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2010

종교 다원주의를 비판함 -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들’ (2) - 자기 분수를 모르는 목사

얼마전 오강남 이라는 종교다원주의자를 초청하여 강연집회를 가짐으로써, 토론토 교계에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E교회 목사 C씨가 새롭고 기발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여, 또 다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가 그의 구호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오씨와는 달리 교회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외치는 구호는 이렇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자”,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신앙탐구의 여정에 나서자”,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교회, 새로운 신앙을 탐구하자”.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은 좋다. 그러나 C씨는 어떤 성경적 근거로새로운 신앙을 탐구하는 것이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C씨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우리는 새로운 신앙을탐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발자취, 또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 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미 모든 진리를 통달하고 계시므로, 우리네 인간과 같이 신앙의 진리를탐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시다. C씨의 말은 예수님께 대한 모독이며, 그의 불신앙의 표현이기도하다.

예수님은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 하셨다. (요한복음 14:16) C씨는 이 말씀을 믿지 않는가?

그는새로운 신앙을 탐구하자고 했으므로, 전통적 신앙을 대신할 새로운 신앙을 아직은 발견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C씨의 말투는 그 것이 아니라, 그가 이미 새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신앙을 알고 있으니, “나를 따르라고 외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풍긴다. 아마 그래서 그가 목사로 있는 E교회에는 이미 새 교인들이 오기 시작 했으며, 앞으로 E교회는 큰 교회가 될 것이라는 자신을 그는 표명했다.

그렇다면, 옛 신앙, 즉 전통적 기독교 신앙은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 그런 말 인것 같다. 지금까지 무수한 성도들, 수십 또는 수백억의 성도들이 그것에 따라 인생을 살면서, 구원과 영생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2000년 역사의 신앙적 유산은 헌 신짝 처럼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 이 전통은 예수님에게서 시작하여, 사도들에 의해서 확립되고, 오늘까지 계속되어 온 전통이다. 이 긴 전통이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사는 C 라는 한 개인의 기발한 구호에 의해서, 파괴되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인가 ? 2000년 동안 내려온 긴 전통이 그렇게 허무하고, 가치와 쓸모가 없다는 말인가 ?

그러면 C씨는 누구이며,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온 사람이냐 ? 이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주신,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냐 ? 아무래도 C씨는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큰 소리를 외치는 외람된 사람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의심한다. C씨는 현대신학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는 모양인데, 그의 말을 살펴 보면, 그는 실은 신학에 대해서도 무식한 편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성경을 부지런히 그리고 깊이 공부한 사람 같지도 않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보고, 그가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을 것이냐 ?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서 예고하신 거짓 선지자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심 마저 든다.

C
씨에 의하면, ‘예수의 발자취, 제도적이고, 교리적이고, 통제적인 성전종교에 항거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것이란다. 그러면 이 전통종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위배되는 종교냐?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전통종교도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하여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우신 종교, 즉 기독교는제도적이고, 교리적이고,통제적인 성전종교에 항거하여나타난 종교냐 ?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 시대의 종교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을 크게 책망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님은 전통 종교에 항거하신 것이 아니라, 이를 완성하시고 온전케 하셨다. 기독교는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적(salvation history) 준비와 뿌리가 없이,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생긴 종교가 아니다. 수천년에 걸친 구원사적 준비 과정이 있었다.

기독교의 성경이 「신구약 성경」(The Old and New Testament) 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사실도 그 것을 말해준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긴 준비과정을 거쳐서 생겼다. (C씨는 신구약 성경을 공부 하지 않았는가 ?) 이것은 너무 분명 하므로, 성경을 다 읽지 않아도 몇군데 중요한 성경구절 만을 읽고 판단해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3, 8:7-13, 요한복음 5:39, 마태복음 5:17, 20: 18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의 성취 ), 사도행전 11: 43.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복음 5:39). 여기서의 성경은 구약 성경을 가리킨다. 예수님 생시에는 신약성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C
씨의 기발한 구호와 행동은 그의 외람됨과 경망함, 그리고 신구약 성경의 종교에 대한 그의 무지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C씨의 종교 사상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 신학도 아니다. 굳이 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자면, 그것은 악명이 높은자유주의 신학’, 신 신학, 이단적 신학, 그리고 크게 잘못된 신학이다. 그리고 성경과 전통적 기독교를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면, C씨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목사 행세를 하고 다닌다. 이런 C씨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시 된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태복음 15:14).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도 말했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9:16) . 그러므로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중요한 문제다.

