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 2:27)
우리는 이 땅에서 기름부음 받은 사역, 재정의 돌파구, 좋은 친구, 건강과 힘을 부차적인 상급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한 상급임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저는 이 상급들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부차적인 상급이 필요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을 노동을 수반하는 희생이라 생각하고, 상급을 우선시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역에 얼마나 기름 부으심을 받고, 돈이 얼마나 있으며, 우리 건강 상태가 어떻고, 깊고 충성된 우정을 나누는 이들이 몇이나 되는지에 마음을 가장 많이 쏟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부차적인 상급을 우선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장 큰 목적 되시고, 그 목적이 성취되었을 때, 우리에게 상급은 부차적인 것이 됩니다.
*나의 기도*
아버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절대 노동으로 여기거나 어려운 희생으로 여기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아들, 예수가 저의 가장 큰 목적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지음 받은 첫째 목적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이 충족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우리는 능력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다.
<사랑하는하나님 마이크 비클의 365일 묵상집>
6/03/2010
영적 선두주자 양성: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준비하다 (Raising up Forerunners: Preparing to Prepare Others)
I. 영적 선두주자
A. 성령님은 전세계에 걸쳐 주님의 교회 안에 다양한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영적 선두주자들을 세우고 계신다. 선두주자는 무엇인가? 영적 선두주자는 주님의 재림, 그리고 그와 관련되어 벌어질 특별한 사건들을 선포하는 자이다. 이 선두주자들은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분야에서 그 부르심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전도자, 목회자, 교사, 예언자, 방송인, 예술가, 가수, 연주자, 배우, 작가, 또는 일반 직장이나 일터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 모두가 여기에 포함된다.
B. 나의 견해이긴 하지만, 나는 우리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세대 초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날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님의 재림을 지켜볼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스무살의 청년들이 그 주인공들이 될 수도 있고 두살배기 아이들이 그 주인공들이 될 수도 있다. 정확히는 모른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C. 1세기 선두주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마지막 때 선두주자들의 삶과 역할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세례요한과 제자들은 1 세기 선두주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 앞서 각 도시에 들어가서 그 지역에 임하실 예수님을 선포했던 자들이다.
52 [예수께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눅 9:52)
D.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초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선두주자로 세례요한을 설명할 때, 이사야 40장을 암시하고 있었다(눅 1:11-19).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주의 길을 예비했다(요 1:23).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forerunner)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7)
E. 이 본문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려 사람들을 예비시키는 사역으로서의 선두주자 사역에 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거기에 더불어 세례요한은 허다한 무리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자의 모습도 보여 주었다. 그는 예수님의 초림을 선포하면서도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했던 복음 전도자이며, 기도와 금식, 의로운 삶을 가르치면서 제자 양육에 힘썼던 자이기도 하다 (마 9:14; 눅 3:3-18; 11:1).
F. 이사야 62장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세대에 사는 선두주자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주의 대로를 평탄케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이 확실하게 임하게 될 거라는 복음의 깃발을 들고 땅끝까지 전하면서 사람들을 예비시키게 될 것이다. 선두주자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재림하시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급에 대한 통찰력을 선포한다(계 22:12).
백성의 길을 예비하라 대로를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를 들라 11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반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 (사 62:10-11)
G. 1 세기 선두주자들이 앞서서 예수님의 초림을 선포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 선두주자들은 앞서서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I. 선두주자 사역은 영적 엘리트 그룹만을 위한 사역이 아니다. 이 부르심은 예수님의 재림과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선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A. 선두주자는 영혼을 구원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가난한 자들을 돕고, 사랑과 거룩한 삶의 살아가며 예수님의 초림의 유익과 축복들을 선포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을 강조한다.
B.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관련된 시간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번째 시간대는 십자가 사건전 3년 반 시작되어 교회사를 통해 계속 이어진 시기이다. 두번째 시간대는 예수님의 재림 3년 반에 시작되어 천년왕국으로 계속 이어지는 시기이다. 이 두번째 시간대는 여호와의 날(the Day of the Lord)이라 불린다.
C. 이 두 시기 안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합쳐지게 된다. 이 사이에는 역동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두 시기를 서로 다른 실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나는 동일한 예수님의 영광을 통해 두 시기를 바라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D.예수님의 초림에 온전히 성취되었던 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련된 특별한 사건들을 통해 열방가운데 온전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과 질병을 대속하셨고, 사탄을 물리치고 성령의 권능을 주의 백성들에게 부으사 그들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그리고 이 시대의 열방들에게 역동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하셨다.
