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현상들
A. 오순절날, 120명의 성도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에 충만하게 되었고, 성령의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의 소리와 불의 혀가 각 사람위에 임하게 되어 그들이 알지 못했던 언어로 방언을 하게 되었으며 마치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되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6... 큰 무리가 모여 ... 듣고 소동하여7 다 놀라 기이히 여겨...12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베드로가... 가로되... 15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행2:1-15)
B. 그들을 보던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들을 나타냈다.놀라고 기이하게 여긴 사람, 궁금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었고, 그들에게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를 보며 조롱한 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성령의 활동에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현상들을 성령의 일하심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화를 내거나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상들을 단지 육적 행위인 것으로만 판단하면서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에 따라서 나타나는 육적인 것이 포함된 현상, 모방, 과장들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안에 나타나는 진전한 성령의 역사를 합당치 않은 것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C. 성경의 역사와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이러한 특별한 현상들은 계속 기록되어 왔다. 다시 말해,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러한 현상들의 전례들이 있다는 말이다. 교회사를 통해 보여지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교회사 속에 일어난 성령의 나타남의 현상들” 자료문을 참조하라. 대부분의 부흥들 안에 이러한 육적인 감정적인 성령의 현상들이 있어왔다. 성령의 임재로 일어난 이러한 현상들은 그리스도 자체 안에 있었던 거의 모든 부흥의 역사속에 기록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해 주는 수천건의 간증들이 존재한다.
Ⅱ.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현상들
A. 성령의 권능아래 넘어짐: 이것을 보통 “성령안에 빠지다” 또는 성령안에 쉼을 얻다, 성령에 압도되다라고 표현한다. 이 현상은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성령의 현상이다.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기쁨이 가득차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더 은혜를 받게 위해 그대로 누워있기도 한다. 그란 가운데서 감정적인 그리고 육적인 치유, 축사, 그리고 권능의 사역을 위한 임파테이션을 받기도 한다.
1. 전통적으로 모든 교파와 교단에서 역사적으로 특별히 부흥의 때에 이러한 현상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각하면서 고꾸러지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심령안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겸험하기도 하고, 또 더 강력한 사역을 위한 임파테이션을 받지도 했다ㅣ.
2.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고꾸라지고 넘어지는 사람들의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영광스런 임재 아래 고꾸라졌다(계1:17).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마17:6). 예수님을 체포했던 군사도 땅에 고꾸라졌다(요18:6).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경험하면서 고꾸라졌으며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행9:4-8)
3. 에스겔은 주님의 영광 앞에 고꾸라졌다(겔1:28; 3:23; 43:4; 44:4)
4. 다니엘은 넘어져 힘이 빠지고 기절했으며,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단8:7-10, 17-18; 10:8-9). 그는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어 힘이 빠지고 일어날 수 없었다(단10:9, 17). 그렇지만, 동시에 들을 수도 있었고 주변의 상황을 파악할 수도 있었다.
5.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에서 “영광의 구름”을 보면서 성령의 권능으로 “옴쩍달싹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대하5:13-14)
6. 하나님의 영광이 강력한 권능아래 임하여 제사장들이 그들의 역할을 감당하지도 또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한 것이었다(대하7:1-2). 때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두터운 또는 무거워” 마치 무거운 무게가 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무거운 권능아래 사람들은 금방 넘어지기도 하고 천천히 몸을 구부리게 되면서 넘어지게 되기도 한다. 히브리어로 영광이란 단어는 카보드(kavod)로, 하나님의 “무게 또는 무거움”이란 뜻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대하7:1-2)
B. “성령에 취하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마치 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행2;15). 많은 사람들은 “성령에 취해”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주체할 수 없이 웃으며 흘리는 발음으로 말하고 눈이 흐려져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며칠동안 이러한 현상을 계속 보이기도 했다. 사도바울은 온전한 정신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정신이 나간(미친) 것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고후5:13)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행2:15)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고후5:13)
C. 웃음: 때때로 “주체할 수 없는” 웃음과 몇시간이 계속되는 웃음은 주님이 기쁨을 주시는 성령의 현상이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우울증에 있는 사람들도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현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롬14:17). 성령충만한 삶의 한 열매는 기쁨이다(갈5:22). 기쁨은 깊은 만족의 상태를 말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웃음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 믿는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웃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거룩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기쁨과 웃음은 성경에도 나타나 있다.(시126:2-3)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2-3)
D. 몸을 떠는 것: 다니엘이 환상을 보게 되었을 때(단10:7),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단8:17-18; 10:7-11).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마17:6).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군사는 천사를 보고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다(마28:4).
