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11

이것이 없이는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없이는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오심이 가까움을 깨닫고 대비하고자 하는 신부는 휴거의 예표인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권세로 사탄을 이기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권능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행하더라도 이것이 없다면 결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완성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이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7:21,22)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의 열매를 맺는 사람만이 들어갑니다. 물론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님을
성령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압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7).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로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아름다운 행위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음성 듣고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참 믿음의 완성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정의하십니다. 모든 것에서 남을 위하는 마음과 삶 이것이 모든 성경의 요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사랑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이고 이것이 예수님의 보혈이고 이것이 하나님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 내 영에 항상 충만한 삶예수님의 사랑에 이끌려 사는 삶입니다.
  
자료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사랑과 진리

하나님의 권능을 받고 그리고 가라

권능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사도행전 1:6). 예수님은 명확히 대답하셨습니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7).


그들의 질문이 무엇을 함축하고 있는지 멈춰서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 그 방으로 시작해서 단지 우리들만으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실 겁니까? 우리가 바로 헤롯과 로마를 무너뜨릴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바로 땅을 정결케 하고 왕국을 세워 당신을 돌아오게 할 사람들 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제자들 중 몇 사람 안에 있는 지도권과 권위에 대한 정욕을 다루셔야만 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나는 여기 그들의 질문 안에 지위와 권력에 대한 갈증을 넘어 무언가 있음을 감지합니다. 그것은 무언가 위대하고 궁극적인 운명에 연루되고자 하는 인간적인 욕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특별하고 싶은 욕구 - 때에 맞는 타당한 인물이고 싶은 욕구입니다!
제자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 당신의 예언적 계획 어디쯤 우리가 들어있습니까? 우리가 새 날이 동트려고 하는 한 체제의 종말에 있음을 아는 것은 대단한 영적 동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운명의 날에 살고 사역하며 당신이 우리를 쓰셔서 모든 것을 매듭짓고 계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면 우리가 얼마나 흥분하겠습니까!”

성도여러분, 운명의 인물이 되고 싶은 이 동일한 욕구는 어느 정도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퉁명스러웠습니다.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예수님은 운명의 사람들을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에 대한 증인들을 원하십니다! “문제는예언적 시기나 너희에게 지정된 위대한 운명이 아니라 나는 이 현 세대에게 증언할 증인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이 나를 깊이 찔렀습니다. 오늘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의 예언적 시계 상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대 환란에 들어가려는 참일까요?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마지막 남은 자를 거둬들이는 중이실까요?
그때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것은 네가 알 바 아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분의 권능을 받고 나가서 증인이 되라!” 우리는 우리 등불의 심지를 가다듬고 불을 켜들고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주의 깊게 살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재림을 갈망하고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경고를 선포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그분의 증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식어진 사랑의 요새를 주의하라 - 프랜시스 프랜지팬

여러분의 사랑은 날로 더 부드럽고, 더 밝으며, 더 담대하고 더 눈에 띄도록 자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더 차별하며, 더 계산적이 되면, 더욱 몸조심을 하려하고 몸을 사리십니까?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기독교는 오직 여러분의 사랑이 참된 만큼 참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눈에 띄도록 점점 더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식어진 사랑의 요새가 여러분 속에 조성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용서 못함을 주의 하라!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24:12)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영적 싸움의 한 주요한 부분은 교회 사이의 상호 관계의 영역입니다. 사탄은 교회가 스스로 분쟁하여서는 설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때의 축복과 영적 돌파의 한 철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 전체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기 위해 예수님은 단합된 범 도시적 교회를 일으키고 계십니다.이 연합되어 승리하는 교회의 특징은 헌신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대의 마지막 때에 늘어나는 불의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참 사랑은 심한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영적으로 하나됨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계속적인 승리도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됨을 열망합니다. 반면에 쓰디 쓴 감정은 눈에 띄도록 사랑이 부족한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이처럼 식어진 사랑은 귀신들의 요새입니다. 

