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 가지 종류의 왕국(나라)이 등장한다. 그것은 천국(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하늘나라(heavenly kingdom)이다. 이 세 왕국은 서로 비슷해 보이고, 또 사람들에 따라서 같은 나라라고 인식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공통점이 없다.
1. 천국(The Kingdom of Heaven)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천국"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용어이다.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17). 이 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죽어서 가는, 주님이 계신 낙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관념적으로 "천국"을 피상적인 나라로 생각하지만, 마태복음에서 제시하고 있는 천국은 구약전체를 통하여 예언된, 왕이 직접 다스리는 실제적인 지상의 왕국이다.
천국이 실제적인 지상의 왕국이라는 것은 성경에서 "천국"이라고 제시된 나라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예들 들어 마태복음 5장에서 묘사되는 천국과, 10장에서 언급되는 천국복음의 묘사 등을 살펴보면, 도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난 이방인들이 죽은 다음에 가는 나라로 생각되기가 힘들다. 특히 사복음서나 산상설교 등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들과 시대 상황, 그리고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던 메시야 왕국의 생각 등을 살펴보면, 이곳이 땅에 속한 왕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왕국으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는 나라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 전체의 주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경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분의 통치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다루는 부분은 주로 "예표"로서 등장하지만, 그분의 통치와 왕국을 다루는 부분은 직접적인 서술로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해 어떻게 이 땅을 다스리기 원하셨는지, 노아를 통해 어떻게 다스리기 원하셨는지,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신정국가로 삼아" 통치하기 원하셨는지, 그리고 메시야를 통해 어떻게 이 지구를 다스리기 원하시는지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래서 성경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신정통치의 "왕국"이다.. 이것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특별한 용어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가 아니라 실제적인 나라이며, 눈에 볼 수 있게 이 땅에 세워질 정치적인 나라이다. 이 왕국은 먼저 유대인에게 주어졌는데, 그것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신정통치의 왕국을 계획하셨기 때문이다. 이 왕국(천국)을 완성하시는 분은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래서 그들이 이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으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천국이 눈에 보이며, 정치적이고, 물질적인 이 땅에 속한 왕국으로, 실제적인 왕이 다스리는 나라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왕국으로,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 다스리나 실제적인 몸을 입고 다스리시지는 않는다.
이 나라에 대한 정의는 로마서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영적인 나라다. 그런데 이 영적인 왕국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나라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3,5에서 말씀하신대로 거듭나는(born again)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않고 또 하나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에 속할 수 있다. 거듭나기만 하면 된다. 이 나라는 영적 왕국이고, 영이신 하나님께서(요 4:24) 이 왕국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이 나라에 속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은 영적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몸을 입고 실제적으로 들어가는 왕국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지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다르다. 이 두 왕국에 대한 설명은 서로 같은 부분도 있지만 이 나라 자체는 서로 다르다. 두 왕국의 묘사가 비슷하다고 해서, 또 같은 상황 속에서 언급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이 둘이 서로 같은 것은 아니다. 천국(the 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같지 않은 것은 하늘(heaven)과 하나님(God)이 같지 않은 것과 같다.
하늘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볼 수 없다. 하늘에는 새들이 날아다니고 구름이 있으며 해와 달과 별들이 있지만, 하나님께는 그런 것이 없다. 하늘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피조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을,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을지라도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다.
오히려 이 두 왕국의 전파가 서로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두 개의 왕국, 즉 실제적인 왕국과 영적인 왕국을 함께 전하셨다는 점이다.
3. 하늘 나라(Heavenly Kingdom)
이 나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거듭나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영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라이지만, 하늘 나라는 성도가 죽어서 가는, 셋째 하늘에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 하나님께서는 천상의 보좌에 앉아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오른 편에 앉아 계신다. 이 나라는 바울 사도에 의해 "낙원"이라고 불리며(고후 12;4)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믿고 천국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그 나라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결코 "천국"이 아니다. 이 나라가 천국과 비슷한 점은 둘 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것 외에는 없다. 이 나라는 셋째 하늘에 있는 나라이고, 천국은 이 땅에 세워질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 나라를 디모데후서 4:18에서 분명히 "하늘나라"(heavenly kingdom)라고 못박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천국"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할 때에도 천국이라고 말하며, 심지어 구령할 때에도 "예수 믿고 천국가십시오"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신학적으로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우리는 "예수 믿고 하늘나라 가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오히려 "천당 간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2에서 우리를 위해 처소(저택들)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했기 때문이다. "천당"(天堂)이라는 말은 성경 용어는 아니지만 "하늘에 있는 집"을 말하므로 요한복음 14장에 따라서 옳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예수 믿으면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으나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갑니다."라고 말하면 틀리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포괄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이야기할지라도, 우리는 신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한다.
