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2011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는 복음전파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는 복음전파[사도행전 24 : 10 ~ 27]

벨릭스는 천민 출신으로 총독의 지위까지 이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통치방식은 잔인했고, 한편으로 돈을 지극히 밝혔다고 합니다. 바울의 무죄를 알았지만 금방 풀어주지 않고 2년 가까이 구금해 둔 이유도 돈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그는 바울을 자주 찾아 만났습니다. 하지만 불순한 목적으로 자기를 찾는 벨릭스에게도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을 가르쳐 줍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죄없는 자신을 감옥에 계속 가두어 두고, 돈만 챙기려는 벨릭스가 얄밉고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벨릭스를 바울은 미워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만날 때마다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때와 장소, 상대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바울이 베푸는 복음 전파의 열정이 세계 제국 로마 위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열매 맺는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다면 때와 장소, 사람을 따지지 말고 기회를 주실 때마다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이야말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함

사도행전 24 : 10 ~ 27
악명 높은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 선 바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며 복음을 증거합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는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함 
바울은 먼저 소요를 일으키는 자라는 고소에 대해서는 자기는 예루살렘에 예배 목적으로 올라 간지 12일밖에 되지 않았으며 소동은 커녕 아무하고도 변론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둘째, 자신은 유대인들과 똑같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그 글에 약속된바 하나님과 죽은 자의 부활을 그대로 믿는 사람으로서 결코 이단이 아님을 밝힙니다.

셋째, 자신은 성전의 결례를 따라 행하는 자로서 예루살렘 방문 목적이 구제 헌금을 전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지극히 우호적인 목적이지 결코 성전을 모독하고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차분하고 합리적인 설명에 아무런 반론도 반대증거나 증인도 내놓지 못한 채 말없이 돌아서고 맙니다. 바울처럼 사람과 싸우지 않고 복음을 힘있게 전하는 사람이 되려면,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담긴 복음의 비밀과 복음의 소망을 배워감으로 복음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벧전3:15).

매번 적당히 핑계되며 뒤로 물러서지 말고,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복음의 소망에 날마다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될 때 힘있는 복음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위에 세워지는 교회와 가정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사32:17~18)

성경말씀과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외에 또 다른 무엇이 교회에 필요할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외에 다른 무엇으로 우리의 영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소생할 수 있을까요?

각종 프로그램이나 화려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교회 성장의 실제적인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진짜 예수님만으로 모인 교회가 아니면 흩어져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모인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방법은 복음주의적인 교회로 만들어 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내적 성숙과 외적 성장을 위해 상고해봐야 하는 성경구절을 소개합니다.
첫째, 사도행전 20장 32절을 보면 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그것에 인도받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숙하고 성장하고 우리 교회가 더욱 복음주의적인 교회로 성숙하고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이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 속에 녹아 들어 갈 때 우리는 반드시 변화하게 됩니다.

둘째, 유다서 1장 20절에서 믿음이란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변화를 모두 뜻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개인적인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퍼져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고린도전서 14장 12절에서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를 통해 서로 덕을 세워나가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복음주의적인 교회가 되려면 성도들 각자의 장점과 은사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덕을 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자들을 계속해서 격려하시면서 그들을 세워나가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했던 베드로를 부활 후 다시 찾아 오셔서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도 그를 철저하게 다시 세우시기 위한 예수님의 격려였습니다.

넷째, 고린도전서 8장 1절을 보면 정말 복음주의적인 교회는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 안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신앙생활의 태도는 바로 ‘그러함에도’의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런 믿음의 자세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단순한 지식으로만 끝나면 그것은 위험합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교만하여 다른 이들에게 상처만 주게 됩니다. 하지만 남을 판단하지 않는 사랑은 덕을 세우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올바로 선포된다면 교회는 반드시 외적으로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내적 성숙과 외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받은 내면의 은혜만을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세상 가운데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선포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나가야 합니다.

가정도 동일합니다.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되지 않으면 아픔과 고통, 싸움과 다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우리의 가정 안에 선포되어지고 그 말씀이 우리의 가정을 다스리고 인도할 때 우리의 가정에는 큰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목동제일교회 김성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