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은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알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성직자들과 백성들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침묵하셨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사무엘상 3:1).
그러나 이러한 말씀의 기근 한가운데 주님이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이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사무엘상 3:7-8)
사무엘은 그때 단지 12살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아이였음에도 그는 아직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셔서 명백히 그를 부르셨습니다. 처음에 사무엘은 그것이 엘리의 소리인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음성을 분별하도록 훈련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훈련 말입니다!
여기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엘리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지금까지 단 한 선지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엘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없애시려고 한다고 경고했던 무명의 선지자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가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그 음성조차도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가 먹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대가 또한 그러합니다. 영적으로 죽어있고 타협으로 가득 찬 엘리의 사역은 모든 분별력,모든 권위, 하나님과의 접촉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영적권위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남종과 여종들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의의 생활로 받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자신의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외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혼자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을 요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는 공식이 없습니다. 밟아야할 열 가지 단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 전에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셔야만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께 둘러싸여 "주여 말씀하옵소서"라고 외치면서 여러 달을 혼자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사악한 마음을 가진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만약 그들이 난잡한 이혼, 간음, 스포츠, 오락, 향락에의 지나친 탐욕을 계속해서 행한다면 어떤 모임, 교회이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안다고 해도 무시하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기 원하시는 한 가지는 한 단어로 된 문장들일 것입니다.
"회개하라! 돌아오라! 통곡하라!"
사무엘은 하나님이 첫 번째로 그에게 말씀하셨을 때 깊은 신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열려있는 온유하며, 순수하고 헌신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후 첫 번째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내 집에 있는 죄악을 참지 않겠다! 나는 나의 종들의 아직 심판받지 않은 죄에 대해 간과하지 않겠다." 근본적으로 주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엘리를 심판하려 한다. 그가 그의 아들들이 사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말리려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복을 벗기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너희들은 거룩한 곳 가까이에 오지 못할지니라. "이제 사무엘아, 나는 너에게 나의 집에 있는 죄악에 대한 나의 증오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동행하기 위해 어떤 것을 요하는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에 벌벌 떨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11)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가 그렇게도 존경하는 엘리를 떠나시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역자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모하는 백성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소년이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까요?
이 마지막 시대에 거룩하게 남은 자는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심판하려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지못한 사역자들을 끌어내리시고 파멸시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와 같은 그렇게도 확실한 말을 사무엘이 사용했다고 성경에 씌어있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구하며, 그에게 사로잡혀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명확하게 그에게 언제나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금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훈련받은 거룩한 백성이 있습니다. 이 기도하는 성도들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분께서 그분의 마음을 그들에게 쏟아놓으십니다.
3) 남은 자는 진정한 구원,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훈련받을 것입니다. 나는 이전의 많은 메시지에서 미국은 혼돈과 붕괴속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습니다. 증오를 내뿜는 루이스 파라칸은 흑인사회에서 제시 잭슨을 제외하고는 어떤 인물들보다 유명해 졌습니다. (파라칸은 지금 흑인들 사이에서 마틴 루터 킹보다도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백인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 일부는 이곳 뉴욕에 있는 자들도 흑인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가올 인종 전쟁에 관한 저의 설교를 들으셨거나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곧 경제적 혼돈이 올 때 조심하십시오! "인종 군대"가 생길 것입니다. 백인은 흑인을 대항하고, 흑인은 유대인을 대항하며 한국인들은 흑인을 대적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큰 심판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어서 구원이라는 말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에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과거에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주로 육체적인 치료로 생각했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저는 자가 걷게 되는 것 등등.
그러나 곧 하늘로부터의 격노(激怒)하심이 우리에게 쏟아 내릴 것이며 가장 위대한 구원은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때의 구원은 "하늘로부터 확실한 말씀"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것이 지구상에 다가오는 것을 볼 때에 사람의 마음이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져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다음에 무슨 일을 하실지 알기 위해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그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미치지 않는 누군가의 음성을 듣기 위해 사방을 찾을 것입니다. 그들은 소리 지를 것입니다. "말해주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인가요? 언제 이 모든 것이 끝나게 될까요?"
여러분은 누가 그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평범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은 고요와 평안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고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여러분을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으로부터 왔다고 믿는 하나의 환상이 저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것은 뉴욕을 빠져나가는 수많은 차량행렬입니다.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의 자동차 여행캠프장, 수 주 동안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모두가 대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똑같은 일이 다른 도시들에서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준비해 놓으실 것입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한 무리의 사람들 말입니다. 사무엘처럼 그들의 말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한 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구원을 공급하였습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언약궤를 엿봄으로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맥없이 죽어버렸습니다. 모든 땅이 혼돈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틀림없다! 누가 우리를 위해 그 분 앞에 나아가겠느냐?"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을 부르러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와 더불어 미스바에 모이기를 바랍니다. 그곳에서 내가 빠져나갈 길을 보여 줄 것입니다!" 사무엘은 위기의 때에 합당한 말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사무엘상 7:3-4)
죄악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해답은 다른 사람이나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데서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총괄적인 구원의 약속은 없었습니다. 아니 사무엘은 외쳤습니다. "네 마음을 바르게 하라! 네 죄를 심판하라! 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준비하라!" 첫 번째로 죄는 책망과 심판을 받고 버려야만 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사무엘상5-6절)
그는 그들을 심판했습니다. 그는 진영에 있는 죄들을 드러냈습니다. 진정한 회개의 부흥이 사무엘의 강력한 책망을 뒤따라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과 같은 자들이 중보의 능력을 통하여 위대한 구원을 전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사무엘상7:9-10)
대학살이 있은 후 하늘로부터의 천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은 한 사람이 답을 알았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은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이 마지막 시대에 군중들을 휘저으시고 목사들을 부흥시키시고 교회를 깨우는데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군대는 기도의 능력과 죄에 대한 경건한 책망을 통하여 사람들을 회개로 이끎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과 동료는 모두 해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써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평안과 고요함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여러분에게 달려와 외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신가요?" 제가 훈련받고 있는 거룩한 남은 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설교자, 전도자, 선교사 등과 같은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범한 성도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 평안과 고요함으로 가득 차 세상에 기사와 기적이 될 사람들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방법으로 훈련된 전문적인 군대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성령에 의해 기도 가운데 훈련되어진 남종과 여종들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께 사로잡혀 그분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는 믿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러한 설명이 여러분을 나타냅니까? 여러분의 삶은 지금 겁에 질려있고 흔들리는 세상에 증인입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촉구합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기 시작하도록 하십시오. 그분께 여러분의 삶의 죄를 드러내시도록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죄라고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기도에 자신을 드림으로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자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위대한 이 마지막 시대의 남아있는 자들로 구성된 군대의 준비된 군사가 될 것입니다
11/27/2009
하나님의 숨겨진 마지막 시대의 군대(데이빗 윌커슨) - 1
오늘날 세계에서는 매우 강력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숨겨진 어떤 일을 조용히 행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초자연적이라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바로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이 마지막 시대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헌신된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지옥을 흔들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순결하고 헌신되며 두려움 없는 남은 자들로 세상을 마감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 동안 나는 죄를 미워했던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시간, 여러 날을 기도와 금식가운데 보낸 남종과 여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부도덕에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선조들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지금 새로운 군대를 일으키는 중이십니다. 이번에만은 주의 용사들이 단지 늙고, 머리가 쉰 시온의 어머니, 아버지들로만 구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새 군대는 젊거나 나이든 모든 신자들,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평범한 기독교인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역의 영역이 등장할 것입니다.
