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2009

교회에 들어서는 미운 물건!

1994년 12월, 인도 델리(Delhi)에서 10만명의 영적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제7회 세계종교 회의가 있었다. 여기에는 52개국의 기독교, 정교회, 가톨릭, 모슬렘, 힌두교, 유대교 등 1,200여명의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참가하였다.(여기엔 한국기독교 목사 세 사람과 국회의원 두 사람이 참석하여 우리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국기독교를 단일종교회에 가입시켜 버렸다.) 그리고 서명한 것이 단일종교회(United Religion Organization-URO)이다. 기독교가 여러 종교와 연합하고 UN에 가입된 것이 여자가 일곱 머리(G-7)와 열 뿔(CFR) 가진 짐승(UN)을 탔다는 말이다. 

단일종교회는 UN 산하기구로 등록 되어졌다. UN이 종교를 단일화 시키려는 목적은 바로 우상숭배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성서적인 신앙과는 모순되는 견해를 보이며, UN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범신론자들이 바라는 우상을 신으로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 멀지않은 미래에 지구의 주민들은 그것에게 예배하고 그것의 도구가 되어서 그 우상에게 헌신하는 꼴이 될 것이다. (계13:8)

단일종교회(URO)는 남아프리카 Cape Town에서 1999년도 세계종교총회에서 결의된 종교문제를 UN에 넘겼다. UN이 단일정부를 만들기 위한 신 세계질서(New world order)에서 ‘새 비법(New mystic)’으로 교회를 활용해야 된다면서 추천한 ‘로버트 물러(Robert M?ller)’라는 인물은 전에 UN부 사무총장으로 있었던 사람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예배하는 교회 안에 UN기를 세우게 하고, UN기를 세우는 교회는 UN이 공인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지구에 다시 온다면, 먼저 UN을 방문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소원이 인류가 하나 되는 것이기에 UN에서 그 일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That people the world over should display the UN flag in all houses  of worship, that the UN represents the body of Christ. If Christ came  back to earth, his first visit would be to United Nations to see if his dream of human oneness and brotherhood had came true.)

다니엘은 “또 잔포하여 미운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단9:27)” 또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마24:15,막13:14,눅21:20)하셨다.” 이것을 세분하면 주의 양 무리들을 인도하는 목사들 중에서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사상, 곧 Cyber culture에서 적용되는 Biochip을 받고 UN기를 강단에 받아드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예배하는 교회 안에 UN기를 세우도록 하고,(That people the world over should display the UN flag in all houses of worship,)Worship이라는 단어 앞에 Houses는 일반 가정이나 집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므로 ‘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었기에 세계의 모든 곳에서 예배하는 장소에는 가정이던 직장이던 어떤 형태로던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에 UN기를 세우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교회 안이라고 명시하였기 때문에 교회의 지성소란 의미를 갖는 강단에 UN기를 세우는 것이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UN(Flag)가 미운 물건이며 가증한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지구주의자(Globalist)들이 단일 세계정부를 만드는 모체로 UN을 활용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G-7, NATO, UNESCO, CFR, TC,  GATT, WTO, 등 많은 국제기구들을 UN산하에 두고서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신 세계질서=New world order(라틴어; Novus ordo seclorum)를 진행시키는 것이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자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물건이 날개를 위지하여 설 것이며, (단9:27)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24:15)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17:4)

다니엘은 거룩한 곳에서 제사(제박)와 예물(민차하)을 금지한다고 기록하였다. 마태와 요한은 ‘거룩한 곳(장소)’이 아니라 ‘거룩한 성도들’이라고 복수로 기록하였다. 가증한 물건에 대하여 마태는 아주 더러운 우상(βδλυμα)으로 기록하고, 요한은 βδλυμα의 소유격 복수 브데루그마톤(βδλυμτων)으로 기록하였다.

두 가지에서;
첫째는: 거룩한 성소인 강단에 UN기라는 미운 물건이 세워진다는 의미로 보이고,
둘째는 : 거룩한 성도들이 VeriChip이라는 미운 물건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17:5)

이마에 기록되는 이름이 사단의 것이란 표시다. 기록되는 이름은 비밀이므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표시이다. 표를 주는 주체는 큰 바벨론이요,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다. 가증한 것에 대하여는 앞에서 업근했듯이 강단에 세워지는 UN기라 하였고, 또 사람에게 주어지는 지구신분번호가 되는 VeriChip도 UN의 이름으로 줄 것이고, UN이 지구정부 집권부가 되기 때문에  UN이 가증한 것들의 어미(모체)가 되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 17 4절에서 여자로 묘사되는 교회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이 입혀진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단이 주는 옷이다. 성도들이 거듭나면 흰 세마포 옷을 입히듯이, 거듭나지 못하고 벌거벗고 있었던 신자들이 짐승의 표를 받으므로 인하여 자기를 사단에게 굴복시키는 행위이며 경배라는 프로스쿠네오(προσκυνω)이다. 이런 사람에게 사단이 붉은 옷을 입혀준다. 그리고 자주 빛 옷을 입었다는 뜻은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을 죽는데 넘겨준 피의 마름이다.(17:6)

교회가 미운물건을 수용할 때 목사는 UN 산하단체인 단일종교회(URO)로부터 성직자격증을 받아야 목회를 할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몸에 받으면 그 순간 자신의 의지를 사단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이때 사단은 그 사람에게 붉은 빛 옷을 입히고 이마에 사단의 것이라는 표시를 하는데 그것이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짐승의 표만은 받지 말아야 한다. 

