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2011

탕자에게 준 네가지 선물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잠19:26)

탕자의 비유 가운데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 아버지를 통하여 천부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율법만 가지고 준엄하게 심판만 하는 냉정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탕자가 죄짓고 불의하여 추악한 모습으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직도 거리가 먼데 뛰어 나아가 그의 더러운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끌어 안고 입을 맞추며 "이 자식아, 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구나."라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는 돌이켜 돌아온 사실만으로도 기뻐하시며 율법 이전의 자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비의 하나님이 돌아온 탕자와 같은 우리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첫째로, "제일 좋은 옷을 입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제일 좋은 옷이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의로운 세마포 옷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병들고 절망에 빠졌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의롭다 하심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탕자가 돌아왔을 때 하나님 앞과 사탄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표의 반지를 끼워 주시는데 이것이 바로 성령 세례인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구원의 표시입니다.

셋째로,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맨발로 걸어와 발이 피투성이가 된 아들에게 신겨 주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의 신발입니다. 성경에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시밭길, 돌 자갈밭 길과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가 복음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살찐 송아지를 잡아 즐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생활은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마음에 만족과 기쁨을 가지고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있어서 환난과 시험을 당할 경우가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영혼의 살찐 송아지를, 생활의 살찐 송아지를 잡게 하셔서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가지고 입에 찬송이 그치지 않는 생활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내일은 오늘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써 여러분을 맞아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누가복음 15:22,23)

사랑이 예수님의 제자된 표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장 큰 표지는 서로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표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전도에 대한 열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투철한 사명의식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이 넘치는 곳이어야 합니다. 서로를 섬겨주는 사랑, 서로의 연약한 점을 감싸주고, 또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며,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있을 때에 사람들은 그곳을 찾게 되고 변화됩니다.

가장 강력한 전도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도의 큰 장애물은 신앙공동체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시설을 아무리 좋게 만들고 또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든다고 하여도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없다면 전도의 열매를 맺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에 대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십니다.“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배반하고 팔아넘기는 원수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한이 없는 절대적 사랑이며,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서로 성향이 비슷하고 잘 통하여서 저절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관계를 맺어갈수록 누구든지 서로 부딪히는 점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섬겨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친밀하고 깊이 있는 관계는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맺어질 수 있습니다. 죄인을 용서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받았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