E. 예수님의 재림 때에, 주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충만한 주님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실 것이다. 주님은 모든 성도들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실 것이며, 사단을 감옥에 가두시고, 모든 나라안에 모든 사회의 영역들을 온전히 변혁하며, 동물들과 자연대기, 농경들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을 회복시키사 죄의 저주를 끊으실 것이다. 이 모든 활동들이 마지막 때에 대한 성경본문들 속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들에 속한다.
F.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초림을 통한 유익과 축복을 지난 2천년동안 교회사를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구원과 능력에만 초점을 두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초림의 유익과 축복을 예수님의 재림의 사건들과 연결짓는다. 이 두 시기는 하나님의 더 크신 목적 안에 하나가 된다. 하나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우리는 전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이 두 시기에 모두 나타난다는 것이다(행 5:20; 20:20, 27).
III. 선두주자들은 두 시기 속에 산다
A. 선두주자는 현재와 미래속에 산다. 그들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열심히 인도하는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전에 일어날 특별한 역동적 사건들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을 한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에 가까운 시기들이 지니고 있는 중대성을 안다. 그들은 그 시기에 극단적이고 특별한 역동적 사건들, 긍정적 부정적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령의 부으심도 그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인류에 대한 사단의 가장 큰 분노와 적그리스도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맹렬한 진노의 심판이 부어지게 되는 사건도 여기에 포함된다.
B. 노아는 이렇게 두 시기를 살았던 선두주자의 표상이다. 그는 현재를 위한 하나님의 충만한 목적속에 살면서 미래를 위한 충만한 하나님의 목적을 예비했던 사람이다. 그는 당시 불신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백년이라는 시간이 찰 때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폭풍’을 위해 방주를 예비하고 있었다(히 11:7; 벧후 2:5).
C. 우리가 지금과 그 때 중 어떤 것을 고를까 고민한 필요는 없다. 이 두시기를 위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충만함속에 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유산이다. 마지막 때 선두주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하는 가운데서도 영혼구원에 힘쓰며, 병든 자를 고치며, 제자를 양육한다.
IV.선두주자는 준비되지 않은 자들을 준비시킨다
A. 간단히 정의하자면, 선두주자 사역은 주님의 재림을 선포하며 준비되지 않은 자들을 준비시켜 마지막 때에 일어날 특별한 역동적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모든 교회나 사역 단체들이 예수님의 재림이나 그와 관련된 사건들에 사역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부르심을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부르심을 느끼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C. 엄청난 사건들이 펼쳐질 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로 보는 관점과 객관성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올바른 성경적 관점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으로 그 사건들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선두주자들은 올바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를 마지막 때에 일어날 특별한 사건들과 연결지어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D.불신자들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고자 하는 절박함이 생기게 될 것이다(마 24:37-39). 심지어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며 예수님께 실족하는 사람들도 있게 될 것이다(마11:6). 그와는 반대로, 일어날 일들을 올바로 이해하는 자들은 믿음과 사랑이 더욱 자라게 될 것이다. 올바른 이해를 가지는 자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여, 그른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선두주자들은 성경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선포하는 자들이다.
V. 선두주자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친다
A. 적그리스도의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사랑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오해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화를 내며 실족하게 될 것이다. 선두주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실족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의 리더십(인도하심)을 신뢰하기 위해 예수님의 심판을 올바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그들안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성숙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두주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들을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적그리스도의 제국에 임한다는 사실만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 그러한 심판들이 임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what) 뒤에 숨겨진 이유(why)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
B. 하나님의 심판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다. 주님은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켜 주시고 강탈자들을 막으시기 위해 개입하실 것이다. 억압하는 자들을 막지 않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해 보라. 자녀가 납치를 당하는 데 그것을 막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하나님의 심판은 주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은 심판속에서도 그 억압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사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의 심판들이 이땅에 임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게 될 것이다(사 26:9).
VI.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임하도록 하는 기도는 하지 말라
A. 현재는 성도들이 기도할 때 악한 나라들에 심판이 당장 임하도록 기도해서는 안된다. 악한 나라들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자비가 심판을 이기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야 2:13). 그들이 구원받고 구속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도록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막아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구약 선지자들의 메세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메세지를 요엘서 전체를 통해 볼 수 있다.
B. 성도들은 마지막 3년 반의 시기동안 적그리스도의 제국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종말의 심판들은 적그리스도의 완악한 제국에 집중되어 있다. 완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 깊이 굳어져 있어 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모세가 완악한 바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도를 통해 풀어낸 것처럼(출 7-12), 성도들도 그들을 억압하고 죽이는 적그리스도의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도를 통해 풀어내게 될 것이다.