UN기를 세우는 교회는 UN이 공인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하고,(That the UN represents the ‘body of Christ,) Represents는 여러가지 뜻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나타낸다’는 뜻이므로 UN이 교회를 장악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UN기를 강단에 세우는 교회는 UN이 공인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 받는다고 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정할 권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누구도 권한이 없다. UN기를 세우는 교회의 목사는 UN에서 성직자에게 임명장 같은 인가서나 자격증 같은 것을 주어서 ‘UN을 위해 봉사하는 목사’로 인정하며, 따라서 그런 교회는 UN이 공인하는 교회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대하여 1994년 12월에 인도 델리(Delhi) 제7회 종교지도자들이 단일종교회(United religion organization-URO)를 만들 때, ‘성직자의 수임(受任)에는 UN의 공인을 피할 수 없이 받아야 된다’고 하였다. 세계의 모든 교회는 목사이던 사제이던 UN으로부터 성직에 관한 임명장 같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Certificate를 받는 성직자는 교회의 강단에 UN기를 세워서 UN이 공인하는 교회임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다. UN이 인정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Body of Christ)'이라고 명시한 것을 보아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를 박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얼마나 많은 교회가 UN으로부터 인정 받으려고 할까? UN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을 미혹시킬까? 지금도 짐승의 표를 상징이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그때가 되면 UN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VeriChip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속이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하겠는가? 또한 자신을 위대한 목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가짜 박사학위까지 받고 행세하는 사람들이 UN의 이름으로 주는 임명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교회)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17:6)

얼마나 많은 교회가 UN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려할까? UN으로부터 인가받은 교회라고 얼마나 자랑할 것인가? UN 제0000호 목사, UN 제0000호 교회라며 명함이나 광고로 자랑하지 않겠는가? 거짓교회가 되어서 얼마나 많은 성도들과 대환란 사역자들을 죽이겠기에 피에 취한다고 경고하였겠는가?

만일 그리스도가 지구에 다시 온다면, 먼저 UN을 방문할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소원이 인류가 하나 되는 것이기에 UN에서 그 일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If Christ came back to earth, his first visit would be to the United Nations to see if his dream of human oneness and brotherhood had came true).

그들은 ‘만일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먼저 UN으로 올 것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중대한 음모가 담겨진 표현이다. 그 음모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이 전에 세상은 일차적으로 대격변이 있어야 된다고 성경은 교훈한다. 이러한 큰 격변후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가 혼돈(Chaos)된 상황 중에 적그리스도 정부 통치자가 나타나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속여야 된다. 그리스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지만, 인간인 지구 통치자는 시공간을 초월할 수 없으므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또한 실제로 UN이 세계의 중심기구로 되어있게 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 정부 통치자가 UN에서 자신이 메시야라고 거짓을 행세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UN에 온다고 인식시켜야 되겠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교단이나 신학교라는 의미는 없어진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 정부 통치자의 강령만을 강론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그러한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은 적그리스도 정부가 강요하는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앞날을 내다 본 ‘제랄드 바니(Gerald Barney)’는 단일종교회가 시작될 때, ‘종교는 반드시 죽는다’ 면서, 종교가 멸망될 때, ‘두 갈래 길에서의 선택은
ⓐ, 하나님이 만드신 대로 정통신앙을 입증시키며 사람다운 도리에 맞게 올바로 견디는 길과.
ⓑ, 앞으로 나타나게 될 음녀의 사람이 되며 그것을 따르는 길뿐이다’ 라고 하였다.

창조론 대 진화론 -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권위 (Authority)

하나님 말씀의 권위 대 인간 의견의 권위
이것이 최우선적인 문제이다. 여타의 문제들은 작거나 크거나 모두 이 문제와 연관된다. 우선, 우리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 말씀은 과연 인간의 의견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측면부터 정립해 둘 필요가 있다. 아래 표는 이 두 화두간에 존재하는 주요한 상충점들을 개관하고 있다.

'인간의 의견' 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우리는 인간의 '기존의' 역사관을 정립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이 기존의 인간 역사관을 옳다고 가르친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그 다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 ' 라는 화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어쨌거나, 창세기 1장에서 11장의 내용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구구하게 많은 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 문제의 판단을 돕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기준들을 적용하려한다.

1. 가능한 최고의 번역을 통하여 원문이 뜻하는 일차적이며 솔직하고 자연스럽고 명백한 의미를 파악한다.


2. 히브리어 원문이 의도하는 의미에 대한 언어학자들의 압도적 의견일치를 확보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일반화된 세속적인 의견과 원문을 '조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도출하려 기도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James Barr 교수는 세계의 유수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들 가운데 창세기 1-11장의 저자의 의도가 글이 읽히는바 그대로 단순하고 솔직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교수는 없다고 썼다. 다시 말해서, 전 지구적인 홍수, 보통 날짜로서의 엿새, 모든 사람들은 참 사람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라는 점, 모든 사물의 시작 때부터 기록하는 연대기 (chronology)로서 작성된 가계혈통, 등등.

신약성경도 창세기 초두의 몇 장에 말씀들을 가감 없이 솔직한 이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요컨대, 일반화된 성경외적 세속적 의견을 무시하고, 종교개혁 이후 시기에 있었던 모든 유서 깊은 해설에서 볼 수 있는 바대로, 무엇보다 먼저 성경적인 판단기준만을 사용하려한다.


