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2009

하나님은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4)

3) 남은 자는 진정한 구원,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훈련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전의 많은 메시지에서 미국은 혼돈과 붕괴속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증오를 내뿜는 루이스 파라칸은 흑인사회에서 제시 잭슨을 제외하고는 어떤 인물들보다 유명해 졌습니다.

(
파라칸은 지금 흑인들 사이에서 마틴 루터 킹보다도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백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 일부는 이곳 뉴욕에 있는 자들도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가올 인종 전쟁에 관한 저의 설교를 들으셨거나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곧 경제적 혼돈이 올 때 조심하십시오! "인종 군대"가 생길 것입니다. 백인은 흑인을 대항하고, 흑인은 유대인을 대항하며 한국인들은 흑인을 대적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심판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어서 구원이라는 말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에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과거에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주로 육체적인 치료로 생각했습니다. 눈먼자가 눈을 뜨고 저는 자가 걷게 되는 것 등등

 
그러나 곧 하늘로부터의 격노(激怒)하심이 우리에게 쏟아내릴 것이며 가장 위대한 구원은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때의 구원은 "하늘로부터 확실한 말씀"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것이 지구상에 다가오는 것을 볼 때에 사람의 마음이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져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하실지 알기 위해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그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미치지 않는 누군가의 음성을 듣기 위해 사방을 찾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지를 것입니다. "말해주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가요? 언제 이 모든 것이 끝나게 될까요?"


여러분은 누가 그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평범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고요와 평안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하나의 환상이 저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은 뉴욕을 빠져나가는 수많은 차량행렬입니다. 뉴저지와 펜실베니아의 자동차 여행캠프장, 수주동안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모두가 대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똑같은 일이 다른 도시들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준비해 놓으실 것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한 무리의 사람들 말입니다


사무엘처럼 그들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한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구원을 공급하였습니다. 5만명이 넘는 사람이 언약궤를 엿봄으로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맥없이 죽어버렸습니다

모든 땅이 혼돈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누가 우리를 위해 그분앞에 나아가겠느냐?"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을 부르러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
나는 여러분이 나와 더불어 미스바에 모이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내가 빠져나갈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사무엘은 위기의 때에 합당한 말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사무엘상 7:3-4)


죄악의 상황이 어떠하든지간에 해답은 다른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서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총괄적인 구원의 약속은 없었습니다. 아니 사무엘은 외쳤습니다

"네 마음을 바르게 하라! 네 죄를 심판하라! 네 마음을 하나님앞에 준비하라!" 첫 번째로 죄는 책망과 심판을 받고 버려야만 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사무엘상5-6)

그는 그들을 심판했습니다. 그는 진영에 있는 죄들을 드러냈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부흥이 사무엘의 강력한 책망을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과 같은 자들이 중보의 능력을 통하여 위대한 구원을 전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이 젖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사무엘상7:9-10)


대학살이 있은 후 하늘로부터의 천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한 사람이 답을 알았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은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이 마지막 시대에 군중들을 휘저으시고 목사들을 부흥시키시고 교회를 깨우는데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군대는 기도의 능력과 죄에 대한 경건한 책망을 통하여 사람들을 회개로 이끎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과 동료는 모두 해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써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평안과 고요함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들은 여러분에게 달려와 외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신가요?" 제가 훈련받고 있는 거룩한 남은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설교자, 전도자, 선교사 등과 같은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성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평안과 고요함으로 가득차 세상에 기사와 기적이 될 사람들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방법으로 훈련된 전문적인 군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성령에 의해 기도가운데 훈련되어진 남종과 여종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사로잡혀 그분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는 믿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설명이 여러분을 나타냅니까? 여러분의 삶은 지금 겁에 질려있고 흔들리는 세상에 증인입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기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그분께 여러분의 삶의 죄를 드러내시도록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자신을 드림으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자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이 마지막 시대의 남아있는 자들로 구성된 군대의 준비된 군사가 될 것입니다.

< 데이빗 윌커슨 (타임 스퀘어 교회)>

하나님은 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3)

1) 남은 자들은 항상 기도와 중보를 낳습니다.  한나는 쓰디쓴 눈물과 많은 기도를 통하여 그녀의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사무엘상 1:10)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나는 매일 성전에 가서 상하고 아픈 마음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에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울고 있을 때 그녀의 적 브닌나는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사무엘상 1:6)

