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2011

내 친구는 신앙이 날로 깊어지는데, 나는 왜 늘 그대로일까?

신자의 영적 삶에는 다양한 영역이 있는데, 각각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균일하게 쉬운 것은 아니다.

회개와 믿음과 기쁨과 소망처럼 모든 신자들이 공통으로 누리고 있는 통상적인 뼈대와 느낌이 있는가 하면, 광희와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교제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의식처럼 모든 신자들이 공통으로 누리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위 영역에 놓인 것들이 있다.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거나 그분 옆구리에 손을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요한처럼 예수님 품에 기대는 지고의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바울처럼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체험의 강에 대해 말하자면, 발목까지만 물에 담그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대대수이고, 무릎 닿는 곳까지 나아간 사람은 약간 있고, 가슴이 닿는 곳까지 들어간 사람은 소수이며, 깊은 곳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그리스도인은 정말, 정말, 정말로 극소수이다.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체험으로 아는 지식에는, 독수리의 예리한 시력이나 철학자의 심원한 사유로도 볼 수 없는 높은 곳이 있으며, 사자 새끼처럼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이성과 판단력을 가지고는 도무지 여행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길이 있다.

그곳은 오직 하나님만이 인도하실 수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태워 그곳으로 데려가시는 병거가 바로 기도이며, 그 병거를 끄는 날랜 준마도 바로 기도인 것이다. "야곱은...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12:3,4)

기도(간구)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팔을 움직인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을 갈멜 산으로 데려가 축복의 구름으로 하늘을 덮고 자비의 홍수땅을 적실 능력을 주며(왕상18:41-46), 비스가로 데려가 예비된 기업을보여주며 (신34:1-3), 변화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닮을 때까지 변화시킨다(눅9:28-36).

평범하고 낮은 체험 이상의 무엇을 원한다면 당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반석을 바라보라! 믿음의 눈으로 끈질긴 기도의 창문을 통해 당신보다 높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더 높고 깊은 체험을 원한다면 힘써 더 많이 기도하라!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하라"(마5:48), "주의하라"(엡5:15), "우상숭배자들을 멀리하라"(고후6:17), "세상에서 빛을 발하라"(빌2:15) 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죄인들과 어울리거나 그들의 행위를 본받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서 당장 빠져나오라고 손짓하신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신다(출23:2).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온통 죄로 물든 시대에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기독교를 회의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믿음을 고백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악한 시대에 믿음을 고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참 은혜를 받았다는 징표이다.

진리가 박해와 비방과 모욕을 당할 때 그 진리를 사랑할 수 있어야만 참 은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 아래로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만찬가지로 참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악한 시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엘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시대에도 만군의 하나님을 충실히 섬김으로써(왕상19:10; 롬11:13) 그의 입술과 마음이 제단의 핀 숯으로 정결케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죄에 순응하며 시대의 유행과 형식에 따라 믿음을 재단해 맞추면서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최선의 길을 찾기보다 가장 안전한 길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대중의 의견을 숭배하며 순결한 양심보다 안전한 삶을 선택한다.

우리는 부패한 시대에 믿음의 열정을 더욱 뜨럽게 불태워야 한다.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은 시대에 거룩한 열정을 불어넣어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시대는 죄가 도처에 만연하며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때 세상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롬12:2)

우리 모두 무성한 가시덤불 속에 피어 있는 백합과 장미처럼 살아가자. 죄가 유행처험 번지고 있어서 상황이 좋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러운 오물 속에서도 순수함을 유지하자. 짠 바닷물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물고기처럼, 연기나는 물무 속에서 환한 빛을 드리우는 횃불처럼(창15:17) 살아가자.  <.하나님을경외하는사람중에서...>

숨은 마음


우리에게는 숨은 마음이란 게 있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하는 마음이나 감추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마음이고 성령의 음성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지금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 때 그 일이 나를 위한 일이냐, 타인을 위한 일이냐. 하나님 영광을 위한 일이냐. 혹은 선한 일이냐. 악한 일이냐. 등...

마땅히 성도라면 첫째가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선한 일이고 타인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바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그 일의 정말 목적을 깊이 생각해 보면 첫째가 나를 위한 것이고. 별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일인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특히 전도하는 것, 하나님 영광을 위한 일이고 기도하는 것이 성도가 해야 할 본분이라 생각하지만. 전도함으로써 그동안 바르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신의 스스로 위로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지요?

죄를 사함 받는 것은 예수님의 피의 값이지. 우리가 선을 행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기도를 많이 한다고 사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얄팍한 숨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그럴듯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안에 숨은 마음, 진실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글 또 한 내 자랑이나, 인기나, 보이기 위한 것이 되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