교파적 교회 시스템은 죽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것은 세속세계에 거의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강력한 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점점 많아지는 사역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음란, 탐욕, 교만 그리고 갖가지의 타락된 일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파 교회의 목사님들은 오락, 쇼맨십 등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브로드웨이를 우리의 백성들에게 주고 싶어요." 나는 적어도 50 퍼센트의 부부가 이혼한 복음주의 파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내게 편지해 준 어떤 교인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이 숫자가 8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간음한 자, 음란한 자, 마술이나 마법에 관여하는 자,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갉아먹는 자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목사님들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날 사역의 퇴보에 대해 저와 똑같이 애통해하는 많은 경건한 목사님들과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이 아직 남아 계시며 나는 그분들 한사람, 한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역자들이 타협과 타락의 길로 경주하듯 내려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세계는 하나님의 집을 비웃고 있습니다. 사탄이 합법적인 낙태, 만연한 동성애, 마약, 알코올, 사탄숭배 그리고 이슬람의 침투와 같은 것들을 통한 승리를 주장하며 으스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초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지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명백하게 쓰여 있습니다. 사실, 지옥에 있는 모든 사단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계획을 사무엘상 1-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일종의 하나님의 남은 거룩한 자입니다. 주님이 가장 악한 시대에 그를 택하시고 그분의 새로운 것을 나타내실 때까지 사무엘을 훈련시키시는 가운데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11 )
이 새로운 일은 그것을 듣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낡고 썩고 타락한 종교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대한 훈련, 양육,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시대에 하신 일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는 모든 세대에 그것을 행하십니다. 잘 조직된 교회가 타협하고 냉대해지며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버리시고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정말로 모든 세대에 남은 자, 그분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길을 버린 죽어있는 타락한 교회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르기를,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사단의 아들, sons of the devil)라 여화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사무엘상 2:12)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 문 바로 앞에서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여자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성전에 올 때 엘리의 아들들은 여자들을 골라서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제사를 드리는 척만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못 본체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그 때 나이 90이 넘었으며 뚱뚱해져 있었고 편안하며 목이 곧았습니다. 그는 점점 아들들이 제물로부터 가져오는 붉은 고기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엘리는 이 고기가 혐오할만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이 고기를 훔치지 못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불순한 탐심을 모른척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잘 조직된 교회가 보여주는 사악한 모습입니다. 전 교파가 지금 동성애자에게 성직을 부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혐오스러운 짓들을 하나님의 집에 들여오고 있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또한 죄에 대해 관대해진 죽고 차가운, 형식적인 성직자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엘리처럼 오늘날 많은 목사들은 죄에 관한한 비겁자들 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역의 모양만 취할 뿐,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지위에 편안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 합니다. 그들이 죄를 모른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사무엘상 3:13)
엘리는 악을 판단하고 고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 권위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얼마 전에 나는 우리교회를 방문한 대여섯명의 오순절파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부패와 경건한 꾸짖음의 결여에 대한 나의 걱정에 관해 이야기하였을 때 그 그룹의 인도자는 단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는 "데이브 형제, 나는 내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의 절반은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인들에게 관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화나게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항하여 크게 외칠 용기를 가진 연로하신 목사님들을 열 명도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로하신 주의 용사들은 영적으로 죽었거나 아니면 자기 TV앞에 앉아 죽어가고 있으며 모든 능력이 말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세상의 영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권태를 느끼는 엘리의 아들들입니다. 자기를 망각으로 잠재우고, 뚱뚱해지고, 번영하는 죄를 다루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엘리 세대에 질려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엘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사무엘상 2:31) 하나님은 다른 말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사무엘상 2:32) 바로 지금 많은 국립 교회위원회의 소위 임의 기금(discretionary funds)이 전 세계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미국의 교회가 아무 영적 능력이나 영향이 없는지 궁금해 합니다. 많은 교단 교회들은 큰 무덤,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교회에 생명과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에 있던 엘리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입니다. 주님은 심각하게 판단하시고 그 교회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루에 닥쳐왔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사무엘상 4:10-11)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하다!" 그리고 하루 만에 하나님의 궤는 이방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임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장 그 사역을 심판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엘리가 언약궤가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사무엘상 4:18)
이것은 오늘날 미국에서 잘 조직된 많은 종교에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상입니다. 그 체계는 심판아래 있습니다. 그 사역은 좌우로 쓰러지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적에게 넘겨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레미야의 시대와 똑같은 현상입니다. 그의 시대에 사람들은 "우리는 안전해. 우리는 위험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잃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예레미야 7:9-12)
모든 세대 가운데 하나님은 냉랭하고 부패한 교회에 경고하십니다. "실로로 돌아가라. 엘리의 교회를 돌아가라.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내가 행한 일을 보라! 내가 나의 임재를 거두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라. 죄가 있는 곳은 어디나 나의 영광이 떠날 것이다!"
그러나 엘리의 교회가 심판을 받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바쁘게 남은 자를 일으키시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이 이 거룩한 남은 자, 늙고 퇴폐적인 교회의 황패함으로 부터 일어난 신자 중 준비된 자의 대표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1) 남은 자들은 항상 기도와 중보를 낳습니다.
