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2009

"신학’ 이라고 불리는 큰 나무들이 이룬 자그마한 숲 전체는 회색빛의 어두움으로 덮여 있었다." (데일 파이프 박사)



속임의 숲
우리 앞에 크고 컴컴한 숲이 놓여 있었다. 나무들은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들의 몸통만한 크기로 어마어마했다. 그 나무들의 높이는 지평선을 가득 채워서, 그 높이 이상의 모든 것이 착실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무들이 너무 바짝 붙어 자라서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견고한 어둠의 벽인 것처럼 속을 정도였다. 이 산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차가운 그림자와 어두운 환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악몽들에 대한 형상이 내 마음에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 숲 안에는 빛이란 존재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주님이 이 불길한 장소 안에 감추어진 어둡고 그늘진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그 숲으로 들어가자 차가운 기운이 나를 휩쓸었다. 그것은 마치 두 세상을 갈라놓는 보이지 않는 막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과 같았다. 갑자기 빛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내가 예수님과 가까이 걷자, 빛의 막이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세 명은 주님으로부터 발산된 빛의 거품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4:16 참조).
 
그때 에녹이 처음으로 말을 했다. "동행자님, 이것을 보고 계십니까?"하고 그는 물었다. "이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는 그분의 빛 가운데 걷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보게 되길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비한 빛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 주변이 얼마나 어두운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투명한 빛 가운데 걷고 있습니다. 그 빛은 그 주인으로부터 방출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빛이십니다. 어떤 어두움도 주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비추는 격렬한 빛을 끌 수 없답니다(1:5 참조). 어떤 악도 신령한 그분의 빛으로 완벽하게 투과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지구상의 빛이나 빛 속에 담긴 어떤 색도 그것과 같을 수 없습니다. 몇 십억의 태양이라도 능히 그 빛과 견줄 수 없지요. 이제 지금부터 당신이 주님과 걷게 될 때 당신은 이 빛을 인식하게 될 것이고 더 이상 어둠 속을 걸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에녹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을 이해하였을 거야. 그는 필시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면서 수도 없이 많이 그 빛을 경험했음이 틀림없겠지.' 그 숲의 어둠 속에서 빛 없이 있는다고 생각하자 나는 떨려 왔고. 이 빛이 없다는 것은 극도의 어두움이며 총체적으로 길을 잃은 것이라고 깨달았다.
 
숲 속의 속임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시기 시작할 때 에녹은 넋을 잃을 정도로 집중하여 들었다. “내 아들아, 나는 너를 이 어두움의 장소로 데려와야 했단다. 왜냐하면 내 목적으로의 길은 너로 하여금 이 어둠을 통과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나의 임재는 이 어두움 속에서도 너에게 빛을 준다( 18:28: 139:11-12 참조)."

  "이 장소는 속임의 숲이라고 불린다. 나의 많은 자녀들이 이곳에 왔지. 그들 중 얼마는 어두움 가운데서 나를 저버렸고 길을 잃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선택하여 뽑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속임을 당했다. 그들은 빛의 근원은 그들 속에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고, 이 숲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단다( 6:23 참조). 자신들의 지식과 함께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영역에 이끌려 그들은 인간의 아이디어와 철학들의 길을 선택했고, 나에게 가까이 와서 친밀함을 구하는 길에서 벗어났다( 2:1-8 참조) 그들은 더 이상 내 빛 가운데 걷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처럼 그들은 같은 거짓을 맛보았고 그들 스스로를 내 임재의 빛으로부터 분리하였다."...

  씨앗들이 독을 만들어낸다
 예수님으로부터 방출된 신비한 빛으로 둘러싸이자, 나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나는 지금 산림지대를 탐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숲을 찬찬히 살피게 되면서 나는 큰 나무들에 달려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과일들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어떤 과일들은 배 모양이었고 또 다른 것들은 가시가 달린 껍질을 가진 녹색 조롱박 모양이었다. 모든 과일들은 한 가지 독특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껍데기가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껍질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었다. 각각의 과일 안에는 많은 씨가 있었다.
 
“너는 이 과일을 절대 먹어선 안 된다. 아들아"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것이 맛있고 안전하게 보이지만, 그 씨들은 너의 영에 독을 만든다. 네가 이 나무에서 먹을 때 모든 악한 습성이 탄생될 것이다. 이 나무들은 많은 남자와 여자들에 의해 이곳에 심겨졌고 자라나서 거짓으로 엉켜졌다. 그것들은 철학과 인류의 위대한 아이디어들을 말한다."
 
내 눈은 다윈주의의 나무를 찾기 위해 재빨리 빽빽한 숲을 훑어보았다. 다윈의 진화론이라면 이 숲 안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특별한 과일이 그것을 나타내는지 분별하지 못했다. 나는 ‘페미니즘' 이라는 호리호리하고 딱딱한 나무의 유혹적인 과일을 볼 수 있었다. ‘신학’ 이라고 불리는 큰 나무들이 이룬 자그마한 숲 전체는 회색빛의 어두움으로 덮여 있었다. 이런 특별한 나무들은 매우 컸고 그들은 꼼짝도 안 할뿐더러 잘라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 해보였다. 한 개를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 것 같았다.
 