C.가장 큰 예수님의 기적들도 마지막 3년 반의 시기동안 주님의 교회를 통해 풀어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행하셨던 이적과 기사들과 비슷한 일들을 적그리스도에 대한 심판들을 통해 보여주시게 될 것이다(믹 7:15). 그 때에는, 지난 역사로 부터 쌓여온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적그리스도 제국에 대한 심판을 위해 부어지게 될 것이다(계 8:3-5; 시 149:6-9).
VII. 선두주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한다
A. 선두주자는 금식기도하며 유혹을 이기고, 고난을 인내하며, 사람들을 사역하고 성령의 은사들을 배우고 사용하는 가운데,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하나님 안에 깊게 가면서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사역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을 돕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사역은 미래 사역을 위한 필수 준비 과정이다.
B. 선두주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알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종말의 사건들을 다룬 성경본문들은 150장 넘는다. 거기에 비해, 예수님의 초림과 그분의 공생애 사역을 담은 사복음서는 총 89장 밖에 되지 않는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예수님의 사역 기록을 보여 주고 있는데, 주 내용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이시다.
C. 종말을 다룬 성경본문 150장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사역과 사건들을 보여주는 데, 주제는 예수님께서 열방을 통치하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실 것이다라는 것이다.
D.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본문들이 사복음서와 같이 동일한 성경에서 나왔고, 동일한 예수님을 나타내며, 동일한 성령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고려하지도 않은 채, 그냥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 본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완전히 악을 제거하시고 열방 가운데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온전하게 수립하시려는 그분의 종말 계획과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는 데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E. 선두주자는 종말에 대한 성경본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예언적으로 선포하게 될 것이다(사 62:10-12; 렘 23:20; 30:24; 단 11:33-35; 12:9-10; 엘 2:28-29; 말 4:5-6; 마 17:11; 행 2:17-21; 계 11:3-6; 13:18).
F. 예레미아는 말일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사 심판속에 담겨진 주님의 사랑의 목적들을 알 수 있게 하실 거라고 예언했다. 말일에 주님의 백성들은 이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렘 23:20)
G. 예레미아는 계속해서 예언하기를 하나님의 사자들(messengers)이 하나님의 종말 심판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연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렘 30: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연구하리라) ( 렘30:24)
H. 다니엘은 종말에 대한 지혜를 가진 자들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거라고 예언했다.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쇠패(순교)하여 무리로 연단되며 정결케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작정된 기한이 있음이니라 (단 11:33-35)
I. 하나님은 세례요한 처럼 혼돈속에서도 명확성과 권세 그리고 담대함을 지닌 소리가 되어 외칠 선두주자를 세우고 계신다. 그들은 단순한 메아리가 아니라 다가오는 일들을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될 것이다.
(세례요한이)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요 1:23)
J. 단순히 몇가지의 성경원칙들만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선두주자는 반드시 성경말씀을 깊이 알아야 하며 그것을 통해 다가오는 시기에 명확한 예언적 소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VIII. 현재와 미래에 예수님과 동역하라
A. 어떤 사람들은 현재를 위해 예수님과 동역 하는 준비는 하지만, 다가오는 특별한 종말의 사건들을 위해 예수님과 동역하는 준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논리는 예수님께서 그 때가 되면 알아서 혼자 다 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가장 본질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현재 예수님이 그분의 백성들과 동역하고 싶어하신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예수님 재림 바로 전 세대에는 그와 동일한 동역을 주님께서 찾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쁜 소식은 예수님이 현재와 그 때 모두 우리와의 온전한 동역을 바라신다는 것이다.
B. 예수님은 이 시대와 다가오는 시대에 주의 일을 모든 단계에서 주님의 신부와 동역하기를 바라신다. 특별히, 예수님의 재림전에 일어나게 될 세상을 변화시킬 사건들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통해 일하시는 기쁨을 무시한 채, 그 때에 갑자기 신부에게 돌아서 주님 혼자 그 일을 혼자 감당하겠다고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현재 병을 고치시고 억압하는 자들을 이기시는 것이 확실한 것 처럼, 그 때에도 동일한 방법으로 일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 시대와 다가오는 시대에 주의 일을 모든 단계에서 당신의 백성들과 깊이 동역하기를 사모하신다.
C. 우리가 지금 예수님과 동역하는 것을 준비하는 것처럼, 마지막 때를 위해서도 주님과 동역하는 준비를 의도적으로 지금부터 해야 한다. 그 때의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별히 종말에 대한 깨달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IX. 모든 열방을 위한 종말의 소망
A.예수님의 재림은 ‘복스러운 소망’이라 불린다. 주님은 오셔서 열방을 다스리실 것이며, 심판을 통해 모든 악의 억압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들을 온 땅에서 제거하실 것이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B. 모든 나라는 전례없는 선함과 번영, 그리고 의로움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기쁨속에 살게 될 것이다. 온 땅이 열린 하늘을 즐거워 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인간을 적대시 하는 동물들의 적대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롬 8:19-23). 토양과 물, 자연 대기는 완전히 정화되어 온 땅이 회복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예전의 에덴 동산의 상태로 회복되는 일이 온 땅에 생기게 될 것이다(사 35:1-8; 51:3; 겔 34:29; 36:35; 47:6-12).