중요한 불일치 점 (모두 20 여 가지가 넘는다.)
 주제
하나님의 말씀
사람의 의견
출현한 순서
태양 이전에 지구,
물고기 이전에
과일나무

지구 이전에 태양,
과일나무 이전에 물고기

최초의 사람
흙으로부터
직접 만들어짐

이전에 있었던 동물의 후손
창조에 걸린 시간
만물은
6
일 동안 창조됨

모든 것은
광대한 시간에 걸쳐 나타남

죄의 심판으로서
노아의 홍수

전 지구적인 홍수
지역적인 홍수
죽음, 폭력,
고통, 피흘림
(
사람과 동물)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함

아담 이전에 이미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 존재

사람의 타락과 저주
피조물 모두에게 영향
사람 이전에 이미 수 십억 년 동안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함으로
신음함.(8)

여기에서 기독교인는 다음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

1. 일반화된 세속적인 관념을 포기한다.
2. 성경에 대한 믿음을 포기한다.
3. 인간의 의견과 조화를 기도한다.
 

성경의 무오성 - 성경의 무오성에 관해서 수없이 많은 의견들이 피력되었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은 대부분 자명하다. 간단히 말해서, 만약 성경이 얼마쯤은 진리를 얼마쯤은 오류를 담고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오류인가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하나님이나 기독교 또는 예수님에 관해서 무엇을 어떻게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어쩌면,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명제도 하나의 오류일는지 모른다.

'A는 非A가 될 수 없다' 라는 논리의 기본법칙을 어기면서까지 진리를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로 분리하려는 기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죽은 예수는 몸으로 살아났든가, 아니면 살아나지 않았다. 살육행위가 아담 이전의 세상에도 있었든가, 아니면 없었다. 그리스도는 영적 형태로 즉 실존적으로는 진공형태로 인간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의 장구한 혈통의 일부분으로 치밀히 펼쳐놓은 역사의 구조 속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기독교적 신앙이 신임을 받으려면, Schaeffer가 호칭한 '역사와 우주'의 본질에 관해 성경이 언급하는 대목은 반듯이 진실이 틀림없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일을 말할 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나라의 일을 말할 때 믿을 수 있겠는가? 라고.

참 성경에 대한 신앙은 과학 교본이 진리로 인정하는 계시만을 철저하게 주장하여야 한다는 뜻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본성 (The Nature of God)
이 질문은 '신'이 진화의 기능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였는가 하는 명제이기보다는 하나님은 성경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하셨고, 또 심지어 창조하실 수 있었으며,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명제다.

1. 하나님의 선하심 - 하나님은 창조하시기 위해 죽음과 투쟁을 이용하셨을까? 또 죄가 이 세상에 등장하기 이전부터 고통의 오랜 세월을 통해서 강자가 약자를 쓸어버리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살육으로 얼룩진 세상을 보시고, 그런 폭력의 정점에 있는 세상과 또한 병고에 찌든 인생살이를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셨을까?

2. 하나님의 진실하심 - 만약 하나님께서 진화의 기능으로 창조의 사역을 하셨다면, 실질적으로 모든 성경 독자들을 역설적인 인상으로 압도하면서 말씀 중에 사람들을 오도하셨을까?

하나님의 기적 사역의 능력과 지혜.  창세기적 창조를 부정하는 사람은 복음서의 기적들도 동반해서 부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일 수 없다. 만약 어떤 신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하여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 '인과절차(因果節次)'를 밟아야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없이 많이 막다른 골목과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뒷골목과 마주친다면, 그런 신은 오랜 동안 시신으로 있던 사람을 눈 깜작할 사이에 되살리고,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떡과 물고기를 '無로부터 (ex nihilo)' 창조하고, 지구의 중력을 부정하듯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신은 결코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성경적인 우주의 구조 (The Framework of Biblical Cosmos)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리고 하셨던 세상이 아담의 죄로 인해서 망가졌고 저주를 받아 신음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죄도 죽음도 없는 천국으로 회복될 것이다. 창조/타락/회복이라는 구조는 히브리어나 희랍어 원문의 곡해(曲解)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신 구약의 조직을 통하여 상세하게 짜놓은 구조다.


복음서의 논리적 기초 (The Logical Foundations of the Gospel)
십자가가 있어야 했던 진정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 (Fall) 때문이다. 최초의 참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죽음이 왔지만, 두 번째 참사람으로 인해서는 죽음에서부터 부활이 왔다. 아담의 죄와 죽음으로의 타락이 없었다면, 왜 그리스도가 죽어야만 하는가?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 거대한 간극을 만들어버린 역사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왜 속죄의 피가 필요하겠는가? 복음서에 대한 설교와 일반화된 세속적 세계관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논리적 모순들은 진화론 사상이 야기한 여러 문제점들에까지 연결된다.