이 말씀에 내가 지적하고 싶은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이 나타내는 남은 자는 고통과 중보를 통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고 애통하는 자들은 적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항상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녀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주목하십시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 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삼 1:12-14) 엘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너무나 죽어있어서 그는 한나가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
여자여, 얼마나 더 취해서 성전에 들어오려느냐? 네 병을 치워라!" 이것은 내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공공연히 술에 취하고 간음을 하는 것을 고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딸을 술취한 자로 오해했습니다. 오늘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헌신된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기도에 드립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며 예수님께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목사님들이 그들의 적이 되어 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도 합니다. 한나가 제단 앞에 있을 때 그녀는 슬픔이 가득하고 한 아들의 탄생에 대한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신음 때문에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입술을 움직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사무엘상 1:11)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려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한나처럼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고통과 비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움직이시는 것을 보기 원하며 주님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실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은 중보의 군대라는 영적인 모태에서 신자의 몸,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무엘과 같은 자들이 잉태되고 있는 것입니다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구별하는 두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나처럼 기도합니다. 그들의 짐은 깊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악함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리고 한나처럼 그들은 그들 삶의 매일을 기도에 드립니다. 그들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않으며 뜨거워졌다 차졌다 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가서 그들의 혼을 쏟아놓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편 62:8)

.......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편 42:4) 사무엘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위대해서 이스라엘은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왕을 원했을 때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사무엘상 12:18-19)우리는 계속해서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촉구하는 사람들에 관해 읽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의 기도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이 기도를 요청할 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접촉하는 분을 알아요!"라고 외치며 그들을 찾으려 달려들 것입니다. 상담은 그 자체로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필요를 채워주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이 그분 자신을 만지시기 원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시련과 짐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올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분의 말씀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 남은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성직자들과 백성들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침묵하셨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사무엘상 3:1). 그러나 이러한 말씀의 기근 한가운데 주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사무엘상 3:7-8) 사무엘은 그때 단지 12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아이였음에도 그는 아직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셔서 명백히 그를 부르셨습니다. 처음에 사무엘은 그것이 엘리의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음성을 분별하도록 훈련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훈련 말입니다! 여기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엘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 선지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없애시려고 한다고 경고했던 무명의 선지자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가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그 음성조차도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가 또한 그러합니다. 영적으로 죽어있고 타협으로 가득찬 엘리의 사역은 모든 분별력, 모든 권위, 하나님과의 접촉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영적권위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남종과 여종들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의의 생활로 받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자신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외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혼자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을 요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는 공식이 없습니다. 밟아야할 열가지 단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전에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셔야만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께 둘러싸여 "주여 말씀하옵소서"라고 외치면서 여러 달을 혼자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사악한 마음을 가진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것에 신경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만약 그들이 난잡한 이혼, 간음, 스포츠, 오락, 향락에의 지나친 탐욕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어떤 모임, 교회이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안다고 해도 무시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기 원하시는 한 가지는 한 단어로 된 문장들일 것입니다. "회개하라! 돌아오라! 통곡하라!" 사무엘은 하나님이 첫 번째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깊은 신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열려있는 온유하며, 순수하고 헌신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후 첫 번째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내 집에 있는 죄악을 참지 않겠다! 나는 나의 종들의 아직 심판받지 않은 죄에 대해 간과하지 않겠다." 근본적으로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리를 심판하려 한다. 그가 그의 아들들이 사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말리려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복을 벗기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너희들은 거룩한 곳 가까이에 오지 못할지니라. "이제 사무엘아, 나는 너에게 나의 집에 있는 죄악에 대한 나의 증오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동행하기 위해 어떤 것을 요하는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에 벌벌 떨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11)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가 그렇게도 존경하는 엘리를 떠나시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역자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모하는 백성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소년이 얼마나 가슴아파 했을까요. 이 마지막 시대에 거룩하게 남은 자는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심판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못한 사역자들을 끌어내리시고 파멸시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와 같은 그렇게도 확실한 말을 사무엘이 사용했다고 성경에 씌어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구하며, 그에게 사로잡혀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명확하게 그에게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훈련받은 거룩한 백성이 있습니다.이 기도하는 성도들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분께서 그분의 마음을 그들에게 쏟아놓으십니다

하나님은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2)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또한 죄에 대해 관대해진 죽고 차가운, 형식적인 성직자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엘리처럼 오늘날 많은 목사들은 죄에 관한한 비겁자들 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역의 모양만 취할 뿐,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지위에 편안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 합니다. 그들이 죄를 모른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사무엘상 3:13) 엘리는 악을 판단하고 고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 권위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얼마 전에 나는 우리교회를 방문한 대여섯명의 오순절파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부패와 경건한 꾸짖음의 결여에 대한 나의 걱정에 관해 이야기하였을 때 그 그룹의 인도자는 단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는 "데이브 형제, 나는 내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의 절반은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인들에게 관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화나게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항하여 크게 외칠 용기를 가진 연로하신 목사님들을 열명도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로하신 주의 용사들은 영적으로 죽었거나 아니면 자기 TV앞에 앉아 죽어가고 있으며 모든 능력이 말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세상의 영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문입니다. 그들은 권태를 느끼는 엘리의 아들들입니다

