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2011

복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일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6:14)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고 전통적으로습관적으로의식적으로 마지못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위선자이며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나아가 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밤낮으로 생각합니다연애하는 남녀를 보십시오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상대를 그리워하고 생각합니다.

화가가 꿈 속에서라도 그림 구상을 하고음악가가 길을 걸으면서도 멜로디를 읊조리고,사업가가 밥을 먹으면서도 사업을 생각하듯 복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가르침인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사랑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도,저녁에 자리에 들어서도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성경이 뽀얗게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 두었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 버려 말씀이 귀에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던 것이 이제는 성격 말씀이 재미가 있어져 팽개쳤던 성경을 펼쳐서 일기 시작합니다.


모르는 것이행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한 장 두 장 읽어 나가면 전에 체험하지 못하던 즐거움을 맛보게 되어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지루하던 목사님의 설교가 꿀맛처럼 달아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율법이 즐거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복 있는 가람의 곁에는 왔을지 모르지만 아직 복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사랑스럽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지 않는다면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 부르짖어 성령 충만함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해 주십니다그래서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야웨)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1:2)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세상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예수님이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유대로 가서 초막절에 사람들이 모여들 때 기적을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4절). 쉬운 사역의 길을 제안한 것입니다.

가족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겠지만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5절).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한 자리를 차지해 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형제들의 제안은 예수님에게 너무나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단 번에 자신의 사역을 쉽게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할 때 사단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오병이어 기적을 목격한 무리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하기도 했습니다(6:15).

그러나 예수님은 그 좋은 기회들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의도가 불순하고 불경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기 보다는 겸손하게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며 때를 따라 행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의 소리는 귀에 익숙하고 지혜로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소리는 귀에 거슬리고 미련하게 보입니다(고전 1:18).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는 때를 따라 일하는 경건한 소리이며 삶에 능력을 주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조화

[생명의말씀] 하나님과의 조화




창세기 6장 5~8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일러스트/박철호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이 살아가는 데 단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도록 풍족한 부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감사를 받으셔야 하며 찬양을 받으셔야 마땅한 분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어서 풍요롭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한 사람이 땅에 충만하도록 명령하셨고, 인간을 처음 창조하실 때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권리를 부여하셨는데,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느끼면서 수용할 수 있는 권리요, 다른 하나는 싫은 것에 대해서 배타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인간은 선악의 분별을 통해서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스스로 ‘교회 가기 싫다’며 배타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지 않고, 교회에 가야 한다고 수용한 사람은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인간의 이와 같은 권리를 이용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도록 거짓으로 유혹하여 인간을 영원히 멸망할 자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인간이 멸망당하지 않기를 바라시기에 가르쳐준 지식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이 자기의 유혹을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을 말했습니다.

그 마귀의 말이 믿어졌기에 아담과 하와는 그 말을 수용하여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수용하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리 이외의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곧 수용하는 권리는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수용하는 데 사용하고, 배타하는 권리는 거짓과 죄악을 배타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창조자와의 관계 끊는 ‘거짓’ 바로 알고
성령 모시며 말씀으로 하나님께 속해야
죄의 결국은 멸망뿐
인간이 타락한 후에 행한 걷잡을 수 없는 방종과 방탕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였고 실망케 하였습니다(창6:5~7). 결국 인류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해 홍수의 사건을 당하게 되었고, 노아의 가족만 남기고 모조리 수장(水葬)되었으니, 죄악의 결과는 이토록 참혹한 것입니다.

홍수의 심판을 실행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만드시고 살고자 하는 자를 살리시려고 또 한 번 방주에 오르라 명령하셨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살리시려는 진실한 사랑을 무자비하게 배타하였습니다. 짐승들은 모두 창조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배에 타는데, 인간은 노아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곧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사건이 주는 교훈은, 죄악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이 타락한 도시, 방탕과 저주의 절망 속에서 멸망해야 하는 소돔과 고모라 도성(都城)을 어떻게든 살리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타버릴 소돔을 구해보려고 하나님 앞에 의인(義人) 오십이 있으면, 사십이 있으면, 삼십이 있으면, 이십이 있으면, 십이 있으면 소돔을 멸하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습니다(창18:22~33).