예수님은 신학이라는 나무의 무리를 향해 정면으로 가셨다. 우리는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쉽게 지나갔다. 나는 위대한 사상가와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의 나무들에 새겨 있는 것을 목격했다. 우리 이전에 이곳을 지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거대한 인물들의 발 앞, 즉 뿌리 근처에 꽃을 두었다.
 
"사람들은 진짜로 여기를 경배하려고 오는구나!" 나는 갑자기 공포에 질려 갑자기 말을 꺼냈다. "심지어 이 나무들 중 어떤 것들은 그 앞에 감상적인 돌 제단을 세워 놓고 있구나" 하고 나는 역겨움에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님이 설명하셨다. "이 신학의 숲 이상의 것은 절대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제단들을 세웠다. 그들은 이곳에 멈추어 계시나 또는 신학적 개념에 대해 경배하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이 제단을 관리하기 위해 온다"고 주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나의 마음은 그 사람들로 인해 무너졌단다. 나는 그들이 숲의 이 부분을 지나쳐 가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많은 눈물을 숨겨야 했지. 네가 보듯이, 내 아들아, 가장 큰 위험은 거짓의 숲 안 이곳에서 진리가 자라는 것이란다(고후11:1-4 참조). 심지어 선택 받은 사람들까지 속이기에 충분한 진리가 이곳에 있다(3절 참조). 오직 나만이 진리를 드러낼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진리는 너를 망가뜨려 버릴 것이다( 53:9). 나의 영을 통해서 진리를 볼 때만이 너는 생명을 가져올 수 있다. 너는 절대 진리를 경배해선 안 된다. 너는 반드시 나를 경배해야 한다!" 그분의 음성은 강했다. “나는 거짓을 뚫고 가는 길이다. 나는 살아 있고 활동적인 진리이다. 나는 진리를 주는 자이다."
 
"아담과 하와는 나를 떠나 진리를 추구했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나와의 친밀함을 희생했다. 일단 그들이 지혜의 나무 실과를 먹은 후부터 그들은 나로부터 숨어야 했다. 네가 나를 선택할 때, 숨을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투명하고 솔직하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는 투명성이 크게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과 친밀함을 얻고 그분과 함께 은밀한 처소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나 혹은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 우리가 세상의 거짓들에 매달리는 동안 우리는 더 이상 주님과의 친밀함을 위해 노력할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순전한 마음과 섞이지 않은 동기들을 품고 그분의 얼굴, 오직 그분 한 분만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스스로 속임
우리는 거짓의 숲에서 높이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인간의 아이디어와 철학들로 둘러싸인 채 서 있었다. 그 결과로 우리 위에 엄청난 어두움의 차양이 펼쳐졌다. 나를 둘러싼 어지럽고도 잘못 연결되어 있는 거짓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현혹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오로지 주님의 빛만이 당신을 이 혼돈의 숲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나는 골몰히 생각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매우 간단하단다." 하고 내 생각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언제든 네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너는 거짓의 위험에 영향 받기 쉬워진다( 1:14-15 참조). 죄는 너를 적의 거짓말 앞에 약하게 만든다. 숨겨진 죄, 특별히 자만심은 이곳 숲 속에서 너를 재빨리 망가뜨린다. 자만심은 거짓과 어두움으로 이끈다( 16:18 요일 2:16 참조). 이것이 왜 그렇게 선택받은 자들이 이 거짓의 숲에서 길을 잃고 희망 없이 혼돈에 빠지며 절대 그 밖으로 나올 수 없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죄와 거짓 사이에는 확실한 관련이 있다. 나의 사도 요한이 내 임재의 빛 가운데 걷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5-10)
 
“나의 자녀들이 죄를 지을 때 그것을 곧 나에게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거짓에 빠지며 숲의 어두움 속에 길을 잃게 된다." 하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매우 명확했다. 그 거짓의 숲을 통과하여 지나갈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순결하고 깨끗한 마음이 필요했다. 그분의 빛 가운데 걷는 것만이 투명해지게 하며 감추어진 죄와 개인적인 계획이 없게 한다. 이런 일은 오직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분의 깨끗케 하심을 받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
 
