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불, 깨끗케 하고 정결케 하는 불의 시기입니다(고전3:10-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헤(특별한 호의)를 따라 내가 지헤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그리스도의)날이 공력을 (공개적으로 명백하게)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격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는 확대번역본(AMP)>
우리는 정화(purging)과 결실(fruitfulness)을 준비할 시기에 있습니다. 마치 농부가 밭의 파종을 준비하기 위해 잡초와 잡목을 제거하는 것처럼, 주님도 우리 각자에게 동일한 일을 하고 게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불을 붙들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머리털 하나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마저 없었던 '세 명의 히브리 노예들'처럼 많은 이들이 검증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불에서 나올 것입니다.
나는 두 가지 불꽃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거룩한 불꽃(Holy Fire)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의 야심(Ambition)으로부터 점화된 이상한 불꽃입니다. 경건한 불꽃은 주님에게서 나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을 소명하는 불이십니다. 주님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도 불타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그분은 정화(淨化)하고 정련 (精鍊)하는 불이십니다.
생생한 경고가 말라기 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그분의 거룩 즉 소멸하는 불을 꼭 붙들어야 한다는 것은 극히 당연합니다. 정결함 없이 성령과의 온전한 연합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지금 우리의 정결을 촉구하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순결한 열정을 풀어놓고 계십니다. 주님이 만약 아무 것과도 섞이지 않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분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그에게 부으실 것입니다.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몸에 풀어 놓고자 하시는 위임과 권위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에 산에 올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난관에 대처하기 위해 주님의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불세례를 받고 질병과 속박에 대한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십시다.
<'목자의 지팡이' 중에서>
11/05/2009
기대할 것: 심험의 때 - 바비 코너
우리가 진실로 무엇을 믿고 있는지 스스로 조사할 것을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요구하십니다. 지금은 진정한 실재를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야 할 때입니다. 단지 말씀을 듣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때입니다(약1:22-25).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지금은 인간이 만든 메마르고 건조한 종교를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고오직 증력에 있음이라."
단순한 말은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기름 부으심을 취할 때만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탓에 낮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약2:20-22).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우리의 영적 기반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성령님은 시험의 시간을 필요로 하십니다(시26:1-2).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주님이 이 시련의 시기에 더 깊게 파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죄를 덮고 감추려고 할 때가 아닙니다(잠언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지금은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할 때입니다(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께끗케하자."
많은 이들이 분주히 숨기고자 했던 것들을 주님은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처서입니다(민32:23). 우리의 모든 죄가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스스로의 삶이 견고하다는 확신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하라고 바울은 명령합니다(고후13:5-6).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버리운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 마음의 숨은 영역을 드러내시도록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시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우리 마음이 우리를 속일 수 있고 속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지금은 주님이 오셔서 우리 위에 의로운 비를 내리시도록 구해야 할 때입니다(호세아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목자의 지팡이' 중에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지금은 인간이 만든 메마르고 건조한 종교를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고오직 증력에 있음이라."
단순한 말은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지 못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기름 부으심을 취할 때만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탓에 낮은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약2:20-22).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우리의 영적 기반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 성령님은 시험의 시간을 필요로 하십니다(시26:1-2).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주님이 이 시련의 시기에 더 깊게 파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죄를 덮고 감추려고 할 때가 아닙니다(잠언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지금은 자신을 깨끗이 해야 할 때입니다(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께끗케하자."
많은 이들이 분주히 숨기고자 했던 것들을 주님은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들을 숨기려고 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지 못한 처서입니다(민32:23). 우리의 모든 죄가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 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스스로의 삶이 견고하다는 확신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점검하라고 바울은 명령합니다(고후13:5-6).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버리운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 마음의 숨은 영역을 드러내시도록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시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우리 마음이 우리를 속일 수 있고 속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렘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지금은 주님이 오셔서 우리 위에 의로운 비를 내리시도록 구해야 할 때입니다(호세아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목자의 지팡이' 중에서>
기대할 것: 변화의 시기 - 바비 코너
변화의 강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변화와 대변혁(transformation)을 명백하게 보여 주는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아무도 중립적일 수 없으며, 중간 지대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올해는 당신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큰 짐보르 ㄹ이루든지 혹은 뒤처지든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 열쇠를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반응할지 혹은 스스로의 연약한 빛에 의지해 걸을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사50:11).
"줄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찌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과 배치에 요구하시며 지금은 군대를 파견할 때입니다. 동원(mobilization)'이라는 단어는 행동을 취하도록 군대를 준비시키는 것을 말 합니다. '배치(marshalling)'라는 단어는 군대를 모으고 조직하는 것에 대해 다루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교회의 회중석을 채우는 것 이상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께 위임받았습니다. 지금은 사랑과 충성의 혁명을 이뤄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왕국에 대면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악한 정권을 뒤집어엎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닌ㅁ의 법에 대한 허용, 반역 등이 난잡하게 뒤범벅된 현대의 트렌드(trends)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러한 테스트가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극심한 시험(test)의 때입니다.
