간단할 것(simple) 둘째, 실질적일 것(practical) 셋째, 영적일 것(inspirational) 등이라고 말했다.

제자훈련 리더들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간단했다.

첫째, 하루에 성경 3장을 읽을 것,

둘째, 한 주에 성경 한 절을 암기할 것,

셋째, 한 주에 한 사람에게 전도하기의 세 가지 뿐이었다.

크리스코 목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이 진동하든지, 쓰러지든지, 방언을 하든지 모두 좋아. 그러나 사단이 나타나 자네들을 유혹한다면 어떻게 하지? 사단 앞에서 진동만 하고 있으면 사단이 도망갈까? 성령의 권능 아래 쓰러져서 죽은 척 하고 누워 있으면 사단이 자네들을 가만히 두고만 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따라서 우리가 사단을 이기려면 예수님께서 하신 대로 해야만 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성경에 이렇게 기록돼 있단 말이야’하고 말씀으로 대항을 해야 한다구.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면,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질 수밖에 없어.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무기란 말이야!” 그는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말씀 증거를 위해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동료 학생들에게 전도할 때 암기한 성경 구절을 그들의 말을 뒷받침 해 주는 증거로 삼았다. 그들은 탈의장에서도, 체육관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친구들에게 말씀으로 전도했다.

결국 이들의 많은 친구들이 부흥 집회에 참석하여 구원을 받았다. 크리스코 목사가 학생들에게 한 말을 이 글의 결론으로 삼고자 한다. 크리스코 목사는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대부분의 청소년목회 사역자들이 성령의 능력 없이 사역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깔끔한 프로그램, 깔끔한 설교, 모든 것에 깔끔한 충격을 주어도, 틴에이저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목회자들이 교회를 성장시키고 청소년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일어나서 청소년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접촉하는 길 뿐이라는 것이다. 크리스코 목사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체험하는 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말은 오늘 한국교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예영수 박사>

제 3 성령의 물결 -토론토 블레싱

1994년 1월 20일, 역사적인 날 - 1994년 1월 20일, 캐나다 토론토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작은 창고 같은 에어포트 빈야드 교회의 존 아놋(John Arnott) 목사는 빈야드 계열의 랜디 클라크(Randy Clark) 목사를 초청하여 4일 동안 부흥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가 그 교회 교인들의 삶을 활성화시킬 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갱신을 불러일으키는 역사적인 집회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집회 첫 날 밤 예배 때,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권능에 압도되어 쓰러지고, ‘거룩한 웃음’을 웃게 되고, 진동하고, 방언하고, 치유 받고, 울부짖는 등 여러가지 현상을 체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그 집회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누리게 되고, 육체적 감정적 영적 치유를 경험하게 되고, 인간 관계의 회복과 부부관계의 회복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부활 생명이신 예수에 대한 믿음과 성경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교회 생활의 활성화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회에서 일어난 신기한 현상들을 세계 매스컴들은 ‘토론토 축복(Toronto blessing)’이라고 했다.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 랜디클라크 목사의 영향 - 랜디 클라크 목사는 ‘토론토 축복’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 남아프리카로부터 온 오순절 교회의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Rodney Howard-Browne) 목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993년 봄, 미국 플로리다 카펜터즈 교회의 칼 스트레이드(Strader) 목사는 하워드-브라운 목사를 초청하여 1주간 예정으로 갖게 된 집회가 4주간을 계속하게 되었다. 이 집회가 특이한 것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웃음이 터지는 등의 현상이었다. 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프리카, 영국,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집회에서 2천2백명이 세례를 받고, 예배가 새벽 2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스트레이드 목사는 28년 동안 그 교회에서 시무 했으나 이렇게 은혜 받는 부흥집회를 본적이 없었다고 탄복했다. 그 교회는 하워드-브라운 목사를 세번 초청해서 집회를 가졌는데, 5개월 동안에 8백명의 새 신자들이 등록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플로리다 리빙워터 교회에 시무하는 클라크 목사가 하워드-브라운 목사의 집회에 참석한 것은 이때였다. 클라크 목사는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았으나 스트레이드 목사의 권유로 참석하여 스트레이드 목사 옆에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클라크 목사는 자신이 마루바닥에 넘어져서 억제할 수 없는 웃음을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클라크 목사는 간증하기를 “그 웃음은 기쁨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때 나타나는 기적 중 하나는 사람들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이 벗겨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웃기만 한답니다”라고 했다. 아직도 클라크 목사는 웃고 있다. 1년만에 클라크 목사의 교회는 8백명에서 1천5백여 명으로 성도가 늘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확장을 위해 새 건물을 구입해야 했다. 클라크 목사는 성령의 권능에 압도되는 ‘토론토 축복’과 같은 현상으로 자신의 교회는 개종, 세례, 치유 등의 역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말을 한다.

하워드-브라운 목사는 자신을 ‘성령의 바텐더’라고 말한다. 하워드-브라운 목사가 교회 좌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회중을 향해 손을 저으면 여러 줄의 사람들이 모두 마루바닥에 벌렁 넘어지고, 겉잡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지고, 기쁨에 차서 울기도 한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집회에 참석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은 결국 교회 마루 바닥에 쓰러져서 억제 할 수 없는 웃음을 웃는 것이다.

하워드-브라운 목사는 작년(2002년 11월)에 흰돌산 기도원에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집회를 가졌다.

‘토론토 축복’ 세계로 확산되다 - 랜디 클라크 목사를 강사로 한 4일간 예정된 이 집회는 몇 달 동안이나 계속되는 밤 예배로 이어졌으며, 때로는 새벽 3시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토론토 축복’에 대한 것을 직접 알아보기 위한 호기심과 또한 그 ‘축복’을 체험하기 위해 수천 수만 명의 방문객들이 이 곳에 모여들었다. 존 아놋 목사와 30명의 직원들이 인도하는 이 부흥회는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밤 열렸으며, 세계적인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 더해 갔다.

이 부흥운동이 시작된 후로 세계 각 나라의 미디어는 ‘토론토 축복’에 대한 내용을 신문 기사와 TV 보도물로 알리기 시작했다. 매스컴들은 이 부흥운동이 어떻게 지구촌 방방곡곡에 전파되어 가는지를 보도했는데, ‘토론토 축복’이 시작된지 1년 되는 1995년 2월까지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20만명에 달했으며, 이 중 1만여 명은 성직자들이었다. 그 이후 ‘토론토 축복’의 갱신운동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와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토론토에서 나타난 현상들이 온 세계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다.

‘토론토 축복’은 ‘갱신(renewal)’ 운동인 동시에 부흥운동이었다. 왜냐하면 ‘토론토 축복’의 영향으로 교회 갱신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많은 새로운 회심자들이 교회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토론토 축복’의 파도는 캐나다의 다른 교회로 넘쳐나갔다. 캐나다, 뉴 브룬스윅크의 스테반 윗트 목사와 5명의 다른 목사들은 토론토 교회에서 모두 안수기도를 받았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쓰러져서 것잡을 수 없는 웃음을 체험했다.