“이 이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11내게 이르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매”(단10:7-11)
E. 몸을 흔들: 어떤 사람들은 몸을 흔드는데, 가볍게 흔드는 사람도 있고 격렬하게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청교도 퀘이커(Quaker)들은 이 현상을 많이 보여 그들의 별명(Quaker:몸을 흔드는 사람)을 얻게 되었다. 성경에도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몸을 흔들거나 떨게 된 경우가 많이 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산이 진동함과 함께 두려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게 되었다(출19:16-18). 하나님의 임재가 강렬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건물전체가 흔들리기도 했다.(행4:31; 사6:4)
F. 말을 못함: 다니엘은 하나님을 대면함으로 인해 말을 할 수가 없었다(단10:15-19).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반응하지 못해 실제적으로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의식은 있어도 한동안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다(겔3:26; 눅1:22) “내가 네 혀로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너로 벙어리 되어”(겔3:26)
G. 울음: 많은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울기도 하며, 또는 회개의 눈물 또는 영적 불감증으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대하34:27; 호12;4; 마26:75; 눅19:41; 롬2:4; 고후7:10; 계5:4). 어떤 사람들은 내적 치유의 결과로 울기도 하며, 어떤 사람들은 중보의 부담을 갖고 울기도 한다(히5:7). 경우에 따라서는 울음이 순식간에 웃음으로 변하기도 한다.
H. 비몽사몽: 베드로와 바울은 비몽사몽에 빠져 영적 세계의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다 (행10:10, 22:17). 발람은 비몽사몽 또는 열린 환상을 경험하게 되었다(민24:3-4).
I.“권능의 공간”: 성령의 역사가 강한 “공간과 장소”가 존재했다는 보고는 부흥 때에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이 공간 또는 장소를 사람들이 지나갈 때, 사람들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넘어지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떨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치유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역동적인 사건의 예는 성경에 사울과 그의 군사사 선지자들이 모인 곳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삼상19장). 그들이 선지자들 곁에 갔을 때, 성령이 사울의 군사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모두 예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울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울이 다시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났다(삼상19:20 -21). 마침내 사울이 직접 그곳에 갔고 역시 성령이 그에게 임할 때에 그도 예언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삼상19:22-24)
J. 성령에 이끌린 공간이동: 어떤 사람들은 빌립과 같이 성령에 육체가 이끌이어 공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있다(행8:39-40). 어떤 사람들은 에스겔과 같이 환상가운데 공간을 이동하기도 한다(겔3:14; 8:3; 11:24).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쓰러진 후,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영이 몸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으며, 환상을 보거나 또는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천국으로 이끄시거나 이 땅에 여러 장소들로 데려가시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사도 바울과 요한은 천국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고후12: 1-4; 계4:1). “39...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40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행8:39-40)
K. 불: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각 사람위에 임한 불을 보게 되었다(행2:3). 하나님의 불은 구약에서 하늘로부터 떨어졌음을 볼 수 있다(레9:24; 왕상18:38; 대상21:26). 마지막 때에는 피와 불과 연기의 징조들이 있게 될 것이다(욜2:30-31). 불은 처음에 하늘에게 임하게 되는 데, 계시록에 나오는 두번째, 세번째 여섯번째 나팔의 심판과 네번째 대접 심판에 나온다(계8:5-10, 9:17-18, 17:8). 두 증인과 거짓 선지자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할 것이다(계11:5, 13:13).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행2:19)
L. 그 외에도 많은 현상들이 존재한다. 말하는 동물(민22:28), 물위를 걷는 것(마14:29), 천사들과 씨름하거나 여행하는 것(창32:28; 왕하2:11), 죽은 자를 살리는 뼈(왕하13:21), 빛나는 얼굴(출34:30), 천국방문(고후12:2-3)등과 같은 현상들이 있다.
