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이 성경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난받으시기 바로 전, 이 땅에서 우리를 축복하신 마지막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불쌍한 제자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주님이
머지않아 큰 해를 입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은 제자들에게 생각할 수조차
없는 큰 손해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명령은 27절에서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려고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전혀
근심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우리 속에 근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해를 당하게 될 때나 어떤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또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죄를 지나치게 혹은 경미하게
취급하는 극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곧 죄를 너무 크게 혹은 너무 사소하게 처리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주 사악한 죄악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에 지나치게 과민하여
실패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복음서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약속으로위로 받는
것을 거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아주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마땅히 느껴야 할만큼
고통스러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악이 당연히 힘들고 무겁게 느껴야 할만큼 힘들고 무거운 짐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무거운 죄를 그렇게 무겁게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죄악을 가벼운 짐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헛된
생각, 태만, 거룩한 책임에 대해 부주의한 태도, 소중한 시간의 낭비 등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비교적 사소한
고통을 무거운 짐으로 느끼며, 심지어 육체까지도 억눌러 먼지가 되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성령님이 경고하시는
두 극단에 치우치기 쉽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의 꾸짖음을 싫어하지 말라"는 구절에 대하여 사도들은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잠 3:11,히 12:5). 또한 하나님은 극단적인 사람들에게 무서운
징계를 하십니다. "주님께서 자신이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자신이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6)
여전히 아들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징계와 벌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들은 그러한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채찍질은 사랑스런 아버지, 현명한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 의하여
멸시를 받는 법은 없습니다. 징계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징계 때문에 피곤해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연약해져서도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징계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로 인해 기쁨을 누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해져서는안
됩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 생기더라고 우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 마음의 동요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며,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매를 무섭게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회초리는 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를 드실
때, 우리는 그 매와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손길을 하나님과 동일한 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주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고난이 닥칠 때, 하나님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아래서 겸손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괴로움은
도움이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렇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치료가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채찍질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위로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징벌로 인해 의기소침해지고 연약해지는 다른 극단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마음에 근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질문
우리의 자유, 재산, 사랑의 관계, 욕망, 우리의 가슴에 기쁨이 되는 것을 빼앗기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의
마음 속에 근심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베냐민, 사라, 리브가, 요셉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시에 사랑하는 남편,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고 자애로운 아내가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시에 하나님의 위로를 빼앗기는
때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불행하고 슬플 때입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령님은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잘 견뎌내도록 도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상담을 해주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방법을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정말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사랑스런 친구와 단 한 번의 포옹을 하고 헤어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침실로 보내져, 시체실에 밀봉되고, 무덤
속에서 조용히 있다가, 다정한 친구들의 얼굴을 못 보며 심지어 천국에 갈 때까지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는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저는 대답합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에 대하여 무감각한 목석이나 돌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에 민감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손실은 마땅히 슬퍼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무언가 부족한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친척들도 결핍을 발견할 것이며,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잃은 것에 대하여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을 잃었을 때 슬퍼했습니다. 사랑스런 친척이나 친구가 떠나거나 죽게 되었을 때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한 일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은혜없이 혼자서 일하는
것처럼 근심한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곧바로 근심의 범위를 넘어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근심은 자제되고 제한되어야 합니다. 적당하게 슬퍼하는
것은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슬퍼할 수는 있지만,
"너희가 소망 없는 다른 자들과 같이 근심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는 말씀처럼 소망이 없는 자처럼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는 자는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는다면, 이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리고 오시기 때문입니다(살전 4:14).
때로 우리는 선택의 여지 없이 뜻밖의 고통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도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잠시 후에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금해야
할 것은 마음의 근심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근심하는 마음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저택들이 많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악한 질병 혹은 영적인 혼란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도 일어났던 일로서, 쉽게 이러한 고통에 처하게
하였으며, 마음에 근심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애워싸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주의해야 하며, 힘써 대항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와 헤어지는 것이
너희의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다.그러나 너희는 나와 헤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둘째, 영적인 혼란에 대한 가장 좋은 예방책이나 치료는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라. 또한 나를 믿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확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왜 우리의 마음 속에 근심이
있습니까? 만약 그 믿음이 하나님에 기초하여 역사한다면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우리 위에
기초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나를 믿어라! 너의 믿음이 나를 의지하여
역사하도록 하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라. 내가
너희를 떠나 있을 동안에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라"
"내가 아버지께 청하겠으니, 그분께서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히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곧
진리의 영이시라.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나니, 이는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아나니,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거주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실 것임이라"(요 14:16-17)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이 근심하지 않도록 하라.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떠나야만 하고, 너희와 헤어져야만 하지만, 너희가 내가 가는 곳을 믿고 생각한다면, 위로를 받을 것이며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너희가
여기에서 거하는 집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찬란한 집들이 너희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다. 너희가 이 땅에서
방황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동안 자신의 머리 둘만한
집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습니다. 그
집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서(고후 5:1),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입니다.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그곳에 가게 된다면,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곳은 그렇게 아름답고 축복된 곳입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예비되어
있으며, 거할 집이 많습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사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를
믿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중에서 가장 참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려 가는"사실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대신하여 너희들에게 영원한 거주지, 즉 천국의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간다. 너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나는
너희들이 거할 처소를 예비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떠나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당하게 되는 마음의 근심을 막기 위해서, 그러한 것들을
강하게 대적하기 위해서, 그리고 너희 자신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너희는
하나님을 믿어라. 또한 나를 믿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한
치료제가 될 것이니, 너희는 이것을 복용해야 한다. 너희는
나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연약한 제자들에게
아주 친절한 분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부딪히게 될 나쁜 일, 손실, 고난, 시련, 박해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의 질병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해독제와 연약한 자와 마음에 근심하는 자를 위한 일종의 강심제를 주시고 떠나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원리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어라"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은 최고의 치료제가 될 것이며, 최고의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연약한 신자들은 세상에서 단지 변장한 왕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그들 모두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있는 동안 베일에 가리운 채 외국 땅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그분과 같게
될 줄 아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계신 그대로 볼 것임이라."(요일 3:2)
그들은 아주 커다란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땅에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낯선 땅입니다. 오직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깃이며 유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확신하고 있는 대상이며, 그들의 목적이며, 영원한 몫입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자들입니다.그들은 또한 구원 얻을 상속자들입니다(히 1:14).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롬 8:17).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만물이 다 그들의 것입니다(고전 3:21). 만물은 그들을 축복하고 있으며, 거룩하게 하고 있으며, 그들을 영적이고 영원한 복지로 이끌어갈 것입니다(롬 8:28).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비록
하늘과 땅이 경건함과 그것을 고백하고 누리는 자들의 발 아래 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경건이 현재의
생명과 앞으로 올 생명의 약속을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딤전 4:8),성도들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모든 선한 것을 누릴 참된 자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성도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갖가지의 유혹과 시련을 접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어두움을 만나게 되며
슬픔과 폭풍우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모든 위로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성경에서 읽었던 것처럼 가장
친한 친구나 친척이 자유함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가장 훌륭한 성도들도 가질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마음의 불안을 미리 예방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천국의 행복을 얻을 자격을 가진 제자들이 좌절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주님은 이런 불안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죄로 만성된 마음의 불안을 막기 위해 적절한 예방책을 주신 것입니다. 곧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