한나는 쓰디쓴 눈물과 많은 기도를 통하여 그녀의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사무엘상 1:10)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나는 매일 성전에 가서 상하고 아픈 마음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에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울고 있을 때 그녀의 적 브닌나는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사무엘상 1:6)
이 말씀에 내가 지적하고 싶은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이 나타내는 남은 자는 고통과 중보를 통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고 애통하는 자들은 적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항상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녀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주목하십시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 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사무엘상 1:12-14)
엘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너무나 죽어있어서 그는 한나가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여자여, 얼마나 더 취해서 성전에 들어오려느냐? 네 병을 치워라!" 이것은 내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공공연히 술에 취하고 간음을 하는 것을 고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딸을 술 취한 자로 오해했습니다. 오늘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헌신된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기도에 드립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며 예수님께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목사님들이 그들의 적이 되어 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도 합니다. 한나가 제단 앞에 있을 때 그녀는 슬픔이 가득하고 한 아들의 탄생에 대한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신음 때문에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입술을 움직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사무엘상 1:11)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려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한나처럼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고통과 비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움직이시는 것을 보기 원하며 주님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실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은 중보의 군대라는 영적인 모태에서 신자의 몸,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무엘과 같은 자들이 잉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구별하는 두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나처럼 기도합니다. 그들의 짐은 깊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악함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리고 한나처럼 그들은 그들 삶의 매일을 기도에 드립니다. 그들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으며 뜨거워졌다 차졌다 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가서 그들의 혼을 쏟아놓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편 62:8)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편 42:4)
사무엘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위대해서 이스라엘은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왕을 원했을 때,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사무엘상 12:18-19)
우리는 계속해서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촉구하는 사람들에 관해 읽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의 기도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이 기도를 요청할 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접촉하는 분을 알아요!"라고 외치며 그들을 찾으려 달려들 것입니다. 상담은 그 자체로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필요를 채워주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이 그분 자신을 만지시기 원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시련과 짐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올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분의 말씀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지만 강력한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군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헌신된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고 지옥을 흔들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순결하고 헌신되며 두려움 없는 남은 자들로 세상을 마감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 동안 나는 죄를 미워했던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시간, 여러 날을 기도와 금식가운데 보낸 남종과 여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부도덕에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선조들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지금 새로운 군대를 일으키는 중이십니다. 이번에만은 주의 용사들이 단지 늙고, 머리가 쉰 시온의 어머니, 아버지들로만 구성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새 군대는 젊거나 나이든 모든 신자들,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평범한 기독교인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역의 영역이 등장할 것입니다.
교파적 교회 시스템은 죽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것은 세속세계에 거의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강력한 힘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점점 많아지는 사역자들은 모든 영역에서 음란, 탐욕, 교만 그리고 갖가지의 타락된 일들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 파 교회의 목사님들은 오락, 쇼맨십 등을 들여오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브로드웨이를 우리의 백성들에게 주고 싶어요." 나는 적어도 50 퍼센트의 부부가 이혼한 복음주의 파 교회를 알고 있습니다. 내게 편지해 준 어떤 교인에 의하면 어떤 지역에서는 이 숫자가 80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간음한 자, 음란한 자, 마술이나 마법에 관여하는 자,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갉아먹는 자입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목사님들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다고 저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날 사역의 퇴보에 대해 저와 똑같이 애통해하는 많은 경건한 목사님들과 친분을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들이 아직 남아 계시며 나는 그분들 한사람, 한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역자들이 타협과 타락의 길로 경주하듯 내려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세계는 하나님의 집을 비웃고 있습니다. 사탄이 합법적인 낙태, 만연한 동성애, 마약, 알코올, 사탄숭배 그리고 이슬람의 침투와 같은 것들을 통한 승리를 주장하며 으스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초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지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명백하게 쓰여 있습니다. 사실, 지옥에 있는 모든 사단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계획을 사무엘상 1-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일종의 하나님의 남은 거룩한 자입니다. 주님이 가장 악한 시대에 그를 택하시고 그분의 새로운 것을 나타내실 때까지 사무엘을 훈련시키시는 가운데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사무엘상 3:11 )
이 새로운 일은 그것을 듣는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낡고 썩고 타락한 종교체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고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대한 훈련, 양육, 기름부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시대에 하신 일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는 모든 세대에 그것을 행하십니다. 잘 조직된 교회가 타협하고 냉대해지며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교회를 버리시고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정말로 모든 세대에 남은 자, 그분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길을 버린 죽어있는 타락한 교회를 나타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르기를,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사단의 아들, sons of the devil)라 여화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사무엘상 2:12) 이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것들을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 문 바로 앞에서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여자들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성전에 올 때 엘리의 아들들은 여자들을 골라서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제사를 드리는 척만 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나쁜 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못 본체 했다는 것입니다. 엘리는 그 때 나이 90이 넘었으며 뚱뚱해져 있었고 편안하며 목이 곧았습니다. 그는 점점 아들들이 제물로부터 가져오는 붉은 고기에 중독되어 갔습니다. 엘리는 이 고기가 혐오할만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이 고기를 훔치지 못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불순한 탐심을 모른척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잘 조직된 교회가 보여주는 사악한 모습입니다. 전 교파가 지금 동성애자에게 성직을 부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혐오스러운 짓들을 하나님의 집에 들여오고 있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은 또한 죄에 대해 관대해진 죽고 차가운, 형식적인 성직자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엘리처럼 오늘날 많은 목사들은 죄에 관한한 비겁자들 입니다. 그들은 단지 사역의 모양만 취할 뿐, 경건의 모습은 있으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지위에 편안해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길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 합니다. 그들이 죄를 모른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사무엘상 3:13)
엘리는 악을 판단하고 고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 권위를 가져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바로 그 일입니다. 얼마 전에 나는 우리교회를 방문한 대여섯명의 오순절파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교회에 침투하고 있는 부패와 경건한 꾸짖음의 결여에 대한 나의 걱정에 관해 이야기하였을 때 그 그룹의 인도자는 단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목사는 "데이브 형제, 나는 내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우리 교회의 절반은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교인들에게 관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화나게 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항하여 크게 외칠 용기를 가진 연로하신 목사님들을 열 명도 알지 못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로하신 주의 용사들은 영적으로 죽었거나 아니면 자기 TV앞에 앉아 죽어가고 있으며 모든 능력이 말라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세상의 영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권태를 느끼는 엘리의 아들들입니다. 자기를 망각으로 잠재우고, 뚱뚱해지고, 번영하는 죄를 다루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엘리 세대에 질려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엘리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사무엘상 2:31) 하나님은 다른 말로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사무엘상 2:32) 바로 지금 많은 국립 교회위원회의 소위 임의 기금(discretionary funds)이 전 세계 공산주의 게릴라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미국의 교회가 아무 영적 능력이나 영향이 없는지 궁금해 합니다. 많은 교단 교회들은 큰 무덤, 장례식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교회에 생명과 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실로에 있던 엘리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입니다. 주님은 심각하게 판단하시고 그 교회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루에 닥쳐왔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사무엘상 4:10-11)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충분하다!" 그리고 하루 만에 하나님의 궤는 이방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임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장 그 사역을 심판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엘리가 언약궤가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사무엘상 4:18)
이것은 오늘날 미국에서 잘 조직된 많은 종교에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상입니다. 그 체계는 심판아래 있습니다. 그 사역은 좌우로 쓰러지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적에게 넘겨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레미야의 시대와 똑같은 현상입니다. 그의 시대에 사람들은 "우리는 안전해. 우리는 위험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잃지 않을 거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예레미야 7:9-12)
모든 세대 가운데 하나님은 냉랭하고 부패한 교회에 경고하십니다. "실로로 돌아가라. 엘리의 교회를 돌아가라.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내가 행한 일을 보라! 내가 나의 임재를 거두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라. 죄가 있는 곳은 어디나 나의 영광이 떠날 것이다!"
