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2011

기도의 사람 "한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한 법령 - 데이빗윌커슨

기도하는 자들은 지옥의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기도를 막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짓을 다 벌입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과 벨사살왕의 통치 시에 자신의 기도가 얼마나 효력을 발휘하는지 입증한 바 있습니다. 이제 다리오 왕 재임 하에서 사단은 다니엘의 기도를 막기 위한 거대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의 기도가 지옥을 너무나도 흔들었기에 화가 난 마귀는 다니엘을 쓰러뜨리기 위해 바벨론 정부 전체를 동원했습니다.

다니엘이 그 나라에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높은 자리에 늘 임명됐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정치가들은 다니엘에게서 지혜, 존경심, 왕의 총애를 보았고 이를 시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니엘을 대적해서 모함을 꾸몄습니다.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4).
 
다니엘에게는 흠이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정치가들은 단 한가지 죄목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다니엘에게 찾아낼 수 있는 죄목이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단 6:5). 오늘날 우리들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하나님께 들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정치가들은 다니엘이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총애를 받는 이유가 이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기도를 멈추게 할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그들이 기도할 시간이 없도록 다니엘을 바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니엘과 같은 총리 중 한 사람은 중요하면서도 총리로서 관여할만한 일에 다니엘을 끌어들였습니다. 너무 바빠서 다니엘이 기도할 시간이 없도록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단이 성도들에게 사용하는 주된 장치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음모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목사님에게 왜 기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시간이 없어서라고 답할 것입니다. 목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목사님들이 남는 시간은 아마도 설교 준비하는데 다 써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또한 같은 유혹에 말려듭니다. 사람들은 "기도할 시간이 너무 없어요. 일하다 보면 시간이 전혀 안나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주부들도 그렇습니다. "낮에는 기도할 틈조차 없어요. 애들 옷 입혀서 학교 보내고, 집 청소하고, 식사준비하고 하다 보면 남는 시간이 없어요."
 
소렌 키에르케가드라는 철학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주함은 마약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분주함은 결국 두 마음을 품게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분주함 속으로 깊이 빠져들수록 진리에 대한 사랑은 점점 더 까마득히 사라져 갑니다. 해야 하는 일들에 점점 더 자극을 받고 시간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증가하면서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있는지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은 있지만 그 거울에 뭐가 비치는지 볼만큼도 거울 앞에 서 있을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기도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사람이 죽을 병에 걸린 사람보다 더 심각한 지경에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점점 더 자기 상태에 익숙해져 갑니다. 따라서 점점 더 기도도 안하게 되고 하나님도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확신은 점점 더 희미해져서 나중에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도 없이는 자신이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더 많은 일을 그에게 쏟아 붓듯 할 때도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도 그 다음 줄거리는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30일 동안 기도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표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 한 사람을 겨냥한 법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다니엘은 지옥을 흔드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자굴에 갇혔습니다.
 
다니엘이 도대체 어떤 동기로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는지 의아해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형 언도가 바로 코밑에 닥쳐온 상황에서도 다니엘로 하여금 계속해서 기도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84세의 노인은 그 시대의 교회들도 더 이상 찾지 않는 하나님께 왜 그의 마음을 그다지도 격렬히 쏟아 붓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요?
 
다니엘이 기도에 자신을 드리기 위해서 드렸을 노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그의 시대에 현재의 뉴욕과 같은 도시, 크고 웅장하며 부유한 바벨론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술취함, 쾌락추구, 탐욕으로 특징지어지는 영적 무감각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다니엘을 포함해서 그 누구에게도 기도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은 시작하기는 쉽지만 지속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육과 마귀는 기도를 방해할 음모를 합작해서 꾸미고 있습니다.  

상상력의 활용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100:4)



인간의 상상력은 인간을 위대하게도 만들고 처참하게도 만듭니다고상한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은 고상한 인격자가 되고 성공의식으로 꽉 들어찬 사람은 성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며질병과 가난과 공포를 밤낮 상상하는 사람은 오래지 않아 병에 걸리고 가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의 가장 큰 적은 상상력을 부패하게 하는 요소들입니다인간의 상상력이 부패하여 공산주의가 나오고 극악한 범죄가 나오며 가난과 질병이 나오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오늘날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상상력을 먼저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 속에 모시면 우리의 상상력이 달라집니다부정에서 긍정으로절망에서 소망으로죄악에서 거룩한 삶으로 상상력이 달라져 갑니다.