C. 예수님의 재림전에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상당히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예수님의 재림후에는 훨씬 더 역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전에 우리의 수고와 승리,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후에 주님이 수립하실 승리 사이에는 역동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이 다 같은 하나의 계획으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감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며, 모든 악한 법과 악한 지도자들은 의롭고 선한 법과 선한 지도자들로 교체되게 될 것이다(계 20:1-6).
D. 우리가 사는 땅은 없어지지 않는다 — 이 땅에 있는 사단과 흑암의 왕국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미래와 다가오는 세대들을 위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소망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으로 지금 그러한 악들을 대적하는 변화의 요원(주역)이다.
E.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 순교자들은 사랑으로 사단과 적그리스도의 모든 것들을 이기는 자들이 될 것이다(계 12:11; 15:2).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통해 힘을 얻는 기도(Prayer Energized by Intimacy with God)
I.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하는 부르심
A. 성령님은 교회에게 하나님과 깊은 친밀의 관계로 가도록 초청하고 계신다. 나의 초창기 사역은 복음 전도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부흥을 위해 기도한다거나 하나님과의 친밀감에 관한 신학적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1983년 5월, 21일간의 교회 금식 기간중에, 주님은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시편 27 편 4절의 본문을 말씀하셨다: “내가 다윗의 장막의 영으로 하는 하루 24시간 기도하는 사역을 부어줄 것이다.”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편 27:4)
B. 1988년 7월 내가 아가서 8장 6절을 읽고 있을때, 밥 존스가 하나님이 그에게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내용인 아가서 8장 6-7절대로 살아갈 수 있게 전세계에 있는 예수님의 지체에게 은혜를 내려주실 거라는 약속과, 나의 사역의 중심이 이 주제에 전념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에 “불의 인(seal of fire)”을 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더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점진적으로 받는 다는 것을 말한다.
6너는 나(예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하나님의)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죄, 압박)이 꺼치지 못하겠고 … (아 8:6-7)
C. 왕실의 인: 고대시대에 중요하게 보호되어야 할 문서들은 왕의 싸인이 들어간 반지에 의해 밀랍으로 봉인되었다. 그 왕실의 봉인 도장은 왕의 모든 자원을 통해 보호되어졌다.
D.육체적 죽음은 강력하다, 또는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자연에 속한 그 어떤 영역도 죽음의 권세를 피할수 없다.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도 죽음처럼 강력하다. 우리 삶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피할수 없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어떤 부분에서도 타협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 계신다. 우리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 사랑을 계속 받게될 때 어떠한 유혹의 홍수보다도 더욱 강력하다.
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로마서. 5:5)
E. 물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불이외의 모든 불을 끌수 있다. 원수는 이 불을 끄기위하여 우리에게 많은 양의 고난과 유혹, 실망, 그리고 고통을 보낼 것이다(계 12:15; 사 43:1-2).
F. 우리는 그저 그분의 임재로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기를 구하면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품고, 입어야 한다. 그분을 우리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은혜를 달라고 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만지심을 느끼는 것이다.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G. 기도와 금식,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두어 주시는 은혜를 더 자유롭게 받게 도와준다.
H. 아가서는 8장으로 구성되 있는 사랑의 노래이다. 아가서는 2가지 방법으로 해석될수 있다:
1) 자연적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를 묘사한 이 관점은 부부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높여주는 성경적 원칙들을 강조한다.
2) 영적인 해석: 솔로몬왕과 그의 신부와의 관계는 왕된 예수님과 그의 교회의 관계에 대한 영적인 진리에 관한 상징이다. 결혼은 없어질 것이지만 (아가서를 포함한)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게 될 것이다(마22:30).
II.신부의 정체성을 지닌 마지막때 교회
A. 마지막때 교회는 성령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것을 그대로 말하고 행함으로 성령과의 깊은 연합을 갖게 될 것이다. 성령님이 행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그분은 능력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중보하고 계신다. 성령님이 말씀하고 계신 것은 무엇인가? 성령님은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시고 계신다.
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계 22:17)
B. 계 22:17은 마지막때 교회의 기능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1)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음,
2) 중보기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함,
3) 신부의 정체성을 확립함, 그리고
4) 놀라운 추수를 거둠.