교회로 돌아온 윗트 목사가 주일 예배 때 교인들에게 안수기도를 하자 1백여 명의 교인들이 카페트 위에 쓰러졌다. 이날 아침 예배는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으며, 교인들은 웃음, 기쁨, 평화, 해방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 윗트 목사는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 6개월 동안 매일 밤 집회를 가졌으며, 계속해서 매 금요일과 토요일에도 집회를 갖게 되었다. 영국 국교회와 가톨릭을 포함해서 다른 교파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윗트 목사의 교회에 참석하여 ‘성령의 새술’을 마시는 체험을 했으며 캐나다의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토론토 축복’의 파도는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은 ‘토론토 축복’의 가장 큰 영향과 효과를 불러일으킨 나라가 됐는데, 모든 교단들이 진한 감동을 체험하게 되었다. 실제로, 토론토 방문객들 중 약 40퍼센트가 영국 교회의 지도자들이었으며, 침체의 늪에 빠졌던 영국 교회가 새 술에 취해 다시 소생하기 시작했다.

영국 국교회 존 멈포드 목사의 사모인 엘리노어 멈포드(Mumford)는 1994년 봄에 토론토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게 된 후, 오로지 주님을 위한 뜨거운 열정만으로 불타게 되었다.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오자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기도회를 가졌다. 그 집회에는 영국 국교회에서 제일 큰 런던의 홀리 트리니티 브롬프톤 교회의 닉키 검벨(Gumbel) 목사도 있었다. 검벨 목사는 런던의 수천명의 화이트 칼라 엘리트 층에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검벨 목사는 멈포드 사모를 통해 ‘토론토 축복’과 같은 현상을 체험하게 되고, 검벨 목사를 통해 그의 교인들 사이에 ‘토론토 축복’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멈포드 사모와 검벨 목사를 시작으로 1995년에 영국에서는 4천여 교회들이, 현재까지 1만2천 교회들이 ‘토론토 축복’과 같은 현상을 체험했으며, 오랜 침체를 깨고 영국 교회들이 다시 성장하기 시작했다.

‘토론토 축복’의 파도는 홍콩으로 건너갔다. 1994년 홍콩 유니온 교회의 진 프레스톤(Preston) 목사는 영국의 검벨 목사를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다. 이 교회 교인들은 부유한 은행가 형에 쌀쌀하고 무표정한 사람들이었다. 오죽하면 프레스톤 목사는 “우리 교인들은 부흥회 후에도 별로 변화가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벨 목사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홍콩의 많은 지도급 교인들이 성령의 권능아래 쓰러져서 밤잠을 자지 않고 기쁨에 겨워 한없이 웃었으며, 참석한 모든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 하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프레스톤 목사도 ‘거룩한 웃음’을 마음껏 웃는 축복을 받았다. 홍콩의 영국 국교회 목사들은 검벨 목사의 집회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눈물을 흘리며, 쓰러져서 입신의 체험을 하게 됐다.

활기찬 목회, 예수를 전하고 싶은 마음  - ‘토론토 축복’을 맛본 교회 지도자들은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적인 열매가 맺어지는 것을 보게 됐다. 전체적으로 보아, 참석자들은 모두가 하나님과 보다 깊은 관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개인적인 차원이나 집회적인 차원에서도 많은 참석자들에게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사람들은 서로를 용서하게 됐으며, 인간관계가 원만해지고, 또한 가정문제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간증했다.

특히, 많은 목사들이 토론토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은혜를 받게 됐다. 말하자면, 영적으로 메말랐던 목사들이 토론토에 와서 놀라운 ‘갱신’을 체험하게 되었다. 영국 윔블톤의 엘리노어 멈포드 사모도 그런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엘리노어 사모는 잘 해보려다 지친 나머지 주님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토론토로 모여온 수많은 남여 목회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토론토를 떠날 무렵 대부분 하나님과의 초자연적인 만남을 간증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체험한 토론토에서의 일은 그 후 다른 좋은 결과의 열매로 이어졌다. 오랜 세월동안 상처받은 감정의 치유, 주님에 대한 나날이 뜨거워지는 사랑,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려고 심혈을 기울이는 마음가짐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수많은 육체적인 치유에 대한 간증은 물론이고,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압도되어 쓰러져버린 많은 이야기들이 계속 보도되었다.

엘리노어 사모는 자신이 직접 갱신의 체험을 한 이후, “이 체험을 반드시 전해야겠다는 다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싶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내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대각성•성령의물결 운동과 유사 - ‘토론토 축복’은 예전의 미국의 제1, 2차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 때 일어났던 현상과 피터 와그너 박사가 말하는 제1, 2, 3 성령의 물결운동에서 나타난 현상과 아주 현저하게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예를 들면, 1세기 전에 LA의 아주사 거리나 캔사스주의 토페카 시를 뒤흔들었던 오순절운동에서도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웃는다든지, 운다든지, 신음 소리를 내며 떨기도 하고, 쓰러지고 또한 이상한 소리까지 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대각성운동이나 오순절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변화된 삶에 대한 보도, 즉 치유 받은 일, 인간 관계가 회복된 일,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더 한층 증가된 열정 등등의 열매를 맺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부흥 역사학자이며 「20세기 부흥운동」의 저자 리차드 리스(Riss)는 “토론토에서 일나는 일은 1906년에 일어났던 ‘아주사 거리’ 사건과 동등하다”고 말했다. 바로 이 ‘아주사 거리’ 사건이 현대의 오순절 교회를 태동시킨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침례교회의 스텐 소르넨센(Sornenesen) 목사도 “토론토는 아주사 거리의 새로운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이 런던에 있는 홀리 트리니티 브롬프톤 교회에서 이러한 체험을 직접 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야마토에 있는 갈보리성서신학교의 쭈구미찌 오오카와 총장도 이 갱신운동이 일본 전국에 확산되어 오순절과 복음주의 계열의 신자들 사이에 화합을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토론토 축복’의 특징 중에 하나는, 대각성운동 때처럼 각종 교단이 모두 함께 한다는 것이다. 침례교, 가톨릭, 영국 국교회, 카리스마계, 오순절계, 그리고 사실상 모든 기독교 교단들에 속한 믿는자들이 같은 ‘갱신’의 체험을 하고 왔다.

토론토 운동의 역사에 대한 책 「성령의 불을 붙여라」(Catch the Fire)를 출판한 가이 셰브로(Chevreau)는 여러 교단간에 화합하는 특성으로 보아 토론토의 갱신운동이 성령의 역사임이 확실하다고 했다.

‘사자의 소리’는 성령의 역사인가? - 토론토의 부흥운동이 시작된 후 5개월쯤 지나서 존 아놋 목사는 랜디 클라크 목사와 함께 세인트루이스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토론토 교회에 전화로 별일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집회는 훌륭히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지난밤에 사자와 같은 포효소리를 냈어요”라고 대답했다.

아놋 목사는 아연 실색하여 “주님, 지금까지 정말 잘 해왔는데 이상하게 가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놋트 목사가 토론토로 급히 돌아 왔을 때, 그 포효하던 목사는 아직 그 집회에 남아 있었다. 강대상 앞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기드온 치우(Gideon Chiu)라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온 중국 관동 출신의 목회자 일행으로서 존경받는 유명한 지도자였다.

