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2011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

언젠가 고든(A. J. Gorden, 19세기 후반의 미국 부흥사)은 이렇게 말한 것이 있다.
"기도한 후에는 기도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지만, 기도하기 전까지는 기도하는것보다 더 큰 일을 결코 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이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하지 않는 전도자가 노고(勞苦)의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누군가 어딘가에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 열매는 전도하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의 몫이다.

주님이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실 때에(마16:27) 많은 전도자가 몹시도 당황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다음과 같이 항변할 것이다. '주여! 저 사람은 제가 회개시킨 사람이 아닙니까? 수많은 사람을 양의 우리 안으로 불러들인 이 사명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제가 아닙니까?"

그러면 주님이 이렇게 꾸짖으실 것이다.
"그건 그렇지. 네가 전도하고 부탁하고 설득하였지, 그러나 기도도 네가 했단 말이냐?'

오, 주님이여! 저희가 이러한 당혹스러움을 겪지 않게 하소서. 
오, 주님! 저희에게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성령께서 어떤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여 간구한 결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기꺼이 기도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나는 놀랍기만 하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도, 해외의 선교사가 끼치는 것과 유사한 축복을 끼치는 데에 공헌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써 인도나 중국, 아프리카에 축복의 소나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탄복할 만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날 주님께서 주님의 일꾼들의 기도의 협력을 통하여 이루시는 많은 일들을 보고 믿으라.

당신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당신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위나 명에나 권세를 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무명의그리스도인,무릎꿇는그리스도인중에서...>

하나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성경 기자들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단호하게 밝힌다. 
일부 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팜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자기 이상을 가지고 있고 어느 정도 그것을 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때때로 실수를 한다는 것과 성격적 결함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특별히 놀라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다음 두 가지를 기억하기 전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첫째, 실패의식은 기준이 얼마나 높은가에 달려있다.
둘째, 하나님의 관심은 행위 뒤에 있는 생각, 즉 행동 뒤에 있는 동기에 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이것을 가르치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고려해야 한다.

죄는 단순히 잘못된 외적 행동이나 습관이 아니다.
죄란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 본성의 오염이다. 죄는 자아를 통제한다. 그래서 실제로 죄가 곧 자신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죄는 하나님이나 사람에 대한 자기 주장이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규정한다.  이것은 레위기 19:18과 신명기 6:5를 결합하여 예수님이 제시하신 율법에 대한 요약에서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40)

첫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와 관계된 것임을 주목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그 다음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서는 하나님 먼저, 이웃이 둘째, 나는 마지막이다.

죄는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첫째에 두고, 이웃을 둘째에, 그리고 하나님은 뒤 구석 어디에 둔다. 이 근본적인 자기 중심성은 모든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을 자주 만날수록 나의 삶은 거룩 해집니다.

죄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개념이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은밀한 기도골방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믿음과 생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하는지 다시 배울 수 있다.

만약 30분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 깊이 묵상하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려라.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큰 복이 흘러넘칠 것이다.

이런 거룩한 임재의 훈련을 통해 당신의 영혼이 강해지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펼쳐라. 예를 들어 레위기를 펴서 하나님께서 다양한 표현을 통해 일곱 번이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에 주목하라. (레11:44,45, 19:2, 20:7, 21:8, 22:32)

이보다 훨씬 더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31:13)라는 말씀이다. 이는 신약으로 이어져, 베드로는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16)라고 말했다.

바울도 '우리 주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3:13, 4:7, 5:24)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은밀한 기도골방, 즉 개인적 기도의 장소뿐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빛이 우리를 비추지 않으면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세상에서 뛰어난 지혜를 가진 어떤 사람을 깊이 알려면 그와 교제하고 그의 영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능력을 받는 데 시간을 투자하시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 중에서 가장 높고 영광스러우며 가장 포괄적인 것이다. '거룩함(holiness)은 성경에서 가장 심오한 단어이며, 천국과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구약과 신약 모두 이 사실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