<목자의 지팡이 중에서>
"줄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찌어다. 너희가 내 손에서 얻을 것이 이것이라. 너희가 슬픔 중에 누우리라."
...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를 동원과 배치에 요구하시며 지금은 군대를 파견할 때입니다. 동원(mobilization)'이라는 단어는 행동을 취하도록 군대를 준비시키는 것을 말 합니다. '배치(marshalling)'라는 단어는 군대를 모으고 조직하는 것에 대해 다루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교회의 회중석을 채우는 것 이상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님께 위임받았습니다. 지금은 사랑과 충성의 혁명을 이뤄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의 왕국에 대면하도록 부르심 받았습니다. 혁명이라는 단어는 악한 정권을 뒤집어엎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닌ㅁ의 법에 대한 허용, 반역 등이 난잡하게 뒤범벅된 현대의 트렌드(trends)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러한 테스트가 매우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극심한 시험(test)의 때입니다.
<목자의 지팡이 중에서>
주님의 의도 [바비 코너]
주님의 의도는 우리를 그의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창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우리는 목표를 두어야만 합니다. 어떤 면에서든지 주님께 부끄러움이나 치욕을 끼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인격의 결여는 모든 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은사는 당신에게 공적인 설교건을 줄 수 있지만, 당신이 경건의 인격의 소유자가 될 때에만 그곳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적자들이 노리는 비평이나 참소의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 것에 우리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말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골로새서1:9-10).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존귀와 찬양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0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우리는 삶의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증거해야 합니다(시편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든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우리의 삶을 헌신해야만 합니다(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골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브리서 13장 21절의 말씀의 강력한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여러분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세우기 위해 어떤 것을 시도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만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시27편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상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행할 힘과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도중에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어떤 열등한 피조물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돕기 위해 분주히 애쓰지만, 우리가 잠잠하게 되면 그분이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우리를 채우시는 그분의 사랑을 의식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들은 창조된 본래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현재 속박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전히 돌파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곳에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도 할 수없으며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수백만의 천사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지만, 임재 가운데 주님과 함께 거하면서 주님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인간들은 극히 드뭅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 안에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변화의 강력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 것이기 때문에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야 합니다.
<목자의 지팡이 - 바키 코너>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우리는 목표를 두어야만 합니다. 어떤 면에서든지 주님께 부끄러움이나 치욕을 끼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인격의 결여는 모든 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은사는 당신에게 공적인 설교건을 줄 수 있지만, 당신이 경건의 인격의 소유자가 될 때에만 그곳에 계속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적자들이 노리는 비평이나 참소의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 것에 우리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말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골로새서1:9-10).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존귀와 찬양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1)
바울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0 주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우리는 삶의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증거해야 합니다(시편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든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우리의 삶을 헌신해야만 합니다(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골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브리서 13장 21절의 말씀의 강력한 약속을 주장하십시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여러분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세우기 위해 어떤 것을 시도하는 대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만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시27편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상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행할 힘과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다면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도중에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어떤 열등한 피조물에게서 발견되는 특성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을 돕기 위해 분주히 애쓰지만, 우리가 잠잠하게 되면 그분이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완전히 사랑하고 우리를 채우시는 그분의 사랑을 의식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들은 창조된 본래의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무생물조차도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현재 속박 가운데 있을지라도 여전히 돌파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곳에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피조물도 할 수없으며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입니다. 수백만의 천사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지만, 임재 가운데 주님과 함께 거하면서 주님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인간들은 극히 드뭅니다. 주님은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시며 우리 안에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변화의 강력한 바람이 우리에게 불어올 것이기 때문에 견고한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야 합니다.