자기를 망각으로 잠재우고, 뚱뚱해지고, 번영하는 죄를 다루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엘리 세대에 질려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엘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사무엘상 2:31) 나님은 다른 말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사무엘상 2:32) 바로 지금 많은 국립 교회위원회의 소위 임의 기금 (discre tionary funds)이 전세계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미국의 교회가 아무 영적 능력이나 영향이 없는지 궁금해 합니다

많은 교단 교회들은 큰 무덤,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교회에 생명과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에 있던 엘리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입니다. 주님은 심각하게 판단하시고 그 교회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루에 닥쳐왔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 4:10-11)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하다!" 그리고 하루만에 하나님의 궤는 이방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임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장 그 사역을 심판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엘리가 언약궤가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사무엘상 4:18) 

이것은 오늘날 미국에서 잘 조직된 많은 종교에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상입니다. 그 체계는 심판아래 있습니다. 그 사역은 좌우로 쓰러지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적에게 넘겨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레미야의 시대와 똑같은 현상입니다. 그의 시대에 사람들은 "우리는 안전해. 우리는 위험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잃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것을 보라.(예레미야 7:9-12) 모든 세대 가운데 하나님은 냉랭하고 부패한 교회에 경고하십니다. "실로로 돌아가라. 엘리의 교회를 돌아가라.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내가 행한 일을 보라! 내가 나의 임재를 거두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라. 죄가 있는 곳은 어디나 나의 영광이 떠날 것이다!" 

그러나 엘리의 교회가 심판을 받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바쁘게 남은 자를 일으키시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이 이 거룩한 남은 자, 늙고 퇴폐적인 교회의 황페함으로부터 일어난 신자중 준비된 자의 대표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은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1)

오늘날 세계에서는 매우 강력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어떤 일을 조용히 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초자연적이라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이 마지막 시대에 전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헌신된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지옥을 흔들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순결하고 헌신되며 두려움없는 남은 자들로 세상을 마감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동안 나는 죄를 미워했던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시간, 여러 날을 기도와 금식가운데 보낸 남종과 여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부도덕에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선조들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지금 새로운 군대를 일으키는 중이십니다. 이번에만은 주의 용사들이 단지 늙고, 머리가 쉰 시온의 어머니, 아버지들로만 구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새 군대는 젊거나 나이든 모든 신자들, 하나님을 붙잡고있는 평범한 기독교인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역의 영역이 등장할 것입니다. 교파적 교회 시스템은 죽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것은 세속세계에 거의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안에서 아무런 강력한 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점점 많아지는 사역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음란, 탐욕, 교만 그리고 갖가지의 타락된 일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파 교회의 목사님들은 오락, 쇼맨쉽 등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브로드웨이를 우리의 백성들에게 주고 싶어요." 나는 적어도 50 퍼센트의 부부가 이혼한 복음주의파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내게 편지해 준 어떤 교인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이 숫자가 8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간음한 자, 음란한 자, 마술이나 마법에 관여하는 자,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갉아먹는 자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목사님들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날 사역의 퇴보에 대해 저와 똑같이 애통해하는 많은 경건한 목사님들과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이 아직 남아 계시며 나는 그분들 한사람 한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역자들이 타협과 타락의 길로 경주하듯 내려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세계는 하나님의 집을 비웃고 있습니다. 사탄이 합법적인 낙태, 만연한 동성애, 마약, 알콜, 사탄숭배 그리고 이슬람의 침투와 같은 것들을 통한 승리를 주장하며 으시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초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지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명백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사실, 지옥에 있는 모든 사단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계획을 사무엘상 1-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일종의 하나님의 남은 거룩한 자입니다

주님이 가장 악한 시대에 그를 택하시고 그분의 새로운 것을 나타내실 때까지 사무엘을 훈련시키시는 가운데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11 ) 이 새로운 일은 그것을 듣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낡고 썩고 타락한 종교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엇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대한 훈련, 양육,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시대에 하신 일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는 모든 세대에 그것을 행하십니다.

잘 조직된 교회가 타협하고 냉대해지며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버리시고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정말로 모든 세대에 남은 자, 그분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길을 버린 죽어있는 타락한 교회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르기를,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사단의 아들, sons of the devil)라 여화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사무엘상 2:12)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문 바로 앞에서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여자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성전에 올 때 엘리의 아들들은 여자들을 골라서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제사를 드리는 척만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못본체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그 때 나이 90이 넘었으며 뚱뚱해져 있었고 편안하며 목이 곧았습니다.