C. 다시오실 예수님을 위한 마지막때 교회의 3가지 기도: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의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지역이나 나라의 영적 부흥을 통한 영적돌파구)
3.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오소서(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적 돌파구)
1.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소서(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마음의 돌파구)
2.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오소서(지역이나 나라의 영적 부흥을 통한 영적돌파구)
3.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오소서(예수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적 돌파구)
D. 신랑되신 예수님의 메세지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의 부르심이다. 이 친밀함으로의 초청은 하나님의 마음(감정, 사랑)을 깊이 경험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예수님을 나의 남자 친구나 또는 애인으로 바라볼 것을 말함이 아니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12우리가 ….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
E.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를 상속할 자로 하나님의 보좌를 경험할 지위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감정과 마음을 경험할 지위를 지니고 있다. 이 두가지 지위는 모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버지되신 하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것은 신랑되신 예수님에 관한 메세지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F. 대부분의 기독교 여성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때문에 그들에게 여성스러움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그들의 남성스러움을 포기하라는 것으로 오해하여 종종 곤욕스러워하곤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의 본질에 관한 메세지를 경험하는 것은 결코 남성스러움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킨다.
G. 몇몇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남성들)은 그리스도의 신부 정체성에 관한 메세지의 본질적인 실재를 경험했다.
다윗왕 은 이스라엘 왕중에 가장 위대한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예배자이기도 했다. 사도 요한은 우뢰(천둥)의 아들이라고 불렸고, 그는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5번이나 자신을 묘사하기도 했다(요 13:23; 19:26; 20:2; 21:7, 20).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 예수님에 의해 가장 큰 자로 불려졌다(마 11:11). 그는 예수님을 신랑되신 하나님으로 이해했다(요 3:29).
H. 신랑의 메세지는 신랑되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신랑 예수님은 부드러운 자비하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자상함으로 대해 주신다. 어떤 이들은 대적하는 것과 미성숙함을 혼동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 반항하는 것에 노하시지만,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진실되지만 미성숙한 성도를 향해서는 부드럽게 대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를 기뻐하신다 (시 18:19, 35; 130:3-4).
I. 신랑 예수님은 즐거운(행복한) 마음을 소유하신다. 예수님은 역사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움을 더 많이 소유하셨다(히 1:9). 교회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우리와 연관되어 있는 하나님은 거의 성나거나 슬픈 하나님으로 보여져 왔다. 그러나,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불같은 사랑 또는 불타는 소원을 갖고 계신다. 교회는 소중한 예수님의 마음을 경험할때 정결케 될 것이다. (엡 5:26-29). 열정적인 신랑으로 예수님을 이해하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 자신을 소중한 신부로 바라보게 한다.
J. 주님의 교회는 하나님 마음의 사랑의 노래를 주님께 다시 불러 드린다. 교회가 부르짖는 전투적 중보기도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실 사랑의 노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K. 1995년 11월에 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헵시바’로 부르도록 권면하는 하나의 예언적인 꿈을 꾸었다.
4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5마치 …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7또 여호와께서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사 62:4-7)
L. 헵시바의 메세지는 하나님이 우릴 기뻐하신다는 것과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가서의 내용과도 같은 내용이다. 수년간 나는 헵시바의 메세지를 경험하지 못한 채 부흥이 오기만을 기도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중보 기도자들을 지치게 만든 하나의 이유가 부흥을 기다리는 수년의 시간 동안에 예수님과의 대면(만남)이 부족했었던 것에서 왔다라는 것이다. 이사야62:4-5의 신부의 정체성의 계시는 이사야 62:6-7에 나오는 24시간7일 기도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A. 마 24-25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관해 가르치셨다(마 24:3-44).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관해 묘사하기 전에(마 25:31-46) 그것을 3가지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리더로(마 24:45-25:30) 부른 자들에게 적용하셨다. 마태복음의 이 2개의 장은 마지막때에 리더를 준비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하나의 가르침”이다.
B. 예수님께서는 마 24-25 장에서 신랑으로서, 왕으로서, 그리고 심판자로서 자신의 사역의 3가지 면을 강조하셨다. 마지막때에 성령님은 예수님의 특성으로서 이 3가지 측면을 강조할 것이다(마 24-25, 계 19; 사 61-63; 시 45). 신랑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열망을 경험할 수 있다. 왕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권능을 경험한다. 그리고, 심판자로서, 예수님의 열심이 사랑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없앤다. 신랑되신 예수님과 심판자로서의 예수님은 모순관계가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지도력과 그의 백성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대적하고 제거하는 그분의 심판으로 표현된다.