치우 목사는 하나님을 향한 갈급한 심령으로 인해 토론토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이 온순하고 부드러운 목사는 다시 한번 모든 사람들의 앞에서 사자처럼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는 강대상 앞에서 성난 사자처럼 “내 백성들을 내놔라! 내 백성들을 내놓으란 말이야!”라고 크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치우 목사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오더니, “중국인들은 수백 년 동안 용(마귀를 상징함)에게 속임을 당해 왔지만, 그러나 지금은 유대 지파의 사자이신 예수님(계5:5)이 중국의 자녀들을 해방시킬 것입니다”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폭발적인 박수갈채를 했다. 그 날 밤 이후, 가끔씩 소위 “동물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들었다.

존 아놋 목사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천5백명 가량의 사람들이 일주일에 여섯 번씩 매일 밤 집회를 하는데, 일주일 내내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치우 목사님의 영향으로 우리 집회에서 동물들의 소리가 나는 현상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자의 소리를 낸 치우 목사는 자신의 모국인 중국이 용의 나라이고, 사탄을 상징하는 이 용은 유다의 사자이신 예수님만이 이길 수 있으므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 11장 10절의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는 말씀처럼, 상징적으로 사자(예수)의 소리(말씀)를 발(선포)함으로써 중국의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간절한 울부짖음이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모국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과 기발한 상징적 표현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계시록 4장 7절의 네 동물을 바탕으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으로, 마가복음을 ‘소’복음으로, 누가복음을 ‘사람’복음으로, 요한복음을 ‘독수리’복음으로 상징성을 사용하는 선례가 있기에 치우 목사님도 그렇게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물의 소리는 상징성에 많은 오해가 있어서, 특히 한국에서 오해가 더 큰 것 같아서 더 이상 그런 상징적인 소리는 절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존 아놋 목사도 “지금은 아무도 그런 상징적인 동물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치우 목사의 중국의 잃어버린 심령들을 향한 애정을 갖고 하나님을 향해 그 민족들을 위해 부르짖은 그 열정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합니다.”라고 결론을 맺었다. <예영수 박사>

제 3 성령의 물결 - 능력 전도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20세기 성령운동을 3기로 나누어 제 1, 2, 3 성령의 물결로 표현했다. 리차드 리스(Richard M. Riss)는 제1성령의 물결을 주요 재(再)각성운동이라 불렀다. 제 1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요, 제 2 물결을 카리스마적 운동이며, 제 3 물결은 오순절 운동과 카리스마적 운동을 합친 것을 말한다.

제3의 성령의 물결은, 피터 와그너 박사에 의하면 1980년대에 시작한 운동으로서 제1의 성령의 물결로 알려진 오순절 운동과 제2의 성령의 물결로 알려진 은사주의 운동과 유사하다. ‘제3의 물결’이라는 말은 피터 와그너 박사가 1983년 「목회갱신」(Ministry Renewal)이란 잡지의 케빈 페로타(Kevin Perrotta)와 인터뷰할 때 처음 사용했다.

제3의 물결은 제1, 2 물결의 내용을 받아들이면서 성령 충만을 통한 성령의 능력(power)을 강조한다. 제1, 2, 3의 물결이 유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역사 하시는 분이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병자가 치유 받으며, 절름발이가 걸으며, 귀신이 쫓겨나며, 신약시대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능력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에서도 여러 해 동안 나타났다.

제1, 2의 물결과 제3의 물결이 구별되는 중요한 변화는 성령세례의 의미와 성령세례의 표식으로서의 방언의 역할과 성령 충만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하는데 있다. 오순절 운동과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방언이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보지만 제3의 물결에서는 방언을 은사중의 하나라고 본다. 또한 성령세례는 한 번 받지만 삶 속에서는 계속 성령 충만을 받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성령이 충만하면 은사와 능력이 임하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도 임한다고 설명한다. 은사주의에서는 분열이 많이 일어났었지만 제3의 물결의 특징은 분열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분열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은사주의 운동에서는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은 은사를 가진 사람이나 지도자가 했으나 제3의 물결에서의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은 어떠한 특정한 층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예수 믿고 교회의 지체된 사람은 누구나 축사사역과 치유사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한다. 제3의 물결은 은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날 교회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한다.

제 3의 물결은 성령의 임재하심과 기름부으심을 강조한다. 찬양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하고, 기도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하고, 말씀도 성령의 임재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모든 예배의 시종은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며, 예배드릴 때 성령이 임재 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치유와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남을 강조한다.

제3의 물결이 일어난 것은 존 윔버(John wimber)목사의 빈야드(Vineyard)교회였으며, 빈야드 교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물결은 ‘토론토 브레싱(Tornoto Blessing)’으로 알려진 존 아놋(John Arnot) 목사의 토론토에어포트교회로 이어졌으며, 이 물결은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의 브라운스빌교회로 연결된다.

제3의 물결 선두주자 존 윔버 - 존 윔버 목사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50명으로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개척, 6천명으로 부흥시켰다. 그 교회에서 마태복음 10장 1절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약에서 말하는 병자가 치유 받고 귀신이 쫓겨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존 윔버 목사와 그 교회의 교인들을 통해서 나타내기 시작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존 윔버 목사와 함께 풀러신학대학에서 MC510 ‘표적, 기사, 교회 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이란 과목을 개설했다(후에 이 과목 명칭은 ‘기적과 교회 성장(The Miraculous and Church Growth)’으로 바뀜). 1982년 1월에 강의를 시작했는데, 강의시간이 끝나면 사역 시간을 갖고 강의내용에 따라 기도시간을 가졌다. 바로 그 강의 시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밤마다 그 자리에서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사실로 증명됐으며, 병자가 즉시 치유함을 받았고, 악령이 쫓겨났으며, 많은 다른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피터 와그너 박사도 진물이 흐르는 목의 종기를 고침 받았다. 피터 와그너 교수와 수백 명의 목사들의 목회에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풀러신학대학에서 4년간 4만 명 이상의 목사들에게 기적과 교회성장 이론을 가르쳤다.

그 당시 세계 신학계에 제일 유명한 강의가 두 개였는데 하나는 스위스 바젤대학 칼 바르트(Karl Barth)의 교의학(dogmatics)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풀러대학 존 윔버의 MC510이었다. 존 윔버의 MC510 강의 내용은 「기독교 생활」(Christian Life) 지의 편집자 로버트 워커(Robert Walker)에 의해 1982년 10월호의 전체 특집으로 다루어졌고, 마침내「오늘날의 표적과 기사」(Signs & Wonders Today)란 책으로 출간돼 전 세계 교회와 기독교 단체와 대학에 소개됐다.