그는 점점 아들들이 제물로부터 가져오는 붉은 고기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엘리는 이 고기가 혐오할만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이 고기를 훔치지 못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불순한 탐심을 모른척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잘 조직된 교회가 보여주는 사악한 모습입니다. 전 교파가 지금 동성애자에게 성직을 부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혐오스러운 짓들을 하나님의 집에 들여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접하는 참된 예배를 드려라

오늘날 우리가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이사야 선지자가 본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분”( 6:1)이 아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고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무한히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의 신앙인들은 그렇지 않았다.우리가 어떤 존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를 존경할 수 없다. 우리는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존경할 수 없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예배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크신 하나님 으로 본다면 우리의 예배는 살 것이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 으로 본다면 예배는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당신도 잘 알 듯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다. 복음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성육신(成肉身)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오순절의 시작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이 앞서 가셔야 한다.하나님이 항상 처음에 계셔야 한다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이 먼저 계셔야 한다. 그곳에 계신 하나님은 대량생산된 싸구려 하나님이 아니다하나님은 진열대 위에서 먼지가 쌓이도록 팔리지 않아 결국 할인가격표를 붙인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시요, 두려운 분이시오, 경외하는 분이시요, 신비로운 하나님이시다그분은 세계를 내려다보는 분이시오, 큰 날개로 온 우주를 감싸고 계신 분이시다. 우리는 바로 이런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개념을 오류(誤謬)에서 건져내야 한다.

우리는 두려울 정도로 잘못된 오류에서 우리의 신()개념을 구해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고 해도 그가 당신을 속이려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그 사람과 마주 앉아서 마음이 편하려면 그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간들 사이에서도 교제가 성립되려면 먼저 신뢰가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의심, 불안, 두려움과 같은 것들이 없어야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하고 우리를 속이고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가운데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3:4)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절대 거짓을 행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이것을 온전히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예배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무한히 신뢰하는 것, 이것이 예배의 시작이다
<이것이 예배이다 - A.W 토저 >

하나님의 임재 (3)

2)무언의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우리는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무언의 응시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하나님께 할 수 있다. 기다림을 통한 무언의 기도는 우리를 말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는 훈련이다. 오늘날 분주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서구식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현대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침묵의 기다림이 생소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기다림은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오직 심령의 눈으로 주님만 보고 주님만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의 잡다한 것들로 꽉 채워 있는 내 속을 비워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침묵이다.  단순한 침묵이라면 세상의 초월명상이나 불교의 선과 다름이 없다. 기다림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침묵이다.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예수로 충만하기를 원하는 침묵이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이다. 이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생각, 기도 제목, 나의 일정 등 모든 것을 주님의 발아래 내려놓고 주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시편 46:10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라고 기록한다. 여기는 말하는 ‘안다’는 정보적인 지식을 초월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연합할 때 알아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호흡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

3)
기다림의 결과--영적 결혼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자주 들어갈 때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닮아 거룩해 간다. 영적 결혼이란 우리의 영이 신적 조명(Divine Light)을 통해서 밝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빛으로 이성이 밝아져 영적 눈을 뜨는 것이다.

3.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방법
기다림이란 결국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다.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나 자신의 욕망, , 일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다. 내 힘으로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임재에 녹아 나도 모르게 다 놓아버리게 된다.

1)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라
2)기다리는 방법, 임재에 들어가는 다른 방법들 

①성경 기도(praying the Scripture) -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때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사모하고 감사하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집중하라.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로 초점이 옮겨져서 임재를 느끼면 이제 그분을 애정 어린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라.

②방언 기도 - 방언은 우리가 하나님께 하는 비밀의 말이며(고전 12:2), 성령으로 하는 기도이다( 8:26-27). 따라서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는 모르지만 성령이 친히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뜻이나 지혜를 알려주신다. 방언 기도, 방언 찬양 또는 신령한 노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다.

③찬양 -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만들지만 찬양은 하나님을 싸우시게 만드신다( 42:12-13; 149:6-9; 15; 6:16; 5; 19:1-8).

④성령의 임함이나 안수를 통해  -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파테이션될 때 안수 받은 자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갈 수 있다.

⑤예수기도(Jesus prayer)를 통해  - 예수기도란 예수님의 이름을 단순하게 반복하여 부르면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를 말한다.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표준형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a sinner)이다.

이 기도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2:32; 2:16-2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51:1).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10:47).

이 형태가 다소 변형되어 “주 예수여, 사랑을 베푸소서” 또는 단순히 “주 예수여!” “주여, 도우소서”라고 하기도 한다. 이 기도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그의 빛으로 우리 심령을 채우신다. 거울인 예수 속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밝게 비친다. 이 빛은 우리 심령에 반사된다. 순수한 영혼은 마치 사진판과 같다

⑥성막을 통해 - 우리는 영적으로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고(속죄), 물두멍에서 몸을 씻고(회개), 성소 안에 있는 진설병을 먹고(말씀), 금촛대의 빛을 받아(성령의 조명), 향을 피운 후(찬양과 감사의 기도),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⑦하나님의 보좌를 응시하기  -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하늘 보좌를 응시하며 영광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분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누려야 한다. 우리가 이런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면 여러 가지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⑧성찬식을 통해  - 성찬을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주 접하지 못하면 생소해지기 쉬운 것이다. 너무 자주 하는 것도 관념적이 되기 쉬워 문제가 있다. 성만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자 하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기대할 때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나는 법이다.