담이 없는 감옥
갑자기 나는 주님과 에녹으로부터 떨어졌다. 나는 성령 가운데 지구 위 매우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졌다. 내 눈에 보이는 조망은 지구 바깥 영역에 있는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과 비슷했다. 아주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본 거짓의 숲의 모양은 사각으로 된 거대한 나무들의 집합이었다. 빛이 있는 가는 길이 숲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정확히 보였다. 눈부신 빛은 그 중심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 숲이 실상 감옥과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눈에 보이는 벽은 없었지만 살아 있는 사면의 감옥은 그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감금했다. 사람들은 어두움과 거짓 안에 사로잡혔다. 비록 들어가고 나가는 것은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을 바깥으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빛의 근원을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이게도 속임에 넘어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어두움 속에 걸려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 숲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병들고 야위었다. 그들은 절망적으로 그 거짓의 숲을 벗어나 빛으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고 만일 자신들의 거짓을 보호하는 껍질로부터 벗어나면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어둠의 사람들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8:38-39). 그들을 이 장소로부터 구하기 위해 나는 마지막 때를 위한 나의 군대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임재의 빛을 천명하기 위해 보냄을 받을 것이다. 나는 이 죄수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왔다. 온 세계는 이 어두움 속에 놓여 있지만 나는 말씀의 빛이다. 전쟁은 이제 빛과 어두움 사이의 새로운 전투의 단계로 들어가려고 한다(고후 10:3-6 참조). 나는 이 마지막 전쟁을 위한 내 마지막 때의 전략을 나의 영적 군대에게 드러내려고 한다."
 
  (데일 파이프 박사가 쓴 “은밀한 처소” 중에서)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 -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15:5)
주께서 "내 안에 거하라"(15:4)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신 것은 포도나무의 우화를 통해서입니다. 매우 단순하지만 동시에 그 교훈에 있어 매우 풍부한 이 우화는 주님의 명령과 그분께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연합의 의미를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우화는 무엇보다 주님과 우리의 연합에 담긴 속성을 가르쳐 줍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의 연결은 살아있는 어떤 것입니다. 단순히 외적이거나 일시적인 일치와는 다르고 인간의 수고로 창조될 수 있는 어떤것도 아닙니다. 원래의 가지든 접붙여진 가지든 그것은 오로지 창조주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생명과 수액과 가지의 굵기와 과실의 풍성함이 그대로 가지에 전해지게 됩니다.

우리들 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의 연합은 인간의 지혜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역사이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우리 죄인들 사이에 가장 친말하고 가장 완전한 생명의 연합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가운데 보내사"(4:6)
하나님의 아들 안에 거하였고 지금도 거하시는 동일한 영이 우리 믿는 자의 생명이 됩니다. 하나이신 그영과의 연합 그리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생명과의 교제속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 사이의 연합처럼 우리와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것은 바로 생명과의 연합입니다.

이 우화는 또한 그러한 연합의 완결성을 가르쳐 줍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연합은 너무도 밀접한 것이어서 하나가 없다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그리고 오로지 다른 하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없이는 가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해서 가지는 포도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생명을 얻고 또 결실을 산출합니다. 주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5)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행함으로써 입니다.날마다 성령의 생명의 수액이 우리 안에 흘러 듦으로써 만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을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님 안에 거하고 매순간 주님께 의뢰함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포도나무 또한 가지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가지가 없는 포도나무는 소산을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지가 포도나무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듯이 포도나무 역시 가지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그분의 백성이 그분께 의뢰하듯이 그분 스스로를 그분의 백성에 의뢰하게끔 하신 바로 그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진수입니다. 제자들 없이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축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제자들 없이는 축복 받은 가나안의 포도 열매를 죄인들에게 나눠 주실 수 없습니다. 놀랄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속량하신 자들을 불러 입히시는 최고의 영광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천국에서 주님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열매가 주님께로부터 찾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또한 이 지상에서 주님께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주님은 당신의 열매를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묵상하노라면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의 이와 같이 완전한 연합의 신비 앞에 우리는 엎드려 경배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 깊이 묵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포도나무나 가지가 서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둘은 서로를 통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가진 모든것은 동시에 가지에게 속합니다. 포도나무가 토양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하는것은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포도나무가 흡수한 모든것은 가지의 몫이 됩니다. 부모의 소유가 자식들의 유산이 되는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께서는 그렇게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우리를 위해 전적으로 주셨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4:12)

주의 충만함과 부요함이 바로 우리의 것임은 포도나무가 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며 저자신만을 위해 소유하지 않으며 오로지 가지들을 위해 존재함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은 바로 우리를 위해 되심입니다. 천국에서 예수의 중보자 되심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아버지 앞에 서 계신것입니다.

마친가지로 가지가 가진 모든것은 포도나무에 속합니다. 가지는 저자신을위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과실을 맺음으로써 포도나무의 생명력을 선포하기위해 존재합니다. 가지에게는 포도나무에 헌신하는 것 이외의 다른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믿는자의 소명과 주님에의 전적인 헌신을 드러내는 빛나는 이미지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전적으로 내어주셨듯이 우리역시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께 내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존재의 모든힘과 우리 삶의 모든순간들 그리고 우리의 모든생각과 느낌들은 예수께 속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로부터 그리고 예수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포도나무가 가지에게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깊이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정하고 정녕 살아야 할 목적을 위해 살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주님의 뜻과 영광과 역사와 왕국이며 가지된 우리가 포도나무되신 주님의 영광된 이름으로 과실을 맺는일입니다.