복음주의 (Evangelism)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2)' 이 말씀은 아름다운 말씀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있었던 것으로 (그래서 죄의 응보는 있을 수 없다), 사람은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고 진화된 원숭이 이라는 것으로, 성경은 출애굽기 20:11 (엿새 동안에 내가 모든 것을 만들었으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분명히 신화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으로, 죄를 범하는 행동은 동물을 조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그리고 어쨌거나 이런 말들을 담고 있는 성경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임하지 않는 문화에서 위의 말씀은 무슨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호교론 (護敎論, Apologetics)
베드로는 우리들을 보고 '소망을 가져야할 이유' 즉 신앙을 지켜야할 이유를 설명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엄청난 공격으로부터 우리가 꼭 지켜야할 가장 큰 대목은 창세기 내용에 대한 것이다. 창세기는 기원에 대한 책으로서 기독교 교리의 모든 구조적인 기초를 직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 기독교 교리의 논리적 근거인 이 기초를 파괴하면, 기독교 교리의 구조는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다.

진화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 바울은 창조설계의 증거가 너무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 어린이들은 자연의 설계를 설명하는 데 설계자의 존재가 필요치 않다고 배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 근본적으로 무신론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의 배후에 있는 동력(dynamic)은 모든 사물은 제 나름의 인과법칙과 고유특성을 지니고 존재한다고 설명하려 한다. 창조된 순서대로 초월적인 하나님의 기적의 간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배 (Worship)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로부터 경배와 영광, 그리로 권세 (power)를 받으실 자격이 있다고 일러준다. 바울은 피조물 그 자체를 숭배하기 위하여 창조주에 대한 예배를 포기한 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진화론의 일관된 사상에 의하면 창조에 대한 영광을 받을 자를 '자연' (자연을 창조력으로 보고)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와 윤리 (Society and Ethics)
죄야말로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사회에서는 진화론이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을 거부하는 데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 적나라한 예를 우리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사회를 풍미하던 일관된 진화론 사상에서 보았다. (비록 크리스천 사회에서 있었던 종교재판과 십자군의 잔학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세계관은 진화론적 세계관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대조적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서방사회의 많은 과학자들조차 정신박약자와 유전병약자들의 제거정책을 '과학적으로 계몽된' 정책이라고 떠받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무법행위 (우리를 소유할 자가 없으니 우리를 지배할 자도 없다), 임신중절 (결국 우리들은 너나없이 모두가 동물이다), 결혼의 파탄 (결혼과 이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언제나 창세기에 기록된 역사적 근본까지 소급한다), 그리고 더욱 대담하고 노골적인 동성간의 성행위, 이 모든 사회적 병폐들은 반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키워온 이 사회가 걷어 들이게된 당연한 결실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하심!

1) 자연 만물에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아래①~⑩ 가지 예를 보더라도 과학이나 의학이나 인간이 설명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없다고 핑계할 수 없다 하셨다. (로마서 1:20)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
①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돌고 있는것.
②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현재보다 더 가깝거나 더 멀면?
③ 지구와 달의 거리가 현재보다 더 가깝거나 더 멀면?
④ 나무와 풀이 탄산가스를 흡입하고 산소를 내뿜는 양
⑤ 지구에서 1초당 1,600톤의 물이 수증기로 올라가 비로 뿌려짐
⑥ 물이 얼면 가벼워져서 뜨는 것
⑦ 90m 높이의 나무에 물이 올라가는 것
⑧ 새나 고기들의 먼 거리 회귀
⑨ 수많은 얼룩말, 펭귄 새끼들이 어미를 알아보는 것
⑩ 물총고기가 풀잎의 곤충을 물을 쏘아 떨어뜨려 잡아먹는 것


(이사야 40: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것들을 창조하였으며, 그들의 군상들을 이끌어 내셨는지 보라. 그가 그들의 이름을 그의 막강한 위력으로 모두 부르시나니 이는 그의 권세가 강하고 하나도 부족함이 없으심이라.

(이사야 45:5-7)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모를지라도 내가 너를 띠로 동였노라. 사람들이 해가 뜨는 곳과 서쪽에서부터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되리라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얼음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 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이사야 45:12) 내가 땅을 만들었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펼쳤으며, 내가 그 모든 군상들에게 명하였도다.

(이사야 45:18) 하늘들을 창조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하나님은 스스로 땅을 조성하고 만들었으며, 그는 그것을 견고히 세우되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였으니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2) 사람안에 하나님을 아는(알려진)것이 명백하다.
(로마서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나타나 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음이라.

① 하나님 자신(을)의 형상을 따라{첼렘-닮은} 모양대로{데무트-같은 모양}으로 사람을 만드셨다.(창세기 1:26).
(에스겔 1:26)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창공 위에는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사파이어의 모양 같고 보좌의 형상 위에는 그 위로 사람의 모양같이 생긴 형상이 있더라.

(빌립보서 2:6-8) 그는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탈취라 생각지 아니하셨으나 오히려 자신의 영예를 버리고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느니라.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까지라.

(히브리서 1:3)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며 그분의 실체의 형상이시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며,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 있는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니

* 식물 뿌리-아래로/ 고기, , 동물 머리-옆으로/ 사람 머리-위로

② 사람을 몸과 혼과 영으로 만드셨다.(창세기 2:)
(
아사야 57:15-16)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항상 진노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 영과 내가 지은 혼들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라. 그의 탐욕의 죄악으로 인하여 내가 진노하여 그를 쳤으며, 내가 나를 숨기고 진노 했으나 그가 자기 마음의 길을 완고하게 갔도다.