C. 예수님의 주된 권고는 마지막때에 깨어있을 것과 성령님과 연합된 마음을 발전시킴으로써 준비되는 것이다(마 24:36, 42-44, 50; 25:13; 막 13:33-38; 눅 21:36; 계 16:15).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D. 우리는 신약에서 마지막 때에 관하여 깨어서 기도할 것을 10번이나 권고받았다.( 마24:42; 25:13; 막 13:9, 33, 34, 35, 37; 눅 21:36; 살전 5:6; 계 16:15).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성령의 능력을 받는 자세를 지니는 것을 말한다. 그곳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도록 권한을 위임받는 장소이다. 이런한 시간은 연료없는 차를 미는 것 대신에 차에 연료를 넣는 시간으로 비교될 수 있다. 성령님과 연합없이 사랑안에 거함을 구한다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다.
IV. 마지막 때의 천국(왕국)의 지도력: 현명한 지도력 정의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1-2)
A. 처녀들: 예수님의 의를 통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앞에서 처녀로 정의된다 (고후 5:17).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B.등: 각 처녀들은 등을 가지고 있다. 그 등은 하나님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역을 말한다 (마 5:15-16; 계 1:20; 2:5; 11:3-6; 슥 4:2; 사 62:1; 요 5:35).
C. 신랑: 모든 사역자들은 신랑되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의 계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신랑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나러 나가, 대면한 사람들이다.
D.그때에: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때”란 말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종말의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때는 열처녀가 신랑을 만났던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그 기능을 발휘하는 때를 말한다.
V. 슬기로운 다섯 처녀: 사역의 등불을 비취도록 기름을 담아라
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2-4)
A. 이 “기름”은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낼 때에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말한다. (고후 1:21; 1 요 2:20, 27).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우리의 마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지신다.
B. 미련한 처녀들은 등(사역)은 가졌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역은 열심히 했지만,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관계는 그들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C.현명한 사역자들은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채웠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사역을 형성하고 확장하는 것보다 우선순위로 그릇에 기름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추구한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꿈” 은 예수님과의 관계이지, 우리의 사역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다. 두명의 증인들은 “기름 발리운 자들”이다(슥 4:14).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8-9)
E.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살 것(준비할 것)을 권면하시거나, 또는 하나님이 정한 그분과의 친밀함을 얻는 과정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친밀감을 얻도록 투자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말한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계 3:18)
VI.앞으로 임하실 성령님의 물결을 위해 예비하라
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Mt. 25:10-12)
A. 이 구절은 구원의 상실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들을 알지 못하신다고 하셨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표현한 구절은 그들의 구원이 결핍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함이 결핍되어 있음을 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악한 종(마 24:48);, 사악하고 게으른 자, 저주를 받은 자(마 25:26, 41);로 부르는 대신에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마 7:23).
23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마 7:23)
B. 고대 유대인의 결혼풍습은 며칠 밤을 지내면서 축하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었다(부자들은 원칙적으로 7일밤을 지냈다). 결혼하는 신랑, 신부와 가까운 사람들은 첫째날 밤과 그후에 따라오는 밤들에도 초대 받았다.
C. 결혼 축하연이 7일동안 진행되는 동안, 유대인들은 각 밤마다 각기 다른 부분을 강조하여 축하하곤 하였다. 그래서 하나님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될 마지막 때에 완전한 부흥이 이루어지도록 각기 다른 “성령의 물결”을 부어주신다(계 19:7-9).
D.오로지 신랑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함으로 준비되었던 자들만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때의 부흥에 강력하게 사용되기 위해 준비된 자들을 말한다.
E. 열처녀중에 단지 준비된 자들 만이 어린양과의 혼인잔치의 첫날과 그후에 있을 날들의 연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외 남은자들은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라고 부르짖었다. – 마지막 부흥의 때에 우리를 유용한 자리에 있게 하소서.
F.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권면은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산 많은 자들은 미래에 더 이상의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G.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으러 갈 때에, 지혜로운 자들이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계속적으로 가꾸는 것을 게을리함으로 미련한 자가 되지 말것을 경고하신다(마 25:1).
H. 기름을 채우는 가장 실재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들이 하나님의 총애를 더 얻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은혜를 더욱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출처: IHOP-ONETHING 2009 노트>
초자연적인 성령 사역을 풀어내다 (Releasing the Supernatural Ministry of the Holy Spirit)
I. 영적 은사 사용
A.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우리의 권위와 영적 은사를 우리가 사용함으로 주님의 초자연적 사역을 위한 그릇이 될 것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은 교회가 영적 은사들을 무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온다(롬 10:17). 일반적으로 우리가 은사들에 대해 듣고 배우게 될 때 우리안의 믿음이 자극을 받아 은사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고전 12:1)
B. 우리는 영적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기 전까지는 그 은사들을 절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우리는 주님과의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손을 구할 때 우리는 주의 능력을 풀어낼 수 있다. 우리는 은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미약한 시작이지만 그 은사들을 사용하면서 영적 은사를 더욱 사모해야 한다.
