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2011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이루실 수 있다.

우리가 고난의 기간이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 감옥 안에 있는 요셉 자신의 환경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아무 일 없이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이었는가? 아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감옥 바깥에서 바삐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셨는가?
일단 바로를 움직이셨다. 바로가 꿈꾸게 하셨고, 그 꿈에 대해 번민케 만드셨다.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41:18)

아무렇게나 해석해도 될 텐데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게 만드셨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아도 다 이루실 수 있다. 
지금 감옥 안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는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주신 메시지는 이것이다. '네가 움직이지 않아도 일이 되지?' 이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총리가 되고 난 다음에도 지나치게 앞서 가지 않았다.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앞서 행하셨는데, 내가 기도하고 내가 하나님께만 능력을 구해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리라 믿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믿음의 자세이다.

분주한 마음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차분히 무릎을 끓고 엎드려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능력을 바라보기 바란다.

내가 완전히 변화될 수 있는길은 없는가

농가의 외양간에 있는 황소는 길들여진 동물이지만, 때로는 난폭해진다. 무엇엔가 화가 나면 황소는 머리를 들어밀면서 거친 소리를 낸다. 이렇게 황소가 분노를 폭발시킬 때 농장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재빨리 나무로 기어오르거나 담장을 넘어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것은 황소가 분노를 폭발시켜 수 세기 동안의 순치(馴致)의 굴레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길들여졌음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깊은 내면에는 야수의 본성이 변하지 않은 채 잠복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황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만이 폭력적인 죄를 범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폭력적인 범죄는 사회적 및 경제적으로 혜택을 많이 누리는 계층에서도 발생한다.

이렇게 교육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물론 교육이 억제 수단으로 작용하여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성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들의 본색이 드러날 것이다.

종종 우리는 사람들의 탐욕을 눈치채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법으로써 그들의 탐욕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는 여전히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억제하고 있던 빗장이 풀리면 각종 범죄가 발생하고, 그들은 법에 따라 감옥에 갈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가? 하나님께 감사하라! 희망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새로운 본성과 소원과 취향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해결책을 제공하신다. 우리 구주 예수께서는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탐욕을 제거하시고, 그 사람을 가난한 자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다. 주님은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쉽게 분노하는 사람의 성격을 온유한 성격으로 바꾸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완전히 새로운 본성과 도덕적 소원과 성향을 주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옳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옳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복음의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제자로서 주님을 끝까지 좇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네믿음은어디있느냐중에서...>

실패하게 하는 마음의 자세(II)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3:29)

여러분들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분노입니다. 분노는 우리의 사고력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온몸의 혈관을 수축시켜 몸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혈압을 높이며 심장마비를 일으킵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삼고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하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수기 20:10)라고 말하면서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그러자 바위에서 물이 나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들이지 못하리라”(민수기 20:12)고 하셨습니다.

모세처럼 위대한 종도 분노로 그의 마음이 부정적이 되어 하나님을 올바르게 대면하지 못하게 되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노함으로 말미암아 받을 수 있는 복을 빼앗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야고보서 1:20)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노는 여러분의 마음을 부정적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여 화를 내면 자기만 손해볼 것으므로 화가 날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화가 날 때에는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화가 나더라도 참고 찬송을 부르면 성령의 역사로 화가 가라앉게 됩니다. 그리고 화가 날때에는 시간을 벌어야 됩니다. 마귀는 조급하게 굴지만 성령은 조급하게 서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분이 나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20분 후에 화를 내자’하고 20분만 기다리면 분노가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그 때에는 화를 내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면 분이 나지 않게 되므로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부정적이 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야고보서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