포도나무의 비유는 주님과의 연합이 무엇을 위함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를 맺기 위하여만 존재합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15:2)

가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여 열매를 완성하기위해 잎들을 필요로 하며 또 그렇게 맺은 열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믿는이들이 가지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자신을 잊고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다른이들을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찾고 구원하기위해 예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만큼이나 가지 또한 이목적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와하나되게 하시는 까닭은 바로 열매를 그것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의 삶과 성령의 세계의 신비를 드러내주는 이 포도나무의 놀라운 비유에 대한 우리의 지금까지의 이해는 얼마나 부족한 것이었던지요.

예수께서는 천상의 살아있는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이지상의 포도나무 가지인 것입니다.

주님의 충만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하며 또 그충만을 누릴 우리의 권리가 얼마나 큰가에 대한 깨달음이 우리에게는 부족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비우기를 주님께서 얼마나 많이 요구하시는지 또 우리의 자기부인에 대한 그분의 권리가 얼마나 큰것이지를 우리는 몰랐습니다.

이 아름다운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의 경이로운 연합을 더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그 깨달음이 사랑하는 구주와의 영적교제로 향하는 안내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전 존재를 다하여 "예수는 참으로 나를 낳으시고 먹이시며 공급하시고 사용하시며 풍성한 열매를 맺기까지 나를 한없이 채우시는 참된 포도나무라"고 외칠때가지 이 말씀을 듣고 믿길 원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정녕 나는 참된 포도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가지로서 그 안에 거하고 그에게 의지하며 그를 기다리고 그를 섬기며  그가 나를 통하여 이 패망하는 세상에 그의 은혜의 부요함과 그의 열매를 베푸시도록 살아갈 뿐이라"고 고백하길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비유의 깊은 의미를 께달으려 애쓸때만이 그 안에 담긴 축복된 명령은 우리 가슴에 힘 있게 다가오게 됩니다. 포도나무가 가지에게 무엇인지 우리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깊이 묵상하노라면 "내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묵상 속에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영혼아 내가 얼마나 완전히 네게 속해 있는지를 생각하라. 나는 나자신을 네게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이 너와 하나가 되었단다. 포도나무의 모든 풍성함과 비옥함이 정녕 너의 것이다. 네가 내안에 있는 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또한 너의 것임을 기억하라. 나의 관심과 나의 영광은 너로 하여금 결실이 많은 가지가 되게하려는 데 있으니 다만 내 안에 거하라. 네가 약할지라도 나는 강하며 네가 빈궁할지라도 나는 부요함이라. 다만 내안에 거하여 내가르침과 다스림에 너를 전적으로 내맡기라. 너를 향한 내 사랑과 은혜와 약속들을 신뢰하라. 내가 너의 것임을 다만 믿기만 하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안에 거하라."

. 내 영혼아, 이 말씀에 어떻게 응답하리요? 여전히 머뭇거리며 주저할텐가? 여전히 참된 포도나무의 가지로 사는일이 내가 스스러 성취해야할 어떤일로 생각하고 그것의 고됨과 어려움만을 탓하고 있을것인가?

대신 그 일이야 말로 이지상에서 가장 축복받고 가장 환희에 찬 일이라고 돌이켜 생각지 않으려는가? 이제 내가 주님안에 있음으로써 주님께서 나를 지키시며 나로하여금 주님과 영원한 동거를 누리도록 하시리라 믿지 않겠는가?

다만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곳에 나를 두도록 마음으로 승락하며 연약한 가지를 붙드시는 강한 포도나무를 신뢰하는 것 그것이 주님과의 동거임을 확신치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주님 복되신 구주 예수 안에 내가 거할 것이며 지금도 거하고 있습니다.
! 구원자 되신 주님. 당신의 사랑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139:6)

나는 다만 그분의 사랑에 나를 맡기고 그분께서 그소중한 신비의 편린들을 내게 보이시길 날마다 간구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용기와 힘을 얻어 진심을 다하여 열망하는 일을 이루기를 곧 영원히,오로지,전적으로 주님안에서 거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앤드류 머레이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중에서>

죠이 도우슨의 18가지 순종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1. 삶 속에서 항상 입을 벌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분을 찬양하는가?  
   
2. 매일의 기도 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가?

3. 하나님의 성품과 방법을 알기 위해 성경 읽기에 효과적으로 시간을 할당하고 있는가?

4. 삶 속에서 꾸준히 전도하고 있는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5. 균형 잡힌 식생활을 통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가?
  
6.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는가?

7. 가족문제
-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 가족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8. 재정적인 문제- 십일조, 헌금, 작정 헌금, 빌린 돈

9. 편지나 전화 등의 수단을 통해 사람들과 원만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가?

10.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충고를 해 주고 있는가?

11. 용서를 하고 있는가?

12. 감사를 적절히 표현하는가?

13. 우리가 무례하게 대했던 사람에게 겸손히 용서를 구하며 보상하고 있는가?

14. 빌린 물건을 돌려 주었는가?

15. 설교 말씀이나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에 의해 개인적으로 받은 말씀을 주의 말씀으로 알고 순종하고 있는가?

16. 다른 사람에게 약속한 일들을 행하였는가?

17.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었는가?