그러나 엘리의 교회가 심판을 받고 있을 때에도 주님은 바쁘게 남은 자를 일으키시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이 이 거룩한 남은 자, 늙고 퇴폐적인 교회의 황패함으로 부터 일어난 신자 중 준비된 자의 대표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마지막 시대의 남은 자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1) 남은 자들은 항상 기도와 중보를 낳습니다.
한나는 쓰디쓴 눈물과 많은 기도를 통하여 그녀의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사무엘상 1:10) 그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나는 매일 성전에 가서 상하고 아픈 마음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녀에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울고 있을 때 그녀의 적 브닌나는 그녀를 조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사무엘상 1:6)
이 말씀에 내가 지적하고 싶은 중요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이 나타내는 남은 자는 고통과 중보를 통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기도하고 애통하는 자들은 적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항상 오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녀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주목하십시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 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어라“(사무엘상 1:12-14)
엘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너무나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너무나 죽어있어서 그는 한나가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나에게 말했습니다, "여자여, 얼마나 더 취해서 성전에 들어오려느냐? 네 병을 치워라!" 이것은 내게 너무나 놀랍습니다.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공공연히 술에 취하고 간음을 하는 것을 고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딸을 술 취한 자로 오해했습니다. 오늘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헌신된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기도에 드립니다. 거룩하게 살아가며 예수님께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목사님들이 그들의 적이 되어 그들을 조롱하고 박해하기도 합니다. 한나가 제단 앞에 있을 때 그녀는 슬픔이 가득하고 한 아들의 탄생에 대한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영혼의 신음 때문에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입술을 움직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기도했습니다.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사무엘상 1:11)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려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한나처럼 교회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시는 고통과 비애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리고 그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새로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특별한 방법으로 움직이시는 것을 보기 원하며 주님은 그들의 외침을 들으실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은 중보의 군대라는 영적인 모태에서 신자의 몸,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무엘과 같은 자들이 잉태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을 구별하는 두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나처럼 기도합니다. 그들의 짐은 깊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악함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리고 한나처럼 그들은 그들 삶의 매일을 기도에 드립니다. 그들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 않으며 뜨거워졌다 차졌다 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가서 그들의 혼을 쏟아놓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시편 62:8)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편 42:4)
사무엘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위대해서 이스라엘은 그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말씀에 의하면 사람들이 왕을 원했을 때,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뢰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사무엘상 12:18-19)
우리는 계속해서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촉구하는 사람들에 관해 읽게 됩니다. 사람들이 그의 기도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이 기도를 요청할 기도하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접촉하는 분을 알아요!"라고 외치며 그들을 찾으려 달려들 것입니다. 상담은 그 자체로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필요를 채워주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원하십니다. 그는 여러분이 그분 자신을 만지시기 원하며 그분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시련과 짐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올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분의 말씀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 2
성경은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때가 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보고하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을 썼는지 알기 원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분께 대답하기를 기대할 것입니까?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여기서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하늘의 기록을 펴실 때에 여러분은 어떤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책이 여러분이 그분께 거의 생각조차 드리지 않았다고 밝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데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확실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과 같은 다른 여러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의와 심판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셨다고 몇 번이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 그들이 광야의 반역 가운데 죽었던 이유입니다. 사실 그들은 절대로 그들의 마음이 변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은 길에서 잘려 나갑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졸고 있는 사람들이래도 그분의 회개한 자들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그분께로 들으려는 열정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고에 경고를 듣고 나서도, 또한 많은 진정한 신자들은 주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구원의 선물을 경시합니다. 나의 영으로, 나는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은 나를 경시할 뿐만 아니라, 또 나에 대한 모든 열정을 팽개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심지어 나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지나가는 사람조차 되지 못하는 구나.”
여기에 졸기 시작한 모든 “지혜로운 처녀”들을 향한 사랑의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렇게 요약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한때 지혜로운 처녀였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상처 받으셨습니다. 한때 이 사람들은 그분의 재림을 고대하며 성실하게 그분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널리 깨어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불탔으며,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지혜로운 처녀들은 서서히 그분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리석은 처녀들의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주장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어리석은 처녀들 중에 한 명이 아닙니다. 제가 예수님을 위해 불타 오르지는 않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나는 선을 넘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나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그분을 향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교회도 잘 나가고, 배우자와 부모님에게도 헌신적인걸요.”
그렇지만 지금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을 갖고 있습니까? 그분과의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배고픔과 갈증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차갑거나 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진정 지혜로운 처녀라면 -만일 여러분이 절대 예수님을 향한 친밀한 사랑을 져버린 적이 없었다면- 잠언으로부터의 경고를 생각해보십시오.
“게으름은 깊은 잠에 빠지게 하나니 빈둥거리는 혼은 주릴 것이니라.”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한때 예수님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수렁을 설명하는데 딱 맞는 말입니다. 게으름은 그들이 어리석음과 이전에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었던 그들 삶의 육적인 것들을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들에 몰두함에 따라, 그들은 서서히 그들의 열정이 기울기 시작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기도와 헌신에 바쳐진 시간들을 잃어버립니다. 서서히, 그들은 냉담하고 미지근한 신자들로 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위험한 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게을러지고 있습니까? 더 이상 시간을 드리지 않고, 그대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성경의 명확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게을러져서 영적 졸음에 빠진다면, 여러분은 마침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선을 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리석은 처녀들의 대열에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깊은 잠에 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깨닫기도 전에 여러분의 준비해둔 램프의 불꽃은 차츰 꺼지다가 죽어버릴 것입니다.