<목자의 지팡이 - 바키 코너>
하나님의 감싸는 임재가 진정한 생명을 낳는다 - 바비 코너
나는 어미닭과 무리의 부화한 새끼 병아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 더 가까이 모으시는 주님의 갈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누가복음13장34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암탉이 제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저는 동 텍사스의 모래 언덕(the sand hill)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의 할머니 내외는 우리 집으로부터 약 100야드(90m) 떨어진 곳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항상 거대한 닭 무리를 기르셨습니다. 사랑스런 할머니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곤 합니다. 어린 소년으로서 나는 할머니가 거대한 닭 떼를 치시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옥수수대 주변에 떨어진 노란 옥수수 알갱이들을 부지런히 주워 먹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암탉이 안전하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지상보다 약간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닭장은 여우나 다른 짐승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으로서 나는 예수님이 하시고자 했던 것을 어미닭이 하는 것을 수차레 목격하곤 했습니다. 암탉은 어린 병아리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날개 아래에 그들을 모으곤 했습니다. 어미닭은 한동안 새로운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포로가 되어 인내심을 가지고 계란을 품고 있어야 했으며,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포기하는가를 바라보는 것은 내게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어미닭은 새 생명을 출생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더 높은 목적으로 태동시킬 영혼들을 품고 계시며, 특별히 바로 이때에 더욱 그런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분의 임재하심 안에서 입니다. 그분의 임재하심 안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평강과 지혜와 인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여러 지도자들이 혼란 가운데 자신을 도와 줄 안내자를 찾고 있지만, 그들이 확신했던 것들은 곧 무너지고 맙니다. 세계가 점점 악화와 좌절속에 신음하고 있는 동안 그분의 완전하신 시간에 통치 영역으로 들어올릴 자들을 주님은 조용히 준비시키고 계시며, 그들은 주님의 마음과 청장으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에스더와 다니엘과 같은 자들을 준비시키시며 그들을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으며 그가 임의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잠21:1절)
하나님의 영은 정치적 영역을 흔들기 위해 지금 기름 부으심을 풀어놓고 계십니다. 다니엘에게 정부 영역에서 통찰력을 주셨던 주님이 그리스도인 남성과 영성에게 동일하게 기름 부으신 다음 그들을 정부 요직에 위치시키실 것입니다(단2:20-22).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했던 스바 여왕의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에 그가 다 대답함으로써 그녀를 열광시키고 놀라게 했던 것처럼, 그들은 그것보다 더 어렵과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름 부으심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 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위해하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열왕기상 10:1-5)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들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원이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약대에 실었더라. 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은미하며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 신복들의 좌석과 그 신하들의 시립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관원들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여"
앞에서 언급했던 암탉과 계란에 대한 교훈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란 안의 생명이 속에서 형성되는 것처럼, 현재 성령에 의해 잉태되고 있는 것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은 새날을 위한 산 소망입니다(이사야48:6-7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은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이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과 협력하고 방해하지 않는 것은 매주 중요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감쌀 때에만 우리 안에 발생하고 있는 모든 과정이 완전하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과의 능동적인 협력관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굳게 서서 이 시대의 세속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말라기4: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력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주님은 지금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역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잠시 동안이라도 주님은 능력있고 권세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우리 자신을 주님께 굴복할 때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의 깊은 내적 만지심에 의해 우리는 주님의 더 높은 목적과 일치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우리의 전 존재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5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라는 강한 경고를 듣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또한 히브리서 3장 7-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주님은 그때에가야 비로소 우리가 그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시고 그것을 우리 손에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위해 굳세게 서서 이기는 자를 주님은 부르고 계십니다(계시록2장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계시록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륵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케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19-23).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기 위해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간절한 기대감(earnest expectation)' 이라는 구절은 목을 길게 빼고 주시한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의미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보고자 조급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갈망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이 얻기 위해 주님께 나아오라는 초대에 반응하고 있습니다(요10:8-10).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성령님은 계속 그의 백성을 감싸실 것이며, 그들은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날에 사역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준비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놀랍습니다. 여전히 주님을 거부하고 있는 자들에까지 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상처와 좌절의 무게까지 느끼고 계십니다.