Ⅲ. 성경에 특별히 기록되어 있지 않은 현상들
A. 성경은 성령이 주실 수 있는 모든 현상들을 다 기록하고 있지는 않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성령님이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전형들의 경험을 본보기로 기록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원칙을 잘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행한 모든 일은 성경에 다 기록될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설명하고 있다(요21:25).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성령의 현상들이 성경에 기록된 현상들과 반대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어떤 현상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더 확장시켜 준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
B. 오순절날 다락방에 있던 성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급하고 강한 바람, 불의 혀, 각종 방언과 술에취한 듯한 성령의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었다(행2:1-5). 성령의 감동으로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했다. “선지자 요엘이 했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요엘 2장을 공부해보면 오순절날에 일어났던 성령의 현상들은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요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각종 방언이나 술에 취한 듯한 현상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베드로는 일어나고 있는 특정한 현상들을 변호할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요엘의 말을 적용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 요엘이 말했던 것이다!”
“13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된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4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행2:13-17)
C. 요엘은 성령의 권능을 받는 장래에 대해 예언했다(요2:28), 물론 오순절에 그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베드로는 그것을 “증거하는 본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순절에 일어난 성령의 현상들이 비성경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D. 성령의 현상들이 성경의 목적을 반대하지 않는 한, 단순히 비성경적이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는 현상들이 성경에 똑같이 나와있지 않으면 모두 비성경적이라 잘못 결론짓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 언급된 질병만 고치실 수 있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E. 성령의 현상들이 성경적인가? 그렇다. 각 현상을 증거해 주는 본문들이 있는가? 없다. 우리는 나타나는 모든 현상과 경험들을 성경에서 똑같이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현상들은 명확한 성경적 전례들과 원칙들에 맞는 현상들이디. 모든 현상들이 똑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들이 있다. 성령님은 계속해서 그분의 성품과 성경에 나오는 원칙들에 맞는 일들을 하신다.
1. 예를 들면,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은 성경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은 성경에 나와있다!
“...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18)
2. 에스겔은 넘어져서 말을 잃었으며 성령에 이끌리어 다른 도시로 공간이동을 하게 되었다(겔1:28, 2:2, 3:12-14, 23-26, 8:3 등등). 에스겔의 경험은 그와 동일한 경험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을 합리화시켜 준다.
F. 우리는 똑 같은 현상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일어나는 현상들이 거짓이라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이유는? 성경기자들이 성경을 기록할 때 성령의 모든 현상들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쓴 것은 아니었다.
G. 우리는 성경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 아니거나 성경에 반하는 현상들이 아니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삶에서 거룩한 열매를 맺기만 한다면 그러한 현상들을 용납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것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원칙에 반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정하고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현상들을 성경에 찾을 수는 없다.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서 “구우너의 역사”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경험을 하기만 한다면 성경에 반대되는 것이라 결론 지을 이유는 없다. 16세기에 어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의 오르간을 부숴버렸다. 왜냐하면 오르간이 “성경안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편은 구체적으로 오르간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악기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부분들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Ⅳ. 역사속에 흔하게 나타난 성경의 나타남의 현상들
A. 교회사와 전세계적으로 모임들 가운데 흔하게 나타났던 현상들 가운데에는 넘어짐과 웃음, 울음, 몸을 흔듬, “술에 취한 것 같음”, 정상적으로 말을 하지 못함, 비틀거리며 걸음, 몸이 가벼움을 느낌, 몸이 주님의 영광의 무게를 느낌, 힘이 빠짐, 눈을 찡긋함, 입술이 떨림, 소리를 지름, 신음소리를 냄, 숨이 가빠짐, 금니가 생김, 얼굴에 금가루가 묻음, 바람, 열기, 전류, 간지러움을 느끼거나 몸에 통증을 느낌,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거나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증표가 된다.
B. 눈꺼풀이 찡긋거리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성령의 임재를 나타내는 흔한 현상이다. 성령안에서 춤을 추는 것은 일반 안무와는 다르다. 20세기 오순절 부흥에 나타났던 성령안에서 춤추는 모습은 눈을 감고 추면서 성령의 인도아래 사람들이나 물 체에 부딪히지 않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C. 어떤 사람들은 뒤로 등을 구부리거나 앞으로 구부리기도 하며, 크게 숨을 쉬기도 하고 내뱄기도 하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도 하고, 뒹구르기도 한다. 귀에 들리는 음성을 듣기도 하고, 악하고 선한 긋들의 임재를 냄새맡기도 하고 맛을 보기도 하며, 예언의 말씀을 받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D. 존 웜버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동물 소리”라고 말하길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동물을 흉내 내려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 어떤 현상들은 성경에 나와 있기 때문에, 반복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보통인 것처럼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상들이 성경의 “주된 그리고 평범한” 명령이라고 가르쳐서는 안된다.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특별한 것이라고 가르쳐서는 안된다.