잠자는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지금 몇 년 동안 제 영혼 안에서 타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옛날에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날 다른 많은 목자들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하나님의 대언자도 그들이 보살피는 양처럼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으며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것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는 자들이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이사야56:10)
명목뿐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서 남겨질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 결혼만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제외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분명한 진리를 줍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오직 준비된 자들만이 그분과 함께 있도록 허락 받을 것입니다.
그 비유에 따르면,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나되”(마태복음25:6). 제가 오늘날 교회의 광경을 둘러볼 때에, 저는 단지 게으른 목자와 졸고 있는 성도뿐만 아니라, 두려움 없이 행동하며 온갖 육욕으로 뛰어들고 있는 쾌락에 미친 그리스도인들마저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악함과 나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께서는 그분의 신실한 목자들에게 경고를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남은 파수꾼들은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롱당하고 멸시 받고 비웃음 받으면서도, 이 종들은 그들의 마음에 타오르는 메시지를 크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이제 때는 자정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위해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문에 도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들, 여러분의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여기, 현재의 외침이 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얼굴을 맞대고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또한 들리게 될 두 번째 외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 외침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곧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계의 주의를 끌기 위해 권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시면서 그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성취되는 것을 볼 때, 그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에 임할 일들을 내다보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임이라”(누가복음21:26)
내심으로 이 나라와 온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인류가 위기의 혼란에 도달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예전처럼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떠오르는 직관, 내적 지식이 있습니다. 어떠한 초자연적인 것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분명 높은 곳으로부터의 어떤 종류의 간섭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표적들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오며, 이 땅에 어둠과 혼란이 증가할 것입니다. 모든 사회의 기반은 그들의 중심까지 흔들릴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온 세계의 유대인들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드디어 오시고 있어. 우리는 그분께서 바로 문턱에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어.”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이 드디어 오는 그 순간이면, 이런 울부짖음이 졸고 있는 교회로부터 올라올 것입니다. “우리 램프가 꺼졌어!” 많은 사람들은 견뎌낼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차갑고 미지근한 자들은 급히 서둘러 잃어버린 시간을 절박하게 보충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사님에게 애원할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영적으로 죽었어요. 제발, 어떻게 이것을 직면할 수 있을지 말해주세요.” 그러나 그러한 많은 목사들도 그들의 양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고 난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분의 비유에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마태복음15:10)
지혜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스스로 기름을 사오도록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이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그 때가 도달하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키울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자원을 지을 시감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졸고 있는 자들은 서서히 그들이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나는 비었고, 말랐어. 나는 어리석은 것들을 쫓는데 내 모든 시간을 낭비했어. 나는 완전히 내 삶을 낭비한 거야.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있는데, 나는 준비되지 못했어.”
신랑이 문을 닫았을 때, 어리석은 처녀들은 밖에 남겨져 울부짖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25:12)
이 얼마나 두려운 광경입니까. 그 시점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언명하실 것입니다. “문은 닫혔노라.” 여기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에 오직 진정으로 구원 받은 신자만이 그분의 신부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죄를 붙들려고 노력한 모든 자들, 곧 그분의 사랑이 아닌 그분의 이름만을 원했던 자들은 남겨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은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가장 큰 소원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여러분을 옆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정직하다면 그분의 이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래, 이 비유는 나를 말하는 거야. 나는 게을러졌어. 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 표류하고 싶지 않아. 나는 주님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준비되고 싶어.”
만일 여러분이 지혜로운 처녀가 되길 원한다면, 여러분이 취해야 할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모두 단순한 단계들이지만 지혜로운 처녀에 속하기 위해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각에 있어서 중심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생각에 주님께서 계시게 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엇이든지 올바른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런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그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빌립보서4:8)
다음 구절이 내내 여러분의 단순한 기도의 기초가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은 진실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고, 순수하며, 사랑스러우십니다. 당신은 나의 복음이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아시며”(고린도전서3:20)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생각을 기록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때를 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모든 감사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2. 온 종일 기도하십시오. “주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이 간단한 기도가 여러분의 등의 기름입니다. 매일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떠한 작은 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이 보시기에는 더러운 넝마와도 같습니다. 저는 저의 선행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압니다. 나는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 앞에서 제 자신을 낮춥니다. 주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세리가 처음에 이런 기도를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누가복음18:14)
다른 말로, 여기 예수님께서 문 열어주실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 문제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브리서9:28)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분 보기를 갈망하십니까?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마음, 혼, 생각 그리고 힘을 다해 예수님을 구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당신은 그분을 찾을 것이라고 그분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글쎄요,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데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분께서는 확실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과 같은 다른 여러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의와 심판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셨다고 몇 번이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에서 그들이 광야의 반역 가운데 죽었던 이유입니다. 사실 그들은 절대로 그들의 마음이 변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은 길에서 잘려 나갑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졸고 있는 사람들이래도 그분의 회개한 자들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그분께로 들으려는 열정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고에 경고를 듣고 나서도, 또한 많은 진정한 신자들은 주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구원의 선물을 경시합니다. 나의 영으로, 나는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그들은 나를 경시할 뿐만 아니라, 또 나에 대한 모든 열정을 팽개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심지어 나에 대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지나가는 사람조차 되지 못하는 구나.”
여기에 졸기 시작한 모든 “지혜로운 처녀”들을 향한 사랑의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렇게 요약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한때 지혜로운 처녀였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상처 받으셨습니다. 한때 이 사람들은 그분의 재림을 고대하며 성실하게 그분을 만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널리 깨어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불탔으며,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지혜로운 처녀들은 서서히 그분으로부터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어리석은 처녀들의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주장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어리석은 처녀들 중에 한 명이 아닙니다. 제가 예수님을 위해 불타 오르지는 않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나는 선을 넘은 것 같지는 않은데요. 나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 그분을 향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교회도 잘 나가고, 배우자와 부모님에게도 헌신적인걸요.”
그렇지만 지금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을 갖고 있습니까? 그분과의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배고픔과 갈증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차갑거나 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진정 지혜로운 처녀라면 -만일 여러분이 절대 예수님을 향한 친밀한 사랑을 져버린 적이 없었다면- 잠언으로부터의 경고를 생각해보십시오.
