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2011

나의 사랑하는 자

미국의 사진 기술자인 이스트먼은 저렴하고 간편한 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카메라의 이름을 짓기 위해 몇 일 동안 고민했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그는 한 친구로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느낌을 주는 알파벳은 ‘K'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름도 K로 시작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이에 그는 새로 만든 카메라의 앞과 끝을 K로 고정한 후 여러 알파벳을 중간에 끼워 넣어 보았습니다그 결과 가장 강렬하고 부르기 쉬운 단어가 코닥(Kodak)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카메라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조그마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적인 제품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기계와 상품은 손으로 만듭니다그러나 사업은 머리로 합니다작은 지혜 하나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입니다따라서 기업인이 가장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업신여겨서 지혜에 귀 기울리이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는 교만한 자는 지혜를 얻을 수 없으며따라서 지혜가 주는 여러 가지 유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지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지혜의 사랑을 입고지혜를 간절히 찾는 사람만이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정직한 청년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한 청년이 있었습니다그는 교회에 다녔는데 하루는 그 교회에 계신 미국인 선교사가 장작을 한 차 사들여 왔습니다그리고 이 청년에게 장작을 쌓도록 부탁을 했습니다청년은 교회의 한 귀퉁이에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놓고 청소까지 말끔히 해 놓았습니다그런데 선교사님이 오시더니 “이곳은 비를 맞을 염려가 있으니 저쪽으로 옮겨 쌓았으면 좋겠다” 청년은 불평할 법도 한데 선교사님이 시키는대로 말없이 장작을 옮겨 쌓았습니다.

그 해 눈이 많이 내린 크리스마스 날 선교사님은 청년에게 선물을 한가지 주셨습니다선교사님은 이미 이 청년의 유학 길을 마련해 놓으셨던 것입니다그는 오래 전부터 청년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눈 여겨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살면 재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되 곳간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공평한 길로 행합니다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총

한 수도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설교를 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그 수도사는 설교를 시작하지 아니하였습니다대신에 촛대를 꽂아 둔 곳으로 가서 촛대를 집어 들고서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상이 조각 되어 있는 제단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수도사는 밝게 타고 있는 촛불로 못박히신 예수님의 팔에 비추어서 모인 사람들로 하여금 분명히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다음에는 촛불을 옮겨 역시 못박히신 예수님의 다른 한 팔을 비췄습니다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그 때 촛불은 못박힌 예수님의 두발을 밝게 비추어 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 수도사가 일어나서 돌아섰습니다사람들은 그 수도사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나의 설교입니다.

참 지혜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참 지혜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영생을 주시고자 십자가를 친히 감당하셨습니다이러므로 참 지혜이신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셔들이고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극심한 고난에 빠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에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또다른 비결을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놀랍게 응답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한 것은 어려움에 부딪힐 때, 주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가장 지혜롭고 완전한 해결책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차 환난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을 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세력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서 승리했다고 기뻐했지만, 사흘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승리가 이미 보장된 전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잠깐 질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싸우기만 한다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승리의 기쁨을 나누어 주시려고 우리를 영적 전쟁에 참여 하도록 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손해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신분을 숨기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했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드러내 놓고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심문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히면 베드로 자신도 큰 곤경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감수하는 진정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장담했지만, 실제로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자 주님을 위해 손해 보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평소에는 예수님을 찬양하고 신앙고백을 하다가도 세상의 유익이나 자신의 욕심 앞에 서면,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하면, 후에 죄책감으로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선택함으로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것이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길이며 바른 길입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안전하고 잘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고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요 13:38)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자신은 항상 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매순간마다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기억할 때 유혹을 이겨내며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확신 때문에 말씀을 무시하고 살다가 실패하고 범죄할 때가 많습니다.

사단은 우리가 자신 있게 생각하는 인격이나, 삶의 태도를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하여 넘어뜨립니다. 그래서 자기를 혐오하고 절망에 빠지도록 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믿고 장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하고 죄악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고 겸손히 마음에 새겨 순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