나의 이 글 중에서 만일 C씨가 이의를 제기할 것이 있으면, 그 것을 이 신문에 발표하기 바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상 토론할 것을 제의한다. < 다음 호에 계속 >

종교 다원주의를 비판함 -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들’ (1)

박하규박사 기독교의 절대성

[
특별기고] ‘하나님께 대한 반역자들’ (1) - 종교 다원주의를 비판함
<
박하규 - 신학자·종교철학자 / 토론토대학 박사 / 캐나다 연합교회 은퇴목사>

신문 보도에 의하면, 토론토의 어느 교회에서 오강남이라는 종교 다원주의자를 초청하여 수일간 강연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필자는 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왜냐하면 오 씨의 종교 다원주의는 신구약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에 위배되는 것이며, 교회는 그런 사람을 강사로 초청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씨는 수년전예수는 없다는 제목의 신성 모독적인 책을 써서 출판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사람이다



그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경망함은 참으로 한심하다. 이번에 오 씨를 초청한 교회 목사와 이에 동조한 사람들은 오 씨와 같은 종교 다원주의 사상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종교 다원주의란, 세상의 여러 종교중에 특별한 종교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모든 종교가 대등하다는 사상이다. (결국 이 사상은 각 종교가 믿는 신은 같은 신이며, 특별한 신은 없다는 사상으로 통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이들을 기독교의 배교자로 간주하며, 그들에게 반성과 회개를 촉구한다.
나는 종교다원주의가 왜 기독교와는 상용될 수 없는지를 다시 밝히고자 한다.
다원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론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비유컨대 높은 산을 올라가는 등산과 같은 것이며, 이들 종교의 신자들은 모두 산의 정상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 만나기 위해 힘써서 산을 오르고 있다고 한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듯이, 복을 받기위해 하나님을 찾는 종교도 여러개가 있으며, 모든 종교는 동격이고, 특별한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이론은 그럴듯하고 일리가 있는 것 같아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완전히 오해 또는 곡해하고 있다.

기독교는 높은 산 위에 계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먼저 여러번 인간 세상에 찾아오셨으며, (이 점은 다음 글에서 상론함) 자신이 유일의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45:21~22)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과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셨고, 또 인류구원의 복음을 사도들을 통하여 세상에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의 제의를 믿고, 이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인류 구원사업의 중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며,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께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므로, 믿는 자는 죄의 용서와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메시지요 복음이다. 따라서 그대와 나는 공로를 많이 쌓아서 자기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얻는 것이다. 이 구원론은 다른 종교들의 그 것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치 높은 산에 오르듯이, 힘써서 도를 닦고 수양하고 명상하고 선행을 쌓아 나가면서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 종교이며, 모든 종교는 대동소이 하다는 다원주의자들의 주장은 기독교와는 너무 다르고, 둘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사중에도 다원주의 사상을 품고 있는 목사가 늘고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반역자요, 기독교의 배교자들이다. 그들은 실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 신자라고 가장하고, 목사 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 그 것은 기만 행위다. 그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멸망한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나는 기독교신자가 아닌 그들이 왜 목사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혹시 그들은 달리 해 먹을 것이 없어서, 먹고 살기위한 직업으로서 목사가 되었는가? 그들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싶다.

교회는 이들 가짜 목사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교계로 부터 모조리 내보내야 한다. 그들이 신자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성경에 충실하려면 그래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말세에 거짓 종교인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 하시고, 그들에게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셨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믿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그 권위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마태4:4~11 및 기타


하나님은 하나님의 참 종교를순수하게유지하며 전파할 것을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진리에 관해서는 양보와 타협 또는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진리에 관한 중립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불충을 의미한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님은 반역자를 언제나 엄벌로 다스리셨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지만, 반역만은 용서하지 않으셨고 반역자를 가차없이 도륙하라고 지시하셨다. 한번은 하루에 3천명이 도살 당했으며(출애급기 32:25~28) 다른 한번은 24천명이 목숨을 잃었다(민수기 25:1~13). 



하나님을 무서워 할줄 아는 것이 참 지혜다 (마태복음 10:28).

현재 토론토 한인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원주의자들의 경거망동도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다. 이 현상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도 반역에 준하는 죄악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죄 없다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죄가 무엇인지를 논하자면, 살인, 강도, 간통 만이 죄가 아니다. 이런 무관심과 하나님께 대한 불충은 더 큰 죄악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만 열심히 다니면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서 충실하고, 그 분의 주요 관심사를 나 자신의 관심사로 삼고, 위해서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에 의하면, 지옥에는 여러 구역이 있는데, 가장 무서운 구역은 이런 무관심했던 죄인들이 벌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 다음 호에 계속 >

주님은 이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과학적 설명)