결국, 주님은 성령의 감싸시는 임재에 기꺼이 반응하는 우리 안에서 이러한 준비를 서두르십니다. 가속화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졸거나 잘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깨어 경성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준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제시하시도록 우리는 주님을 허용해야 합니다(시편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우리 마음에서 죄의 뿌리를 뽑는 데 우리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시편 139:23-24절을 참조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영이신 성령님의 통제와 인도하심에 삶의 모든 영역을 굴복하고자 해야 합니다(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주님은 그의 소유된 우리가 현 상황에 신실하게 설 뿐 아니라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세상에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표현과 증거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나를 보내시는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위대한 구속의 사랑의 메시지를 가지고 이 상처받은 세상에 나아가도록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과 의무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여러분의 빛과 밝고 담대하게 비추신다면, 그결과 주님은 그분 자신에게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나 더 높은 영역에서 기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은혜를받고자 해야 하며, 동시에 열린 하늘(open heaven)을 믿고 추구해야 합니다(시편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요한계시록 4:1-2절에 등장하는 열린 문을 통과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아 먹고 마시는 교제를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계시록3:20-22).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사역을 태동시키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감싸실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분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며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자발적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이 마지막 시대에 풀어놓으려고 예비하시는 그분의 나라와 권세를 바로 다룰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은 진실한 겸손과 실제적인 담대함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계속 감싸시면서 우리 안에 준비시키시는 일을 완성하실 것을 알기 에 우리를 확신 속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에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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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 텍사스의 모래 언덕(the sand hill)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저의 할머니 내외는 우리 집으로부터 약 100야드(90m) 떨어진 곳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항상 거대한 닭 무리를 기르셨습니다. 사랑스런 할머니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미소를 머금곤 합니다. 어린 소년으로서 나는 할머니가 거대한 닭 떼를 치시는 것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으며, 그들은 옥수수대 주변에 떨어진 노란 옥수수 알갱이들을 부지런히 주워 먹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암탉이 안전하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지상보다 약간 높은 곳에 둥지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닭장은 여우나 다른 짐승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사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으로서 나는 예수님이 하시고자 했던 것을 어미닭이 하는 것을 수차레 목격하곤 했습니다. 암탉은 어린 병아리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날개 아래에 그들을 모으곤 했습니다. 어미닭은 한동안 새로운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포로가 되어 인내심을 가지고 계란을 품고 있어야 했으며,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포기하는가를 바라보는 것은 내게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어미닭은 새 생명을 출생시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더 높은 목적으로 태동시킬 영혼들을 품고 계시며, 특별히 바로 이때에 더욱 그런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충만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분의 임재하심 안에서 입니다. 그분의 임재하심 안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평강과 지혜와 인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여러 지도자들이 혼란 가운데 자신을 도와 줄 안내자를 찾고 있지만, 그들이 확신했던 것들은 곧 무너지고 맙니다. 세계가 점점 악화와 좌절속에 신음하고 있는 동안 그분의 완전하신 시간에 통치 영역으로 들어올릴 자들을 주님은 조용히 준비시키고 계시며, 그들은 주님의 마음과 청장으로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에스더와 다니엘과 같은 자들을 준비시키시며 그들을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으며 그가 임의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잠21:1절)
하나님의 영은 정치적 영역을 흔들기 위해 지금 기름 부으심을 풀어놓고 계십니다. 다니엘에게 정부 영역에서 통찰력을 주셨던 주님이 그리스도인 남성과 영성에게 동일하게 기름 부으신 다음 그들을 정부 요직에 위치시키실 것입니다(단2:20-22).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솔로몬을 시험하고자 했던 스바 여왕의 어렵고 까다로운 질문에 그가 다 대답함으로써 그녀를 열광시키고 놀라게 했던 것처럼, 그들은 그것보다 더 어렵과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름 부으심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 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며 위해하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열왕기상 10:1-5)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들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원이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약대에 실었더라. 저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은미하며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 신복들의 좌석과 그 신하들의 시립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관원들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여"
앞에서 언급했던 암탉과 계란에 대한 교훈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란 안의 생명이 속에서 형성되는 것처럼, 현재 성령에 의해 잉태되고 있는 것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것은 새날을 위한 산 소망입니다(이사야48:6-7절) "네가 이미 들었으니 이것은 다 보라 너희가 선전치 아니하겠느뇨?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보이노니 이 이들은 이제 창조된 것이요 옛적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였으리라."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끼고 반응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과 협력하고 방해하지 않는 것은 매주 중요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감쌀 때에만 우리 안에 발생하고 있는 모든 과정이 완전하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과의 능동적인 협력관계에 의해 새롭게 태어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굳게 서서 이 시대의 세속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말라기4: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력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주님은 지금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역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잠시 동안이라도 주님은 능력있고 권세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우리 자신을 주님께 굴복할 때 우리는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의 깊은 내적 만지심에 의해 우리는 주님의 더 높은 목적과 일치한 삶을 살게 될 것이며, 우리의 전 존재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5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라는 강한 경고를 듣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또한 히브리서 3장 7-8절을 참고하십시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주님은 그때에가야 비로소 우리가 그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신뢰하시고 그것을 우리 손에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그의 나라를 위해 굳세게 서서 이기는 자를 주님은 부르고 계십니다(계시록2장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들을 수 있는 영적 귀와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합시다(계시록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륵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케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19-23).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기 위해 탄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간절한 기대감(earnest expectation)' 이라는 구절은 목을 길게 빼고 주시한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의미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보고자 조급해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왕국이 세워지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갈망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생명을 얻되 더 풍성이 얻기 위해 주님께 나아오라는 초대에 반응하고 있습니다(요10:8-10).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성령님은 계속 그의 백성을 감싸실 것이며, 그들은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날에 사역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준비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는 놀랍습니다. 여전히 주님을 거부하고 있는 자들에까지 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상처와 좌절의 무게까지 느끼고 계십니다.