“게으름은 깊은 잠에 빠지게 하나니 빈둥거리는 혼은 주릴 것이니라.”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한때 예수님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수렁을 설명하는데 딱 맞는 말입니다. 게으름은 그들이 어리석음과 이전에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었던 그들 삶의 육적인 것들을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것들에 몰두함에 따라, 그들은 서서히 그들의 열정이 기울기 시작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곧 그들은 기도와 헌신에 바쳐진 시간들을 잃어버립니다. 서서히, 그들은 냉담하고 미지근한 신자들로 변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위험한 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게을러지고 있습니까? 더 이상 시간을 드리지 않고, 그대신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계십니까? 성경의 명확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게을러져서 영적 졸음에 빠진다면, 여러분은 마침내 일어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선을 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리석은 처녀들의 대열에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깊은 잠에 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깨닫기도 전에 여러분의 준비해둔 램프의 불꽃은 차츰 꺼지다가 죽어버릴 것입니다.
잠자는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지금 몇 년 동안 제 영혼 안에서 타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옛날에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날 다른 많은 목자들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말씀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하나님의 대언자도 그들이 보살피는 양처럼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부르짖으며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것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눈먼 자들이요, 다 무지한 자들이며 다 말 못하는 개들이므로 짖지 못하는 자들이며 잠자고 눕고 졸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이사야56:10)
명목뿐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서 남겨질 것입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 결혼만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제외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분명한 진리를 줍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오직 준비된 자들만이 그분과 함께 있도록 허락 받을 것입니다.
그 비유에 따르면,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나되”(마태복음25:6). 제가 오늘날 교회의 광경을 둘러볼 때에, 저는 단지 게으른 목자와 졸고 있는 성도뿐만 아니라, 두려움 없이 행동하며 온갖 육욕으로 뛰어들고 있는 쾌락에 미친 그리스도인들마저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악함과 나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분께서는 그분의 신실한 목자들에게 경고를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남은 파수꾼들은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롱당하고 멸시 받고 비웃음 받으면서도, 이 종들은 그들의 마음에 타오르는 메시지를 크게 부르짖을 것입니다.
“이제 때는 자정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위해 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문에 도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여러분들, 여러분의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십시오.”
여기, 현재의 외침이 있습니다. “준비하십시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을 얼굴을 맞대고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또한 들리게 될 두 번째 외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직 이 외침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곧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계의 주의를 끌기 위해 권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시면서 그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성취되는 것을 볼 때, 그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에 임할 일들을 내다보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임이라”(누가복음21:26)
내심으로 이 나라와 온 땅의 모든 사람들은 인류가 위기의 혼란에 도달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예전처럼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떠오르는 직관, 내적 지식이 있습니다. 어떠한 초자연적인 것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분명 높은 곳으로부터의 어떤 종류의 간섭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표적들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날은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다가오며, 이 땅에 어둠과 혼란이 증가할 것입니다. 모든 사회의 기반은 그들의 중심까지 흔들릴 것입니다. 심지어 지금, 온 세계의 유대인들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우리의 메시아는 드디어 오시고 있어. 우리는 그분께서 바로 문턱에 계신 것을 느낄 수 있어.”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이 드디어 오는 그 순간이면, 이런 울부짖음이 졸고 있는 교회로부터 올라올 것입니다. “우리 램프가 꺼졌어!” 많은 사람들은 견뎌낼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차갑고 미지근한 자들은 급히 서둘러 잃어버린 시간을 절박하게 보충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목사님에게 애원할 것입니다.
“도와주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영적으로 죽었어요. 제발, 어떻게 이것을 직면할 수 있을지 말해주세요.” 그러나 그러한 많은 목사들도 그들의 양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럽고 난처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분의 비유에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마태복음15:10)
지혜로운 처녀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스스로 기름을 사오도록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이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그 때가 도달하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키울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자원을 지을 시감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졸고 있는 자들은 서서히 그들이 준비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나는 비었고, 말랐어. 나는 어리석은 것들을 쫓는데 내 모든 시간을 낭비했어. 나는 완전히 내 삶을 낭비한 거야.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있는데, 나는 준비되지 못했어.”
신랑이 문을 닫았을 때, 어리석은 처녀들은 밖에 남겨져 울부짖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나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25:12)
이 얼마나 두려운 광경입니까. 그 시점에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언명하실 것입니다. “문은 닫혔노라.” 여기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에 오직 진정으로 구원 받은 신자만이 그분의 신부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죄를 붙들려고 노력한 모든 자들, 곧 그분의 사랑이 아닌 그분의 이름만을 원했던 자들은 남겨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드리겠습니다. 좋은 소식은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가장 큰 소원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여러분을 옆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정직하다면 그분의 이 말씀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래, 이 비유는 나를 말하는 거야. 나는 게을러졌어. 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 표류하고 싶지 않아. 나는 주님의 날이 다가옴에 따라 준비되고 싶어.”
만일 여러분이 지혜로운 처녀가 되길 원한다면, 여러분이 취해야 할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모두 단순한 단계들이지만 지혜로운 처녀에 속하기 위해서 간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생각에 있어서 중심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생각에 주님께서 계시게 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엇이든지 올바른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런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그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빌립보서4:8)
다음 구절이 내내 여러분의 단순한 기도의 기초가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은 진실하고, 정직하고, 올바르고, 순수하며, 사랑스러우십니다. 당신은 나의 복음이십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주께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을 아시며”(고린도전서3:20)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든 생각을 기록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분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때를 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모든 감사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2. 온 종일 기도하십시오. “주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이 간단한 기도가 여러분의 등의 기름입니다. 매일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자비가 필요합니다. 저는 제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떠한 작은 선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저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이 보시기에는 더러운 넝마와도 같습니다. 저는 저의 선행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압니다. 나는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당신 앞에서 제 자신을 낮춥니다. 주님,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십시오.”
