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2011

♥영원한 죽음과 멸망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가 젊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그가 품행이 나쁜 친구에게 유혹되어 술을 마시러 가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떠올라 친구에게 핑계를 댔습니다. 모처럼 만났는데 일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었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야겠네.

그는 자칫 친구의 집요한 유혹에 넘어갈 뻔했으나 지금이 생을 결정짓는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라 단호하게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클리블랜드는 고학 끝에 감옥의 간수장에서 시장, 그리고 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가 미국 전역에 전해지자 감옥에 갇혀 있던 한 죄수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죄수는 바로 젊었을 때 클리블랜드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유혹했던 친구였습니다.

지혜의 초청과 음녀의 유혹은 인생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부름에 응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권한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삶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지혜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선택하는 권한은 각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납니다. 지혜의 초청에 응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영광 가운데 들어가지만, 음녀의 유혹에 응한 사람은 영원한 죽음과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웃음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웃음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입니다.
이 웃음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웃음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웃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니 만큼 기쁘고 즐거워서 웃는 웃음이 있고, 또 부끄러움을 당해 겸연쩍게 웃는 웃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처구니 없어서 웃는 웃음도 있습니다. 본문 말씀 중에서 아브라함의 웃음이 바로 어처구니 없어 웃었던 웃음인 것입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엎드려 웃었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인 상식으로 생각해 보아도 백 세 된 아브라함과 구십 세 된 사라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상상한다 하더라도 웃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기가 막히는 웃음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의 날이 되어 아들 이삭이 태어나자 아브라함의 기가 막히는 웃음은 즐겁고 기쁜 웃음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쓰디쓴 웃음이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기까지의 과정을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즉 "정녕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새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는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우리에게 불치의 병이나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실패의 곤경이 다가왔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기억하면 곧 기쁨의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믿어지게 되는 것은 말씀이 심어진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씨앗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김을 매어주고 비료를 공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헌신과 기도로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이름을 고쳤다는 것은 자기의 이미지를 바꾼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성공하려면 '나는 할 수 없다'의 무능력적인 이미지를 '할 수 있다'라는 창조적인 이미지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창세기 17:17)

자아가 깨어진 사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10:8)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종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그 자아가 깨뜨려지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특별히 택하여 세우셨지만 25년 동안 그는 자아를 죽여야 했습니다. 기근을 당하여 애굽에 내려가고, 거기서 아내를 팔아먹는 수치를 당하고, 조카에게 배반을 당하고, 그래서 그가 얼마나 깨뜨려졌던지 마지막에는 그의 독생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바칠 정도로 자아가 죽었습니다.

야곱도 20여 년 동안 자아를 죽였습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서 품삯을 착취당하고, 거기서 도망쳐 나오다가 라반의 군대에게 잡혀 죽을 뻔하고, 마지막에 얍복 강 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진 다음에야 완전히 자아가 죽었습니다. 야곱의 자아가 죽자 하나님께서 형의 군대를 막아 주시고, 그를 위대한 축복의 조장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들어 사용하시기 위해 13년 동안 흙구덩이에서 종으로, 종에서 감옥으로 옮기면서 자아를 깨뜨려 나중에는 자기를 판 형들을 만날 때 사랑과 눈물로 맞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도 40년 동안 광야에서 자아를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을 구출하려고 했던 모세가 나중에는 깨어지고 깨어진 나머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하실 때 "내가 누구관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아가 깨어진 사람을 들어서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어떤 문제로든지 얻어맞고 자아가 깨어져서 앉아 있는 성도님들은 기뻐하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지금 실패해 있는 것이 아니고 성공의 문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아가 죽고 그 자리에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지렁이 같은 여러분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을 때,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타작 기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깨뜨리기 위해 가족이나 이웃이나 친구를 통해 돌이 날아올 때에는 감사하십시오. 사업이나 생활을 통해 돌이 날아온 때도 환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시고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돌을 허락하셨습니다. 돌이 날아올 때에는 피하지 말고 맞아서 여러분을 깨뜨리십시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라디아서 5:22,23)


말씀은 순복음신문 “오늘의 묵상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