⑨일터나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특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매일 어느 정도 기도에 시간을 들여서, 주변의 시끄러움에서 차단되어, 내면을 고요하게 하여, 하나님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출처: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하나님의 임재 (2)

기다림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포함한. 기다린다는 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손을 놓고 무언가 이루어지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을 떠올린다. 이러한 행동은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과는 거리가 멀다. 기다림을 배우는 가장 어려운 측면이 이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을 어떻게 바람직한 균형을 이루는가 하는 점이다.                                   

기다림은 수동성과 능동성(부정 및 긍정)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서로 얽혀 있는 것이 기다림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균형을 이룰 때 힘과 용기와 인내를 가져다준다.

행동적인 측면에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를 포함한다.
(1)해야 할 일- 의로운 일  (2)하지 말아야 할 일- 잘못된 것에 관여하는 일 (3)성경적인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 이들 세 가지 요소들은 서로 섞이어 있어 분류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경에서 기다림이라는 개념과 연관된 몇 가지 성경적인 금지명령(injunction)을 믿음으로 신중하게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37:7-9, 37:1-6).

기다림은 주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긍정적인 면에서 기다림은 항상 주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골방에 들어갈 때 하나님을 찾는데 시간을 모두 써야 한다.
1)
말씀을 공부하고 응답을 찾고 하나님의 약속을 부르짖는 데 쓰는 시간이다.
2)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고 지혜와 식별력을 간구하는 시간이다.
3)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를 묵상하는 시간이다.

기다림은 정확한 시기에 행동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밭을 갈 때와 씨를 뿌릴 때가 있고, 거두고 저장할 때가 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그 시기에 맞추어야 한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영적 밭을 경작하시고 계신다. 우리는 시간을 드려 협력하여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것을 해야 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쉬는 것을 의미한다( 145:15, 6:9). 기다림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쉬는 것을 의미한다. 쉬는 동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조급해하거나 원망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실수를 하게 된다.

“잠잠하고 참아” 라고 번역된(영문에서는 rest로 번역하고 있다) 히브리말은 다맘(damam)이다. 이 말은 앞서서 언급한 대로 ‘침묵하다’ ‘조용히 있다’ 라는 뜻이다. 이 말은 태양이 머물렀다는 여호수아 10:12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다릴 때는 정상적인 행동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나 분주하고 하나님 앞에 기다림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때로는 질병을 주어서 때로는 사업을 곤경에 빠뜨려 강제적으로 쉬게 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3:25, 62:5-8).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인격과 본성을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기다릴 수 없다. 기다림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행하신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원리를 믿음으로 따를 수 있다.

기다림은 올바른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기와 선하심과 영원한 목적에 거하면 부정적인 행동을 피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행동은 1)보복이나 앙갚음을 피한다( 20:22) 2)다른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는 일을 피한다(고전 4:5) 3)우선 하나님을 찾지 않고 어렵다고 하여 상황을 피해가거나 직업을 바지 말아야 한다. 4)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시기와 예비하심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거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함으로써 참고 만족해야 함을 배우는 것이 기다림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기다림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공과인 것이다. 1)만족과 인내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대치되기 때문이다. 2)만족과 인내는 사단이 사람의 지혜와 자신의 해결책을 통하여 안정, 만족, 확실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교활하게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려고 미혹하는 것을 피하게 한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많은 것을 갈망한다.

즉 사랑, 인정, 삶의 목적, 음식, , 위안, 기쁨, 안정 등으로 이러한 것들은 모두 합법적인 요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로 인하여 사단의 전략과 올무에 빠지기 쉽다.

3)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우리의 삶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4)사람들 가운데서 어떠한 위치를 갖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거짓말을 믿는다. 이러한 거짓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삶은 항상 불안하고 만족이 없어진다.

우리가 주를 기다림에 따른 유익이 무엇이며, 기다리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무엇인가? 기다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1)하나님의 본성과 그 능력 때문이다. 2)우리의 무능 때문이다.