하나님은 이번에도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곳에 의인이 있다면 멸하지 않을 테니 부지런히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결국 의인 십 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까지 성적으로 범하려 한 소돔 사람들은 무론노소하고 정욕적인 성적 욕구로 미쳐 있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소돔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잠시 후면 불타버릴 죽음이라는 최후뿐입니다. 그들은 더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긍휼을 베풀 수 없을 만큼 타락해버렸던 것입니다. 오죽이나 악했으면, 롯의 사위들까지도 장인의 말을 듣지 않고 소돔과 함께 불타고 말았겠습니까.
성경은 소돔의 멸망이 사단의 역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6~7)

향락과 쾌락, 정욕 등 못된 근성들이 모두 사단의 역사임을 알고 이러한 것들을 여러분 속에서 다 버리고 오직 성령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었다는 증거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길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령한 조화를 이루라
인간은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고 축복하셔서 낙원에서 영원히 행복하도록 부여하신 권리를 사단에게 속아서 모조리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조화는 끊어진 채 죄짓게 하고 저주하며 멸망시키는 사단의 일에는 오히려 조화를 이루면서 향락과 쾌락, 성적(性的)인 광란 속에서 그것이 행복인 양 방종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 사라질 때나 인간의 타락은 언제나 똑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노아 시대의 사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사건을 성경에 생생히 기록한 것은 어느 시대, 누구라도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천지간의 어떠한 것도 하나님과 의의 조화, 선한 조화, 거룩한 조화가 깨져버린다면 오직 최후에 잔인한 심판만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때 굉장한 영광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거룩한 조화가 파괴된 인간에게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만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 미련한 다섯 처녀, 마귀와 더불어 왼편에 있던 자, 이들이 다 주님과 신령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조화를 이룰 수 없고, 하나님과 죄가 조화를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과 죄인이 조화를 이룰 수 없으니, 무엇이든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은 오직 쓰레기와 같은 것이요, 저주요, 심판이요, 지옥의 형벌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말(終末)에 우리가 죽어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었느냐 이루지 못했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과 부조화의 원인인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마귀를 멸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조화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조화가 깨진 자가 있다면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속죄함을 얻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과의 조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홍수 때나 소돔이 불타는 멸망의 때에 노아와 롯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불가능이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의 조화가 깨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와 진실한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신령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인 성령을 당신 안에 모시십시오.
에덴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조화를 파괴한 마귀역사를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금부터 영원히 행복을 누리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합시다“주여, 하나님의 말씀과 뜻은 수용하고 마귀역사는 배타하는 올바른 인격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신령한 조화를 이루게 하옵소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사마리아인’, ‘귀신들린 자’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그 당시 가장 모욕적인 욕설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은 묵묵히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51절)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려움을 갖습니다. 죽음은 인류 최대의 적입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도무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하신 말씀대로 살게 되면, 그 분을 믿게 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주님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분임을 증명하는 사건 중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셔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셨음을 증명해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분처럼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가 됩니다.

크게 기뻐합니다
유대인들은 영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더욱 더 거센 비난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는데 너는 너 스스로를 그들보다 크다고 생각하느냐?’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은 신앙의 모델로 생각하던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믿음의 거장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의 오해를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아브라함과의 관계를 설명하심으로 풀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기쁨으로 삶을 산 것은 미래에 성육신하실 그리스도에 대한 비전을 품고 살았고, 천하 만민에게 복을 끼칠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창 22:17, 18).

아브라함이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인해 삶이 커다란 기쁨이 넘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큰 기쁨의 삶을 위해서 세상에서 많은 슬픔과 고통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인류의 기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삶을 사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큰 기쁨을 소유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는 기쁨이 넘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