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2012

마음의 감옥 6가지

첫째 감옥은 자기 도취의 감옥입니다.
공주병, 왕자병에 걸리면 정말 못 말립니다.

둘째 감옥은 비판의 감옥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고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셋째 감옥은 절망의 감옥입니다.
항상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불평하며 절망합니다.

넷째 감옥은 과거 지향의 감옥입니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면서 현재를 낭비합니다.

다섯째 감옥은 선망의 감옥입니다.
내 떡의 소중함은 모르고 남의 떡만 크게 봅니다.

여섯째 감옥은 질투의 감옥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고 싶어집니다.

사람은 이 6가지 감옥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진 마음을 회복하세![엡4:31-31]

치유함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 가지 능력

첫째, 친절: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님은 '친절'이라는 항목을 원어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친절은 '육익한 사람이 되라는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긍훌: '다른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보면서 슬퍼하는 따뜻한 마음'을 긍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긍휼함은 굳어진 마음이 풀어진 부드러운 마음의 상태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 노아를 당대의 '의인'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당대의 의인이라면, 그에게 굳은 마음이 있었을까요? 원한이 있었을까요? 복수심이 있었을까요?

노아는 자신을 조롱하고 상처주는 사람을 위해 긍휼함으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도 노아의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긍휼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긍휼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셋째, 용서: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처럼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로마서 5:6,7절에는 이 말씀이 확증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내 삶에 날마다 적용시키길 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라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7)

'친절과 긍휼과 융서'가 우리 안에 자리 잡는 은혜의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베풀어야 할 덕목 8가지

1. 스스로에게 성공 바이러스를 감염시켜라.
당신의 적은 슬럼프다 늘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2. 젊음을 느낄수 있도록 자신을 배려하라.
스스로의 의욕을 불태워야한다. 젊음은 나이 위에 머무는것이 아니다 바로 그자리에서 뛰는 순간 찾아온다.

3. 건전한 시민 정신을 키워라.
자신이 갖고 있는 민주적 사고방식을 다음세대의 정신적 인프라로 넘겨주어야 한다. 사십대의 가장 중요한 의무중 하나다.

4. 부를 추구하되 한편으론 관대하게 대하라.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물질적인 부는 정당하게, 노력한만큼 구하라.

5. 원망하지 말라.
갑작스런 사태 앞에서도 세상 탓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알고 좀더 겸허하게 인생사를 받아들자.

6. 남을 배려하라.
나이 들수록 세상은 함께 사는것 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7. 떠날때를 알아야 한다.
아직은 이르지만 만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당신은 미련 없이 떠날 줄 알아야 한다.

8. 사랑으로 뭉쳐라.
애들도 사랑하고, 배우자도 사랑하며, 나아가 자신도, 세상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이 지나쳐 망가지는 세상이란 결코 없다.

- 마흔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

부모는 믿음의 사람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3:18)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단 한 사람도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누구인지를 알고 믿으라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일 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보내고 산으로 들어가십니다. 이때 마가복음 6장 48절에는 독특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들을 보시고’입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목해서 보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고 있는 제자들이 풍랑 가운데서 믿음을 체험하는지를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수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음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제자들을 통해,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해주려고 하시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민수기 13·14장을 신명기 1장이 반복해서 기록하는데 모세는 의미 있는 단어를 씁니다. 개역개정은 둘 다 정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바뀌기 전 성경은 민수기에서는 탐사라는 말을 썼습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정탐은 소가 풀을 먹기 위해 대충 훑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탐사는 주의해서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탐사하라고 했지만 그 사람들은 정탐, 즉 대충 훑어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라는 말과 진실이라는 말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본문 28∼29절, 32절에 보면 그들이 정탐한 땅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며,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살고 있었고, 아낙 자손도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뚜기 같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사실로 보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왕, 홍해, 아말렉의 위험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거기에 아낙 자손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아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무엇으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나아가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리더는 사실을 사실대로만 보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만 본다면 누가 순교하고, 누가 선교하며, 누가 자신의 재산을 팔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14장으로 가면 믿음이 없는 사람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실만 봅니다. 불평과 원망이 극에 달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른 백성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용서를 구하는 모세의 믿음의 간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은 하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믿음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며 28절에서 너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나님의 교회는 믿음의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로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목동제일교회 김성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