F. 어떤 특정한 현상이 평범한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사모해야 한다고 가르쳐서는 안된다. 어떤 형상들은 평범하게 일어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든지,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Ⅴ. 성령의 나타남의 현상의 목적들
A. 현상이 주는 열매: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과 더 깊은 친말한 교제를 누린다. 사랑과 평안, 기쁨과 하나님을 경외함이 전달된다. 소박(두려움, 분노, 쓴뿌리, 고통, 정욕, 등등)에서 자유케 된다, 병고침, 내적 치유, 사역에 대한 권세(병고침, 예언, 중보기도 등등). 심령이 새롭게 된다. 전도를 더 많이 하게 된다.
B. 영적인 수용력이 넓어짐: 내적 속박들을 이기고, 온유한 심령을 가지며, 사람들을 사역할 수 있는 권능과 사랑과 평강 기쁨이 넘치며, 예언적인 감동에 더 민감해지며,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심령을 깊이 성령님이 만지시게 될 때 “진통제”와 같이 마음의 통증이 사라지게 된다.
C. 어떤 싸인을 주는 현상: 하나님은 때때로 어떤 현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역사하시고자 하는 성령께 우리를 주목시키신다. 성령님이 이러한 싸인을 주실 때에 우리는 그 특정한 싸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구해야 한다.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성령님은 이 현상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시는가? 이러한 싸인들은 성령님과 더 깊은 교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성령의 현상들, 치유, 그리고 여러 영적 싸인들은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선포하는 광고판과 같은 것이다. 이런 현상이 복음전파를 돕고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들의 삶을 세워나가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할 때에만 그 싸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Ⅵ.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A. 성령의 현상들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임재를 대면한 사람들의 반응들이다. 성령의 현상들은 성령의 의매 직접 일어나는 것이기 보다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신체 또는 감정의 반응이다. 성령의 임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전휴가 흐르는 전기선을 만질 때 일어나는 반응과 유사한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만지실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성령을 대면하게 될 때 우리가 잠시 몸을 스스로 가눌 수 없게 되어 성령의 권능아래 넘어지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B. 하나님이 자연의 세계를 만지실 때, 자연을 “능가하는” 또는 “넘어선”반응이 일어나게 된다-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이다. 우리의 연약한 몸은 하나님의 임재로 강력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초자연적인 대면(경험)으로 우리의 육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게 하여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한다. 이렇게 몸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를 더 강력하게 증가시킬 때 일어나게 된다.
C.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인격체에 형향을 주신다. 인간은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으며 이 셋을 나눌 수 없다. 인간은 전체로 반응한다. 영적인 영역에 혼과 육과 분리되어 상관없이 우리의 영만 반응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매우 강력한 자극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래서 우리의 몸이 그렇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이상한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목을 끄시려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흔드사 깨우신다(엡5:14)
D. 존 윔버: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만날 때, 강한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번개와 천둥, 비나 눈, 토네이도나 허리케인 같은 게 발생하다. 하나님의 권능이 인간에게 임하게 될 때, 우리는 중심을 잡을 수 없으며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어 지게 된다.
Ⅶ. 현상들 분별하기
A. 우리는 반드시 이 모든 현상들을 삶의 열매와 변화를 통해 시험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비춰서 모든 것들을 시험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반응들이 하나님을 통해 오는 것인지, 인간적인 것인지, 사단의 짓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이러한 반응들이 성경의 원칙들을 높이고 삶에서 거룩한 열매를 맺는 지를 통해 시험해야 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살전5:21)
“그의 열매로 그들을 잘찌니...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맞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0-11)
“베리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0-11)
B. 우리는 영들을 시험하며 잘 분별하고 그 열매를 살펴봐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니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C. 1741년 조나단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법’(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이란 책을 썼다. 그는 독자들에게 당시의 영적 대각성을 단순히 보이는 현상들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사람들의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방법을 섯가지로 제시했다. 그는 사단이 다음의 반응을 사람들이 하게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우리가 다음의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일어나는 현상들이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현상이 우리에게 낯선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1.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결과는 낳는가?
