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2011

♥나의 사랑하는 자

미국의 사진 기술자인 이스트먼은 저렴하고 간편한 카메라를 발명했습니다. 그는 카메라의 이름을 짓기 위해 몇 일 동안 고민했으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친구로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한 느낌을 주는 알파벳은 ‘K'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의 이름도 K로 시작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그는 새로 만든 카메라의 앞과 끝을 K로 고정한 후 여러 알파벳을 중간에 끼워 넣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가장 강렬하고 부르기 쉬운 단어가 코닥(Kodak)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카메라가 전 세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조그마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적인 제품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기계와 상품은 손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사업은 머리로 합니다. 작은 지혜 하나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인이 가장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업신여겨서 지혜에 귀 기울리이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는 교만한 자는 지혜를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혜가 주는 여러 가지 유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지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지혜의 사랑을 입고, 지혜를 간절히 찾는 사람만이 지혜를 만날 수 있습
니다.

양심의 소리

그리스 신화에 남자들을 유혹하는 음탕한 여신의 이름이 나옵니다이 여신의 이름은 세이레네스그녀의 얼굴 모습은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몸은 새였습니다그녀는 바위틈에 숨어 지내다가 감미로운 노래로 사내들을 유혹했습니다.

카프리 섬과 세이레네스 섬을 지나는 선원들은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접근했다가 어김없이 희생을 당했습니다하지만 음악가 오르페우스만이 유혹의 노래를 물리쳤습니다그 비결은 간단했습니다오르페이수는 더 큰 목소리로 음탕한 노래를 봉쇄한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감미로운 유혹의 노래가 들려옵니다유혹은 항상 명분과 핑계를 무기로 인간을 무너뜨립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할 때 미래를 말하지 않습니다오직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얻을 수 있는 쾌락을 내세우며 달콤한 말로 설득력 있게 꾑니다유혹에 빠지면 처음에는 즐겁고 좋은 것 같지만나중에는 파탄하게 되고 맙니다

인생이 쑥같이 쓰고영혼이 절망의 칼에 갈갈이 찢어지는 고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하지만 유혹을 봉쇄하는 ‘큰 목소리는 바로 ‘양심의 소리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무시로 다가오는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오직 생명의 길로 행하여 형통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 : 1 ~ 15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하자 제자들은 근심과 걱정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떠나가심은 인간의 음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 오르셔서 주의 자녀들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주를 따르다가 죽은 자도 있고, 또 손해를 많이 보고 가난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할 때에 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처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처소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집이 작다거나 없다고 불평할 것이 없으며 또한 집이 좋다고 자랑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모할 집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이 집은 오직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알고 믿는 자만이 갈 수 있습니다. 이 혼란스런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고 서로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진리가 된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주의 자녀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그 처소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시며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압니다. 인간의 머리와 힘으로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겸손히 예수님만 따라가는 자만이 결국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도와야 할 사람은 너무나 많은데 예수님이 이들을 다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떠나시고 주님이 하시던 그 역사를 제자들에게 대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보다 더 많고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연약한 인간에 불과한 제자들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12절하)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 하나님께로 가셔서 보내실 성령을 통한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힘으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어느 한 가지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함께라면 주님이 하신 것보다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육체로 계신 것 보다 성령님이 계신 것이 우리에게 더 큰 유익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위로하시고 지혜와 권능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려고 항상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그 특권과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13절).

그리스도의 신부의 계시를 잘 이해하도록 도울 구절들입니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45:9)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62:5)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7:34)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3:29)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1:2)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22:17)

감각적인 눈과 믿음의 눈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시112:9)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슬퍼하기도 하고 희망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우리의 감각적인 관찰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은 기골이 장대하고 칼과 창을 잘 쓰는 무사였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키가 약 아홉자 일곱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군들도 그를 대적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골리앗의 용맹에 눌려서 아무도 그 앞에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감각적인 눈으로 볼 때 그를 상대했다가는 당장에 죽임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물맷돌을 들고서 그 앞에 섰습니다. 다윗은 감각적인 척도로 골리앗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의 척도로 보았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를 내려 주시며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광야에서 샘물을 터지게 하셨으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 골리앗 정도는 두려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눈에는 골리앗도 자기 손에 죽었던 사자와 곰에 불과했습니다. 다윗은 이와 같이 신앙의 눈으로 골리앗을 보았기 때문에 겁 없이 그와 마주 대하여 그를 죽이고 전쟁을 이스라엘의 승리로 이끌 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육군역사 가운데 위대한 신앙인이자 장군이었던 맥아더 원수는 항상 신앙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국군이 공산군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을 때에도 그는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고 집요하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평생의 군대 생활 중에 오늘보다 더 승리에 대한 자신을 가져 본적이 없다."

그는 새로운 척도의 눈, 곧 신앙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각적인 눈을 가지고 사물과 사건을 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가 다가오면 탄식하고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겠습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눈, 긍정적인 믿음의 시인,이런 차원에서만 우리가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야웨)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사무엘상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