18. 겸손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근거하여 항상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인간이 죽을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썬다 싱)


어느날 내가 홀로 기도하고 있을때 갑자기 많은 무리의 영적인 존재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 영안이 뜨이자 많은 성도들과 천사들 앞에서 절하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의 밝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내 자신이 그들에 비해 천해 보이는 내 자신과 비교할때 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들의 진실한 동정과 영감을 받은 우정으로써 금방 편해졌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현존의 평화를 경험을 했었지만, 이들 성도들과의 교제는 나게 새롭고 놀라운 기쁨을 더해 주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나에게 풀기 어려웠던 많은 문제로 어려움을 당했던 것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나의 첫번째 질문은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며 죽은 후 영혼의 상태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 어린시절에서 노년시절 사이에 무엇이 일어난 것은 알지만 죽을때, 또는 죽음의 문 너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죽음의 저편에영계에 들어간 후에야 알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어떤 지식에 대해서 말해주실 수 있습니까? " 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서 한 성도가 말해 주었다.
"죽음은 잠과 같다. 거기에는 어떤 육신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상태를 제외하고는 이것을 넘어가는데는 고통이 없다. 몹시 지친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는 것처럼 죽음의 잠이 우리들에게 이른다.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갑자기 닥쳐서 그들이 물질세계를 떠나서 영의 세계에 들어 온것을 아는데 많은 어려움을 당할 뿐이다. 그들이 주위에서 보는 많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면서, 전에는 보지 못하였던 물질 세상의 어떤 나라나 도시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충분한 가르침을 받은 후에야 그들의 영적인 몸이 물질적인 육신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며, 실제로 그들이 물질 세상에서 영계로 이동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곁에 서 있던 또 다른 성도는 이 말에 더하여 말해주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많은 자들은 죽을 때 무의식 상태인 것 같지만, 그 주위에 가득 모인 사납고 무서운 악마들의 얼굴을 보고 공포에 질려 말도 하지 못하고 마비된다. 반대로 신자가 죽을때 이와 반대가 된다. 그는 그를 마중 나온 천사들과 거룩한 성도들을 보기 때문에 매우 기뻐한다. 먼저 죽은 그의 사랑하는 사람도 그의 임상 곁에 오며 그의 영혼을 영계로 안내하게 한다. 영의 세계에 들어갈때 주위에 친한 친구들이 있으며 땅위에 사는 동안 그분을 믿고 따르면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본향에 거하게 됨으로써 편안함을 느낀다."

또 다른 성도는 또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 세상으로부터 영혼을 안내하는 것은 천사의 일이다. 보통 그리스도는 영계에서 항상 자신을 각 사람에게 영혼의 발달된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정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주님이 친히 임상에 오셔서 그의 종을 맞이하며 사랑으로 그 눈물을 씻어 주시며 그를 낙원으로 인도하신다.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에 날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듯이, 영혼이 영계에 들어갈 때에도 모든 필요한 것은 모두 이미 준비되어 있다."
                                                                                                                    
-사두 썬다싱 전집-

정결의 영성 :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라.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려면 영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
이진희 목사-달라스 웨슬리연합감리교회

성경은 우리를 그릇에 비교하고 있다. 집에는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나무로 만든 그릇도 있다. 손님이 오면 주인이 어떤 그릇을 내놓겠는가? 금그릇? 은그릇? 아니면 질그릇? 나무그릇?금 그릇도 아니고, 은그릇도 아니고, 질그릇도 아니고, 깨끗한 그릇이다. 금 그릇이라도 깨끗하지 않으면 내놓지 않는다. 질그릇이나 나무 그릇이라고 할지라도 깨끗하면 주인이 사용한다.

하나님은 금 그릇이라고 해서 귀하게 사용하고 나무 그릇이라고 해서 막 사용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그릇은 깨끗한 그릇이다. 깨끗하면 사용하신다. 우리 심령이 더러운 그릇이라면 그 안에 거룩한 성령을 어떻게 담을 수 있겠는가? 그릇이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임하실 수 있다.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는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19).

회개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이다. 회개할 때 삐걱하고 하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회개할 때 주홍같이 붉은 죄가 흰 눈 같이 양털 같이 희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성령이 주어진다. 왜냐하면 성령은 죄로 붉게 물은 심령 가운데는 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도 구원 받을 수 있다. 죄가 없어야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렇지 않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을 수가 없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죄의 문제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죄에 끌려 다닌다고 하면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죄의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기억하라. 바로 죄가 당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죄가 당신을 주장하고 있는 한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 속에 살면서 영적 순결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는가? 세상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거기에 넘어가게 되면 아담과 하와처럼 되고 만다.

방울뱀이 어떻게 다람쥐를 잡아먹는지 아는가? 나무 위에 다람쥐가 보이면 방울뱀이 꼬리를 흔들어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그러면 다람쥐가 호기심에 그 방울뱀을 쳐다보게 된다. 다람쥐와 방울뱀 눈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다람쥐는 무서워 벌벌 떨게 된다. 그리고 비실비실 거리다가 툭 떨어지고 만다. 그러면 방울뱀이 유유히 다가가서 잡아먹는다고 한다. 세상의 유혹에, 사탄의 유혹에, 정욕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이렇게 되고 만다.