우리 한국 민족은 근면하고 성실하고 착하지만 상상력이 너무 부정적으로 왜소합니다언제나 침략당할 것을 생각하고흉년 들 것을 생각하고가난할 것을 생각하며 열등의식에 눌리어 다른 사람을 선도하겠다는 생각을 못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을 복음화하여 한국 사람들과 생각과 상상력을 바꾸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 부요를 생각하고 승리를 생각하며 소망을 생각하는 이러한 민족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상상력은 현재의 환경과 그 위치에서 위대한 내일을 창조할 힘과 재료를 제공하여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제부터는 패배 대신에 승리를 상상하십시오실패 대신에 성공을 상상하십시오우리의 가족이 구원받는 것을 상상하고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십시오병든 자는 건강해진 모습을그리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공장이 재건되어 일어서는 모습을 그리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꿈과 목표와 상상력이 없는 사람입니다이런 사람은 짐승과 다를 바 없어서 그들의 장래는 불탄 재처럼 바람에 날려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상상력을 통하여 이미 성공하여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그것을 소유할 때 여러분의 능력이 최대한도로 발휘될 수 있으며 마음 속에 그것을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열정적인 소원이 일어나서 마침내 소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오늘의 Daily Bread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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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변화시키는 축복-
어느 자매님의 남편은 광산에 정신이 팔려서 봄부터 가을까지 산에서 살고 겨울에만 잠시 집에 들어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는 물론 안부전화 한번 없는 무심한 남편이었습니다.

혼자 집안을 꾸려나가려니 너무 힘이 들어 자매님은 가는 곳마다 남편 흉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그래서 그녀는 회개하고 그 뒤로는 누구를 만나든지 남편을 자랑하고 칭찬하였으며 남편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얼마 후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수 있었습니다축복의 말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우리 가족이 오늘도 이웃을 축복하게 하시고 축복의 말로 환경이 변화되게 하옵소서.부정적인 것은 모두 제하여 주시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언어를 주옵소서축복의 언어를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무덤 건너편에 갔다온 사람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86:12)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펴보면 주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신 실제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으로 가시다가 장례의 행렬을 보았습니다그 관 속에는 과부의 독자가 누워 있었습니다어머니의 슬픔을 헤아리신 예수님께서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일어나라!”고 하시자 청년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무덤에 장사된 지 나흘이 지나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셔서 “나사로야나오라!”고 하셨습니다그러자 나사로가 베로 동여매인 채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요한야고보와 같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산 위에서 갑자기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눈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두 사람과 더불어 말씀을 나누시는데천여년 전에 회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와 느보 산에서 죽었던 모세와 함께 주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얘기하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같이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그리고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살아 계신다는 증거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입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셨던 분은 예수님뿐만이 아니었습니다제자들도 죽은 사람을 살린 일이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도르가라는 여인을 살린 적이 있었고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말씀을 듣고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 누에서 떨어져 죽게 되자 바울이 이 청년을 살려낸 적이 있습니다.


또한 바울 자신도 죽음을 체험한 적이 있었습니다그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후에 바울이 이때의 체험을 “내가 셋째 하늘에 끌려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린도후서 12:1-4 참조)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무덤 저 건너편에서도 영원히 존속하는 것입니다성령의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 재물의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재화를 캐지 못한 것은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성령의 강물이 넘쳐 흐르는 곳에 정금과 진주와 호마노가 “나를 캐어 하나님 영광을 위해 써 주십시오.”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을 눈으로 바라보며 “이것이 내 것이로구나.”라고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고린도후서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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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산출하는 비결-
창세기 15장에 보면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어 제단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을 때 연기가 피어오르는 풀무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짐승사이로 지나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바로 기도 응답의 열쇠가 있습니다쪼갠 짐승은 우리의 회개를 의미합니다우리가 우리의 죄를 쪼개듯이 구체적으로 회개하면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지고 성령의 불이 우리 속을 지나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정결케 하셔서 기적을 산출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회개는 기적의 시작인 것입니다.


기도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주옵소서회개하며 기도하여 성령의 불을 내리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겸손한 사람’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시81:10)

오늘날 20세기의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인류는 각 분야에서 자신이 쌓은 공적과 자랑에 취하여 오만한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까지도 복을 받아 형통하게 되면 하나님을 떠나 교만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겸손하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교만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도취에 빠져 자기를 과대 평가하는 사람이요, 자기 분수를 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어리석게도 아담과 하와는 자기 분수를 넘어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에덴에서 쫓겨나 질병과 저주로 죽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은 피조물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때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는 사람은 깨어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능력들을 하나님께서 무참히 깨뜨리실 때 우리는 겸손히 순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철저히 깨어져야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때 우리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지만, 그들이 교만히 행할 때에는 가차 없이 심판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못할 때에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가 높아지고 부유해지고 존귀해지면 마음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성경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씀하며, 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때 우리는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인정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자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악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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