출처: 내 사랑 중국
8/24/2011
큰 능력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제가 죽은 것이라”(약2:15~17)
처음 예수를 믿고서는 누구나 으레 인생을 완전주의로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후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합니다. 의롭게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의롭지 못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걱정하지 않고 매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지만 조그마한 벽에 부딪히기만 해도 환멸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밝히 말씀하는 대로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살 때에는 하수구 곁에 있던 냄새 나는 그릇이었다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청결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질그릇은 질그릇입니다. 10년 20년 믿었다고 이 질그릇이 사기 그릇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질그릇은 먹지 아니하면 배고프고, 입지 아니하면 춥고, 마시지 아니하면 갈증을 느낍니다. 이 질그릇은 언제나 육신의 정육,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려고 하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변화될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분명히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 속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지면 그의 영광스러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외형적인 질그릇만 보시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담겨 있는 질그릇을 보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성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는가 하면 살아나고, 없는가 하면 풍족하고, 쓰러지는가 하면 다시 일어나며, 패배하는가 하면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질그릇 속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께서 계셔서 질그릇이 깨이질 것 같으면 보배가 붙들어 주고, 낙심할 것 같으면 보배가 이를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하다가 어떤 때는 천사가 된 것도 같고 어떤 때는 마귀가 된 것도 같은 경험을 하고 낙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무래도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보배를 모시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꽉 들어차고 성령 충만하며 여러분은 승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하여 바라보며 모십시오. 질그릇의 약점을 보배가 책임져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4:7)
처음 예수를 믿고서는 누구나 으레 인생을 완전주의로 살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절망감을 느낍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어떠한 역경에 처하더라도 후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실망합니다. 의롭게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의롭지 못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걱정하지 않고 매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해야겠다는 각오를 가지지만 조그마한 벽에 부딪히기만 해도 환멸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밝히 말씀하는 대로 우리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죄악 세상에 살 때에는 하수구 곁에 있던 냄새 나는 그릇이었다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청결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질그릇은 질그릇입니다. 10년 20년 믿었다고 이 질그릇이 사기 그릇으로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질그릇은 먹지 아니하면 배고프고, 입지 아니하면 춥고, 마시지 아니하면 갈증을 느낍니다. 이 질그릇은 언제나 육신의 정육,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려고 하는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변화될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 신앙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분명히 질그릇에 불과한 우리 속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지면 그의 영광스러운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외형적인 질그릇만 보시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담겨 있는 질그릇을 보십니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성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는가 하면 살아나고, 없는가 하면 풍족하고, 쓰러지는가 하면 다시 일어나며, 패배하는가 하면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질그릇 속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께서 계셔서 질그릇이 깨이질 것 같으면 보배가 붙들어 주고, 낙심할 것 같으면 보배가 이를 붙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하다가 어떤 때는 천사가 된 것도 같고 어떤 때는 마귀가 된 것도 같은 경험을 하고 낙심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무래도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보배를 모시고 있으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꽉 들어차고 성령 충만하며 여러분은 승리의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의 연약함을 보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하여 바라보며 모십시오. 질그릇의 약점을 보배가 책임져 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4:7)
일어서는 모습이 예쁘구나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 그리하면 야훼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출23:25)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에서 중국 여자 선수가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를 했습니다.
“당신은 동양 여자로 몸집도 아주 왜소한데, 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 동작과 침착한 모습으로 고공에서 아름답게 다이빙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 선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100미터 경주를 좋아했습니다. 근데 경주에 나가면 자주 엎어지고 넘어졌죠. 그래서 항상 거의 맨 뒤로 들어오던 제게 어머니는 늘 이렇게 얘기해 주셨어요.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1등 하는 것보다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더 아름다웠어. 나는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견딜 수가 없단다. 너는 아름다운 내 딸이야.’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실수도 하고 사고도 났지만 그때마다 저의 어머니는 동일하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이빙 스탠드에서도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저는 그녀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맞아! 내 하나님도 그러실 거야. 내가 넘어졌을 때, 내가 쓰러졌을 때, 내가 죄 속에 빠졌을 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가 일어날 때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하나님. ‘그래, 내게는 네가 일어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구나!‘
그렇습니다. 내가 1등 하지 못해도, 내 인생이 화려한 스타 인생이 아니어도 주님은 나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네가 존재하는 것이 내게는 기쁨이란다.”
<회개행전 / 이동원> ⌜더 깊은 묵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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