(이사야 43:15,21) 나는 주요, 너희의 거룩한 분이며, 이스라엘의 창조주요, 너희의 왕이니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조성하였나니 그들이 나의 찬양을 나타내 보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때까지 책망할 것이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노라. * 사람이 원숭이에게서 진화되었다 하나 원숭이들 하나님 예배 않음

③ 과학, 의학, 인간은 인체의 신비를 100만 분의 1도 알지 못한다.
* 사람의 몸(뼈와 근육과 살과 피부), 호흡작용, 혈액순환, 대사작용배설작용, 골과 신경, 감각기관, 생식작용, 호르몬 작용, 유전법칙.

하나님을 더듬어 찾도록 멀리 계시지 않으시다.(사도행전 17:27)
이사야 45 5-12, 18-19절 창조주 하나님과 싸우는 자 화 있다 하셨다.

(시편 104:24) 오 주여, 주께서 하시는 일들이 얼마나 다양한지요주께서 그들 모두를 지혜로 지으셨으니 땅이 주의 풍요로 가득 찼나이다.

(이사야 45:5-10)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모를지라도 내가 너를 띠로 동였노라. 사람들이 해가 뜨는 곳과 서쪽에서부터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되리라.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조성하고 얼음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악도 창조 하나니 나 주는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너희 하늘들아, 위로부터 내리며 창공으로 의를 부어 내리게 할지어다. 땅은 열어서 그들로 구원을 내게 하고, 의도 함께 솟아나게 할지니라나 주가 그것을 창조 하였느니라자기를 지으신 분과 싸우는 자에게 화 있으리라땅의 질그릇들로 질그릇들과 싸우게 하라. 진흙이 만드는 자에게 "네가 무엇을 만드느냐?" 말할 수 있으며, 또 너희 작품이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 자기 아비에게 "너는 무엇을 낳았느냐?" 하거나 여인에게 "너는 무엇을 낳았느냐?" 말하는 자에게 화 있으리라.

(
이사야 45:12) 내가 땅을 만들었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느니라. 내가 내 손으로 하늘들을 펼쳤으며, 내가 그 모든 군상들에게 명하였도다.

(
이사야 45:18-19) 하늘들을 창조한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나님은 스스로 땅을 조성하고 만들었으며, 그는 그것을 견고히 세우되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였으니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땅의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나는 야곱의 자손들에게 "너희는 나를 헛되이 찾으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나 주는 의를 말하며, 나는 옳은 것들을 선포하노니.

2. 특별히 성경에 기록하여 말씀하셨다.(이사야 34장 16절)
무엇보다 성경에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며 영원하신 경륜이 무엇임을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이다.( 10:17) 예레미야 29:12-13절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하셨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함은 간절히 찾지 않기 때문이다.

( 34:16) 너희는 주의 책을 찾아 읽으라. 이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나의 입으로 그것을 명령하였고, 그의 영이 그들을 모으셨음이라.

( 29:12-13) 그때 너희가 나를 부르고 너희가 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에게 경청하리라. 너희가 너희의 온 마음으로 나를 찾으려 하면 너희가 나를 찾게 되고 나를 만나리라.

3.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
1)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시며 실체의 형상이신 예수님.(히브리서 1:3)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하나님)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셨다.(14:7-12)

2)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여 보내신 대로 말씀하셨음.(요12:49-50)
(데살로니가후서 1:8-9)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복음에 복종치{휘파쿠우신-아래에서(하급자로서)듣지, 주의 깊게 듣지, 명령이나 권위에 유의하지, 따르지} 않는 자들에 게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주실것이다.

바른복음 성경연구원 (http://www.cyworld.com/brbo91)

요한이 환상을 본 위치와 방법/우리의 영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임

[성경 말씀]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생명의 떡]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 여기에서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은 요한 계시록 1 19절에 말하는 장차 될 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요한 형제가 계시를 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장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것이며 요한 계시록 4 1절부터 22 5절까지에 기록된 사건을 말합니다. 이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 여기에서 내가란 요한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하였다는 말은 요한이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들은 이후에 취한 행동을 말합니다. 요한은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라고 하늘에 보좌가 베풀어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은 하늘로 올라오라는 말씀인데 신약 시대부터는 하늘에 올라가는 방법이 영 안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요한이 음성의 내용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하여 영 안에서 환상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보좌란 하나님의 보좌를 말하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영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말합니다이것은 야곱의 사닥다리와 같은 우리의 영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의 영 안에 오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장차 될 일을 보이기 위한 방법입니다

요한 형제님이 2절에서 말하는 성령에 감동 된 것은 주님을 깊이 생각함으로서 영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영 안에 들어가는 것은 야곱의 사닥다리를 통해 하늘에 올라가는 방법이 됩니다.  신앙은 우리의 생활이기 때문에 이 지식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세상으로 자꾸 나가려는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로 돌이키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 둠으로서 하늘에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장차 될 일을 보이신 방법을 말합니다. 요한 형제님은 장차 될 일과 하늘 보좌와 보좌 주위의 구조를 하늘에 올라가 본 것이 아니라 성령에 감동하여 자기 영 안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은밀하게 감추시고 그를 사랑하는 자들 속에 은밀하게 오셔서 아버지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 이제는 성전 된 우리가 죄를 끝내고 성전을 거룩하게 하여 항상 아버지와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뇌와 마음




사람의 뇌를 기능과 진화단계에 따라 일곱가지로 나눌수 있다. 즉 인간의 뇌인 신피질과 동물의 뇌인 고피질,생명의 뇌인 뇌간, 운동의 뇌인 소뇌,그리고 반사만을 되풀이 하면서 단순한 연락로가 되어버린 척수와 호르몬의 뇌인 뇌하수체로 나눌수 있다.