유혹에 넘어가 영적 순결을 잃어버리게 되면 영적 능력도 사라지게 된다. 삼손에게 어디서 그렇게 큰 능력이 나왔는가? 긴 머리카락에서?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런 힘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결을 잃어버리게 되자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고 했다. 그래서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머리카락을 잘라서 천하장사 삼손이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니다. 정결을 잃어버릴 때 성령의 능력이 소멸된 것이다.

정결을 잃는 것은 영적 사망 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결한 마음을 잃어버릴 때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게 된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영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여 내 안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51:1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119:9).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5:3).

이렇게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다. 얼마나 간절하게 성령 충만을 사모하느냐, 성령 충만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느냐, 그런 것은 2차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성령을 사모해도, 아무리 열심히 성령 받기 위해 기도해도, 심령이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지 못하면 성령이 임재하실 수 없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또한 성령 충만의 축복이 임하실 것이다.

완전한 평안을 누리는 5가지 방법



1. 하나님의 원리에 순종하라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기극히 사랑하나이다”(119:165, 167). 자동차를 설계된 원래 의도대로 운전할 때 자동차가 훨씬 순조롭게 달릴 수 있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제시된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훨씬 더 순조로운 사람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안내서다. 그 안내서는 건강, 재정, 결혼, 관계, 사업과 그 밖의 많은 것에 대한 원리를 말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라
평안을  깨뜨리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죄책감이다. 죄책감을 느낄 때 우리는 과거에 시달리고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만큼 고통의 세월을 보낼 뿐이다.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깨끗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한 양심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

3.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26:3). 무제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해결책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46:10).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어려움은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라.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라. 공허감이 점점 쌓일 때마다 하루에 오륙십 번씩 그렇게 하라. 가만히 있어라. 성급함은 기도를 죽이는 것이다. 허리케인 한가운데 태풍의 눈이라 불리는 고요한 핵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와 같이 우리 삶 한가운데에는 고요한 핵심이 있을 수 있다.

4. 하나님의 목적은 신뢰하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문제를 너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렇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그분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5. 하나님의 평안을 구하라
하나님의 평안을 원한다면 구해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순서에 주목하라. 기도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평강이다. 기도가 원인이고 평강이 결과다.

기도하지 않는다면 염려하기 쉽다. 염려는 낭비처럼 무익한 감정이다. 염려와 평안은 공존할 수 없다. 자신의 짐(염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아무런 조건 없이 들어줄 사람이 필요치 않은가? 우리가 말한 것 때문에 우리를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누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속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로 하나님보다 더 좋은 상대가 어디 있겠는가.

☆ 평안을 위한 기도
하나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안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십시오”.  기도는 평안이라는 놀라운 부산물을 가져온다.  <출처: 아침 향기>

[성령의]열매 맺는 삶 네 가지 조건


1. 뿌리를 뻗게 하라
뿌리는 열매를 맺게 하는 열쇠이다. 뿌리를 뻗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2-3). 이 말씀말 암기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통해 그 뿌리는 자라게 된다.

2. 잡초를 제거하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가시 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8:11, 14). 열매를 맺고 싶다면 뿌리가 내릴 수 있게 하고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잡초들은 당신의 시간과 에네지와 돈을 빨아들여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방해하는 관심사와 염려들이다.

3. 하나님과 협력하라
가지치기에는 죽은 가지를 제거해 버리고 살아 있는 가지들을 손질해 주는 일이 포함된다(15:1-2). 대부분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우리 삶 속에 있는 피상적이고 말라 시든 가지를 잘라내실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분은 그렇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 돌아가는 사업과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와 좋은 건강 상태 같은 것처럼 살아 있는 것과 성공적인 것들도 잘라내신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런 것들을 잘라내시는 것이다. 릭 웨렌 목사님이 새들백교회를 개척할 때 그 사모님은 힘든 임신 기간을 병마와 싸우며 보냈고 몇 개월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지내야 했다. 그러나 그 후 교회는 놀라우리만치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 가지치기의 결과는 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4. 추수를 기다리라
열매 맺고 싶다면 뿌리를 뻗게 하고 잡초를 제거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지치기에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추수를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이 버섯을 만드시는 데는 이들이 걸린다. 그러나 떡갈나무를 만드시는 데는 60년이 걸린다. 당신은 버섯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떡갈나무가 되고 싶은가?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생명보다 죽음이 앞선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밀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영적인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 우리의 이기심에 대해 죽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포도나무 비유(15)에서 핵심 단어는 거하다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늘 교제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분의 완벽한 때에 우리 삶 속에서 살고 그분의 완벽한 때에 우리 삶 속에서 그분이 일하실 수 있도록 그분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포기하지 말라.