풀러신학대학의 MC510 강의 내용은 풀러신학대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기적종료론자들의 반대의 소리에 직면하게 됐다. 기적종료론자들은 사도시대 이후에는 표적과 기적이 종료됐으며, 모든 표적과 기사와 기적은 성경(정경)을 쓰기 위한 증표로 된 것이므로 성경이 주어진 오늘날에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육적• 정서적 치유함을 받았으며 성령 충만을 체험하게 됐고, 1984년 풀러신학대학에서의 존 윔버의 강의는 LA를 넘어 전 세계의 화제가 됐다.

존 윔버 목사가 강조한 것은 ①찬양 ②말씀(선포와 증거) ③기도(치유 강조) ④전도 ⑤구제(예산의 60%) 등이었다. 그 중에도 존 윔버 목사는 말씀 사역을 위해서 예수의 복음 사역 패턴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의 복음사역은 말씀선포+증거 - 존 윔버 목사는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예로 들면서 말씀을 선포하고 표적과 기사와 기적으로 그 말씀을 증거하면 복음은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누가복음 4:18~19(이사야 61:1~2), 마태복음 4:23~25 혹은 9:35~36, 마가복음 16:14~20 등을 예로 들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proclamation) 하실 때 표적과 기사와 기적이 일어나 그 말씀을 확증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이 효과적으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존 윔버는 예수의 말씀의 핵심 사상의 하나로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임하는 것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생애 전체가 말씀 선포(Word, what he said)+실증(works, what he did)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마가복음 16:14~20에서 온 천학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고 하셨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다음에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에 대해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성경은 분명히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한다고 했다. 모든 기적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전파를 위한 것이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 1979년 5월 어머니날, 교회창립 2주년 주일 저녁예배는 존 윔버 목사와 빈야드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오래 기억되는 예배가 됐다. 그 날 윔버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로니 프리즈비(Lonnie Frisbee)란 청년의 뒤를 따라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때 주님께서 “오늘 저녁 예배 때 이 젊은 사람이 간증을 하도록 요청하라”고 말씀하셨다. 로니는 갈보리채플교회의 목사였고 부흥사였다. 윔버와 로니는 서로 깊이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날 저녁 간증을 마치고 난 로니는 25세 미만의 젊은이들을 강단 앞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로니는 “성령이여 오시옵소서(Come, Holy Spirit!)” 라고 외쳤다. 그 기도의 반응은 엄청난 것이었다. 하나님의 성령은 문자 그대로 사람들을 바닥에 쓰러지게 했으며, 바보처럼 자기 몸을 떨며 진동하게 했다. 사람들은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았다. 쓰러져 넘어지고 뒹구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 그 후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성령과의 만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존 윔버 목사도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밤새껏 성경책을 뒤적였다.

그 이후에 제3의 물결에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은 ①성령의 권능으로 넘어짐(환상을 봄) ②진동 ③치유 ④거룩한 웃음(holy laughter) ⑤방언 ⑥축귀 등의 현상이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통한 표적과 기사는 말씀을 증거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표적과 기사를 통한 복음전도를 윔버는 ‘능력전도(Power-Evangelism)’, ‘능력치유(Power-Healing)’라고 명명, 오늘날 새로운 신학적 어휘들로 사용되고 있다. 이 능력전도는 전 세계의 침체된 전통 교회와 비전통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대중전도를 확산시켰다. 미국과 캐나다와 세계 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국의 전체 4만2천 교회 중 1만2천 교회가 활성화되고, 전 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세아에 영향을 주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복음전도 - 존 윔버는 열심을 다하는 개인 전도자다. 그는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그는 부인과 함께 LA 남부 오렌지카운티의 모든 골목, 모든 상점, 모든 식품점 어디고 다니며 전도하지 않은 골목이 없다. 그는 1963년 회심이후부터 1970년까지 5백명 이상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으며, 한 주간에 11개 성경공부 반을 인도했다. 그는 식품점 시장에 가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했다.

그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에서 큰 집회를 무수히 인도했다. LA의 오렌지카운티에 3천2백석의 대형 교회를 짧은 세월에 성장시켰다. 그의 책들이 팔려 인세가 연간 30만 달러가 넘게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는 많은 돈을 복음 전도에 사용하면서 자기의 몫을 챙기지 않았다.

존 윔버 목사는 불신가정에서 자라나 세속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전도를 잘했다. 미국에서 히피(Hippie)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자신도 히피였다. 히피는 퇴폐 풍의 옷차림을 치렁치렁 걸치고, 머리는 길게 늘어뜨리고, 집을 나와 맨발로 거리를 배회하며 반전, 자유, 이상주의에 젖어 평화를 노래할 때였다. 당시 월남전쟁이 한창이어서 젊은이들을 국가가 명령하여 징집할 때였다. 젊은 여자들도 합세하여 머리와 옷에 꽃을 달고 마치 평화의 나라를 향해 가는 이상적 순례자의 모습을 여기서 생겨난 그들의 슬로건은 반대주의(-antism)였다. 반문화, 반전통, 반체제, 반정부의 사상이 그들의 전유물이었다. 히피들의 의식과 문화와 이상은 미국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의 중심 사상이 됐다. 베이비 부머는 2차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을 지칭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오자 미국 젊은이들이 아기를 많이 낳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들 히피들은 술과 마약의 밥이 되었다. 그들의 젊은 감정은 부도덕의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존 윔버 목사는 이들을 이해했다. 히피 세대는 사회에 진출하면서 그들의 반대주의(-antism)를 사회 속에 심으려 했다. 훗날 존 윔버 목사는 이상사회 건설에 꿈을 가졌으나 수포로 돌아간 젊은이들의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존 윔버 목사는 그들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다양한 예배형식을 과감히 실험했다. 그는 베이비 부머 세대를 전도하려면 옛 교회 전통보다는 그들에게 맞는 새로운 교회전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존 윔버 목사는 오늘의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 오늘 우리의 언어로, 오늘 우리의 노래로,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랑으로, 오늘 우리의 자유로, 오늘 우리의 악기로, 오늘 우리의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자고 주장했다. 태초 이래 복음은 절대 불변이지만,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복음을 담는 그릇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 태어난 것이 빈야드 교회의 ‘열린 예배’다.

빈야드교회의 예배혁명 ‘열린 예배’ - 열린 예배에서는 주기도문 암송이나 교독문, 사도신경 암송도 축도도 없다. 사도시대 때에도 이런 것은 없었다. 이런 것들은 후에 교회가 발전하면서 교회지도자들이 모범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갖추게 된 순서일 뿐이다. 천주교회에서는 이것이 의식으로 발전되고, 개신교에서는 예배의 필수적 요소가 되기도 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26에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오늘날 전통적 주류교회의 예배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예배엔 계시도, 방언도, 통역도 없다. 우리가 잘못된 것인가? 사도 바울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의 전통이 잘못된 것인가? 초대교회가 잘못된 것인가?

빈야드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예배순서를 갖는다. 사람들은 빈야드의 예배 형식을 격찬하기도 하고, 또 격렬히 반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빈야드 사람들은 절대로 남을 비판하지 않는다.

