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라면 누구나 기도가 필수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기 위함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 가운데 들어가야만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임재기도라고 부르는데, 학자에 따라서 이를 ‘내적 기도’, ‘명상 기도’, ‘관상 기도’, ‘깊은 기도’, ‘친밀한 기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령의 임하심 가운데 기도를 하는 임재 기도는 다분히 관계적이고 감정적이다. 임재 기도의 핵심은 기다림과 듣기라고 할 수 있다. 임재 기도는 어느 정도 기도의 습관이 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한 상태에서 기도할 때 임재는 일어난다. 기도에 대한 부담이 성령의 임함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1)준비 단계 - 임재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점검이 필수이다.그리스도인은 일상을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는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죄얼(iniquity)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야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바로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령의 임하심 가운데 기도를 하는 임재 기도는 다분히 관계적이고 감정적이다. 임재 기도의 핵심은 기다림과 듣기라고 할 수 있다. 임재 기도는 어느 정도 기도의 습관이 붙은 사람이 하는 것이 좋다. 시간과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한 상태에서 기도할 때 임재는 일어난다. 기도에 대한 부담이 성령의 임함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1)준비 단계 - 임재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점검이 필수이다.그리스도인은 일상을 경건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는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죄얼(iniquity)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죄의 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어야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바로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2)마음을 평정하라 -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첫 단계는 ‘마음을 평정’ (recollection)시키는 일이다. 마음의 평정이란 우리 속에서 요동치는 모든 산만한 생각들(monkey thoughts)을 정리하는 것이다. 생각이 산만해지면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다림이 어렵다. 너무 마음을 고요하게 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쌓이면 오히려 기도가 방해를 받는다.
마귀가 우리 영혼을 조용히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기다림이 쉽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경우 갑자기 기다림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온갖 잡생각이나 염려, 걱정, 두려움이 일어나서 조용히 영혼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한다. 이런 까닭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을 산만하게 했기 때문이다.
마귀가 우리 영혼을 조용히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기다림이 쉽지 않다. 훈련되지 않은 경우 갑자기 기다림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온갖 잡생각이나 염려, 걱정, 두려움이 일어나서 조용히 영혼을 주님께 맡기는 것을 방해한다. 이런 까닭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을 산만하게 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하루 동안의 삶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 정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공상과 헛된 생각을 키움으로써 생각이 통제를 받지 않고 고삐 풀리 망아지처럼 온통 우주를 떠도는 것이다.
보호 기도(명령 또는 명령기도) - 우리의 생각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공중을 떠도는 까닭 가운데는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생각이 계속 산만해져서 집중이 되지 않을 경우에 사단이 훼방하지 못하도록 보호 기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보호 기도는 원수를 결박하는 것과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산만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영이 약하기 때문인데, 이는 죄로 인해서 약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정리해야 하는데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이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살펴 그 뿌리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보호 기도(명령 또는 명령기도) - 우리의 생각이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공중을 떠도는 까닭 가운데는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생각이 계속 산만해져서 집중이 되지 않을 경우에 사단이 훼방하지 못하도록 보호 기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보호 기도는 원수를 결박하는 것과 하나님의 보호를 요청하는 두 가지 부분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산만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영이 약하기 때문인데, 이는 죄로 인해서 약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정리해야 하는데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은 대부분이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산만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살펴 그 뿌리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을 통제하라 - 처음 임재기도를 하는 사람은 생각을 한 곳에 모은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우리 몸에 익숙하기까지는 어렵고 힘든 법이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굶을지언정 혼자 밥을 먹지 않는다는 말처럼 홀로 있는 것을 못견뎌한다. 혼자 있을 때라도 헨드폰을 들고 게임에 몰두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각을 통제하는 억제력이 부족하다.
마음이 고요해지고 생각이 한 곳에 집중되게 하기 위해서 자꾸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생각은 더욱 산만해지고 힘들어진다. 산만한 생각들은 마치 흙탕물을 가만히 두고 기다리면 차츰 가라앉듯이 그렇게 우리 내면의 생각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가라앉게 된다.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거나 말씀을 떠올려 그 말씀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 효과적이다.
조용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서두르거나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조용함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조용함을 유지하는 동안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으시는데 당신은 그분의 임재를 당신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영적 주체가 변환하는 것이다. 주의 영이 신 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생각이 성령으로 인해서 통제를 받게 되고, 따라서 주님이 원하는 생각으로 위치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간단한 기도 - 집중이 잘 되지 않고 말씀이나 이미지에 집중하는 일이 되지 않을 경우, 이렇게 기도할 수도 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성령 안으로 인도하셔서 마음의 고요함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제 속에 일어나는 잡다한 생각들은 저의 죄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압니다. 주님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의 근원을 정결케 해주십시오. 사단의 발판이 되는 죄를 없이하시고, 그 죄를 틈타서 저를 산만하도록 충동하는 마귀의 역사를 묶어주십시오. 저의 영혼을 고요하게 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옵소서. 저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기다림 - 산만한 생각이 정리되고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집중될 때 성령이 자신을 인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내면 깊숙이 무언가가 자신을 이끄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지속적으로 주님을 응시할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에는 시간도 초월하게 된다.
1)기다린다는 말의 의미
구약의 사용 예 - 기다린다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단어는 카와(qavah)이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로써 나타내는 뜻은 ‘서로 묶다’ ‘참을성 있게 바라보다’ ‘기다리다’ ‘희망하다’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야할(yachal)로써 의미는 ‘기다리다’ ‘희망하다’ 이다. 간혹 ‘신뢰하다 또는 믿다’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사 51:5에서 NASB는 wait expectantly로 NIV는 wait in hope로 번역하였다.). 그 다음으로 다맘(damam)이라는 단어가 쓰이는데 ‘말을 못하게 하다’ ‘침묵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신약의 사용예 - 신약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프로스데코마이(προσδεχ ομαί, prosdechomai)로써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다’ ‘기대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기다린다는 의미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막15:43, 눅2:25, 12:36, 행24:15, 딛 2:13, 유1:21). 다음으로 자주 나오는 단어가 아페케데코마이(απεκεδεχομαί, apekede chomai)로써 ‘받아들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고대하다’ ‘기대하다’ 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이 역시 주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롬8:19, 23, 25, 고전 1:7, 갈 5:5, 빌 3:20, 히 9:20).
2)주를 기다림의 핵심적 요소들
기다림은 시간의 경과를 필요로 한다. 시편 130:5-6에서 주를 기다림을 파수군이 새벽을 기다림과 같은 간절함에 견주고 있다. 주의 기다림에는 반드시 시간의 경과를 전제하고 있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오듯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기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 하나님의 시간의 경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기다림은 확신에 찬 기대를 의미한다. 기다림은 희망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 카와(qavah)가 때로는 ‘기대하다’ 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있다. 기다림은 ‘기다리다’ ‘희망하다’ 라는 두 의미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기다림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장차 나타날 어떤 일에 대하여 고대하고 확신에 차서 바라보는 것이다.
기다림은 신뢰에 근거한 기대를 의미한다. 신뢰와 지식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기다릴 수 없다. 그저 막연하게 어떤 대상을 기다리는 것은 맹신에 가깝다. 그런 기다림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회의로 바뀌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믿음과 지식에 근거한 기다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우리의 기다림의 대상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과 일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들을 기록한 것이 성경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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