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왜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도 노력하고 애쓰고 금식도 하고 정말 하나님 안에서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왜 안 될까? 믿음의 역사가 왜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까?
오늘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우리 안에 있는 죄의식 때문입니다. 그 죄의식에 본질은 내 육체에 기초한 자기의식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의가 되는지 가르쳐주시는데 처음도 믿음이고 끝도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중요한 이유는 죄 사함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서 예수님을 믿음 겁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거듭납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성품은 세상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면 아버지에게 새롭게 배워야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양자로 입양되었다고 생각해본다면 이전의 어려웠을 때 죄책감, 정죄감, 수치심으로 인해서 이거 하다가 실수하면 어쩌지, 잘못했다고 욕먹을 텐데... 이런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아마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실껍니다.
"너의 이전 모습은 다 잊어버려 이젠 넌 내 아들이야 실수할 수 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지 점차 좋아질꺼야 앞으로 넌 새롭게 될 수 있더. 내가 도와줄게 힘내 사랑해!"
정말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면 더 이상 그리스도의 초조에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배운 거에 대해서 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경험해야 되고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때마다 보혈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때,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가족으로 성숙케 되는 놀라운 비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1/30/2011
부흥하는 교회의 성장통[행전6:1-7]
성장통은 살아있고 자라나기에 필연적으로 겪는 아픔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역시 살아있고 부흥하다보면 이런 성장통을 겪게 됩니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면 성도 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이 부족해기거나 행정과 양육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과 문제들은 주님께서 그리시는 더 큰 축복을 위한 과정입니다.
갈등의 폭발:
문제의 발단은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의 불공평한 구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저변에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들이 갈들이 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사도들의 해법이 독특했습니다. 사도들은 문제의 증상이 아닌 문제의 뿌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사역과 기도사역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불가피하게 접대, 즉 구제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시의 일의 본질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평신도 리더십의 선출 기준
사도들이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제자들이 리더십을 뽑았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공동체 내부에서 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함께 성령을 받은 믿음의 형제를 공동체 가운데서 뽑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두 번째 기준이 믿음과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 충만한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고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나를 붙잡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말만 하는 것이 아닌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리더는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공동체 내에서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칭찬받는 사람이란 인기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령과 지혜를 공동체가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섯 번째로 팀워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사로 일곱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함께 팀으로 사역하라는 의미입니다. 능력과 재능이 있더라도 독불장군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모든 교회일은 함께 하는 동역입니다. 그렇기에 임직 자는 화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좋은 일을 할지라도 그로 인해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 일은 피해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와 팀워크를 이루어야 합니다.
집사라는 말은 섬긴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군림하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파격적인 지도자 선택.
선출된 일곱 집사는 다수인 히브리파가 아닌 소수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국제파였던 헬라파 유대인이 리더십으로 세워집으로 주님이 주신 세계복음과를 가속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라파가 그토록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숫자적으로 절대 다수였음에도 헬라파를 뽑아준 히브리파의 성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단으로 초대교회는 급성장 할 수 있었고, 이들의 협력으로 지상명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교회가 이 땅에 탄생해서 자리를 잡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균형 잡힌 성장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좋은 팀워크를 만들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꿈을 함께 이룰 수 있도록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과 문제들은 주님께서 그리시는 더 큰 축복을 위한 과정입니다.
갈등의 폭발:
문제의 발단은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의 불공평한 구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저변에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들이 갈들이 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사도들의 해법이 독특했습니다. 사도들은 문제의 증상이 아닌 문제의 뿌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사역과 기도사역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불가피하게 접대, 즉 구제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시의 일의 본질을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평신도 리더십의 선출 기준
사도들이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제자들이 리더십을 뽑았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공동체 내부에서 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함께 성령을 받은 믿음의 형제를 공동체 가운데서 뽑아야 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 두 번째 기준이 믿음과 성령 충만한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 충만한 내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고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나를 붙잡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말만 하는 것이 아닌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리더는 하나님의 지혜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는 공동체 내에서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칭찬받는 사람이란 인기 좋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성령과 지혜를 공동체가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섯 번째로 팀워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집사로 일곱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함께 팀으로 사역하라는 의미입니다. 능력과 재능이 있더라도 독불장군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모든 교회일은 함께 하는 동역입니다. 그렇기에 임직 자는 화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좋은 일을 할지라도 그로 인해 싸움이 일어난다면 그 일은 피해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와 팀워크를 이루어야 합니다.
집사라는 말은 섬긴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교회의 리더십은 군림하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파격적인 지도자 선택.
선출된 일곱 집사는 다수인 히브리파가 아닌 소수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국제파였던 헬라파 유대인이 리더십으로 세워집으로 주님이 주신 세계복음과를 가속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라파가 그토록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숫자적으로 절대 다수였음에도 헬라파를 뽑아준 히브리파의 성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단으로 초대교회는 급성장 할 수 있었고, 이들의 협력으로 지상명령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교회가 이 땅에 탄생해서 자리를 잡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균형 잡힌 성장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좋은 팀워크를 만들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꿈을 함께 이룰 수 있도록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성숙: 모든 문제의 열쇠 감사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겔20:20)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전적인 은혜이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그런 가운데 감사가 없는 삶도 저주입니다.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감사는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일깨워 가는 것입니다.
고전 1:4절을 보면 감사는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감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경험한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무엇인가 자기 힘으로 쟁취해서 소유한 사람은 진정한 감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은혜를 받은 동시에 깨달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절에 나오는 ‘풍족하므로’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대한 지식이 풍족하다는 것이며 이것은 깨달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면 감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될 때, 감사하게 됩니다.
때로 역경을 통과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은 광야라는 역경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달았음에도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결국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감사를 만들어내고 감사는 내일을 일구어 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가 식었다면 믿음의 상태를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풍성한 감사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목동제일교회)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