[이 자료는 "의학박사 트루만 데이비스(TrumanDavis)", "알렉산더 메드럴 박사(Alexander Metherell)"를 참고로 활용하여 구성한 자료 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예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렇게 까지 하셨구나!! 라는 것을 더 깊히 깨닫고 더욱더 실질적으로, 과학을 토대로 묶어 봤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더 알아서 깊은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1. 십자가 달리기 전의 고통
1)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기도 상황에 의한 땀방울이 핏방울 되다. 너무 열심히 기도하신 나머지 땀샘에서 땀과 피가 섞여 나옵니다. 의학적 용어로 "혈한증(血汗症, hematidrosis)"라고 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하는 화학성분이 나옵니다. 그래서 소량의 피가 땀샘에 들어오게되는 것입니다. 이로인해 예수님의 심리와 육체는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14: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하는 그러한 열심의 기도 였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나, 나를 위해서 그러한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주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피곤에 겨워 잤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하지 않으셨나요?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배우는 제자들도 피곤해서 기도하다가 자는데 예수님이라고 안 피곤 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기도로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신것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셨기에 겁이 나셨습니다.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며 순종 하셨습니다.그것은 나, 바로 나를 위해서입니다.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2) 희롱과 몰매를 맞으심. "그에게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27:30)""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19:3)"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몰매와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자신이 창조한 창조물에게 말입니다.

3) 태형.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기 전에 태형을 당하셨습니다."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 하더라(19:1)"

(1) 채찍의 구조 : 39개의 가닥으로 되어있습니다. 병사의 기분에 따라 가닥수가 많을수도 있었습니다. 땋은가죽으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쇠구슬과 뼛조각이 들어 있습니다.

1> 쇠구슬 : 살을 멍들게 했고, 찢어진 근육조직을 더욱 크게 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2> 뼛조각 : 뼛조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살을 찢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영화처럼 그러한 채찍으로 맞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칼보다도 더 무서운, 한번 스치면 사망할수 있는 그러한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2) 때린 부위 어깨부터 등 그리고 엉덩이 정강이 를 때렸습니다. 죽지 않을 만큼 때린거죠.

(3) 몸 상태 골격 근육이 찢어지고 피범벅이 되었으며 살점은 리본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태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의 정맥이 밖으로 드러났고, 근육, 근골,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다."

예수님은 영화에서 본것처럼 그렇게 죽지 않으셨습니다. 더욱더 극심한 모양이셨습니다.
위의 3세기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말처럼 예수님도 정맥이 드러나고 근육과 근골과 창자의 일부가 노출되었을 것입니다.많은 사람은 태형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 원인은 고통도 고통이겠지만 더 확실한 것은 "저혈량성 쇼크(hypovolemic shock)"상태 였기 때문입니다. 피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3) 저혈량성 쇼크상태.
(1) 증세
<1>심장이 더이상 피를 못 퍼올림
<2>혈압저하,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기절
<3>신장에 남아있는 피의 양을 유지하기 위해 소변의 역할이 중지
<4>몸에서 액체를 요구하기 때문에 목이 아주마름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 달리기 전의 상태는 매우 유독한 상태셨습니다.
  
2. 십자가의 고통.
1) 십자가 묘사 가로들보(Cross bar)즉 패티블룸(patibulum)이라 불리우는 것과 수직기둥과는 분리되어 있습니다수직기둥은 땅에 고정되어있고 가로들보는 땅에 놓인채 예수를 못을 박았죠. 그리고 못 박은후 수직기둥에 올려져 고정되었습니다.

2) 못 묘사 약 18Cm 의 대못입니다.(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인 요한난 벤하콜의 십자가 처형당시의 못발견)

3) 박힌 부위 다수의 의견과 성경적 측면에서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손목에 못이 밖혔습니다. 당시 손이라는 언어는 손목과 구별되어있지 않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손에 못이 밖혔다면 찢어져 땅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못 밖힌 곳은 "중추신경" 이 지나는 위치입니다. 못으로 큰 신경이 파괴가 된것이죠. 고통을 예로 들자면...우리 팔굽을 때리면 아픈 느낌이 나죠? 그곳의 척골신경을 펜치로 비틀어 으깨는 느낌과 비슷 하다고 합니다.

4) 매달린 상황묘사.
1>팔이 6인치 정도 늘어남.
2>어깨 탈골.
예수님의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팔은 6인치정도 늘어났을 것이고, 어깨도 탈골이 되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볼수 없는 극형이었습니다.

5) 죽음 원인. 십자가는 질식해서 죽이는 사형틀입니다. 근육에 충격이 가해지면서 "횡경막" 이 가슴의 상태를 숨을 들이쉬는 상태로 고정시킵니다. 그래서 질식하게 됩니다. 십자가형은 사형수의 몸을 90도 비틀어 나무에 묶고, 무릎을 구부린 상태에서 팔목과 복숭아 뼈 바로 아래에 쇠못을 박아 처형하는 극형이며, 사형수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 줍니다. 이 때, 나무망치로 쳐서 무릎뼈를 부러뜨리게 되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게 되고, 결국 숨이 막혀 죽게 됩니다.