아침의 향기 묵상: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정반대 되는 사람과 환경들을 만나게 하심으로써, 우리 안에 새로운 자질들을 창조해내신다.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과 지내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신다. 슬픔 속에서 희락을 가르치시며,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것들로 화평을 가르치신다. 또 우리를 좌절시키는 것들을 통해 오래 참음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그 모든 것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우리 역시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그 협력을 표현하는 한 방식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살전5:18)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서론편)

  어느 날 예수께서 베다니를 지나갈 때에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했다(1:29). 그렇다. 세상 죄인들의 그 죄를 사해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로 가신 예수, 곧 아버지께 순종하는 어린양이시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하나님은 죄인인 인류를 구원시켜야 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에 물든 인류의 구원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체결한 언약에서 보여준다.

 
그 후에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을 인도하던 모세에게 사탄이 유혹한 사건이 반석을 쳐서 물을 낸 사건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20:8)하셨는데 모세는“지팡이로 반석을 때렸다”(20:11). 이것이 예수의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야했고 물을 쏟게 했던 원인이 되었다. 그 후 사탄의 사주에 사로잡힌 산헤드린 총회는 예수를 죽일 것이라고 이사야가 예언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의 죽임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스가랴선지가 경고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을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53:7-9)

 
이사야선지는 예수께서 악당들에게 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이 있겠으나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심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안 하다가 끝내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예수의 죽임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는 것도 자기 소유지가 없으므로 어느 부자의 묘실에 묻혀 질 것이라 했다.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줄 안지라,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들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11:10-14)

 
그런데 스가랴는 저들이 예수를 죽이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당신의 아들을 참혹한 매질과 고난과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 근거는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했을 때에는 애굽의 아들들은 고문을 당하거나 십자가에 달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30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11:12)


그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30을 달라 주거늘....(26:14-15)

 
스가랴의 경고는, 유대인들은 예수를 넘겨받기 위해 몸값을 흥정할 것이라 했다. 몸값은 은 30개 인데 저들은 그것을 허락하고 첩자에게 주게 된 것이다. 스가랴의 예언은 그대로 나타났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사람을 매수하게 되고 그가 가리옷 사람 유다였다. 유다는 넘겨주는 댓가로 은 30개를 받았다. 스가랴는 계속하여, 부정하게 받은 돈은 성전 뜰에 던져질 것이고, 그 돈으로 이방인들의 묘실이 마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은 30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11:12-1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30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어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27:3-7)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성전에 돌아가서 은 30개를 돌려주려했으나 받지 않으므로 성전 뜰에 팽개치고 나와서 그는 자살하였다. 여기에 대하여 스가랴가 예언한 은총은 백성들과 세운 언약이라 하였다. 그 언약은 3대 족장들과 맺었던 선민계약이었다. 연락은 이스라엘 민족의 흩어짐을 말한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동안 나라를 잃었고, 다시 회복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이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3대 족장 간에 맺었던 선민계약이 파기되고 복음은 이방인들에로 넘겨지면서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무리들이 선택된 백성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따라서 아직도 이스라엘을 선민이라면서 야곱의 환난이 끝나야 주님이 오신다는 주장이나 학설은 비진리가 된다.

 
이것이 이사야가 경고한 예언을 산헤드린 총회가 오용한 예언대로 되여진 사건이다. 그 오용은 나사로가 부활했을 때 대제사장 가야바(Καiαφas)가“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11:51-52) 이것이 이사야의 예언을 오용한 사례다. 산헤드린총회는 가리옷 사람 유다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십자가에서 죽였다. 그러나 원래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런 방법은 아니었다

변화를 위해 선택해야 할 것


1. 사고 방식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생각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라. 너희 삶이 생각으로 구체화되기 때문이다[4:23].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 자체가 바로 당신이다. 변화는 새로운 사고 방식에서 시작된다.

2. 성경 읽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을 주신다. 그러나 그 말씀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성경을 묵상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여기서 묵상이란 요가 자세로 앉아 단조로운 어구를 되풀이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월적인 명상이나 요가나 동양 종교에 기초를 둔 다른 기법들은 필요 없다. 시편 1편을 읽으며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골로새서3:16절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고 그 읽은 것에 대해 생각한 다음, 그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을 최소한 10분 또는 15분 정도 규칙적으로 가져야 한다.

3.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삶을 포도나무와 그 가지로 비유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봄에 밖으로 나가 죽은 나뭇가지에 사과들을 매달아둔 다음 아내를 데리고 나가 여보, 우리 과일나무를 좀 봐요라고 말한다면 아내는 당신이 매달아둔 열매잖아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어느 그리스도인이 내 삶의 가지에 열매를 매달 것입니다. 약간의 인내는 이 가지에, 약간의 양선은 저 가지에, 그리고 약간의 절제는 이쪽 가지에 매달겠어요. 그걸 내가 직접 다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맺는 열매는 성령의 열매다. 그것은 내면에서부터 자라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내가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자신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라.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들을 위에 기도하라. 관심사들에 대해 기도하라. 사야 할 물건들에 대해 기도하라.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즉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며 사는 것이다.