‘경배와 찬양’ 몰고 온 빈야드의 찬양 - 존 윔버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악단의 단장으로 라스베가스의 2개 로큰롤 쇼 그룹에서 이름을 날렸다. 재즈 음악에 심취하여 악단에서 색소폰을 불었다. 그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연주하기도 했다. 1976년 10월 어느 날 당시 존 윔버 내외는 함께 모인 10여 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기타를 치며 복음성가를 불렀다. 그들은 몇 개 안되는 복음 송을 여러 번 반복해서 열심히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이 작은 모임은 훗날 5천명에 이르는 빈야드교회의 초대형 찬양단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모여서 복음 송을 불렀고 변화를 체험했다. 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찬양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빈야드 교회에서는 소수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찬양대원이다.

1982년부터 빈야드의 찬송 음악이 전 세계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의 ‘경배와 찬양’을 통해 빈야드 찬양이 소개됐다. 한국의 복음성가는 빈야드 찬양으로부터 약 75%의 영향을 받고 있다.

1982년 윔버는 처음으로 영국 전도여행길에 올랐다. 윔버 목사의 빈야드교회 사역은 잠자던 영국 교회에 불씨를 던졌고, 오늘날 영국 교회를 성령의 불길에 휩싸이게 했다. 그가 영국 교회에 미친 영향은 그에게 ‘제2의 웨슬리’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이 성령의 불이 영국 주류교회를 소생시키고, 다시 더 큰 불이 되어 전 구라파는 물론 미국으로 되 불어오고 있다.

윔버 목사의 사역에 접목된 니키 검블(Nicky Gumble) 목사는 켐부리지대학 출신의 변호사다. 그는 법률을 접어두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됐다. 검블이 개발한 알파(Alpha) 성경공부 교재와 교과과정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로 소개됐다. 지금까지 알파 성경 코스에 참여한 인원은 50만을 넘는다. 미국 교회에도 알파 성경 공부의 바람이 불어와 1998년 한해에 1만 교회 이상이 알파 코스에 참여했다.

한국의 강단과 신학교에서도 존 윔버 목사와 제3의 성령의 물결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져 그가 기독교회에 공헌한 것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예영수 박사>

제 2 성령의 물결 -카리스마 운동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20세기 성령운동을 3기로 나누어 제 1, 2, 3 성령의 물결로 표현했다. 리차드 리스(Richard M. Riss)는 제1성령의 물결을 주요 재(再)각성운동이라 불렀다. 제 1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요, 제 2 물결을 카리스마적 운동이며, 제 3 물결은 오순절 운동과 카리스마적 운동을 합친 것을 말한다.

은사 (카리스마)운동 - 피터 와그너 박사는 제1의 성령의 물결은 오순절운동이라고 하고, 제2의 성령의 물결은 은사(카리스마)운동이라 했다. 은사운동은 1960년 4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밴 나이스에 있는 성 마가 성공회 교회(St. Mark's Episcopal Church)의 교구목사로 있는 데니스 베네트(Dennis J. Bennett) 신부(목사라 칭하겠음)가 회중들에게 자신이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일어난 모든 것을 「아침 9시」(Nine O'clock in the Morning)란 책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은사운동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급속히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은사운동은 미국과 세계의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 교와 다른 많은 교단에서 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은사운동은 오순절운동의 방언의 은사에 더하여 모든 성령의 은사가 지금도 일어난다고 믿었다. 베네트 목사를 통해 방언 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운동이 기성교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것을 ‘은사주의 운동 Charismatic Movement’ 혹은 ‘신오순절 운동 Neo-Pentecostal Movement’이라 했다.

은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보다 복음주의적으로 보게 되고 회심과 중생을 보다 복음주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개의 복음주의자들은 은사운동을 환영하지 않았다. 복음주의자들의 보수적인 신학은 기적이란 오늘날의 기독교 경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적(은사)종료론 Cessationism’을 믿었기 때문에 방언과 성령세례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복음주의적인 교회에서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 체험을 하게 되면 교회가 그들을 떠나게 하든지, 아니면 그 결과 교회가 분리되었다.

「아침 9시」Nine O'clock in the Morning  - 베네트 목사의 저서 「아침 9시」(Nine O'clock in the Morning)는 사도행전 2장 15절의 “때가 제 삼시니(아침 9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서 취한 것으로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때를 말한다.

16년 목회의 메마름 - 베네트 목사는 교회가 성장하고 가정이 안정되어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행복했다. 그러나 목회한지 16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의 심령은 점점 더 메말라 갔다.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면서도 진정 하나님께서 실생활에 현존하신다는 실감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성령에 대한 강의를 잘 하면서도 그에게 성령은 막연하게 이론적인 존재로서 성경에 나타난 것과 같은 기쁨, 권능, 확신 같은 것을 갖지 못했다. 결국 그는 이러한 영적 기갈을 해소해 줄 무엇인가를 갈망하게 되었다.

방언에 대한 갈망 - 베네트는 신약성경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는 성령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신약에서 성령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무려 2백40 군데나 된다는 사실과,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만 16 차례 성령을 언급한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초기 크리스천들이 계속해서 성령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성령은 그들에게 막연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령의 중요성을 도처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 신비로운 방언으로 말했는데 왜 지금은 방언의 은사가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신학교에서 ‘방언은 사도시대로 끝났으며 무지한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흥분 상태에 빠졌을 때 개 짖듯 내는 소리’라고 배웠다. 문제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라는 성경의 대목이었다. 바울 역시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고전 14:5)라고 하고,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장)며 방언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방언의 은사 체험 -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베네트 목사의 혀가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 그는 정신이 말짱했으며 자의식도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 방언은 심리적인 속임수나 충동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그는 어린 아이가 중얼거리는 그런 언어가 아니라 진정한 언어로서 문법도 신택스(구문론 syntext)도 있는 아름다운 언어임을 알았다. 그는 5분 동안 방언을 했으나 별로 신비로운 것은 느끼지 못했다.

그 후 그는 또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알았다. 방언은 자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것이며, 방언을 계속 하면 할수록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더욱 더 알게 되고,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 언어를 창조해내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언을 하면서 비로소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한 바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방언으로 기도하면서 목회 생활의 메마름이 사라지고 심령가득 차오르는 행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30여명의 목회자들이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친구 목회자가 방언으로 기도했을 때 베네트 목사는 “나의 영은 기뻐 춤을 추고, 주님이 가까이 계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임하심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옛 전통을 따르는 숨 막히는 성공회 목회자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기쁨으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이들은 주님을 찬양하면서 ‘할렐루야!’를 수없이 외쳤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의자에서 일어서지를 못했다.

치유의 은사 - 베네트는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장)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고 자신에게도 동일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했다. 그는 후두암에 걸린 친구가 수술을 받기 전에 안수기도를 해 주었다. 의사는 수술 직전에 진찰을 해본 후 “참 이상한데요. 후두암이 분명히 있었는데 완전히 사라졌네요...”라고 말했다. 베네트의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교인 중 도로시라는 여 성도가 교통사고로 엉덩이뼈가 부서지게 되었다. 의사는 그녀가 다시는 고통 없이 평상처럼 걷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베네트와 교인들이 안수기도를 한 결과 그녀는 완전히 치유함을 받고 고통 없이 걸어 다니게 되었다. 베네트는 자신의 딸의 목병도 기도로 고쳤다. 그에게 치유의 역사가 계속 일어났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하신 말씀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오순절 교단에서의 집회 -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베네트 목사는 교단의 벽을 넘어 오순절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예배의 순서도 형식도 성공회의 것과는 달랐다. 그러나 찬양과 경배와 기도가 진행됨에 따라 모두에게 ‘성령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령의 불의 역사와 기쁨의 역사가 그 집회 가운데 임했다. 오순절교회 목회자들이 성령 가운데 자유하며 기쁨을 누리는 것을 베네트 목사도 경험하게 되었다.

