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2011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마도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가 오직 위급한 상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위험이 닥치거나 질병이 엄습하거나 무엇이 부족해지거나 난관에 봉착하면 그때서야 기도한다.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시도록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방출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을 변경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파리함'을 자초한다. 그는 자기 뜻에 합한 대로 기도를 드려 응답받고 그 괴로움으로 저주를 받는다.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다. 물론 '구한다'라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기도가 갖는 매우 귄한 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의사소통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과 이야기를 함으로써 그 사람을 파악하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다.

기도가 가져오는 가장 귄한 결과는, 악에서 건짐을 받거나 몹시도 열망하던 것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의 더 많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최선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 목말라 있는 영혼, 오직 하나님만을 갈구하는 영혼을 드러낸다.

믿음을 빼앗는 2가지 바이러스를 퇴치하라!

게네사렛 땅으로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왜 즉시 물에 빠졌는가? 그것은, 그가 파도 때문에 그의 믿음의 능력을 물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주님에게서 눈을 떼고 주변의 물을 보았을 때, 그는 가라앉기 시작했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14:30)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의심을  품어서도 안 되고, 마음속에 두려움을 들여서도 안 된다.
의심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이 영웅적인 태도라고 착각하지 말라.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 수준 높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 이러한 착각은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약함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히브리서 기다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10:35)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단순한 믿음으로 날마다 매 시간마다 무거운 짐을 주께 맡기면 두려움과 불안,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이것이 의심과 불신앙에서 나오는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걱정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이것이 모든 이해를 초월하여 마음과 생각을 평안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 모두는 "형제들아 너희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3:12) 라는 히브리서의 교훈에 주목하고 따라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적을 경계하듯이 불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다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믿음이 자란다. 무엇보다도, 믿음은 기도를 열심히 할 때에 크게 성장한다,

성령의 7가지 흐름(성령께서 만들어내는 영적인 흐름)

1. 성령의 흐름은 진리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어야 한다. (소리내서 읽는 것이 좋다.)

2. 성령의 흐름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성령님도 "사랑의 영"이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갈 5:22) 그리스도인의 모든 동기는 사랑이여야 한다.

3. 성령의 흐름은 거룩이다.
귀신의 영은 더러운 영이지만, 성령은 "거룩한 영"이시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음란과 모든 더러운 것을 떠나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흐름을 타려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4. 성령의 흐름은 온유와 겸손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마음이다. 성령님은 겸손하고, 온유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따르려면, 교만과 혈기를 버려야 한다.

5. 성령의 흐름은 지혜와 분별이다.
성령은 "지혜의 신"이시다. 성령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시며,  "지혜와 계시의 영"이시다. 영을 분별해야 한다. 예언, 입신, 간증 등 아무것도 함부로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성령의 흐름을 제대로 타려면, 지혜와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된다.

6. 성령의 흐름은 예의와 질서이다.
귀신의 영은 반말하고, 욕하는 점쟁이와 같다. 그러나 성령님은 사람을 무례하고, 버릇없게 만들지 않으신다.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흐름을 바르게 타려면,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7. 성령의 흐름은 성령의 열매이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이다. 성령의 열매는 주님의 성품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흐름을 바르게 타려면, 진심으로 주님을 닮기 원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성령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출처: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내가 여기 있다"

어느 곳에 할아버지와 어린 소년(少年)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할아버지는 나무가 울창한 삼림(森林)을 돌보는 관리인(管理人)이었습니다.

어느 가을 저녁, 소년은 장난감 총을 들고 강아지와 함께 오솔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년은 무작정(無酌定) 숲을 헤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자 소년은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깜깜해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할아버지”하고 소리쳐 불렀습니다. 그랬더니“여기 있다”하시며 할아버지가 소년의 뒤쪽에서 걸어나오셨습니다. 그 순간 소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安堵感)을 느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년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계속 손자(孫子)를 뒤따라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때때로 전에 해보았던 일보다 더 어려운 주님의 사역(使役)을 책임(責任) 맡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앞에서 혹은 뒤에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4)

복있는 그리스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