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2011

은밀한 골방의 능력 4

은밀한 골방은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과 차단된 어떤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구하고 기도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하나님과 홀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마태복음 6:6). 다시 말해, 네가 골방에 들어갈 때, 문을 닫기 전까지는 기도하지 말라!

이것은 흩어진 마음으로 아버지와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 마음을 합하지 못하고 떠돌게 하는 온갖 종류의 생각을 차단하십시오. 버려지는 말이나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임을 자각하십시오.

여러분은 친구와 이야기할 때 또는 직장이나 학교에 있을 때 마음이 부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왕의 임재 앞에 나아올 때 "그분은 은밀히 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매일 매일의 삶 속에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기도를 합니다. 그들은 왜 응답되지 않는지, 왜 승리하지 못하는지를 의아해 합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골방을 활짝 열어놓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산만해 질 수밖에 없게 문을 열어둡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냉랭하고 위선적인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서 여러 시간 동안 초점 없이 그리고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기관총처럼 되는대로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십니까?

속지 마십시오, 집중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은밀한 골방으로 들어갈 때, 문을 닫고 전화 코드를 뽑아놓으십시오! 아버지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의 방해"를 받게 됩니다. 악마는 여러분이 하늘의 아버지께 마음을 두지 못하도록 방해하러 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훈련은 절대로 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면, 그분이 은밀히 계신 곳에 있어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6).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분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도록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뒤에는 문이 닫혀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은 맨하탄에 있는 연방 법원하고는 틀립니다. 저는 그 법원에 한번 가보았습니다, 저는 재판관이 소송사건에 얼마나 빠르게 몰입하는지에 놀랐습니다. 법원 속기사가 왔다갔다하고, 법률가들이 이야기하면서 걷고있고 이곳은 소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재판관은 자주 망치를 두드리면서 방청석을 "조용!"하게 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는 그러한 재난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출두하기 위해 기다리느라 끝없이 늘어서 있지도 않고 여기저기 걷는 산란한 영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여러분의 뒷문을 닫을 때, 여러분과 아버지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임재 안에 홀로 있게 되며 그분의 유일한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시장, 주지사 또는 대통령 앞에서 감히 할 수 없던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의 임재 앞에서도 그렇게 하십니까? 한시간 동안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나 있는지 말해봅시다. 자, 대통령 집무실로 걸어갔을 때, 여러분은 거기서 어리둥절해 하면서 이야기 할 것이며, 아마도 밖에서 테니스를 치고있는 누군가를 쳐다볼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얼마나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아버지를 구하고자 할 때는 문을 닫으십시오 그리고 아무도, 심지어 산만함도 자만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문자 그대로 문을 닫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의 순종에 집중하십시오!

은밀한 골방의 능력 3

무엇보다도,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한 골방의 능력이 나온다!

여러분은 골방기도를 하고 계십니까? 실제의 세탁물 골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까?

"은밀한 골방"을 갖는 다는 것은 간단히 주를 갈망하고 주를 구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재능과 선택된 시간을 드리면서 어느 곳, 어느 때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도의 골방"은 "기도의 습관"을 의미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홀로 있는 연습을 하고 계십니까? 기도의 골방은 전적으로 연습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을 성령님이 부를 때 응답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 오게 하는 훈련입니다. 이것은 "나는 하나님과 홀로 있고싶어, 나는 오늘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끔 혼자일 때 저의 은밀한 골방은 차안이 되기도 합니다. 집에 있을 때는 종종 저의 서재가 골방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제가 때때로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 가는 곳인 펜실바니아의 작은 시골 도로가 되기도 합니다. 뉴욕시의 거리를 걸을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몇 주전 여러 시간을 거닐었던 플로리다 해변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기도의 종류는 그분과 함께 홀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친밀감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선적인 기도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은밀한 골방에서 하나님을 구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거룩하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사람과의 극적인 구별을 보여주셨습니다!

위선자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려고 거룩한 척 연기하는 연기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 그러한 연기자들이 많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태복음 6:5).

우리의 육체는 칭찬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지은 우리 육체의 속성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는 고쳐지거나 죄가 씻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죽게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성령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십니다. 우리의 육체는 완전히 벗어지고 죽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사람들이 이것을 식별하지 못한다는 점을 빼고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 마치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위선자들]은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그들은 여러분이 어느 정도 믿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기도하며 기도 모임에 갑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기도의 습관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홀로 하는 기도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떤 한 목사님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그 목사님은 하루에 8시간을 기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와! 대단하시다. 그 목사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 목사님을 만났지만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저의 생각이 분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루에 8시간을 기도했다면, 단순히 그의 인격이 변화되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명백하게, 그가 그들에게 말한 대로 그들은 그의 기나긴 철야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자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위선자의 기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기도는 잡동사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아버지로부터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위선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하고 정직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상당수의 신자들이 주님과 매일 함께 하는 연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교회에서 그리고 식사할 때,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나님께 아주 짧게 기도합니다. 그들에게는 기도의 습관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위기가 닥쳐서 기도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때 거룩한 분노를 느낍니다, "데이브 형제님, 당신은 이것이 당신의 직업이고 설교자로서 소명을 받았으니까 기도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사역자도 아니고 그것에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어요."

아닙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습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기도 생활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일주일에 한번, 또는 되는대로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되는 대로이거나 기도의 습관이 없는 기도에는 결단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마태복음 6:6),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은밀히 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관심이 부족함을 보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여러분이 필요한 것, 즉 TV앞에서 그리고 친구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신념이나 자신을 잃었을 때 뒤늦게 자성하고 그분께 나아오는 여러분을 바라보십니다!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신4: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화를 받게 될 때 제일 먼저 심각하게 느끼는 것이 죄책감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모든 행위의 죄책에 눌려 “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써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보혈을 알게 되고, 그 피로써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내 양심의 죄책을 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죄를 용서받은 기쁨으로 즐거움에 넘치다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내 속에 아직도 죄의 권세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죄악이 아직도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죄를 범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죄성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로마서 6:6)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이와 같은 체험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구원하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해 주심을 가리킵니다.

이러므로 옛 아담의 죄성을 가진 내가 그 죄의 성품에 대하여 죽는 도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속에 이미 용서해 놓으신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혜를 힘입어 선하게 하려고 하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거듭거듭 실패를 하고 나중에는 과연 자기의 죄의 성품에서 벗어났는지를 의심하기에 이릅니다. 그때 우리는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고 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옆에 계셔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로마서 8:2)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오늘의 Daily Bread(http://blog.naver.com/paul_jhkim)

점선(===)이하의 말씀은 순복음신문 “오늘의 묵상”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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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전선에서 끊임없이 마귀와 싸우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대적해서 싸워야 하는 적에 대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라’(약 4:7)고 강하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심으로 우리는 날마다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기도-
기도의 권세를 주신 하나님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도 우리 하나님께서 이미 이겨 놓으신 싸움이기에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