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010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과 교신하는 법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일에 관여하신다. 우리가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 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고 이끄실 것이다.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실수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듣는 것이 그분의 음성인지 반드시 테스트 해보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3:10)

주의 음성을 듣는 양 -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에게 말씀하길 원하시며, 또한 그렇게 약속하셨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양들이며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을 특권을 가졌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들을 제자리에 붙들어 두거나 은하수가 제 길로 흐르게 하거나 지구가 똑바로 들게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당신과 내게 말씀하실 시간이 없으신, 그런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과 다른 음성을 구분하라는 확언까지 하신다.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10:5)

중보기도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기도가 필요한 부분, 원수를 이길 수 있는 전략, 방해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행동이나 선언을 말씀하시듯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중보기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시는 방법은 작고 세미한 소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게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곁 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19:11-1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법 -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결국 그것으로 영적 도약을 이루신다목회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교회는 완전히 바뀐다. 그렇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 외에 그런 변화를 일구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통로로 말씀하시는가?

-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사건이 여러 차례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꿈으로 말씀하실 때는 잠을 깬 후에도 설혹 여러 해가 지났더라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 중보기도자들에게 자주 말씀하신다.
       
제이 해이먼은 성령의 은사가 강력한 교회에서 공동 목회를 하고 있는 나는, 같은 교회의 여러 사람들이 때로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아주 비슷한 꿈을 꾼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이들은 가끔 나를 찾아와 좋지 않은 꿈 얘기를 하는데, 나는 짧은 기간에 비슷한 꿈을 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꿈들은 대개 영적 전투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꿈이나 환상에 가장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은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세계에 중보기고자들을 세우고 계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무장되고 조직되어 있다. 명령을 받는 즉시 기도로 영적 전쟁에 참여하도록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도의 용사들은 다니엘이 바사 왕과 싸울 때 처럼 하나님께 천사들의 도움을 구한다(10:13).

꿈으로 전달된 계획, 폭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 재해가 중보기도자들의 기도로 아무 탈 없이 그냥 지나갈 때도 많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폭풍이 몰려와 마을을 휩쓸어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실제로 폭풍이 몰아 닥쳤다. 그러나 성도들은 모여서 기도했고, 이들의 기도로 그 지역 사람들이 입은 피해는 미미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요엘2:28,29).

환상 - 환상은 환상을 보는 깨어 있다는 것 외에는 꿈과 같다. 베드로는 환상을 통해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그들을 찾아가 사역하라는 사명을 받았다(10:9-23)  C. Peter Wagner 박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런 형태의 전달 수단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전달 과정으로는 베드로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끌기 힘들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특별한 방법, 보자기에 담긴 부정한 음식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당시 베드로의 주변 정황으로 보아 그는 환상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과 달리,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가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신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당시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열려 있었다.

들을 수 있는 음성 - 기도는 우리의 영()을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분명하게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중보기도에서 들은 하나님의 음성이 생명이냐? 죽음이냐? 를 가르는 의미일 때가 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12:28,29)

성경 -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음성이라는 매우 극적인 방법으로 말씀하실 수 있다. 동시에 그분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도 한다. 이 방법은 음성보다는 약간 덜 놀라운 수 있지만 그만큼 성실하고 분명한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믿을 때는, 그때 들리는 음성을 항상 성경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 그러자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하며, 읽은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성경)에 모순되는 말씀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 –성경은 하나님 음성 판별의 시금석이다 음식이 우리 육체에 힘을 주듯이 성경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힘을 준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에게 빛을 비추며 우리를 인도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105)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처한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지시하며 지혜를 주시고자 성경을 사용하실 때가 많다.
            