주를 기다리면 어떠한 유익들이 있을까?
1)하나님이 하시도록 하신다. 기다림(찾고, 믿고, 기도하고)으로 응답하기보다 행동에 들어갈 때 우리는 다양한 심각한 상황으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것은 씨 뿌리고 거두는 법칙이다.
–다양한 질병 –경제적인 곤경 –관계성의 문제 –가족간의 불화 –영적인 문제

2)힘과 능력을 주신다( 40:29-31).
-
지속적으로 문제에 시달리고 무력하고 능력이 없으면 이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하는 것에 실패한 증거이다( 40:29-30).
-
육체적으로 나약하고 피곤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영적으로도 침체된다.
주를 기다림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사야 40:31에는 일반적인 약속이 있다.
이것은 도덕적, 정서적, 영적 힘뿐만 아니라, 육체적 힘까지 포함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독특한 약속이 있다.
-
독수리가 날개짓 하듯이 올라가리라‚
-
달려도 피곤치 아니하리라‚
-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3)기다림은 강건하게 하며 인격을 형성한다. 시편 37:1-11에는 세 가지 도전이 있다. a)앞을 보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법과 인간의 꾀에서 떠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b)쳐다보다- 상황이나 문제를 보기보다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c)생산적이 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 적용된다.

4)낙망에서 일으켜 하나님을 찬미하게 한다.
하나님을 기다림은 우리의 눈이 주를 향하게 하며 그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2.고요의 기도
1)
기다림을 통한 애정 어린 집중  - 마음의 평정이 이루어져 마음이 고요해지면 기다림의 단계로 들어간다. 기다림은 기도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기다림이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조용히 맡기는 행위”이다.

바라보다’는 말의 헬라어인 ‘앞포라오(άφοράω, aphorao)’는 ‘이것에서 눈을 돌려 저것을 바라보다’, ‘집중하여 응시하다’라는 뜻이다. 나의 관심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돌리고 마음의 눈으로 주님만을 응시하는 것을 말한다. 기다림의 과정에서는 말과 생각이 뒤로 물러나고 하나님에 대한 애정 어린 감정이 전면에 부상된다. 굳이 말을 하고 싶으면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의지합니다” “주님, 신뢰합니다”라면서 주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고백한다

명상 기도는 ‘헌신으로 불타는 사랑’이다(Contemplation is love on fire with devotion). 우리의 영속에서 흘러나오는 육신의 소리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의 임재 (1)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가 필수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기 위함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 가운데 들어가야만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임재기도라고 부르는데, 학자에 따라서 이를 ‘내적 기도’, ‘명상 기도’, ‘관상 기도’, ‘깊은 기도’, ‘친밀한 기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령의 임하심 가운데 기도를 하는 임재 기도는 다분히 관계적이고 감정적이다. 임재 기도의 핵심은 기다림과 듣기라고 할 수 있다. 임재 기도는 어느 정도 기도의 습관이 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한 상태에서 기도할 때 임재는 일어난다. 기도에 대한 부담이 성령의 임함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1)준비 단계  - 임재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점검이 필수이다.그리스도인은 일상을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는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죄얼(iniquity)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야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바로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2)마음을 평정하라 -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첫 단계는 ‘마음을 평정’  (recollection)시키는 일이다. 마음의 평정이란 우리 속에서 요동치는 모든 산만한 생각들(monkey thoughts)을 정리하는 것이다. 생각이 산만해지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다림이 어렵다. 너무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쌓이면 오히려 기도가 방해를 받는다.

마귀가 우리 영혼을 조용히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기다림이 쉽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경우 갑자기 기다림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온갖 잡생각이나 염려, 걱정, 두려움이 일어나서 조용히 영혼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한다. 이런 까닭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을 산만하게 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루 동안의 삶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공상과 헛된 생각을 키움으로써 생각이 통제를 받지 않고 고삐 풀리 망아지처럼 온통 우주를 떠도는 것이다.

보호 기도(명령 또는 명령기도) - 우리의 생각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공중을 떠도는 까닭 가운데는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생각이 계속 산만해져서 집중이 되지 않을 경우에 사단이 훼방하지 못하도록 보호 기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보호 기도는 원수를 결박하는 것과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산만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영이 약하기 때문인데, 이는 죄로 인해서 약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정리해야 하는데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이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살펴 그 뿌리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을 통제하라 - 처음 임재기도를 하는 사람은 생각을 한 곳에 모은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우리 몸에 익숙하기까지는 어렵고 힘든 법이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굶을지언정 혼자 밥을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홀로 있는 것을 못견뎌한다. 혼자 있을 때라도 헨드폰을 들고 게임에 몰두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각을 통제하는 억제력이 부족하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한 곳에 집중되게 하기 위해서 자꾸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생각은 더욱 산만해지고 힘들어진다. 산만한 생각들은 마치 흙탕물을 가만히 두고 기다리면 차츰 가라앉듯이 그렇게 우리 내면의 생각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가라앉게 된다.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거나 말씀을 떠올려 그 말씀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 효과적이다.