결국, 주님은 성령의 감싸시는 임재에 기꺼이 반응하는 우리 안에서 이러한 준비를 서두르십니다. 가속화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졸거나 잘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깨어 경성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이 준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우리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의 뜻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제시하시도록 우리는 주님을 허용해야 합니다(시편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우리 마음에서 죄의 뿌리를 뽑는 데 우리의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시편 139:23-24절을 참조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영이신 성령님의 통제와 인도하심에 삶의 모든 영역을 굴복하고자 해야 합니다(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주님은 그의 소유된 우리가 현 상황에 신실하게 설 뿐 아니라 잃어버리고 상처받은 세상에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표현과 증거가 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나를 보내시는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위대한 구속의 사랑의 메시지를 가지고 이 상처받은 세상에 나아가도록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과 의무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여러분의 빛과 밝고 담대하게 비추신다면, 그결과 주님은 그분 자신에게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듭나 더 높은 영역에서 기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은혜를받고자 해야 하며, 동시에 열린 하늘(open heaven)을 믿고 추구해야 합니다(시편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요한계시록 4:1-2절에 등장하는 열린 문을 통과할 수 있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좌에 앉아 먹고 마시는 교제를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계시록3:20-22).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마지막 시대에 필요한 사역을 태동시키기 위해 주님이 우리를 감싸실 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그분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야 하며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자발적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이 마지막 시대에 풀어놓으려고 예비하시는 그분의 나라와 권세를 바로 다룰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의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은 진실한 겸손과 실제적인 담대함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계속 감싸시면서 우리 안에 준비시키시는 일을 완성하실 것을 알기 에 우리를 확신 속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에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목자의 지팡이 - 바비 코너>
영적 전쟁의 승리는 중보 기도에 달려 있다.
※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중보기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기도
중보 기도의 의미 - 어떤 사람을 대신해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얻고자 죄 사함과 자녀됨의 권리를 가지고 간구하는 행위이다.
중보 기도자의 의미 -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아브라함에게 배우는 중보기도의 원리 - 믿음을 가지고 기도한다. 겸손하게 기도한다. 담대하게 기도한다. 공동체를 위해 기돤다. 끈기를 가지고 기도한다.
※ 전쟁터에서 혼자 싸우는 병사는 없다 : 중보기도의 중요성
중보기도는 명령이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기도에는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중보 기도는 은사다 - 하나님은 중보기도자에게 사명감을 주시고, 임무를 주시며 또한 그에게 필요한 은사를 부어 주신다.
중보 기도는 영적 전쟁이다 - 기도는 전쟁이다. 특별히 중보 기도는 초전방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이다. 적을 확실하게 파악하여 정확하게 공격하고 파괴하며 물리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지역 복음화를 이루는 최상의 비결이다 - 우리 시대는 하박국 선지자처럼 민족과 나라를 위해 중보하는 기도자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 한국을 포홤한 세계 여러 나라들은 '10/40 창' 지역을 놓고 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그 지역에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세게 복음화도 기도만이 최선이다.
교회 부흥의 중요한 열쇠다 - 교회 부흥의 전제 조건은 갱신 운동이다. 잠자던 교회와 신앙을 깨우는 성도들 사이에 갱신이 일어나는 것은 중보 기도로만 가능하고 그때 우리는 부흥을 볼 것이다.
※ 당신에게 맞는 중보기도의 은사를 활용하라 :중보 기도의 종류
개인 중보 - 특정한 사람을 위해 규칙적으로 강도 있게 기도하는 사명을 받아서 기도하는 것이다.
일반 중보 - 직임을 맡은 자가 기도 제목을 놓고 응답받을 때가지 끝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전투 중보 - 전도와 선교는 영적인 전쟁의 최전방이므로 가장 기도가 요청된다. 전도할 때 중보자가 옆에 이어야 하며 선교사님들을 위해 특별히 많은 중보자들이 필요하다.
위기 중보 - 위기가 닥칠 때 다급한 심정으로 중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때 기도를 축적 해서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능력 있는 중보 기도를 하라
중보 기도 팀의 요소
리더 - 한 교회(단체)에서 중보 기도 모임의 총책임자는 담임 목회자(지도자)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목회자(지도자)에게 주신 비전과 모든 기도 제목을 리더가 알아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들 - 기도하는 사람드은 교회(단체) 안에서 최소한 25명은 있어야 한다.교회(단체)가 부흥되고 그 지역을 기도로 변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이다.
기도 제목 - 일반적인 기도 제목은 별로 효과가 없다. 비전 있는 기도 제목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도 모임을 흐트리지지 않게 한다.
일정한 시간 -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기도할 때 시간을 절약하려 하지 말라.
능력 있는 기도회의 원리
*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한다 - 성령께서 함께 하기고 기도를 도우실 것을 구한다.