우리의 세대에 식어진 사랑은 점점 더 예사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식어진 사랑은 기도의 능력을 막고 계속해서 흐르는 치유와 전도의 길을 닫아버립니다. 사실상 계속 강팍함으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곳이라면, 그것이 개인이든지 교회든지, 귀신들의 세계( 18:34에는 "옥졸들"로 표현)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 개인의 삶 속에 돋아난 아주 작은 쓴 뿌리일지라도 많은 사람을 더러워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12:15). 쓰디쓴 감정은 이루지 못한 복수입니다. 다른 이들의 분별없고 또 무정한 언행이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습니다. 점점 더 거칠고 무정해가는 세상에서 때때로 상처를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랑과 용서로써 이를 대하지 못하고 상처 준 사람에게서 받아야겠다는 빚을 그대로 여러분의 심령에 간직한다면, 바로 그 상처가 여러분의 심령에서 사랑의 능력을 빼앗아갈 것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은 "사랑이 식어가는" 마지막 때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쓴 마음은 식어진 사랑의 요새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증세입니다. 이를 다루려면, 쓴 감정을 품은 마음가짐을 회개하고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마음 아픈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에게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상처를 준 이들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이 시험에서 낙제하는 것입니다. 다행이도 이는 그저 하나의 시험이지 마지막 시험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온 생애가 쓰디 쓴 감정과 원망에 삼켜버린 바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십시오. 매일같이 수백만의 사람들이 쓴 감정에서 벗어날 소망도 없이 영원한 심판 속으로 쓸려 들어가고 있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을 받았습니다.하나님은 나갈 길을 주십니다: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서로 용서하며 살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쓰디 쓴 감정과 이를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게하는 견고한 요새를 실제로 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여러분은 결과적으로 전보다 더 큰 사랑을 갖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헌신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님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 지리라"( 24:10-12)

아주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헌신이 없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여러분이 얼마나 깊이 헌신하느냐로 나타납니다. 저는 "한 때 사랑했지만 상처만 입었다"라든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기는 일에 몸 바쳤으나 사람들이 나를 이용만 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얼마나 자주 듣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면서 헌신이라면 뒤걸음칩니다. 겉으로는 그들이 냉정해진 것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에 참석하고 성경을 읽으며 십일조를 드리고 찬송을 하는 등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그들의 내면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뒷걸음쳤습니다.

예수님은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7) 살다보면 선한 사람들마저 겪는 어려움의 날들을 만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실족케 하는 일"이 여러분의 인생 여로에서 사라질 날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윗돌에 걸려 실족하지 않고 작은 돌들, 작은 것들에 걸려 실족합니다

실족은 걷기를 그치고 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여러분은 최근에 다른 이의 약점이나 죄 문제에 걸려 실족한 일이 없으십니까? 다시 일어나 사랑하기를 전처럼 계속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실족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좇아 행하던 데서 어느 정도 뒤로 물러나게 되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심령 속에 있는 사랑의 본질은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실족케 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다른 이의 약점을 용서하지 않고 너그럽게 지나치기를 거절할 때마다 여러분의 심령은 그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강팍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비록 그런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하더라도!)를 내리고 그 평가가 하나의 태도로 굳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여러분이 그렇게 할 때마다 여러분의 심령의 어느 한 면이하나님께 대하여 식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하나님께 마음이 열려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 말씀은 이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누군가가 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사랑하기를 그만둘 선택의 여지가 여러분에게는 없습니다. 사랑만이 여러분이 택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제가 말하는 사랑이란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이는 단순히 "엄한 사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하고, 다정하며, 민감하고, 숨김이 없으며, 한결같은 사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하실 때 엄하실 것이며 그가 우리에게 명하실 때 우리도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우리의 단호한 자세의 밑에는 언젠가 행동으로 솟아오를 날을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지하수가있어야만 합니다

제가 뜻하는 "사랑"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믿음과 기도의 능력을 덧입어 사랑하는 이에게서 하나님의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어떤 길로 가든지 나는 그들과 함께 서기로 이미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온전치 못함에도 우리를 사랑하고 받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크리스천 없이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서로에게 헌신하기까지 우리가 받은 그 구원 안에서 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잘못과 인간적인 약점들에 걸려 실족할 것입니다.원수는 이런 작은 일들을 재빨리 부추겨서 아주 큰 문제로 만듭니다.어쩌면 그렇게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멀리하게 된 것을 정당화 해보려고 그다지도 구차스런 변명들을 늘어놓는지! 실제로 교회나 목사에게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은 사람의 사랑 없음을 가리려는 연막입니다.

우리는 헌신에 대한 우리의 거리끼는 마음을 극복해야 합니다.왜냐면 이 땅에 사는 동안 불완전한 사람들에게헌신함이 없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목적의 충만함에 이를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제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진 교회를 찾는 대로 헌신하지요." 이 같은 변명은 아주 위험한데, 그 이유는 여러분이 용서하고 싶지 않다고 마음먹거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랑의 본질을 다루기 시작하시자마자 여러분은 이처럼 뒤꽁무니 빼는 이유를 어떤 사소한 교리의 차이 탓으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히 교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관계-하나님과의 관계, 또 하나님으로 인한 우리 서로와의 관계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리들은 이러한 관계들을 정의하는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우리는 "반 교리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텅빈 교리들, 덕의 모양은 있으나 식어진 사랑을 정당화하려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 교리들을 반대 합니다.