다음은 의학박사 트루만 데이비스(Truman Davis)의 진술입니다. 팔에 힘이 빠지고, 근육에 엄청난 경련이 일어나면서, 깊고, 가혹하고, 지근거리는 고통이 따르게 되고, 이 고통이 근육을 굳게 만듭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몸을 위로 밀어 올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몸이 팔에 매달려 있게 되면, 가슴근육이 마비되고, 늑간근육이 활동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공기가 폐로 유입은 될 수 있지만, 밖으로 뿜어내 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는 단 한번의 짧은 숨을 쉬어보려고 몸을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한 사투를 하셨습니다.

결국, 이산화탄소가 폐와 혈류에 쌓이게 되고, 경련이 부분적으로 진정을 시킵니다. 격한 경련으로 몸을 위로 밀어 올려, 숨을 내뿜고, 생명을 주는 산소를 마시게 됩니다. 이 상태로 매달려 있다보면, 뇌와 가슴에 피가 공급되지를 않게 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이런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 발에 힘을 주어 몸의 윗부분으로 피가 돌게 하는 것입니다.

당국자가 급히 죽이기를 원하거나 고통을 멈추게 하려 할 때에는 사형수의 다리를 부러뜨리는데, 무릎아래를 곤봉(나무 망치)으로 타격하였습니다. 다리를 부러뜨리는 이유는 죄수가 몸을 위로 밀어 올려서 가슴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급속한 숨막힘이나 관상동맥무력이 따르게 됩니다. 다른 두 죄수들의 다리는 꺾었지만, 예수의 경우, 이미 죽은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이지 않았습니다.

6) 숨을 쉬려면? 숨을 쉬려면 십자가에 매달린 상태로 발을 반복적으로 세웠다가 내렸다 해야합니다. 그러므로 근육이 이완되어 횡경막에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계속적으로 못이 밖힌 발을 움직여야 하죠. 예수님은 숨을 쉬기 위해 못이 밖힌 발을 들었다가 놨다가 했을 것입니다.못이 밖혀 발도 움직일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러했습니다.

7) 죽음. 결국 숨을 쉬기 위해 발을 움직이다가 발의 뼈가 못에 고정되고 ... 서서히 질식을 하게됩니다. 호흡량이 줄어들면 "호흡 산독증(酸毒症)"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은 혈액속에 이산화 탄소가 탄산으로 분해죄면서 혈액이 산성으로 변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되고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사형수들은 다수 질식으로 죽습니다. 십자가 사형 자체가 질식으로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극심하게 돌아 가셨습니다. 태형으로 인해 물과 피를 많이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얼마 되지 않아 돌아 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피는 죽어서 다 흘리시고 다리는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완전히 죽으셨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이렇게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나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보이셨습니다.지금도 예수님을 희롱하고 다시 못밖으려 하는 대적자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불신자들은 연합하여 기독교를 몰아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대화를 해보면 [교만]합니다. 자기가 신이랍니다. 자기는 이러한 증명도 불가한 미신을 믿지 않는 다고 합니다. 자기 머리만 믿는다고 합니다.그래서 이들은 인터넷상으로 많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지옥중에도 더 극심한 지옥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는 공정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에 관한 질문
질문1] 두 강도는 죽지 않아서 다리를 꺽었는데 왜 예수는 다리를 꺽지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나요?

1] 다리를 꺽는 이유는 아까도 말했던것과 같이 질식으로 죽게 하려고 한것입니다. 그 상황에는 다가올 안식일과 유월절로인해 빨리 사형을 종결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사형이 종결된 곳이지요. 로마 군인들은 자신이 소지한 단검의 손잡이로, 또는 망치로 다리뼈 아랫부분을 꺽었습니다. 그러면 더이상 발을 들지 못하고 호흡 산독증으로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것은 로마 군인은 사형의 전문가였습니다. 사형장에서 제비뽑기하며 노는것 보면 더 확실히 알수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죄수가 탈출하면 군인들이 대신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실정이었기에 정밀히 시체를 검사했고 확인도 했습니다. 예수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군인은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다량의 피와 물(19:34)이 나옴으로 인해 확인이 되었습니다.

질문2] 죽은 사람은 피가 응고되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많은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 왜그렇지요?

2] 많은 피와 물이 나온 이유. 저혈량성 쇼크로 인해 심장 박동이 증가합니다. 이것이 심장 정지의 원인이지요. 증세는 이렇습니다.

1>심낭삼출 : 심장 주위에 있는 막 조직에 액체가 고임.
2>늑막삼출 : 폐 주위에 액체가 고임.

로마병정은 사형의 전문가였고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창을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 나를 위하여 이렇게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이 그저 돌아 가셨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피조물들을 위하여 창조자이신 위대하신 신께서 이렇게 죽으셨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