2. 죄를 더 미워하고 의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결과는 낳는가?
3. 성경말씀을 더 사모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가?
4.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결과를 낳는가?
5. 하나님을 향한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더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
D.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핵심적인 요인중의 하나는 그 열매를 보는 것이다. 넘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일어나서 어떤 일이 결과적으로 그 삶에서 일어나는 가가 중요한 것이다. 보이는 현상들 자체가 영적인 것은 아니며, 그러한 현상들을 보이는 것이 영적 성숙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현상들이 성령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확증시켜 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열매(영적 성숙)를 통해 알 수 있다. 사랑과 겸손, 거룩함 삶으로 새롭게 되었는가?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 화평, 인애와 온유들의 열매가 더 보이는가? 전체적인 사역에 더 선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는가? 리더가 예수님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돈을 벌려고 하는가? 그들의 권력을 자랑하려 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믿음으로 훈련을 받고 있는가? 목양적인 일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를 더 맺고 있는가?
Ⅷ. 현상들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A. 하나님은 미련하고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사 권능을 풀어주신다(고전1:27-28).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을 이상하다거나 처음 분다라는 이유로 그대로 무시해 버려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택하사 그분의 권능을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1:27-28)
B.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 내려주시는 은혜를 감사하게 여기며 겸손하게 반응해야 한다. 동시에,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성령이 하시는 일들에 겸손하게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며 교만한 “교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겸손함과 인내로 대해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도록 기회를 드려야 한다. 물론, 성경의 범위안에 머무름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값없이 내려 주시는 은혜를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C. 우리가 두려워하면 심령을 닫아버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한다. 알려 지지 않은 것, 낯선 것,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 한다.
Ⅸ. 현상들에 대한 거짓 방정식 폭로하기
A. 거짓 방정식 #1: 현상이 성령이 주신거라면, 그 열매와 변화는 항상 지속 될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강력하게 대면한 이후에도 죄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의 예가 많다.
B. 거짓 방정식 #2: 만약 당신이 성령에 민감하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성령의 만지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신과 두려움, 교만으로 마음을 닫기 때문에 성령을 소멸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강력하게 성령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C. 거짓 방정식 #3: 성령이 당신을 만지시면 당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령님이 어떤 사람을 만질 때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반응에 따라 역사하신다. 다시말해, 그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 더 마음을 열면, 일반적으로 더 많은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예를 들면, 성령이 만지셔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은 그 웃음을 멈출 수도 있고 계속할 수도 있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 현상을 “멈추는”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그렇지만, 예외의 경우들도 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D. 거짓 방정식 #4: 내가 예수님께 더 헌신하면, 더 많은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헌상을 받는 것은 영적인 성숙이나 헌신과는 상관이 없다. 성령의 현상은 그것을 내가 어떤 대가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값없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갈3:5)
E. 거짓 방정식 #5: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성령을 저항하는 것이며 영적이지 못한 것이다?
Ⅹ. 현상들이 줄 수 있는 위험성
A. 모방: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영적으로 보이려는 마음으로 또는 그렇게 권면을 받아 성령의 현상들을 모방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받은 진정한 현상을 경험한 이후에 육적으로 다시 그 현상을 모방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감정의 과장과 감정을 조작하는 감성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는 성령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
B.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을 높임: 어떤 사람들은 심령속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령의 현상을 더 높이는 경우가 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일이야 말로 성령이 하시는 역사중 그분이 가지고 계신 최고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외적 현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예수님께만 집중해야 한다. 우리는 그 현상자체를 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삶을 구해야 한다.
C. 교만: 우리는 교만만 좁은 생각,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D. 환상주의: 어떤 사람들은 성경적이지 않은 행동과 생각들에 사로잡힌다.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항상 “기친 불”이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자유”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허용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된다.
E. 무시: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현상들 자체만을 주목해서 우리 믿음의 기초를 무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기도생황, 사람들을 섬김, 가정을 세워나가고 부모를 공경함, 원수를 사랑함, 불우이웃 돕기, 직장생활, 공과 금 반납, 관계해결, 좋은 친구가 되는 것 등등.
F. 사람을 높임: 하나님이 기름부어 일하게 하신 도구인 연약한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지도자들을 존경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그들을 추종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을향한열정컨퍼런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