영적 은사를 통해 -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 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21:10,11)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성령의 은사를 가진 이들을 통해 들은 적이 많다. 이 말씀들은 내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고 실수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며 필요한 때 큰 힘이 되기도 했다. 또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일에 관여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받아 들이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고 이끄실 것이다.
* 그분의 음성은 우리의 실수를 막을 수 있다.
* 그분의 음성은 우리가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가도록 인도할 수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듣는 것이 그분의 음성인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주의 사항  -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 말씀(음성)을 성경에 비추어 점검해 보아야 한다.-
            
보호가 필요하다 - 가 듣는 것은 불완전하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조차 분명하게 듣지 못한다. 영적 지도자들은 우리를 살피어 우리의 신앙 성장을 돕도록 그리스도의 몸에 헌신된 사람들이다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13:17)     
       
중보기도자들이 독립심을 길러 영적 보호에서 벗어나려 할 때 어려움에 빠진다. 지도자들을 포함해서 보호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순종하는 자세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보호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Cindy Jacobs는 그녀의 책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에서 권세(권위)와 순종에 관하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의 소명을 받았을 때 나는 권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데보라, 권세 있는 사역을 하고 싶다면, 먼저 권세 있는 사람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네가 영적으로 더 많이 순종할수록 너의 영적 권세는 더 커질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와 종을 고쳐 달라고 했던 백 부장을 기억해라. 그가 권세에 순종했기 때문에 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예방책 .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나의 바람이 다를 수 있다 * 교회의 비전을 바꾸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 당신의 바람이 경건하고 지금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일과 일치할 수도 있다. 설령 그럴지라도 그것은 당신의 바람일 뿐 당신의 교회나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라
       
2. 하나님의 타이밍을 염두에 두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취의 타이밍과도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라. 기억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이삭이 태어난 것은 그로 부터 25년 후였다(15:4).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처 준비하시기도 전에 먼저 조급하게 서두를 때가 많다.

중보기도자들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이루시도록 믿음으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인내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간과 상관없이 이뤄질 것이다.

선지자 사무엘은 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엘리 선지자의 도움을 받고 수년간 하나님과 동행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인실 할 수 있었다. 사무엘은 성실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사무엘과 함께했다고 말한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  자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는 중보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기도하기 원하시는지 들어야 한다. 능력이 넘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세계를 여실 때, 우리는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도시와 나라를 변화시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영적 장애물을 돌파하는 기도 자의 칼날


-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칼날을 날카롭게 하실 때, 우리는 싸움에 임할 지략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눈을 열어 원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

이는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사오니”(삼하22:40)

날카로워야 안전하다 - 하나님의 말씀은 날카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전도서10:10)

우리의 영적 칼날이 무딜 경우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할 수 있다. 사전에서는 무디다라는 말을 감각이 부족하다, 느낌이나 지각이 둔하다라고 정의한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무디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이전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린 칼날을 의미하며(무딘 칼), 일반적으로 예리함, , 정신, 강렬함 등을 잃은 것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영적 톱날()을 간다는 것은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는 눈과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가길 수 있다.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일은 효과적인 중보 기도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늘나라를 가르치시면서 듣는 귀와 보는 눈에 대해 말씀하셨다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13:14-17)

영적 민감성 -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선지자들이 보기 원했던 많은 것들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하시고자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듣기 거부하는 백성들을 상대해야 했다. 듣기를 거부한 이들의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귀는 듣는 데 무디어졌고, 눈은 보는 데 어두워졌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인들도 똑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중보기도자들은 이렇게 말씀에 민감하게 깨달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영적인 귀를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께 영적 주파수를 맞추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적 게으름의 위험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인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5:11-14)
       
지혜로 날카롭게 -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우리의 영적 칼날 가는 법고 중보기도에서 영적 도약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잘라버리는 방법을 배운다. 하나님의 지혜는 승리와 평안을 가져다 준다.

깨끗해진 마음 - 지혜를 얻고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마음과 삶을 깨끗하게 씻는 일이다. 씻음은 평생의 과정이다. 우리는 거듭나는 순간 예수님을 거부했던 조에서 씻음을 받는다. 그렇더라도 삶의 여정에서 쌓이는 먼지와 티끌은 매일 씻어내야 한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깨끗케 하시도록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태도를 고집하고 싶어할 때가 종종 있다.      
       