세리가 처음에 이런 기도를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누가복음18:14)
다른 말로, 여기 예수님께서 문 열어주실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 문제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브리서9:28)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당신은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분 보기를 갈망하십니까?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마음, 혼, 생각 그리고 힘을 다해 예수님을 구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당신은 그분을 찾을 것이라고 그분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 1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소돔과 같이 자기 죄를 밝히 드러내고 숨기지 아니하니” 이 말들은 또한 지금 현재의 미국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소돔과 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불경건한 행위라도 아무런 수치감도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미국이 바로 나락의 가장자리에 도달했다 생각합니다. 심지어 세상조차 모든 것이 너무 멀리 나가버렸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전 MTV에서의 외설적인 행위로 인해 유명해진 록 스타들을 인용한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음악가들은 미국에 범람하고 있는 끔찍한 타락에 경악합니다. 그들은 현재의 문란함은 그들이 봐 왔던 것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공연자들은 새로운 경지의 추행을 선도하는 데에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역겨워 하며 그들의 머리를 내젓습니다. 그들은 인정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을 제어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나라는 완전히 선을 넘어간 겁니다.주님은 우리의 파렴치함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에 악이 관영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경제적 패해와 불황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생계를 제하는 것 같습니다.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제거하실 것임이니 곧 그들이 의지하는 모든 빵과 의지하는 모든 물과”(사 3:1) 이것은 분명 경제적 재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경제적 어려움이 또한 하나님께서 미국인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모든 사람의 지갑에 영향을 끼치는 것 외에는 그분께서 어떻게 죄에 미친 나라를 제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경제에 곤란을 주겠다. 너희는 너희의 몇 년간의 번영이 중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특이한 상황을 묘사합니다.“그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이르기를, 가 우리의 빵을 먹으며 우리의 옷을 입으리니 다만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하여 우리의 수치를 없애게 하라, 하리라”(사 4:1)
일곱 처녀들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특별한 합의를 하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에서는 어떠한 사랑이나 구애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약혼, 친밀함, 신실함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사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그들이 사랑하거나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남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 남자의 이름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어떠한 지위를 선사해 줄 사랑이 없는 애매한 결혼을 찾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일곱이란 숫자는 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아마도 이 일곱 여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일부를 가진 듯한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이 남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살고 스스로 공급하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수치를 가리기 위한 당신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좋게 보이기 원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그러한 지위를 줄 것입니다.”
저는 이사야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여인이 결혼하기 원하는 그 남자는 예수님입니다. 그 선지자는 여기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편리한 결혼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들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임을 주장하며 영적으로 보이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거래 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주님! 그러나 나는 내 길을 가고 싶고 내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요. 그냥 당신의 이름을 주세요.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일부로 보이고 알려지고 싶어요.”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의의 옷을 입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친밀함을 갖거나 그분께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 자체적으로 살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의무나 헌신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그들은 주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사귀게 해주십시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이사야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세계에 있는 교회들은 예수님과의 친밀감이 없는 수백만의 자칭 그리스도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시간도 갖지 않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보기 위해 성경을 꺼내 들지도 않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계속 품어주셨습니다. 그들을 축복하고 번영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간단한 말조차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해요, 주님. 제 인생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튼 이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이름에 붙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전히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런 합의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그들의 신랑에 커다란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와의 친밀함을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며 나는 그분의 것이니”(아가2:16)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부르짖음은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단지 당신의 이름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당신을 갈망합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며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일어나는 매일 아침, 내 마음은 당신께로 향합니다.”
“우리의 혼이 주의 이름을 사모하오며 또 주에 대한 기억을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가 내 혼으로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참으로 아침 일찍 내 속에서 내 영으로 주를 찾으오리니”(이사야 26:8-9)
그렇습니다. 진실한 신자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내가 주를 크게 기뻐하며 내 혼이 내 하나님을 기뻐하리니 이는 마치 신랑이 장식으로 자기를 꾸미고 신부가 보석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 같이 그분께서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시고 의의 겉옷으로 나를 덮으셨기 때문이요”(이사야61:10)
이 모든 것이 그 날에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나라를 흔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이 일어나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돔과 고모라를 다루셨던 것처럼 다루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원로들에게 교만히 행하고 천한 자도 존귀한 자에게 그리하리라”(이사야3:5) 그분께서 번영을 멈추시므로 곧, 주님의 의로운 심판이 모두에게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올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혼인하였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명목상으로 그분께 붙어 있을 것입니다. 비극적이게도, 그들은 전혀 그분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비유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그들이 다 졸다가 잠드니라”(마태복음25:5) 모든 처녀들,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잠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재림 직전의 졸고 있는 교회를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이는 집 주인이 어느 때에 올는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닭 울 때인지,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니라.”(마가13:35-37)
저는 그리스도의 비유에서 이 그림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이 지혜로운 처녀들이 졸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경건한 종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왔던 자가, 주님이 다가오시는데 잠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제가 예수님의 비유의 어려운 진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저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예언을 떠올렸습니다. 거대한 배교가 교회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울의 권고도 기억했습니다.
“지금이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 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가깝기 때문이라”(로마서13:11) 바울의 경고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 거대한 졸음이 많은 그리스도인들 위에 쏟아지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의로운 자마저도 잠들어 버릴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부시리라, 하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에베소서5:14-16)
그 사도는 이렇게 강권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성도 여러분, 잠자는 처녀가 되지 마십시오. 지혜롭게 주님의 재림를 주의하며 기다리십시오.” 여기 바울의 언급에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사랑스런 자녀”(5:1)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 이는 잠자는 자들이 밤에 자고 술 취하는 자들이 밤에 취하기 때문이라”(데살로니가5:6-7)
많은 신자들이 이 거대한 졸음으로 인해 시험 받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는 한 밤중에 빠르게 접근하는 어두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가깝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위를 돌아볼 때, 저는 많은 신자들이 깊은 잠에 빠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과연, 이 영적 졸음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넘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남자는 기도한다고 해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포츠를 보며 그의 텔레비전 앞에서 몇 시간이나 보냅니다. 그는 또한 취미, 여가활동, 사냥, 낚시를 위한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위한 시간은 절대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남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를 축복하시고 번영하게 하셔서 그의 가족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이 남자는 심지어 5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한 여자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친구와의 전화에 몇 시간을 보냅니다. 그녀는 매일 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시간을 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가하게 독서를 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만일 그녀가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아주 가끔씩 입니다. 그녀의 가족에 위기가 다가왔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지 별로 그녀의 마음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 또한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에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들의 등불은 꺼져버립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가진 빈약한 관계는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 2:3) 왜 주님이 졸고 있는, 미지근한, 무관심한 추종자들이 천국에서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왜 그분께서 여기 이 땅에서 그분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 하나님에 관하여 지루해하던 자들, 교회나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친밀함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자들 원하시겠습니까? 천국에서 우리의 목적은 영원히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여기에서 예수님과의 한 걸음 조차 견딜 수가 없다면, 어떻게 거기서 영원히 즐거워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자들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죽으면 문제가 달라지죠. 저는 순식간에 변하게 될 겁니다. 주님께서 그 순간에 저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죠. 그럼 저는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게 될 겁니다.”
저의 대답은 그렇게 죽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알려진 것처럼 그 때에도 알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서 지니고 있는 성품은 여러분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도 가질 똑 같은 성품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빈둥거린다면, 그 때도 여러분은 동일한 성품을 지닐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뿐인 냉담한 신자라면 심판의 날에 여러분은 어떻게 드러나겠습니까?