조용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서두르거나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조용함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조용함을 유지하는 동안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시는데 당신은 그분의 임재를 당신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영적 주체가 변환하는 것이다. 주의 영이 신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이 성령으로 인해서 통제를 받게 되고, 따라서 주님이 원하는 생각으로 위치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간단한 기도  -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말씀이나 이미지에 집중하는 일이 되지 않을 경우, 이렇게 기도할 수도 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성령 안으로 인도하셔서 마음의 고요함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제 속에 일어나는 잡다한 생각들은 저의 죄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압니다. 주님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의 근원을 정결케 해주십시오. 사단의 발판이 되는 죄를 없이하시고, 그 죄를 틈타서 저를 산만하도록 충동하는 마귀의 역사를 묶어주십시오. 저의 영혼을 고요하게 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옵소서. 저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기다림  - 산만한 생각이 정리되고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집중될 때 성령이 자신을 인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무언가가 자신을 이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이런 상태가 되면 지속적으로 주님을 응시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에는 시간도 초월하게 된다.

1)
기다린다는 말의 의미
구약의 사용 예  - 기다린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단어는 카와(qavah)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로써 나타내는 뜻은 ‘서로 묶다’ ‘참을성 있게 바라보다’ ‘기다리다’ ‘희망하다’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야할(yachal)로써 의미는 ‘기다리다’ ‘희망하다’ 이다. 간혹 ‘신뢰하다 또는 믿다’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51:5에서 NASB wait expectantly NIV wait in hope로 번역하였다.). 그 다음으로 다맘(damam)이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말을 못하게 하다’ ‘침묵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신약의 사용예  - 신약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프로스데코마이(προσδεχ  ομαί, prosdechomai)로써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다’ ‘기대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기다린다는 의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15:43, 2:25, 12:36, 24:15, 2:13, 1:21).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아페케데코마이(απεκεδεχομαί, apekede chomai)로써 ‘받아들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고대하다’ ‘기대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이 역시 주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8:19, 23, 25, 고전 1:7, 5:5, 3:20, 9:20).

2)
주를 기다림의 핵심적 요소들
기다림은 시간의 경과를 필요로 한다. 시편 130:5-6에서 주를 기다림을 파수군이 새벽을 기다림과 같은 간절함에 견주고 있다. 주의 기다림에는 반드시 시간의 경과를 전제하고 있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듯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시간의 경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확신에 찬 기대를 의미한다. 기다림은 희망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카와(qavah)가 때로는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기다림은 ‘기다리다’ ‘희망하다’ 라는 두 의미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장차 나타날 어떤 일에 대하여 고대하고 확신에 차서 바라보는 것이다.

기다림은 신뢰에 근거한 기대를 의미한다. 신뢰와 지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다그저 막연하게 어떤 대상을 기다리는 것은 맹신에 가깝다. 그런 기다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의로 바뀌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믿음과 지식에 근거한 기다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과 일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의 역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인은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한 형제님의 질문]
계시록과 디모데서와 에베소서 등 성경구약과 신약 여러곳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은 어떻게 받을수 있습니까?또한,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는것을 어떤 방법으로 알수 있습니까? .. 송명희 시인은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간증을 하는 것을 책에서 보았습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마라나타!
 
[질문에 대한 답변] - 인 맞은 자의 수
인을 친다는 것은 인정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인정받은 자들만 대 환난 전에 휴거 될 것입니다. 휴거는 대 환난을 중심으로 하여 그 전에 한 번 있고 끝에 한 번 있습니다. 대 환난 전에 휴거 될 예수님의 신부의 수는 아담부터 전 인류 중에 십사만 사천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14:1-3) 그들은 흠 없고 거룩하게 된 자들로서 죽기까지 순종한 자들입니다(계14:4-5)
 
인정받는 방법 - 어떻게 인정을 받느냐면~
시험을 통해서 합당한 자로 평가 될 때에 인정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것과 같은 시험입니다. 욥이 받았던 것과 같은 시험입니다. 모세가 살인한 후 미디안 광야에서 고난 받은 것과 같은 시험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의 시험을 받았던 것과 같은 시험입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신앙의 진품으로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그 행위를 인정 받은 것을 말합니다.
 
추수 시기
현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신부들을 결정하는 시험의 시기는 이미 끝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추수라고 하는데 벌써 한 2년 전에 추수 하신다는 음성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예언하신 분도 동일하게 말씀하신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정을 받은 자 중에서 침륜에 빠지는 자가 있다면 그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 환난 전에 휴거 될 신부들은 이미 결정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교 준비 하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자기가 인침 받은 자인지 아는 방법
자기가 인침을 받았는지 아는 방법은 계시로 압니다. 꿈이든지 환상이든지 음성이든지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인침을 받았다고 해서 다 휴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신부는 흠 없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죄를 끝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힘써 주님을 의지함으로 흠을 제거하지 않으면(14:4-5) 즉 죄를 끝내지 않으면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인침 받았는지 아는 방법은 주님의 계시로 알게 됩니다.
 