* 말씀으로 기도한다 - 기도의 응답은 말씀으로 나타날 때가 많으므로 말씀을 읽는다.
* 믿음으로 기도한다 - 응답되리라고 믿고 중언 부언 하지 않는다.
* 끈기 있게 기도한다 - 일단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했으면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다.
* 구체적으로 기도한다 -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기도한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 말씀과 기도 가운데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
※ 왜 중보 기도를 하지 않는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
영적 무지 - 영적 무지가 중보기도를 제한 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훈련받지 못함 - 말씀의 훈련을 받지 못하면, '내가복음'을 만드는 것처럼 중보 기도 훈련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할 수 없다
지나친 개인주의 - 하나님과의 관계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줄 필요는 없다는 지나친 개인주의는 버려야 한다.
지나친 두려움 - 중보 기도를 통해 자기에 관한 모든 것을 알 것같은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던질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다.
영적 교만 - '네가 뭔데 나를 위해 기도하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영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없다.
거짓 겸손 - 성령의 역사가 사람을 통하여 일어난다고 하여 사람이 하는 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중보 기도자는 하나님께 거짓 없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중보기도자가 가져서는 안되는 일곱가지 마음:
* 자기 의를 드러내지 말라. *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하지 말라. * 육체의 정욕으로 구하지 말라. * 감상주의를 버려라. * 영적 자존심을 버리라. * 치유를 목적으로 기도팀에 합류하지 말라. * 강압적으로 기도하게 하지 말라.
※ 왜 중보 기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가?
기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다
-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기도 모임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수사적인 기도를 드린다 - 중보 기도자는 유려한 말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성경적인 기도는 응답도는 기도이며 건전한 기도이다.
기도회가 지루하다 - 지루한 기도회는 기븜과 즐거움이 없지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회는 기도할 수록 새 힘이 난다.
방관자의 자세로 참석한다 - 자신의 의지와 목적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숫자를 채우기 위해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끝까지 참여할 수 없다.
개인적인 욕구가 충복되지 못한다 - 중보 기도자는 리더의 인도를 따르면 된다. 성령께서 그 리더를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 질서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팀원들의 할일이다.
단체 기도에 익숙하지 않다 - 공동체 기도에 대한 훈련 부족으로 다른 사람들고 함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동체 기도 모임을 통하여 자신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다.
기도해도 변화가 없다 - 기도회에 가서 기도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 모임에 집중하지 못한다 - 기도 모임이 잡담하는 시간이 되면 기도 모임의 중요성과 목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 중보기도의 승리는 리더에게 달려있다
중보 기도팀 기도 리더의 조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법 - 기도 리더를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초대 교회의 생명력은 리더들이 성령의 온전한 인도하심을 받는 데 있었다.
비전 있는 사람 - 리더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중보 기도 모임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평생 동안 기도해도 다 이룰 수 없는 큰 비전이 있느냐에 달렸다.
믿음의 사람 -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강력한 기도 생활을 하는 사람 -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기도의 삶으 살아야 한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기 일, 자기 신앙 생활을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 생활도 인도하며 돌볼 수 있는 사람이다.
기도회를 조직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 - 기도하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 하나님께로부터 인정 받는 사람이라는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그 신뢰성이 있어야 영적인 권위가 서기 시작한다.
시간을 드릴 수 있는 사람 - 기도 모임이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만큼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모임 장소에 항상 미리 와 있어야 한다.
※ 하나님과의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라
믿음을 방해하는 요소
새 피조물의 의미를 모른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죄악의 길에서 벗어나 과거이 모든 죄는 사함을 받는다.
자기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 구원받은 이후에도 자신의 정체서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파도가 칠 때마다 이리저리 요동치는 배와 같이 된다. 정확한 자기 이해는 주님 안에 거하게 한다.
'의'가 무엇인지 모른다 -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의롭지 않다거나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데, 그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겠다교 약속하셨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권세와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시인하지 못한다 -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받는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하나님 말슴에 대한 확증과 확신을 가지고 시인하는 것도 이에 포함되어 있다.
※ 기도의 통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하라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는 법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덮으라 -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다. 그 피를 의지하지 않고는 정결케 될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결박하라 -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악한 영이 두려워 떤다. 신앙 생활을 방해하는 것들이 찬양과 말씀과 기도 가운데 떨어져 나가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만이 존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은 그분과 함게 하고 성령의 능력이 함게 흐르는 찬양이다. 이 찬양 가운데 악한 영이 떠나가고 묶인 자가 놓임을 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한 영을 대적하라 -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임재하심으로 충만케 된 제자들이 기쁨의 찬양을 부르고 적을 향해 행진했을 때 마귀의 견고한 진이 산산이 부섲는 역사가 일어났음을 기억하라.