여호수아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지 말라는 행동을 계속 한 이스라엘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 7장은 이스라엘이 아간의 죄 때문에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불순종한 첫 번째 사건이다. 범죄한 사람은 아간 하나이지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 죄의 책임을 져야 했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셨기 때문이 아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죄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도 있지만 분명히 집단적인 책임과 결과도 있다. 원수를 물리치려면 먼저 자신부터 깨끗이 씻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 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받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7:13) 

개인적으로 자신을 성결케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승리를 얻기 위해 집단적인 성결이 필요할 때도 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 우리의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또 다른 부분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는 일과 관계가 있다. 두려움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영적 무기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전쟁터에서 진짜 적은 칼과 총알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오직 성령님 만이 숨어 있는 원수의 정체를 드러내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준비해두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원수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 그러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만 신뢰하라.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언29:25)

두려움은 인생 곳곳에 출몰할뿐더러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방해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라”(시편91:1,2)

강한 믿음 - 우리의 영적 감각을 예리하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은 강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믿음은 믿어지는 것 또는 신앙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믿음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우리가 거듭나면,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된 그 일을 온전히 믿게 된다. 그 믿음으로 우는 구원의 확신 갖는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것이 믿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응답 받는 능력이 없다면 기도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이 되어버린다. 믿음은 초자연적인 사역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신뢰는 배 안에서 잠을 잘 수 있게 하지만, 믿음은 폭풍과 바람과 산을 향해 생명을 외치게 한다-

맞는 옷을 입어라 - 우리의 마음이나 삶을 더럽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깨끗이 씻어 내신 다음, 모든 두려움에 맞서며, 중보기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옷은 각자에 꼭 맞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각기 다른 일을 맡기셨다.
       
당신()의 사명은 그들이 받은 사명과 다를 수 있다. 이것은 당신이 맡은 사명이 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다르다는 뜻이다. 당신을 위해 디자인된 옷을 입어라.

어린 다윗은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삼상17:38,39).
       
중보기도 자들마다 영적 성숙의 정도가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이 있다. 겁을 먹거나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의 일과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군대에서 자신이 맡은 위치를 잊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다윗은 사울의 갑옷을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맞지 않는 갑옷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옷을 입었다. 그런 다윗이었기에 비록 어린 소년이었으나 사울의 군대를 두렵게 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날카로운 영적 칼 날 -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칼 날을 날카롭게 하실 때, 우리는 싸움에 임할 지략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영적인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눈을 열어 원수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적인 능력을 얻으면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할 수 있다. 싸움에서 힘을 덜 들이고도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당신의 영적 칼날을 날카롭게 갈아 중보기도의 승리를 맛봅시다.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는 기도를 하라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틈을 메우고 중보자의 역할을 할 중보기도자들을 세우고 계신다. 하나님의 언약의 파트너로서, 이들은 이 땅에서 수리가 필요한 곳, 깨진 자리에 용서와 치유와 회복을 전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바로 당신과 나다. 우리는 이 땅이 치유되도록 돕는 하나님의 음성이 될 것이다.

저주를 끊는 능력 기도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한복음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한복음7:38)

영적 세계에 익숙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어린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은 그분이 하나님의 백성과 아주 가까이 계시며 정말 인격적인 분이심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음성(명령)을 들을 때는:
1.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신다는 것과
2. 하나님의 달력에도 시간과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 명이니 저희는 그 모든 형제  를 관할하는 자며”(대상12:32).

바른 때를 위한 바른 기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신 일은 교회가 중요한 때에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잇사갈의 기름 부음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때마다 기도의 방법이 다르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일을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같은 이치로 때에 맞는(시세에 합한)’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보 기도는 우리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예방의 기도가 필요한 특별한 상황을 보고 기도하게 하시는 특별한 때도 있다. 성경은 바로 이런 때를 카이로스(kairos)’라고 한다. 헬라어에는 시간()’를 뜻하는 단어가 둘이 있다.
       
* 하나는 일반적인 시간을 말하는 크로노스’(chronos),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는 시간을 말한다.

*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 전략적인 사건이나 적절한 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하는 적절한 순간을 말한다. 기회의 창문은 카이로스이다. 전쟁에서 적절한 공격의 시간이 카이로스다. 누군가 위험에 빠졌거나 사탄의 공격을 받으려는 때가 카이로스다. 지금이 몇 시냐고 물을 때, 이것은 크로노스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거나 정신 이 번쩍 드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지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알아야 제대로 듣고 기도로 응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몰라서 일어나는 비극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의 강
하나님께서는 지난7년 동안 그 분의 성령의 생수의 강가로 나를 인도하시며 나로 하여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도록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한 시내(, river)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46:4,5)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 성이 시온인 것처럼 하나님은 그 강을 우리, 곧 교회를 통해 흘려 보내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셨다.