형제님께 부탁 드립니다. 이제 이곳에 있는 글들을 다 읽기까지는 질문하지 말아 주십시오. 형제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 중에서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글로서 말씀 드렸기 때문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여기에 있는 글들을 통해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많으면 좋겠는데 너무 바빠서 일일이 답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상달 원리/동행하는 삶과 기도

[성경 말씀](계8:3중)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명하심을 따라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기도 상달 원리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간추린 설명 - 제단은 번제단을 말합니다. 번제단에 항상 불이 거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금 향로는 숯불이나 향을 담아다가 향단 위에 드려 향을 피우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금단이란 금으로 된 향단을 말합니다. 천사가 제단곁에 서서 금 향로에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금단에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금단은 향을 바치는 장소입니다. 향을 담을 때는 먼저 제단 불을 먼저 담고 그 위에 향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금단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번제단에 관하여 - 번제단의 제사에 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버려 영 단번에 제물이 되심으로 새 언약 시대에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므로 우리는 각자 자기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며 헌신할 때 그 삶은 번제단에 향으로 쌓이게 됩니다.

금단에 관하여 - 금단에 관하여는 3절을 보면 천사가 번제단에서 향로에 향을 담아 기도와 함께 금단에 드린다고 했습니다그러니까 두 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에는 성도의 합당한 삶을 비유한 향이 쌓이고 금향단에는 성도의 거룩한 기도가 올라옵니다. 기도는 향의 연기가 없이는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금향로를 가지고 번제단에서 제단 숯불과 향을 금향로에 담아다가 금단에 드립니다.

금단에서 향이 타면서 연기가 올라오면 성도들의 기도가 그 향의 연기와 함께 섞여서 천사의 손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집니다. 이것은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상달 되는가에 대한 기도 상달 방법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향이 없으면 향을 피울수 없고 향을 피우지 않으면 향연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향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성도의 합당한 삶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합당한 삶이 없으면 기도해도 그 기도가 상달되지 않으며 합당한 삶이 있어야 그 기도가 상달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4절의 말뜻은 성도들의 향기로운 삶과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5절은 성도들의 삶과 기도에 따른 응답과 땅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하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는 말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땅을 향한 보응하심을 말합니다.

보좌 앞 금 향단은 거룩한 곳입니다. 금이란 값지고 변함없고 연성이 풍부하고 불순물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거룩한 본성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공의로우십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란 말은 첫 사람 아담으로부터 혈육을 따라 이어지는 죄로 인해 사망에 처한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 독생자를 보내셔서 생명의 기회를 주신 것이요 또 어린양의 피로 씻어 깨끗케 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이라 함은 공평하고 의로우심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 존귀한 자는 비천에 처하게 하시고 약하고 미련하고 가진 것 없고 천한 자들을 택하셔서 강하고 지혜 있고 부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말은 죄를 묵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6:5-6) 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마6:7-8) 이것들은 우리가 기도할 때 주의할 사항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외식이란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기도를 말하고 중언부언이란 이미 한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이 신령하고 믿음이 좋은 자처럼 가장하려고 한다거나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기도를 잘하는 자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길게 기도하려하여 이미 한 말을 또 다시 되풀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향단은 거룩한 단입니다. 거룩한 단에 냄새나는 똥 같은 기도를 드리지 마십시오. 똥 같은 기도가 뭔지 아십니까?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입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높은 자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명예욕에 속한 기도입니다. 재산을 모으고 좋은 집과 차를 갖고 부를 축적 하려고 하는 마음은 재물욕에 속한 기도입니다. 여행이나 육체의 즐거움을 원하는 마음은 정욕에 속한 기도입니다. 이것들은 다 세상에 속한 것들이요 육신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다 타락합니다.

거룩한 하늘의 백성들인 성도가 이런 똥 같은 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괴로울꼬? 말라기 1 10-13절을 보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시대말이 된 지금! 이제는 이방 믿는이들이 이것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어찌할꼬! 주 여호와를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 이제라도 마음을 찢고 철저하게 회개하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삶이요 거룩한 기도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거룩하심으로 점점 더 나아가야 하며 우리 가운데 늘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냄새가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마6:33)

그러므로 기도란 합당하고 향기로운 삶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합당한 삶이 없는 기도는 향 없는 향단과 같습니다. 기도가 상달 되는 방법은 향의 연기와 함께 섞여 올라갑니다. 향연이 피어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향에 비유되는 합당하고 향기로운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의 향이 타오를 때 향연이 기도와 함께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거룩한 기도/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들
 [ 6: 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