※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초점을 맞추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법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다 - 내가 주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 밖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한 뜻도 발견할 수없다
예배를 온전히 드리면 하나님의 뜻을 안다 - 예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선하시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곧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의 뜻을 안다 - 날마다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심령이 깨끗할 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다.
※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지키라
하나님의 인도가 떠나면 어떻게 되는가
첫사랑을 잃어버린다 - 첫사랑이 식으면 영혼이 메마르고, 영적으로 냉랭해지고 영적으로 굳어져 감각이 없어진다.
죄를 낳는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께서 세운 사람을 공격하는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영적인 손실을 가져온다 -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강을 맛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온전하신 뜻과 허용하신 뜻의 차이
온전하신 뜻은 거역할 수 없다 - 선택이 아니라 무조건 순종하며 지켜야 한다.
허용하신 뜻에는 진노가 있다 - 허용하신 뜻에는 고난이 따른다.
온전하신 뜻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 - 중간에 포기했더라도 다시 돌아선다면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신다.
온전하신 뜻을 지킬 때 묵복이 있다 - 힘들지만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 쓰신다.
※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파악하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
기도의 응답을 통해 말씀하신다 -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응답을 통해 그 뜻을 알게 하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아시지만 우리가 먼저 구하기 전에는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환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 우리의 형편과 처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하나님의 뜻을 더 명호가하게 분별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를 통해 말씀하신다 - 하나님이 중보자에게 보여 주시는 모든 예언적 은사는 중보자들로 하여금 예언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에 앞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신다 - 아론과 미리암에게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즉 우리에게 명백히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형상과 이상을 통해 말씀하신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시상을 보았지만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겼다. 형상과 이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일에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우리를 향한 뜻임을 믿어야 한다.
마음에 평강을 주심으로 말씀하신다 - 마음에 근심과 좌절을 안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분 뜻대로 일을 이루시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로 마음에 평강을 주신다.
※ 영적 전쟁에서 당신은 승리할 수 있는가
전신갑주를 입는 법
진리로 허리띠를 매라 - 아무것으로 허리띠를 삼아서는 안된다. 진리로 허리띠를 매야한다. 진리의 허리 띠는 진리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를 가장 견고하게 세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義)의 흉배를 붙이라 - 영적 사움에서 자기 의가 드러나면 마귀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 - 삶 속에서 싸움을 한다 해서 눌리고 힘드러하여 참 평안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평안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 우리가 믿음의 방패로 자신을 보호하며 사탄의 모든 활동을 다 소멸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 -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흔들린다. 담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하여 우리의 신앙을 흔들리게 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영적 전쟁에서 적을 단번에 물리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 검으로 우리는 적을 향해 공격해 나갈 수 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 전신갑주를 입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신갑주를 입고 나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 중보자에게 주시는 약속을 기억하라
중보자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리라 -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흔들리지 않는 평강이 있으며, 떠나지 않는 기쁨을 맛보며, 지식보다 지혜가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 이름의 권세를 주노라 - 예수님의 권세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권세이다. 그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을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 -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다. 그 영광에 참예하기 위해 우리는 성령의 임재가운데 들어가야 하고 그 영광을 사모해야 한다.
※ 중보기도로 도시를 점령하라
도시를 위한 전략적인 중보 기도
영적 도해를 가지라 - 전쟁을 하면서 지도를 갖고 있되 그 지도를 잘못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것과 사탄의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악한 영의 가장 견고한 진을 인간적으로 감싸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지역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라 - 지역 사회에 하나님의 축복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더 많은 영혼들이 함께 기도함으로 악한 영들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고 도시를 변화시키고 나라와 대륙과 전세계를 복음으로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와 역사는 그 지역을 위해 기도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들을 통하여 이 세계가 변화되는 것이다.
지역을 묶고 있는 악한 영을 무너뜨리라 -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릴 수 있는 빌리를 마귀에게 주지 않음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영적인 조해를 통하여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기도로 미리 처리해 나가야 한다.
지금 모여서 기도로 시작하라 - 우리의 발을 옮기며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것들을 깨뜨릴 수 있는 용기와 서로를 세우면서 함께 마음을 합하는 겸손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서로 낮아져 하나 되어 주님을 향할 때 하나님은 기도의 역사를 보여 주신다.
