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2011

영원한 죽음과 멸망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가 품행이 나쁜 친구에게 유혹되어 술을 마시러 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떠올라 친구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모처럼 만났는데 일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었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겠네.”

그는 자칫 친구의 집요한 유혹에 넘어갈 뻔했으나 ‘지금이 생을 결정짓는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라 단호하게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클리블랜드는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에서 시장, 그리고 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가 미국 전역에 전해지자 감옥에 갇혀 있던 한 죄수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죄수는 바로 젊었을 때 클리블랜드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유혹했던 친구였습니다.

지혜의 초청과 음녀의 유혹은 인생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부름에 응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권한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지혜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선택하는 권한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지혜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영광 가운데 들어가지만, 음녀의 유혹에 응한 사람은 영원한 죽음과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만한 물고기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나아와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9-30절)

강에 돈(豚)이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살았다.
이 물고기가 하루는 다리 아래에서 헤엄을 치다가 교각을 들이 받았다.

그러자 돈이라는 고기는 그 교각이 자기를 들이 받았다고 화를 냈다.

이 고기는 아가미를 펴고 지느러미를 세우고 배를 두드리며 물 위로 떠올라 교각을 원망하며 오래도록 거기서 떠나지 않았다.

독수리가 날아가다가 그 물고기를 보았다.
독수리는 그 물고기를 잡아먹어 버렸다.

헤엄치다가 다른 것을 들이받고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멋대로 화를 내더니 끝내 독수리에게 죽고 만 것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는다고 과녁을 탓할 것인가?

산이 멋지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산을 탓할 것인가?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를 탓 할 것인가?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나의 자세가 바른가를 보고, 산이 그려지지 않으면 나의 마음을 보고,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있는가를 살펴봄이 옳지 않겠는가?

자기에게서 문제를 찾지 못하면 발전은 없다.

성령충만의 체험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야훼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20:12)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은 황홀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중생을 하면 단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것에 지나지 않지만,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가 여러분 속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가 여러분 속에 들어오면 하늘나라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위대한 은총이 여러분 속에서 폭발하게 되어 마음 속이 황홀감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애써 찾는 세상의 부귀 영화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어 그런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겨우 5분 정도 기도를 하고 나면 할 말이 없던 분도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면 하나님과 대화의 길이 열려 밤새도록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어 기도의 황홀경에 들어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업을 할 때에도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는 말을 못하던 분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로마의 이리떼 가운데 보내시기 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1:4,5)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아 하늘 나라의 깊은 황홀감을 체험하면 어떠한 역경에 부딪치더라도 그것을 이겨나갈 수 있는 위대한 힘과 결단력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낙심하여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흩어졌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써 한 자리에 모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자 숨어 있던 제자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 복음을 듣고 하루에 삼천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성령 충만함을 체험함으로 큰 기쁨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이니라 ” (레19:3)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취급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는 무엇이든지 근원적이고 무궁 무진한 축복과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낡고 가시적이며 유동적인 세계가 아닌 근원적인 세계를 받아들여 그 세계 속에서 새로운 창조와 설계와 능력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 아름다운 세계는 창조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 속에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말씀하실 때 계획대로 형태를 갖추어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전에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방비케 하는 엘리사를 먼저 죽이기 위해 아람 왕이 도단으로 옮겨왔습니다.

아침에 게하시가 일어나서 건너편 산을 보니 아람 군대가 개미떼처럼 성을 에워쌌고 창검들이 아침 햇빛에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게하시는 하늘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세계만 보는 신앙은 보이는 환경이 변화될 때 함께 변화 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보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수많은 불병거와 불말들이 아람 군대를 둘러 진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사는 기도하여 게하시로 하여금 그 세계를 보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현실로 옮겨 놓은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와 같은 신자를 찾고 계십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바라보고, 원수만 바라보고 두려워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런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고 보게 함으로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고난에 짓눌리지 않으며 절망과 고난을 이기는 승리자와 창조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중에 있습니까? 환경의 흑암중에 있습니까? 절망중에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계를 믿지 마십시오. 그것만 보지 마십시오. 그 세계는 아람 왕의 군대처럼 사탄의 권세가 진을 치고 있는 세계입니다. 그 건너편의 세계를 보십시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서 우리를 돕기 위해 와 계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십시오. 그 때 여러분은 "나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다."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열왕기하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