신명기 29:22-28절에 따르면, 마른 땅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불러온 저주의 결과였다. 저주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반대이다. 메마르고 황폐한 땅은 곡식이나 열매를 내지 못한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강이 흐르지 않을 때, 우리 또한 영적으로 고갈 상태에 이르고 만다, 즉 영적으로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이 되는 저주를 피할 길을 준비해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로 강이 흘러 메마른 땅이 열매를 맞게 하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7:38).

이 강은 메마른 땅의 저주를 끊는 도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중보 기도와 예언적 선포를 하는 가운데 그 말씀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가면, 메마른 땅은 열매를 맺는 땅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46:2) 에서 가운데는 히브리어로 케레브’(qereb)라고 번역되었다. Sturdy Bible은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가장 가까운 부분, 즉 한가운데를 말한다. 케레브는 모세 오경, 특히 신명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지만 시편에서도 나타난다. 창세기 18;12절에서 웃음의 근원은 몸 속 한가운데 있다고 말한다

메마른 땅에 물 대기
당시의 시대와 문화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저주 받은 여인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강이 그녀의 속을 적셨을 때, 그녀는 웃었다. 저주가 끊어졌기 때문에 웃었다. 하나님의 생수의 강이 불임의 저주를 끊고 풍요로운 결실의 축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도시와 나라에도 열매 맺게 하는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하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을 건국한 조상들의 비전을 돌아 본 뒤, 현재 미국의 가정과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가슴이 아프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버린 나라의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이미 말씀으로 보여 주셨다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 자손과 원방에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 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분한으로 훼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말할 것이요 열방 사람들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뇨 이같이 크고 열렬하게 노하심은 무슨뜻이뇨하면, 그때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을 향하여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대란 나라에 던져 보내심이 오늘과  같다 하리라”(신명기29:22-28).  
       
물줄기를 끊는 것은 심판이나 저주를 의미한다.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 앞에서 가뭄의 심판을 선언했다. 그러나 회개로 심판을 돌이킬 수도 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내리려던 심판을 거두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항상 경고하신다.


왜냐하면, 그때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복을 받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저주 아래 있지 않는 것이다.
            
치유의 강
하나님의 치유의 강이 의사도 표기한 사람을 살린 적이 많다.

응답이 늦어지는 기도
우리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 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편애하시기 때문인가?, 모든 사람들이 낫지 않는 걸까?  -유명한 치유 사역 자 캐더린 쿨만 여사는 이것이 그녀가 천국에 가면 가장 먼저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두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저주를 끊고 회복의 강이 흐르게 하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더취 쉬츠의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중보기도에서 영적 도약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지혜를 제시하고 있다.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명의 능력, 곧 생명의 강이 영적인 영역에서 어느 정도 흘러야 한다. 그 양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는 각 경우마다 다르다. 자연계에서도 일에 따라 필요한 힘의 정도가 다르듯이,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손전등을 켜는 데 필요한 힘과 빌딩을 세우는데 필요한 힘이 다른 것과 같다. 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각 경우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정도도 다르다

흘러 넘치는 강
중보 기도 자들이 기도, 선언, 그 밖에 다양한 수단들을 통해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강물이 흘러 넘치게 할 때, 사람과 도시와 나라들은 이 땅에서 저주가 끊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저주가 끊어지면 회복과 축복이 넘치게 된다. 곡식을 거두어 추수하게 되고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발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첫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께서는 그 다음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도시와 나라에도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끊고 회복을 이루기 위해 그분의 강을 흘러 넘치게 하는 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전, 교회에서 발원한 강이 온 땅에 흘러 넘치게 하소서!!!

다섯 거인과의 싸움


성경 연구를 통해 불레셋에는 다섯 개의 중심 도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삼상16:17-18). 다섯이라는 솟자는 은혜를 상징한다. 다윗이 맞서 물리쳤던 다섯 거인, 곧 불레셋의 다섯 도시는 차례로 교만, 자치(自治), 탐심과 이기심, 포도주 틀, 산만함을 상징한다.