이중에서 마음의 창출에 직접 창출하고 있는 뇌는 신피질(대뇌 신피질) 고피질( 대뇌 변연계) 그리고 뇌간( 시상하부) 이다. 신피질과 고피질을 인간의 뇌와 동물의 뇌로 부르는 것은 그것이 지성과 감성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를 굳이 신피질과 고피질로 나누게 된 까닭은 신피질이 인간에게만 급격히 기형적이라 말해도 좋을만큼 발달한것이기 때문이다.

신피질의 역사는 불과 1 5천년이 고작이다. 하지만 신피질에 의해 인류의 지성은 싹이 트고 꽃이 피었다.신피질이 없었다면 인류는 그저 포유류에 머물렀을것이다.

이와는 달리 신피질이 비대해 지면서 대뇌의 밑부분으로 밀려나게 된 뇌가 고피질이다.인간 진화의 단계에 있어서 포유류 단계에서부터 있었기에 동물의 뇌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중에서도 대뇌 변연계는 인간의 대뇌변연계는 식욕, 성욕과 같은 동물에게서 볼수 있는 단순한 희노애락 같은 원시적인 감정과 운동신경을 관리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고피질의 기능을 제대로 쓰게 되면 감정에 끌려 다니는 게 아니라 감정의 에너지를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고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고피질보다 깊숙이 있는 뇌간은 진화단계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생명의 근본 영역이다.호흡,소화,생식계등 근본적인 생명기능을 비롯해 존재의 근간이 되는 욕구들을 발생시킨다.

이를테면 식욕이라는 개체보존의 욕구, 성욕이라는 종족보존의 욕구이다. 그래서 의욕의 뇌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의심은 신피질의 방어막이고 두려움은 고피질의 방어막이다.

그렇다면 뇌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깊은 무의식에서 작동하는 뇌간을 사람이 무의식을 통해 접근하기는 어렵다. 다만 명상과 최면이란 방법이 일부 사람들에게 전해져 왔을 따름이다.

무의식상태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뇌간이기에 잠과 가장 비슷한 상태에서 뇌간에 정보를 주어 불가사의한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최면 상태에서 사람들이 암시에 따라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든지 명상을 하는 요기들이 초능력을 발휘하는것이 다 이때문이다.

인체를 움직이는 근본 정보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일이 아니다.신피질의 방어막인 의심과 고피질의 방어막인 두려움을 떨쳐야 가능하다.

100
퍼센트의 신념이 아니고서는 뇌간은 열리지 않는다. 그 뇌간을 통해 생명의 무한한 잠재력을 알게 되고 우리 안의 자연 치유력도 의도대로 활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속에서 지와 정, 그리고 의는 다툼없이 조화와 균형을 찾는다. <자유인의 길>

하나님과 어린 양의 역할/보호하심과 목자 되심(역할 구분)

(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생명의 떡] -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명하심을 따라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기는 자들의 누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 대한 칭호와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 여기에서 그들이란 흰 옷 입은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라는 말은 흰 옷 입은 무리들이 서 있는 위치를 말합니다. 그 위치는 하나님의 보좌 앞입니다. 그런데 맨 앞에 그러므로 라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이 그러므로 라는 말은 본문 앞에 있는 사건과의 연관성을 나타내주는 말로서 13-14절에서 말하고 있는 흰 옷 입은 무리가 흰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흰 옷 입은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흰 옷 입은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설 수 있게 된 이유는 큰 환난 가운데서 연단을 받고 흰 옷을 입어 정결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 여기에서 그의 성전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말하고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그들이 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이 말은 흰 옷 입은 무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할 일을 말합니다. 흰 옷 입은 무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 여기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란 하나님을 말하고 그들이란 흰 옷 입은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막을 치시겠다는 말은 천막을 치시겠다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흰 옷 입은 자들의 집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천막생활을 하였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21 2-7절을 보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흰 옷 입은 자들에게 주시는 보상을 말합니다. 그 보상은 하나님께서 흰 옷 입은 이기는 무리에게 안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 방법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세세토록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 여기에서 저희란 흰 옷 입은 이기는 무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주리지도 아니하며 라는 말은 먹을 양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굶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씀이고 목마르지 않는다는 말은 마실 음료를 말하는 것으로서 목마르지 않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이 말은 흰 옷 입은 무리가 이 땅에서 살 때에 굶주리고 목말랐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고 육신을 위해 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위해서 살다보니 육적으로 궁핍하여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였고 마실 음료가 풍족하지 못하여서 굶주리고 목마른 삶을 살았던 자들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육적으로 가난하고 비천한 삶을 산 자들이 천국을 차지하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고 또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 된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굶주림과 목마름도 포함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두 방면이 있습니다. 육적인 굶주림과 영적인 굶주림이 있습니다. 목자들이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양식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 백성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다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 여기에서 해는 태양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살 때에 태양 빛의 뜨거움에 더러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뜨거운 기운이란 태양 외에 뜨거움으로 우리를 해할 만한 모든 것들을 상징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불은 심판의 불입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나 악한 자들은 유황 불 못의 기운에 상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로 부터 보호하시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 여기에서 이는 이란 그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16절에서 말하는 다시 굶주리거나 목마르거나 해할 것이 없이 보호 받는 이유를 말합니다.