베네트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 성령의 권능과 기쁨이 갑자기 임하여 새 방언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환상 가운데 “전능자가 하늘의 보좌에서 땅과 하늘의 무수한 무리들에 둘려 쌓여 찬양과 영광을 받는 것을 보았다”라고 증거 했다. 그는 꿈속에서도 주님을 계속 찬양했다.

주일예배 때 방언 받은 사실 고백 - 성령이 베네트 목사에게 ‘너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라. 이 교회는 어쨌든 너의 교회가 아니고 예수님께 속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베네트 목사는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1960년 4월 3일 1, 2, 3부 주일예배 때 계획된 설교 대신 자신에게 일어난 일, 곧 방언에 관하여 교인들에게 설명했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어 갔는데, 2부 예배가 끝날 무렵 부목사가 “난 이 사람과는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소” 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 말이 뚜껑을 벗긴 듯 반대자들은 3부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 오는 교인들을 부여잡고 은사운동에 대한 반대 발언을 시작했다. 한 남자가 의자 위에 올라서서 “저 망할 놈의 방언 하는 자를 박으로 던져 버려요!” 라고 고함을 질렀다. 반대파 지도자 한 남자는 목사를 향해 무뚝뚝하게 “사표를 내요!” 라고 소리쳤다.

베네트 목사는 오전 11시 예배 때 놀라고 당황하는 회중들에게 사임할 것을 공포하고는 7년 동안 섬긴 교회를 떠났다. 반대파는 소수였지만 베네트 목사는 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성 마가성공회교회에서 일어났던 소동은 주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 미국에 알려졌다. 주간지 「타임즈」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제 방언은 미국 교회에서 다시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언은 자유분방한 오순절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어붙은 백성 Frozen Peaple’이라 불리는 성공회에서도 나타났다.”

성 누가교회로 부임 - 베네트 목사는 시애틀에 있는 성 누가성공회교회(St. Luke Episcopal Church)로 가기로 했다. 그는 시애틀에 가는 이유 네 가지를 말했다. “첫째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것 같고, 둘째 성령세례를 지방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보고 싶고, 셋째 성공회 교단의 안전한 범위를 떠나고 싶지 않고, 넷째 현재 있는 이 곳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남자가 불쑥 나타나 성령이 주시는 말을 했다. “만일 그대가 나와 함께 가서 나의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지 않으면 내가 그대의 목회를 성장하게 하리라.” 베네트는 조용히 “주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베네트 목사가 시애틀에 왔을 때 시애틀 지방 성공회 주교는 성 누가교회를 폐쇄할 작정이었다. 베네트로서는 싫든 좋든 자신이 그 교회의 존폐를 결정짓게 될 판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이 운행하시는 것을 보았다. 교인들에게 성령 받기를 강조했다. 1960년 8월 15일자「타임」지는 베네트 목사의 반 누이의 성 마가교회와 시애틀의 성 누가교회 사건을 53~55페이지에 상세히 보도했다. 하루아침에 전 세계가 그를 알게 되었다.

카리스마적 은사와 부흥 - 베네트 목사가 이끄는 작은 교회에서 치유의 역사가 크게 나타나자 교인들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활 속에서 감사했고 화합하며 일치의 모습을 보이게 됐으며 그 즈음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많은 병자들이 치유를 받았다. 출혈 병쪾신장 결석쪾맹장쪾횡경막쪾후두암쪾유방암쪾관절염 등 많은 질병이 치유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고 표적과 기사가 따랐다. 성령 세례를 통해 믿음을 회복하게 되고, 기도의 힘으로 기후가 좋아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목사와 교인들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요 14:12)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베네트 목사는 감리교 침례교 퀘이커 루터교 개혁교단 장로교 정통 교단 등 많은 다른 교단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위한 집회에 초청을 받았다. 그의 집회에서는 성령 안에서 자유 함을 누리는 것과 카리스마적 은사가 나타났다. 당시 미국 주류교회의 흐름은 구원의 확신을 잃어버린 교인들의 교회이탈과 이에 따른 교회예산의 축소, 그 결과 목회자들이 옷을 벗고 일반 직종으로 옮겨가는 등 쇠락의 분위기였으나 베네트 목사 집회에 참석한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권능을 체험하고 전도에 전념함으로써 교회가 부흥되고 지역사회가 개혁되기 시작했다.

성 누가교회의 부흥 - 성령의 권능이 나타난 지 10년 만에 폐쇄의 운명을 앞두었던 시애틀의 아주 작은 성 누가교회는 교인 수 2천명에 주일 5부 예배까지 드리는 번듯한 교회로 성장했다. 방언 방언 통역 치유 예언 기적 등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다. 주중의 집회동안에 다른 많은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회와 찬양예배에 참석하지만 베네트 목사는 그들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의 체험을 가지고 자신이 속한 교단의 본교회로 돌아가라고 강하게 권면했다.

성 누가교회의 금요 저녁집회마다 75명~2백 명의 틴에이저들이 참석하여 경배와 찬양을 드렸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성령세례를 체험했다. 그들은 학교를 위해 기도하고, 찬양 그룹을 형성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예수를 전했다. ‘새로운 사람들?New Men’이란 그룹은 예수를 전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 주변의 마약에서 벗어나게 하고 삶의 무의미성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또한 ‘사람들의 어부들?Fishers of Men’이란 그룹은 시애틀과 타 도시의 1백여 개 학교에서 선교함으로써 큰 영향을 끼쳤다. 베네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요 14:12)라는 성경구절을 철저히 믿고 있다.

맺는 말 - 이렇게 해서 은사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를 통해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으며 이때부터 부흥회도 많이 열리게 되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유명한 사역자들이 부흥강사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에서도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부흥회가 많이 열리게 되었다. 은사운동을 통해서 모든 기성교단에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다.

은사운동에서 두 가지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은사운동의 장점으로서 어떤 교단이든지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에 상관없이 가깝게 지냈고 교회가 부흥되어 성도들이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점이다.

특히 1970년대 은사운동에 힘입어 개척된 교회들은 급성장하는 교회들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가지 문제점은 은사 받은 자들 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누가 더 크게 받았느냐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말씀을 증거 하기 위한 은사가 아니라 은사 자체가 목적이 되는 오류를 범했다는 점이다.<예영수 박사>

제 1 성령의 물결 -오순절 부흥

피터 와그너(Peter Wagner) 박사는 20세기 성령운동을 3기로 나누어 제 1, 2, 3 성령의 물결로 표현했다. 리차드 리스(Richard M. Riss)는 제1성령의 물결을 주요 재(再)각성운동이라 불렀다.