C. 모든 사람들은 예언하고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성령은 교회가 주의 능력을 행하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믿음을 분발시키고 계신다. 이제는 우리가 병든 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구원의 날이다(고전 6:1).
5)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31)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5, 31)
D. 예언의 영은 극적인 방법들 뿐 아니라 은은한 방법으로도 나타난다. 극적인 방법들에는 꿈과 환상, 천사의 방문,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들을 포함한다. 사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미묘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흐릿한 마음의 감동 등을 포함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 사람들에게 치유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만지실 것인를 나타내는 우리의 마음안의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나 인상.
2) 감정적인 감동: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만지실 것이라는 것과 관련된 부담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역이나 사람을 향한 부담이나 슬픔, 기쁨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낌.
3) 동정심어린 통증: 다른 사람들 몸의 특정한 부위에 있는 통증이나 질병을 주님께서 치유하실 것이라는 표시로 우리가 같은 몸의 부위에 느끼게 되는 통증.
4) 육체적 감각: 주님께서 우리가 받은 육체적으로 느끼는 감각과 관련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지시기를 사모하신다는 징표로서 우리의 오감을 통하거나 우리의 몸의 특정 부분에 성령의 임재(열기, 힘, 뜨거움, 바람등)를 경험하는 것.
E. 우리가 큰 모임이나 작은 모임, 또는 사회적 모임등으로 모일 때에 우리는 성령의 예언적인 인도하심을 받기를 지향해야만 한다. 우리는 “성령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어떤 걸 말씀하고 계십니까?”라고 단순하게 성령께 요청함으로 할 수있다. 성령은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흐릿한 예언적 감동을 주심으로 대답하실 것이다. 성령이 주시는 간단한 한 구절이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실 지에 대한 힌트를 주게 된다. 이것은 마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19)
II. 성령의 은사 사용에 성숙해 지는 방법
A.우리는 은사들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지녀 그 은사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B. 원리: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는 보통 성도의 입술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들을 우리가 선포할 때 역사하시게 된다.
C. 첫째,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는 감동을 표현하면서 은사들은 사용한다. 우리가 말하는 마음의 감동은 반드시 성경의 원리에 합한 것이어야 한다. 성령이 주신 감동이나 인상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게 된다. 우리는 성령님이 주신 감동을 표현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감동들은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D. 은사들은 많은 경우 우리 영혼 안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 또는 성령의 미묘한 감동같은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미묘한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무시하고 놀라운 열린 환상을 볼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들 안에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의 가치를 깨달았다면, 더 민감하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E. “성령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라고 질문하라. 이렇게 질문하는 단순한 행동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더 민감하게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 질문은 우리가 우리 마음안에 성령의 감동이나 하나님의 예언적 속삭임을 받아들 수 있는 자세를 갖게 한다.
1. 나는 예언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을 조용한 날의 호수에서 보트에 돛을 올리는 것에 비교한다. 미풍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돛은 겨우 보트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미약한 미풍을 잡는다. 그럼에도, 보트는 움직인다! 우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시는 가를 물어볼 때에도 이와 같은 역동성이 발생한다.
2.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아주 미묘한 감동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으로도 우리의 믿음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게 된다. “성령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나를 통해서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고백하면서 당신의 돛을 세워보라.
F. 우리가 예언적 감동들을 갖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것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 4:2) 우리가 주님께 마음을 열어 기다리면서 어떤 일을 하실 지를 물어보라. 불신에 뿌리를 둔 모든 제약과 한계를 마음에서 없애버려라.
G. 두번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라 또는, 우리의 영혼을 고요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있게, 성령이 주시는 감동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하라.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도해 줄 때 열성으로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설교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
H.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만 나타날 때에도 그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조그만 것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의 두통이 10% 만 치유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역사이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나 마귀의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성령의 능력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I. 우리의 교만으로 인해, 우리는 사역에서 나타나는 작은 하나님의 능력을 쉽게 무시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특별하게 또는 놀랍게 나타날 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엄청난 능력이 나타날 때에만 예언과 치유 사역을 하고 싶어하는 열심을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예언사역을 하고 싶어한다. 우리에게는 작은 역사가 일어나는 날들에도 신실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J. 넷째, 틀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라. 오히려, 우리는 영적 은사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더 안타깝게 생각해야 한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내가 잘못 받으면 어떡하지?” 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셨는 데, 필요한 사람에게 주님의 능력을 풀어주는 기회를 놓쳐 버리면 어떡하지?”이다.