1. 교만의 거인 ‘아스돗’
다윗이 물리친 첫 번째 거인은 아스돗이었다. 불레셋은 에벤에셀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한 후,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아스돗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법궤를 다곤 신전에 가져다놓았다(삼상5:1,2).

아스돗은 언덕 위의 도시라는 뜻으로 높고 교만한 자리를 나타낸다. ‘교만이라 불리는 원수는 개인이나 나라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한다(잠언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온유와 겸손은 우리에게 도약을 가져다 준다. 예수님께서는 원수(사탄)와 반대되는 자세를 가짐으로써 승리하는 비결을 가르쳐주셨다. “사탄이 만일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12:26). 겸손은 교만의 반대이다. 겸손은 교만이라는 원수를 물리칠 것이다.

2. 지배의 거인 가사
 ‘가사는 불레셋의 수도였던 곳이며 지배를 상징한다. 우리는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자아(自我)는 항상 왕좌에 앉고 싶어한다. 자아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원수를 물리치려면 자치(自治, self-rule)를 버려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다스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한다는 말.

하나님께서 크리스천의 삶에서 항상 죄 문제만 다루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모든 결정에서 예수님을 왕이자 최고의 통치자로 인정해야 한다.

3. 이기심의 거인 ‘아스글론’
아스그론은 번영이나 풍요를 상징한다. 반면에 탐심이기심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거인들은 우리가 물질적 소유를 잃거나 심지어 대인 관계에 손상이 가지자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자신을 온전히 드리지 못한다. 혹은 두려움 때문에 용감한 기도의 용사가 되지 못한다.

* 하나님과 나의 언약 관계를 이해하면 우리는 원수를 물리칠 힘을 얻게 된다.
*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깨닫는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행할 때만이 영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는 한 방식이다.
       
여러 가지 나눔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나눔이 중보기도 이기도 하다.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라는 뜻이다. 중보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이타적인 행위이다. 중보 기도는 이기심이라는 거인의 등뼈를 꺾어버린다.

4. 표도주틀의 거인 가드’                                                                  
가드포도주 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RURSS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새 포도주로 만들고 계신다. 요한복음2:9-10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우리 삶에서 힘들고 괴로운 모든 것을 포도주 틀에 넣어 새 포도주로 바꿔달라고 기도하자. 예수님께서는 중보 자가 되시려고 기꺼이 목숨을 버리셨다. 그분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똑 같은 것을 요구하신다. ‘가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가장 좋은 것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불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치어 왔을 때, 다윗은 그들을 다윗 자신의 손에 맡기실 것인지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불레셋 사람들을 분명히 다윗의 손에 맡길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의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불레셋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원수가 우리 앞에서 흩어지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이런 자세로 기도하는 것을 예언적 중보기도라고 한다.

5. 산만함의 거인 에그론
에그론몰살또는 박멸이라는 뜻이다.

도약이란 무엇인가?



 ‘도약’, ‘찢음’, ‘흩음의 다양한 말로 번역되는 영어‘breakthrough’의 의미는 무엇인가? 웝스터 사전에서는 지식이나 활동의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를 이루거나 전투에서 적진을 돌파해내는 것이라 정의 한다. 구약에서 다윗은 전쟁 중에 원수들이 흩어지는 것 ’(breakthrough)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 사건은 역대상14:8-11절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무엘하5:17-20절에도 같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았다 함을 불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해처로 나가니라 불레셋 사람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내가 불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까? 여호와께서 저희를 내 손에 붙이시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단정코 불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저희를 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breakthrough)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 


 ‘바알브라심이라는 지명은 흩음의 대가(master) 또는(lord)’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우리)에게 흩음의 주로 나타나셔서 흩으신 경험이 있는가? 불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대적했듯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대적한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원수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을 이루길 원치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환상을 차단하려고 한다. 원수는 당신 하나님 안에서 이룬 진보에 대해 듣고 이를 막으려 한다. 불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들은 이 소식에 격분한다


다윗의 등극은 어릴 때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삼상16:12-13). 다윗에게는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었다. 한 사람이나 도시나 국가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려 할 때 원수는 어김없이 방해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도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때 저항에 직면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하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1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