제1 물결은 오순절 운동이오, 제2 물결을 카리스마적 운동이오, 제3 물결은 오순절 운동과 카리스마적 운동을 합친 것을 말한다.

1987년 추산으로 제1,2차 물결의 수는 247백만 명이며 제3물결의 수는 27백만 명이다. 이 세 번의 성령의 물결은 모두 성서의 권위를 최종적인 권위로 보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복음화의 긴급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기록된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날에도 세계도처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믿고 있다.

1. 오순절 운동 - "거룩하게 뒹구는 자"
제1 물결은 오순절 운동으로서 20세기 초반에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로 번져갔다. 오순절 운동의 주된 특징은 강한 성령사역으로서 기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기적 중에도 두드러진 것은 성령세례로 나타나는 방언이었다. L. A. Times는 1906년 4월 18일자에 아주사 거리의 방언을 첫 페이지에 취급하면서 “이상한 왁자지껄한 소리”라는 머릿기사로 시작했다. 방언과 함께 치유와 축귀 역사도 강하게 나타났다.

예배의식은 자유로운 열린 예배로서 큰 소리로 찬양하며, 두 손들고 기도하며, 감정을 표출하며, 마루에 넘어지며, 영적인 춤을 추는 등 외적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오순절 운동은 2가지 이유로 배척을 받았다.

첫째, 1900년도 초기에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취급할 신학도 없었다. 많은 신학자들은 표적과 기사는 신약시대에 있었던 일이며 정경(正經)을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또한 사도들의 증표로서 방언, 치유, 영 분별 등의 표적이 필요했지 오늘날에는 성령의 은사를 통한 기적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적종료론을 주장했다.

둘째, 여기에 더하여 오순절운동은 일반적으로 지혜와 분별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다. 영적 각성의 자발성 때문에 전통적인 예배 질서가 무너지면서 기성 교회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00년대의 오순절 교회의 부흥 운동이 애팔래치아 산맥에 있는 사람들에게 역사 했을 때 그곳의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권능아래 아무런 제한 없이 마루바닥에 쓰러져 소리치며 구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예의바른 기독교인들은 그 현상을 감정주의나 히스테리로 간단히 취급하여 이들 초기의 오순절 교인들을 “거룩하게 뒹구는 자들”(holy rollers)이라고 별명을 지어 비웃었다.

『타임즈』지는 이런 현상들을 멸시와 조롱에 찬 어조로 “아주사 거리의 허물어진 판자집”에서 모이는 “고삐 풀린 광신자들의 새로운 파당”이라고 혹평을 했다. 1906년 4월 18일의 첫 페이지에 “괴상한 교리의 신봉자들은 가장 광신적인 의식을 행하며, 가장 방종한 이론을 설교하며, 특별한 열정으로 광적인 흥분 상태에 빠져있다”라고 보도했다. 오순절 운동은 1950년까지 많은 멸시를 받았다.

그 이유는 오순절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지식층의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성교회에서는 그들은 오순절주의자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오순절주의자라 하면 무식한 사람들로 여겼다. 그 결과 기성교회 지도자들은 오순절 운동을 이단적이라고 하고, 어떤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은 오순절 교회서 나타나는 현상을 마귀의 역사라고도 하고, 심지어는 사교적인 의식으로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나, 크리스천 사이언스와 같은 부류로 취급하는 일도 있었다. 오순절 교회가 신교에서 인정받기까지는 반세기나 걸렸다.

2. 제1물결 찰즈 팔헴과 윌리엄 시이무어와 방언의 은사
제1 성령의 물결인 오순절 운동은 감리교회의 목사가 된 찰즈 팔헴(Charles Parham, 1873-1929)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캔사스 주 토페카(Topeka)에서 벧엘 치유소(Bethel Healing Home)를 설립했으며, 1900년 10월 15일에 벧엘 성경학교를 시작했다. 1900년 12월 31일 그는 학생들 개개인에게 성경에 성령세례를 받은 증거에 대한 것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학생들은 연구 결과를 보고하면서 사도행전에 보면 방언의 은사가 성령세례의 증거라고 했다. 1901년 1월 1일에 아그네스 오즈만(Agnes N. Ozman, 1870-1937)이란 여학생(30세)은 기도 중에 팔헴에게 안수를 받음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는 성령의 감동이 왔다. 오즈만은 “그 분이 내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를 하자 성령이 내 위에 임하시고 나는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라고 했다. 3일 동안의 기도 후 1월 3일에 몇 명의 다른 학생들도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상황을 릴리안 디슬즈외이트 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대한 기쁨이 내 영혼에 쓰며 들었으며 나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했다. 나의 혀가 둔해 지더니 위대한 웃음의 홍수가 내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그리고서 나의 입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찬 말들로 가득 찼다...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크게 기뻐하는 것을 들었다...그리고서 우리는 동시에 함께 찬송을 불렀으며 각자는 새 방언으로 완전한 화음으로 찬송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을 미국 오순절 운동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이다. 첫째 방언의 은사가 그 당시 성령세례의 증거로 처음 나타났기 때문이다. 둘째 팔헴 목사가 벧엘 성경학교를 텍사스 주의 휴스톤으로 옮겼는데, 팔헴의 학생인 윌리엄 시이무(William Seymour, 1870-1922)가 다시 휴스톤에서 L.A.로 옮겨 L.A.의 아주사 거리 부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이무어 목사의 아주사 거리 집회를 오순절 운동의 시작으로 보는 분도 있다.

3. 오순절 부흥 - 운동시이무어의 노스 보니 부레아 거리 집회와 성령의 역사 – 윌리엄 시이무어는 흑인이며 애꾸였다. 그는 1905년 벧엘 성경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했으나 당시의사회적 상황에서 흑인은 백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팔헴 목사의 배려로 강의실 옆에 문을 조금 열고 땅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했다. 오순절 부흥운동은 시이무어가 L.A.의 노스 보니 브레아가(North Bonnie Brea Street) 214 번지의 가정집 기도회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달 동안의 합심 기도 후에 1906년 4월 9일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신 것은 바로 이 집에서였다. 4월 9일 아침 루시 팔로우 여성에게 에드워드 리 씨의 요청에 따라 성령세례를 받도록 안수하자 에드워드 리에게 방언이 터졌다. 이것은 시이무어가 집회를 인도하기 한시간 반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이무어가 사도행전 2장의 내용을 설교하고 에드워드 리가 간증을 하면서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고는 방언을 하기시작하자, 집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도 쓰러져 주저앉자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던 제니 에반스 여사도 쓰러졌으며 다른 5명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8세의 흑인 소년이 제일 먼저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으로 말했다.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마치 번개를 맞은 듯이 의자에서 마루바닥으로 쓰러졌다. 7명이 다양한 방언으로 하나님을 송축했다. 방언 하는 소리가 너무나 크고 열렬해서 건물밖에 사람들이 모여 “도대체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하는가?”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곧 이 소리는 온 L.A. 도시에 퍼졌으며 하나님께서 성령을 계속 부어주셨다. 백인들은 흑인들 가운데 끼어 들었으며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성령 충만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집주인 에즈베리 부부의 딸은 놀라서 부엌으로 도망쳤으며, 사람들은 현관의 대청 마루에까지 가득 차서 예배를 계속 드렸다. 피아니스트인 제니 에반스가 피아노를 치면서 히브리말 같은 말로 찬송을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며, 방언을 하는 것을 듣기 위해 거리에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3주야를 울부짖었다. 부활절이었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몰려들었다. 다음 날 집회 장소에 들어갈 길이 없었다. 사람들이 집회 장소에 들어서자 성령의 권능아래 쓰러졌다. 온 도시가 소동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들어서서 울부짖는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집 마루바닥이 내려앉았다. 다행이 아무도 상처를 입은 사람은 없었다. 그 3일 동안에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성령세례를 받았다. 병자들은 치유를 받았으며, 죄인들은 구원을 받았다.