4. 환경을 선택하라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선택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은 다차우[Dachau]에 있는 나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유대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수용소의 경비병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고 말했다. 그의 정체성과 그의 아내와 가족들, 옷과 심지어 결혼반지까지 빼앗겼다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 그가 쓴 책에서 그는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 자세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 된다고 썼다. 경비병들은 그에게서 그의 마음 자세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결코 빼앗아갈 수 없었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릭 워렌>

믿을 수 있는 사람


충성스럽다는 것은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하며 믿음직하고 지조가 있다는 뜻이다. 충성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자질이다. “모두 자신이 얼마나 충성되고 신실한지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자!”(20:6, GNT). 우리가 충성스러워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33:4).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를 바라신다. 두 번째 이유는 충성은 삶을 더 쉽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충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를 살아가면서 많이 볼 수 있다(25:19).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할 때는 결코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지조가 없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재능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놓고 창의적인 사람이지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재능들은 별 가치가 없게 된다. 최고의 능력은 신뢰성이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그것을 보상해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25)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은 우리의 능력이나 선한 의도 평가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됨에 따라 심판하고 보상해주실 것이다. 다음은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이다.

1. 약속을 지켜라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25:14).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하려고 했어라고 말하지만 결코 하는 법이 없다(20:25).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가? 분노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깨진 약속이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굳이 이해시킬 필요가 없다. 크게 떠벌릴 필요도 없다. “맹세한다, 죽어도 좋다, 내 손에 장을 지져라등의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겠다고 말하고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예수님은 그런 것은 그렇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셨다(5:37).

2. 결혼 생활에서 충성스럽기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는 서로에게 맹세하는 서약의 상징으로 반지를 교환한다. 그들은 평생 서로에게 충실할 것을 약속한다. 충성이라는 자질을 개발하고 싶다면 결혼 생활을 소중하게 여기라.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하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우리를 의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 믿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충성도 하나의 선택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서약에 충실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3. 은사를 활용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능력과 은사와 재능들을 주신다. 우리에게 투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자한 대가를 기대하신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우리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통해 나누어 주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특하게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사취를 당하게 된다. 더욱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은사들을 사용하라. “내게는 이런저런 은사들이 없어요. 나는 그 사람처럼 노래하지도 못하는 걸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충성은 나에게 없으나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이 내게 노래하는 재능을 주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위해 독창을 불러야 할 책임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이나 은사를 사용할 책임은 나에게 있다. 구리가 다 뛰어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충성스러운 사람은 될 수 있다.

4.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삶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라. 시간을 최대한 잘 사용하라”(5:16-16). 우리는 시간을 사용할 수도, 낭비할 수도, 투자할 수도 있다.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은 우리 뒤에까지 남을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충성에는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포함된다. 우리의 시산을 낭비하게 하는 대표적인 두 자기가 있다. 후회와 염려다. 지난 일을 후회할 때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기 위해 뒤를 돌아보면서 엄청난 시간을 낭비한다. 그리고 미래를 염려할 때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속을 태우며 시간을 낭비한다. 그 결과 오늘을 위해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 보다 충성된 사람이 되면…… 그러면이라는 사고방식을 포기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게 되면, 아이들이 공부를 다 마치게 되면 …… 그러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충성하라고 말씀하신다.

5. 친구와 함께하기
충성된 사람이 되는 또 다른 방법은 개인적인 충성심을 개발하는 것이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친구와 함께한다(17:17). 참된 친구들은 믿을 수 있고 건실하다. 그들은 위기 가운데서도 신뢰할 수 있다. 진정한 친구란 위기가 찾아올 때 어려움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당신은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는가? 당신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친구와 함께하고 친구에게 도움을 주라.

6. 돈을 잘 관리하라
충성이라는 열매를 재=맺고 싶다면 돈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6:11). 놀랍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재물에 신실하지 않다면 재정이라는 영역에서 충성스럽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한 주 동안 번 것에서 각자 정해진 금액을 따로 떼어 매주 주일에 그것을 헌금으로 드리라. 그 금액은 하나님께서 벌 수 있도록 도와주신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고전16:2). 이 말씀은 신실하게 드리는 헌금은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한다. 첫째, 정직하게 헌금해야 한다. 둘째, 헌금은 계획된 것이어야 한다. 기도하면서 계획하고 수입 일부를 따로 떼어두어야 한다. 결혼한 경유라면 당신이 매주 얼마나 헌금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하는지 배우자와 이야기하고 의논해야 한다.

7. 최선을 다해 일하라
보다 충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해라. 사람들을 고용한다면 어떤 자질들을 살펴보겠는가? 아마도 신뢰성일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다”(16:10).

우리의 삶은 대부분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한다면 다른 대부분 작은 일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충성되지 못한다면 다른 대부분의 삶 역시 충성되지 못할 것이다. 영적인 성장도 마찬가지다. 매일 주님과 함께하는 경건의 시간이니 기도와 같은 작은 일들이 큰 결과를 낳는다. 다른 사람들이 간과하는 작은 일들에 충성할 때 성공이 찾아오게 된다. 충성은 또 우리의 것이 아닌 것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16:12). 직장에서 업무용으로 공급되는 물품들을 나의 물건처럼 다룰 정도로 나는 충성된 사람인가?

<출처: 아침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