K. 다섯째, 만약 당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느낌이 확실하지 않을 때에는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초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하라. 예를 들어서,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오늘 당신을 치유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제가 형제/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데요. 제가 믿기에 하나님께서 지금 형제님을 만져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확실치 않을 때 우리가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한다면, 혹시라도 우리가 틀려도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게 될 것이다.
L.특별한 것을 얻으려는 부담을 내려놓아라. 우리의 의무는 성령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다.
M. 왜 성도들은 예언하기를 게을리 하는가? 많은 경우에 예언을 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영적인 적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인가? 주님께 작은 영감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성령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받은 영감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애를 써야하고 또 ‘위험’을 무릎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는 게 더 쉬운 일이다.
N. 성령에 계속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성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우리가 엄청난 감정의 혼란을 야기하는 여러 생각들과 자기연민에 빠지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 성령의 나타남(은사)은 다른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다(7, 11절).
B.모든 은사들은 자연적이 아닌,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며, 세가지로 구분된다.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계시의 은사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의 은사들: 믿음의 은사, 기적행함, 치유의 은사 무엇인가를 말하는 영감의 은사들: 예언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계시의 은사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의 은사들: 믿음의 은사, 기적행함, 치유의 은사 무엇인가를 말하는 영감의 은사들: 예언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A. 지식의 말씀 (요 4:18; 행 5:1-10; 9:10-12; 10:9-20; 계 2-3장): 과거나 현재의 일에 관련된 계시. 이 은사를 지식의 은사라 부르지 않는다(많은 지식을 가진 것과는 구분된다는 말-역자주). 성령님은 사람, 장소, 어떤 것들과 관련된 말씀이나 “단편적인” 정보를 주신다. 이것은 환상, 천사, 꿈, 또는 예언의 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러 은사들이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B. 지혜의 말씀 (행 9:10-16; 8:26-29; 11:28-30; 21:10-11): 미래와 관련된 정보를 나타냄. 이것을 지혜의 은사라 부르지는 않는다(일반적인 지혜를 지니는 것과 다르다는 말-역자주).
C. 영들 분별함 (행 9:3-8; 16:16-18): 영적 세계를 보는 통찰력. 이 은사는 어떤 영 또는 선하고 악한 영적 세계를 분별하거나 감지하는 은사이다. 이 은사를 분별의 은사라 부르지 않는다. 이 은사는 특별히 심리적인 통찰력이나 사람들의 성격들과 잘못들을 지적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V. 능력의 은사들: 무언가를 행하는 은사들
A. 기적 행함: 이 은사는 순간적으로 기적을 행하는 성령의 나타나심이다. 기적은 평범한 자연적인 상태에서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개입을 말한다. 이 은사는 역동적으로 역사한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셨고(요 2장), 5 천명을 먹이셨다(요 6:6-14).
B. 믿음의 은사: 이 은사는 보호하심, 인도하심등을 받는 성령님의 나타나심이다. 바울이 폭풍을 만났을 때에서 그랬던 것과 (행 27) 엘리야가 까마귀에 의해서 먹을 것을 공급받을 때처럼(왕상 17:2-6), 다니엘은 수동적으로 사자굴에서 보호를 받았다(단 6:16-23). 이 은사가 나타날 때, 당신이 스스로 만들 수도 없는 일들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 필요한 재정이 정확하게 채워진다는지, 하나님이 준비하신 약속들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이다. 믿음의 은사는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해준다. 기적의 역사는 위험한 상황 자체를 변화시킨다. 바울은 폭풍가운데에서도 보호를 받았다. 반대로, 예수님은 폭풍을 잠잠케 하기 위해 폭풍을 꾸짖으셨다.
C. 병고침의 은사 : 그리스 원어에서 “은사들:과 “치유들”은 복수이다. 이것은 유일하게 복수로 존재하는 성령의 은사이다. 기적은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치유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물론, 치유가 순간적으로 일어나면 기적이 되는 것이다-역자주).
VI.영감의 은사들: 무언가를 말하는 은사들
A. 예언의 은사: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영감 (고전 14:3). 삶의 방향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B. 여러 종류의 방언들: 천사와 사람들의 언어들(고전 13:1). 개인적인 묵상과 공동체를 위한 방언의 은사에는 차이가 있다. (고전 12:30; 14-2-4).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 14:2-4)
C. 방언 통역: 방언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담을 해석하는 것이다.
<출처: IHOP-ONETHING 2009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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