※ 보다 깊은 찬양으로 들어가라 : 하나님께 찬양하는 법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하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찬양했다. 그들이 가나안의 귀한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은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이 조금만 나빠지면 그 환경을 바라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그 축복을 누릴 수 없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찬양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마음 속에 없는 사람들은 심령에서부터 진정한 찬양을 드릴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을 때 찬양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을 주신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구하면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영적 싸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순복하며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가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보장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들릴 때 하나님은 말씀과 찬양,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은헤를 허락하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worship)라고도 하지만 축제(celebration)라고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승리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셨고,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을 때 찬양을 통하여 하늘의 기쁨을 주신다.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께 구하면 구원해 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영적 싸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순복하며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가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보장해 주신 것이다. 이렇게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들릴 때 하나님은 말씀과 찬양,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은헤를 허락하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예배는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worship)라고도 하지만 축제(celebration)라고도 한다.
정확한 지식이 찬양의 차원을 높인다 : 무슨 뜻인가? - 넓은 의미의 찬양은 찬양(prise)과 경배(worship)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찬양(praise)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기뻐하고 감사하며 세상에서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떨쳐 버리고 주님 앞에 나오는 모습이요, 살 못ㄱ에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찬양은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를 하나님 표현하는 것이다. 손뼉치며 춤을 추며 찬양한다. 이렇게 찬양을 계속 하다 보면 주님과
나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다. 이제는 기뻐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주님께서 나에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알고자 하여 성령의 임재 가운데 자신을 완전히 맏겨 드리게 된다. 그때 우리는 경배로 들어가게 된다.
찬양은 세상의 모든 잡념을 떨쳐 버리고 주님과의 만남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경배는
조용히 주님과의 교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는 그 찬양을 기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함으로 구원받은 기쁨을
찬양하기 원하시고 우리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못할지라도 천사가 흠모하는 아름다운 찬송으로 받으신다.
성경은 찬양을 어떻게 말하는가 - 먼저 성경은 우리의 입술을 열면 언제나 찬양과 감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에서는 늘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심령에서부터 샘솟아야 하고 우리의 입술을 통해 그것이 계속 흘러 나와야 한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은 입술을 통해서 늘 믿음의 말을 한다.
그래서 침체되고 연약한 사람들이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과 대화하면 믿음이 회복되고 찬양하는 사람을 만나면 찬양이 소성되고 기쁨으로 사는 사람을
보면 보기만 해도 기뻐지고 그 기쁨을 자신도 소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며
전파히리이다"(시51:15)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은 동일하게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 고백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하는가.
시편 기자는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119:164)라고 말했다. 말씀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종일 찬양한다는 뜻이며 하루의 삶이 온전히 찬양하는 삶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찬양하다 보면 하나님께는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근심과 걱정은 떠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해 찬양으로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잠언 3장 6절에서 말씀하셨다. 특별히 환경이 좋지 않을 때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께 감사하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찬양도 그 중 한 벙법이 될 수 있다. 어려울 때 찬양하는 사람은 평안할 때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시119:164)라고 말했다. 말씀을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하루에 일곱 번씩 찬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종일 찬양한다는 뜻이며 하루의 삶이 온전히 찬양하는 삶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찬양하다 보면 하나님께는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근심과 걱정은 떠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루어 주신 것에 대해 찬양으로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잠언 3장 6절에서 말씀하셨다. 특별히 환경이 좋지 않을 때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께 감사하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찬양도 그 중 한 벙법이 될 수 있다. 어려울 때 찬양하는 사람은 평안할 때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세계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이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0-21)라는 기록에 따르면, 불의한 자들은 그 마음과 생각이
미련하고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하고 하나님께 감사치도 못하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
이제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신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찬양할 조건은 무엇인가? 삶 속에서 순간순간 즐겁고 감사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데 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감사하며 기뻐하며 찬양하라고 가르치는가? 그리고 우리 삶 속에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우리가 어떠한 조건과 상황, 그리고 우리가 처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감사 때문 때문이라고 말이다. 진정한 찬양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사랑하신다는 우리 자신의 확신과 믿음에서 나온다.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진정한 찬양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우리가 불의한
자들과 같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못하고 감사치도 못하고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이 미련하여져서 어두워지는 것과
같다.
목소리로 드리는 찬양
* 하랄(Hallal) - 샘솟는 기쁨으로 깃발을 흔들면서 하나님게 환호하는 것이다.
* 바락(Barak) - 나에게 행하신 모든 일드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인정하는 것이다.
* 사바크(Shabach) - 승리를 주신 하나님게 큰 소리로 하나님의 승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는 것이다.
몸 동작으로 드리는 찬양
* 토다(Todah) - 주님의 응답하실 일에 대해 두 팔을 위로 활짝 려 감사하는 행위다
* 야다(Yadah) -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을 끝없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 테힐라(Tehillah) - 시편으로 찬양하는 것으로서 영으로 찬양하는 것이다.
영으로 드리는 찬양
* 성령 안에서 하는 찬양이다.
* 찬양이 지속되면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
*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가 일어난다.
생명력 있는 기도; 전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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