17절의 나머지 모든 내용은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첫째로는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혜택입니다. 그 혜택은 다시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은 양식에 대한 두 방면 모두를 말한다고 봅니다. 육적인 모든 양식과 영적인 양식 모두를 말한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여기에서 하나님이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 이유는 17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혜택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희란 흰 옷 입은 이기는 무리를 말하고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위로와 보호를 말합니다.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아픔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억울함을 당하였을 때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혜택을 말합니다. 그 혜택은 보호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과 그 역할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 아들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들을 비유적으로 어린 양으로 따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상은 신약 전체에 이렇게 나타나 있고 그 서신들을 쓴 사도들의 사상과 그들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말해 주기도 합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집이 되셔서 안식을 주시며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안식과 위로와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좋은땅에뿌려진씨앗>

세계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생명의 떡]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명하심을 따라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아버지 집에 살 자들을 말하는데 그 중에서 본문은 천사들의 경배 중 경배 지식 능력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하면 크게 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는 창조이며 두 번째로는 만물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증거는 예언에 대한 성취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말하고 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어 빛과 어둠이 나뉘었고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니 윗물과 아랫물로 나뉘어 하늘이 생겼고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바다가 되었고 뭍이 드러나 땅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4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란 이와 같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요 전능하여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1 39-44절을 보면 베다니의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죽어 돌무덤에 장사 되었고 죽은지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났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야 나오라하고 부르시니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 한마디에 소경이 보며 앉은 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11:5) 이와 같이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달하다보니 전능하심과 이 세상을 섭리하심이 과학에 의해 밝혀진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의 메릴랜드 주에 있는 우주 관계 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과거 10만년의 태양과 달에 대한 궤도를 조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우주 과학자들이 궤도 조사를 하던 중 기계가 정지하였고 경고등이 켜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계장치를 관리하는 기사의 조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주 과학자들은 그 적신호의 원인을 면밀히 살펴보니 과거 중 하루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면밀히 살펴 다시 확인해 보아도 하루가 모자랐다고 합니다.

이것을 과학자들 머리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는데 며칠 후 전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던 한 청년이 일어나서 선생님 전에 저가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여호수아가 해를 중천에 멈춘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모두가 웃었으나 이 사실을 해결할 별 다른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의견을 모아 성경을 가져다가 자세히 조사해 보니 여호수아 10 12-14절에서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거의 종일토록 내려오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수아 10: 12-14절을 보니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아모리 족속의 전쟁은 치열한 전투였으며 날이 어두워지면 이스라엘이 불리하였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태양이 멈추기를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셔서 거의 하루 동안 해가 멈춘 사실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다시 돌려서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해 보니 23시간 20분이 정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40분이 모자랐답니다. 40분이라는 시차 또한 설명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설명할 과학적 근거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전에 여호수아 사건을 말했던 바로 그 청년이 다시 말했답니다. 선생님 성경 어디엔가 해가 뒤로 물러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 과학자들은 성경을 다시 조사하여 이 사건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열왕기하 20 8-11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 십도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40분에 해당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기도하여 해를 중천에 멈춘 23시간 20분과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가 회개하니 다시 살고 삼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증표로서 일영표의 그림자가 10도를 뒤로 물러가도록 하나님께서 해(시간)를 뒤로 되돌렸던 40분을 합하여 잃어버린 하루의 행방을 성경에서 찾아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달하다 보니 과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함이 없어서 때로는 해와 달을 멈추기도 하시고 날을 거꾸로 돌리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기사는 성경은 사실이다 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께서 만물을 섭리하시고 경영하신다는 증거가 되며 또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아야 하며 그분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마치 질그릇 조각 같은 사람이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대적하며 다툴 수 있겠습니까? 아래 글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한 질문으로서 곧 우리에게 하신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질문에 모두가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 38:1-41]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 하였었느니라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네가 나던 날부터 아침을 명하였었느냐 새벽으로 그 처소를 알게 하여 그것으로 땅 끝에 비취게 하고 악인을 그 가운데서 구축한 일이 있었느냐 땅이 변화하여 진흙에 인친 것 같고 만물이 옷 같이 나타나되 악인에게는 그 빛이 금한바 되고 그들의 높이 든 팔이 꺾이느니라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땅의 넓이를 네가 측량하였었느냐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광명의 처소는 어느 길로 가며 흑암의 처소는 어디냐 네가 능히 그 지경으로 인도할 수 있느냐 그 집의 길을 아느냐 네가 아마 알리라 네가 그 때에 났었나니 너의 연수가 많음이니라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광명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말미암아 땅에 흩어지느냐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비가 아비가 있느냐 이슬 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이 돌 같이 굳어지고 해면이 어느니라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네 소리를 구름에 올려 큰 물로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그것으로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누가 지혜로 구름을 계수하겠느냐 누가 하늘의 병을 쏟아 티끌로 진흙을 이루며 흙덩이로 서로 붙게 하겠느냐 네가 암사자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이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자 누가 있습니까?이 질문은 성경을 통해서 지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거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질그릇 조각 같은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또 누가복음 12 24-32절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라는 권면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섭리하심을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의 까마귀들은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기르시며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름답게 입히시며 들의 백합화를 보라. 실을 만들지도 않고 짜지도 않는데 이렇게 입히시는데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않느냐? 이 믿음 없는 자들아 이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주를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고 계십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그러나 오늘날의 믿는 이들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믿음에도 가짜가 많다는 말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대해서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워가는 일이 될 것이며 우리는 끝이 없는 영원한 삶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영원토록 배워도 다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그만큼 위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아주 조금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소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에 대해서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가 경험한 만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며 우리의 실제의 삶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시며 유일하신 참 신이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와도 비길 자 없으며 천지와 만물과 천사와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의 근본이 되시고 모든 것들의 시작이 되시며 끝이 되시고 창세전부터 계셨으며 창조 후 모든 인류 역사 속에 계신 분이시며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아들 안에서 아들과 함께 오실 분이시며 전지전능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능치 못함이 없으시며 무소 부재하여 아니 계시는 곳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전능하여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주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경배 드립니다.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좋은땅에뿌려진씨앗>

앞에 가는 양을 잘 따라가야 한다.