LA의 신문 기자가 성령의 역사를 비판하려다가 혼나다 - 노스 보니 브레아 거리 집회장 마루바닥이 무너지자 시이무어 일행은 그 건물을 버리고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312번지의 버려진 낡은 아프리카-감리교-성공회 교회를 구입하여 집회 장소로 개조했다. 여기서 성령의 강한 기름부음이 계속 일어났다. 아주사 거리 집회를 직접 목격한 성명미상의 사람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집회의 소식이 멀리 퍼져 나가자 L.A.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성령 충만한 몇 사람들이 천사의 벤드 소리를 들었다. 성령에 감동된 하늘의 찬송이 들렸다. 집회 광고도 없었고, 교회의 조직적 뒷받침도 없었다. 하나님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집회장소에 들어서자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아주사 거리로 들어오자 부흥의 권능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는 간단하였으나 성령의 권능이 강하게 나타나 사람들은 벤치에 앉은 채 떨었다. 제단 앞으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아래 쓰러졌으며, 어떤 이들은 방언을 터뜨렸다. 시카고에서 온 윌리엄 덜헴 목사는 영적 갱신을 위한 갈급한 심령으로 LA에 도착했다.

아주사 거리의 집회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알았다. 수천명의 참석자들처럼 덜헴 목사도 오순절적인 성령세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언어(방언)로 인간이 이때까지 듣지 못한 사랑스런 화음으로 찬양을 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때때로 환상을 통해--간증을 했는데, 간증은 주로 구원, 성화, 성령세례 등의 3가지 목적이 담겨있었다.

1906년 4월 18일~19일에 산-프란시스코에 대지진으로 큰 환난을 당했다면, 같은 주 동안 LA에서의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일어난 영적 지진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대 혁명을 가져다 준 행복한 사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켄사스주 토페카의 팔헴 성경학교에서의 방언 사건보다 5년 후 LA에서의 성령 폭발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됨으로서 오순절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시이무어의 아주사 거리 집회와 성령의 역사 - 그러던 중 어느 날 LA의 신문 기자가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비판하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 모두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시이무어의 집회에 참석했다. 설교가 끝나고 안수가 시작되자 이 기자는 자신을 절름발이로 가장을 하여 시이무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성령님께서 시이무어에게 음성으로 “너는 저 사람을 위하여 기도 할 때에 ‘그대로 되게 하소서’라고 하라”는 것이었다. 시이무어는 그대로 말했다. 그 기자는 그대로 절름발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보며 하나님께 회개한 후 다시 기도를 받고 온전하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그 기자는 『타임즈』(Times)지에 자신이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임을 특종으로 기사화 했다.

이 일로 인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부흥의 물결 속에 들어가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1910년까지 계속되었으며, 그 여파로 1914년에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 교단이 생기게 되었다.

오순절 운동의 주역들과 5개 항목의 교리적 가르침 - 아주사 거리 부흥 집회의 중심 인물들은 가르치는 자로서의 찰즈 팔헴, 설교자로서의 윌리엄 시이무어, L.A. 저널리스트로서의 프랭크 바틀만, 아주사 거리 선교회 등이었다. 이들 아주사 거리 오순절 운동 창시자들은 그 당시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성화를 강조하는 신성운동(Holiness movement)의 영향을 받았다. 팔헴은 신성운동의 영향을 받아 5개 항목의 신조를 발표했다.

(1)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칭하게 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

(2)확실한 은총의 역사로 나타나는 성화,

(3)외적인 증거로 방언을 수반하는 성령세례,

(4)구속사역과 같은 하나님의 치유,

(5)예수의 재림 때 성도들의 전천년 휴거 등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오순절 부흥운동의 결과 1914년에 하나님의 성회 교단이 생겨나게 되고, 1981년에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 75주년 기념예배를 가졌는데, 방언으로 시작한 기름부음이 교회사에서 중요한 사건임을 입증하고 있다.  왜냐하면 1981년을 기준으로 오순절과 카리스마적 교인 수는 75,000,000명으로 추상되었으며, 지금은 그 수가 장로교를 능가하고 있다. 이것은 1906년 아주사 거리집회 이후 L.A. 오순절 운동을 수용한 수는 매년 1,000,00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을 글로서 남긴 프랭크 바틀만 -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으로 남겼으며, 예수의 천국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4복음서에 기록한 것처럼, 시이무어와 아주사 거리 오순절 운동은 프랭크 바틀만(Frank Bartleman)이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보도 없이는 오순절 운동이 그렇게도 빨리 또 널리 전 세계로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저널리즘은 세계에 오순절 운동에 관한 소식을 전했을 뿐 아니라 오순절 운동을 돕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00년에 외형적으로 고함지르고 뛰는 것과 같은 성령체험을 먼저 했다. 몇 달 이후에 그는 더 많은 신비 체험을 했는데, “전기 충격”과 같은 것을 강하게 받아 쓰러져서 무의식 상태가 되기도 했다.

밤에 사탄이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공격했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냈다. 평생 병약한 몸으로 죽음이 어깨 너머에서 바라보는 느낌을 가졌다고 고백했으나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받았다. 그가 설교하던 중 성령의 권능으로 쓰러져 30분간 교인들 앞에서 누워있기도 했다. 그는 성령 충만으로 “하늘나라의 찬양”에 참가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으며 방언으로 주님의 이름을 찬양했다.

맺는말  - 1901년 찰즈 팔헴의 학생인 아그네스 오즈만의 방언과 1906년 흑인 꼽추인 윌리엄 시이무어의 방언으로 시작한 제1성령의 물결은 오순절 운동의 이름으로 미국, 캐나다, 남미,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오순절 운동은 신교의 각 교단에서는 물론이고 1966년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오순절 운동은 1970년대에 카리스마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예영수 박사 : 오레곤대 A.D, Ph.D(영문학), 경북대 교육학 박사과정이수, 전 한국외국어대학사범대학장, 한신대학 대학원장, 전국 기독교대학교 대학원장협의회장, 광나루 문인회장, 현 한밀선교 회장, 한국영성 총연합회 대표회장, 카리스월드 편집인 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