가장 큰 계명들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주신 답은 아주 적절한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또는 둘째는 첫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12:30,31).

예수님은 "둘째는 첫째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이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사랑과 같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둘째는 첫째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조건없이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예수와 나뿐" 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으로 예수님을 소유함과 동시에 그가 하시는 말씀을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과 믿음의 성장은 그리스도가 가진 것과 같은 사랑과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가 주님처럼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게 됨을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는 온전해지면서 한 몸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17장 참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려면 우리는 개인으로서, 교회로서 서로에게 헌신하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아직 온전하지 못할 때 우리를 용납하셨으므로, 우리 역시 서로서로를 용납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참으로 소유한 사람들은 서로의 허물로 인한 장애물들을 넘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각자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뜻,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산 몸이 되도록 서로를 도와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식어진 사랑의 요새를 파하는 목표는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로써 어려운 싸움을 싸우도록 도전을 받게 되지만, 여러분이 끝까지 참으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과 깊이, 길이와 넓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자신으로 충만하고 넘치는 몸이 될 것입니다.

영적 전투의 세 영역중에서...

계시적 깨달음의 중요성 - 케네스 해긴

1952 8월 마지막 주간에 나는 텍사스 주 동부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에 내 침대에 누워 성경과 다른 책을 가지고 뭔가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밤 예배를 위해서 꼭 말씀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지만, 단지 내 자신의 영적인 유익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고 있던 성경 말씀은 빌립보서 2:9-10이었습니다.

예수의 이름과, 그 예수의 이름 앞에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이 어떻게 절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뭔가가 나의 정신에서가 아니라 나의 영에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예수의 이름과 그 이름의 권세와 그 이름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특히 "땅에 있는"이라는 문구에 대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바로 여기 이 땅 위에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 이름은 하늘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기 이 땅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것은 땅 아래에서도 역사할 것입니다.
그 이름은 3세계 모두에서 역사할 것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3세계입니다.

그날 오후에 내 영 안에서 비록 잠깐이지만 그런 계시를 깨닫고 내가 벌떡 일어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이름이 역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나의 형님 덥(Dub)의 삶에 역사하는 마귀의 능력을 꺾어 버리노라. 나는 그의 해방을 주장하노라. 나는 그의 구원을 주장하노라."

나에게는 그것이 해결되었습니다. 10일 이내에 그가 거듭났습니다. 내가 15년 동안 그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반복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벌떡 일어나자마자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계시적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역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씀을 연구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계시적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섭취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따라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말하는 바를 깨닫지 못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말씀을 먹고, 계속적으로 말씀을 연구한다면 조만간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시는 바가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영에,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순간적인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내던지거나 포기해 버린다면 당신에겐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진리들이 우리의 영의 의식에 새겨졌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교회 일반이 그것에 대해서 뭔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저 다른 어떤 이름을 사용하는 것처럼 합니다. 그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의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그 이름의 사용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의 놀라운 이름 중에서....

보석으로 지은 신앙의 집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57:9)



성경에는 “보석으로 우리의 신앙의 집을 지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보석은 우리를 아름답게 하고생활을 즐겁게 합니다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보석이란루비나 에메랄드 같은 보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를 의미합니다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아홉 가지 은사가 곧 보석입니다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그리고 아홉 가지 은사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지식의 말씀의 은사영분별의 은사방언의 은사방언 통역의 은사예언의 은사믿음의 은사가적의 은사병 고치는 은사이렇게 아홉 가지의 은사입니다이와 같은 은사들이 보석과 같이 성경 안에서 반짝이는 것입니다.

보석으로 집을 지으라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성령의 역사에 두라는 뜻입니다사람의 힘으로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죄를 피할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고 거룩한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사 우리를 도와 주시도록 하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 1:5)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절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함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그 날 이후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성령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마치 바람과 같아서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며 모셔 들이고 의지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사로 잡아 죄를 이기고의를 이루게 하시며우리의 삶이 거룩하게 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님께서 우리를 점령하고 계실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에 아홉가지의 열매와 아홉가지의 은사의 찬란한 보석으로 단장시켜 주어서 우리의 삶을 풍요하고 아름답고 찬란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보석으로 신앙의 집을 짓는 사람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가장 큰 축복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고린도전서 3:12,13)
오늘의 Daily Bread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


기도 -
좋으신 하나님우리의 영의 눈과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신앙의 단계를 성실하게 밟아 승리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