목자 옆에 따라오는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저 뒤에 따라오는 양들은 목자가 보이지도 않고 목자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목자를 따라가는가? 바로 앞에 가는 양들을 따라간다. 앞에 가는 양들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냥 생각 없이 따라간다. 그런데 앞에 가는 양이 구덩이에 빠졌다. 그러면 뒤에 따라가던 양이 “어 구덩이에 빠졌네” 그러면서 자기도 구덩이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안 빠져야지... 조심해야지... 다른 길로 가야지... 그것이 아니라 눈으로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고서도 자기도 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이 양이다.

2005
7월 터키에서 있었던 일이다. 26명의 목자들이 같이 양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모여서 아침을 먹고 있는 사이에 450 마리나 되는 양들이 벼랑에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에는 한 두 마리 양이 낭떠러지로 갔을 것이다. 그랬다가 잘못해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양들도 그 양들을 보고서 그들을 따라서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뒤에서 계속 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그러는 가운데 앞에 있는 양들은 밀려오는 양들에 의해 떠밀려서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었을 것이다. 목자들이 그들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양들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모든 양들이 다른 양들을 따라서 낭떠러지를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계속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었다. 이렇게 해서 낭떠러지에 떨어진 양들은 모두 1500 마리였다. 그런데 다 죽지는 않고 450마리만 죽었다. 처음에 떨어진 양들은 다 죽고, 나중에 떨어진 양들은 처음에 떨어진 양들의 시체가 수북히 쌓여서 쿠션 효과를 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 가는 양, 다시 말해 교회 지도자가 이렇게 중요하다. 지도자들이 목회자를 잘 따라가기만 하면 나머지 교인들도 다 잘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이 목회자를 따라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면 교인들도 그들을 따라 다른 길로 가게 되어 있다.

모든 교인들이 목회자를 보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가 따라갈 교회 지도자들을 정해 놓고 그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는 교회 리더들을 잘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교인들도 자신이 누구를 따라 갈 것인가를 잘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다. 잘못하면 같이 구덩이에 빠지는 수가 있다. 같이 벼랑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 같이 망하는 수가 있다.

종 단 양 -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온다고 했는데, 목자 바로 곁에 있는 양들만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간다. 나머지 대부분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 가는 양들을 따라간다. 그래서 앞에 가는 양들이 중요하다. 그들이 잘못 된 길로 가면 뒤에 따라가는 양들도 다 그들을 따라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을 보고 sheep이라고 부른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무조건 따라간다. 앞에 가는 양이 잘못해서 구덩이에 빠지면 그 뒤에 따라오던 양도 구덩이에 빠진다. 그러면 또 그 뒤에 오던 양도 구덩이에 빠진다남이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도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다. 이것이 양이다.

요르단의 와디 럼(Wadi Rum) 사막에서 사는 베두인 장막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만난 베두인은 양과 염소 합쳐서 40여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의 양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었다. 다른 양들은 그 양이 가는 곳마다 방울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양은 그 양떼의 리더였던 것이다

요즘에는 종 달아줄 양을 어렸을 때부터 나귀 옆에 따라다니게 하면서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목자와 나귀, 그리고 종 단 양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양떼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목자가 없을 경우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만, 양들은 종 단 양을 따라가고, 종 단 양은 나귀를 따라간다고 한다

목자가 리더 양의 목에 방울을 달아주듯이, 하나님께서도 교회의 리더들에게도 이런 방울을 달아주셨다. 교인들은 그들의 방울 소리를 듣고 그들을 따라간다. 사실상 양(교인)들 가운데는 목자(목사)를 따라가는 양보다는 다른 양(교회 리더)을 따라가는 양이 훨씬 많다. 앞에 가는 양을 따라가는 것이다. 앞에 가는 양이 잘못 가면 뒤따라가는 양들도 잘못된 길로 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들이 중요한 것이다.

만일 종을 달아준 리더 양이 잘못된 길로 가면 다른 양들도 다 그 양을 따라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그 양이 벼랑에 가서 자살이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다른 많은 양들도 그날 장례식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 목에 종을 달아주느냐가 중요하다.

종 단 양들이 목자의 역할을 대신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양은 양이다. 종 단 양이 목자가 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종 단 양도 목자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종 단 양들은 자기가 목자인줄로 착각을 한다. 그래서 목자의 보호와 인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목자의 돌봄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목자로부터 독립하려고 한다. 목자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이 목자가 되어 다른 양들을 인도하려고 한다. 자신을 목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종 단 양도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종단 양들은 자신이 양들의 리더이지, 목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이 양을 인도하다가는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된다. 다 같이 길을 잃게 된다<이진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