<데이빗 윌커슨 목사>
저는 최근 몇 년 전 MTV에서의 외설적인 행위로 인해 유명해진 록 스타들을 인용한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음악가들은 미국에 범람하고 있는 끔찍한 타락에 경악합니다. 그들은 현재의 문란함은 그들이 봐 왔던 것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말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러한 공연자들은 새로운 경지의 추행을 선도하는 데에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역겨워 하며 그들의 머리를 내젓습니다. 그들은 인정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을 제어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나라는 완전히 선을 넘어간 겁니다.주님은 우리의 파렴치함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에 악이 관영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경제적 패해와 불황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생계를 제하는 것 같습니다.
“주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제거하실 것임이니 곧 그들이 의지하는 모든 빵과 의지하는 모든 물과”(사 3:1) 이것은 분명 경제적 재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경제적 어려움이 또한 하나님께서 미국인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모든 사람의 지갑에 영향을 끼치는 것 외에는 그분께서 어떻게 죄에 미친 나라를 제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 경제에 곤란을 주겠다. 너희는 너희의 몇 년간의 번영이 중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는 특이한 상황을 묘사합니다.“그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들고 이르기를, 가 우리의 빵을 먹으며 우리의 옷을 입으리니 다만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게 하여 우리의 수치를 없애게 하라, 하리라”(사 4:1)
일곱 처녀들이 어떤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 특별한 합의를 하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에서는 어떠한 사랑이나 구애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약혼, 친밀함, 신실함에 대한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이사야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그들이 사랑하거나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줄 수 있는 남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그 남자의 이름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어떠한 지위를 선사해 줄 사랑이 없는 애매한 결혼을 찾았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일곱이란 숫자는 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아마도 이 일곱 여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일부를 가진 듯한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이 남자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살고 스스로 공급하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수치를 가리기 위한 당신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좋게 보이기 원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그러한 지위를 줄 것입니다.”
저는 이사야가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여인이 결혼하기 원하는 그 남자는 예수님입니다. 그 선지자는 여기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예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되려고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편리한 결혼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들은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일부임을 주장하며 영적으로 보이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과 함께 거래 하려 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원해요, 주님! 그러나 나는 내 길을 가고 싶고 내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요. 그냥 당신의 이름을 주세요.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일부로 보이고 알려지고 싶어요.”
그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의의 옷을 입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친밀함을 갖거나 그분께 의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 자체적으로 살기를 원할 뿐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의무나 헌신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그들은 주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사귀게 해주십시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게 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현재, 이사야의 예언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미국과 세계에 있는 교회들은 예수님과의 친밀감이 없는 수백만의 자칭 그리스도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시간도 갖지 않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보기 위해 성경을 꺼내 들지도 않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계속 품어주셨습니다. 그들을 축복하고 번영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간단한 말조차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감사해요, 주님. 제 인생에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튼 이 사람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이름에 붙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전히 그들 나름대로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런 합의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는 그들의 신랑에 커다란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와의 친밀함을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며 나는 그분의 것이니”(아가2:16)
과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부르짖음은 이것입니다. “주님, 저는 단지 당신의 이름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당신을 갈망합니다. 저는 잠자리에 들며 매일 밤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일어나는 매일 아침, 내 마음은 당신께로 향합니다.”
“우리의 혼이 주의 이름을 사모하오며 또 주에 대한 기억을 사모하나이다. 밤에 내가 내 혼으로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참으로 아침 일찍 내 속에서 내 영으로 주를 찾으오리니”(이사야 26:8-9)
그렇습니다. 진실한 신자는 이렇게 단언합니다. “내가 주를 크게 기뻐하며 내 혼이 내 하나님을 기뻐하리니 이는 마치 신랑이 장식으로 자기를 꾸미고 신부가 보석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것 같이 그분께서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시고 의의 겉옷으로 나를 덮으셨기 때문이요”(이사야61:10)
이 모든 것이 그 날에 벌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나라를 흔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야의 예언이 일어나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돔과 고모라를 다루셨던 것처럼 다루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가 원로들에게 교만히 행하고 천한 자도 존귀한 자에게 그리하리라”(이사야3:5) 그분께서 번영을 멈추시므로 곧, 주님의 의로운 심판이 모두에게 명백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올수록,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혼인하였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명목상으로 그분께 붙어 있을 것입니다. 비극적이게도, 그들은 전혀 그분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의 비유로부터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그들이 다 졸다가 잠드니라”(마태복음25:5) 모든 처녀들,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잠들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재림 직전의 졸고 있는 교회를 설명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이는 집 주인이 어느 때에 올는지 저물 때일지, 한밤중일지, 닭 울 때인지,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그가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이르는 말이니라.”(마가13:35-37)
저는 그리스도의 비유에서 이 그림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이 지혜로운 처녀들이 졸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경건한 종이,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왔던 자가, 주님이 다가오시는데 잠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제가 예수님의 비유의 어려운 진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저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예언을 떠올렸습니다. 거대한 배교가 교회에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바울의 권고도 기억했습니다.
“지금이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 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가깝기 때문이라”(로마서13:11) 바울의 경고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 거대한 졸음이 많은 그리스도인들 위에 쏟아지리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의로운 자마저도 잠들어 버릴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희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부시리라, 하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주의하여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자로서 조심스럽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에베소서5:14-16)
그 사도는 이렇게 강권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성도 여러분, 잠자는 처녀가 되지 마십시오. 지혜롭게 주님의 재림를 주의하며 기다리십시오.” 여기 바울의 언급에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사랑스런 자녀”(5:1)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 이는 잠자는 자들이 밤에 자고 술 취하는 자들이 밤에 취하기 때문이라”(데살로니가5:6-7)
많은 신자들이 이 거대한 졸음으로 인해 시험 받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는 한 밤중에 빠르게 접근하는 어두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가깝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위를 돌아볼 때, 저는 많은 신자들이 깊은 잠에 빠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과연, 이 영적 졸음의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다수의 사람들이 넘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남자는 기도한다고 해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포츠를 보며 그의 텔레비전 앞에서 몇 시간이나 보냅니다. 그는 또한 취미, 여가활동, 사냥, 낚시를 위한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위한 시간은 절대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남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를 축복하시고 번영하게 하셔서 그의 가족에게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이 남자는 심지어 5분이라도 무릎을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한 여자를 생각해 봅시다. 그녀는 친구와의 전화에 몇 시간을 보냅니다. 그녀는 매일 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시간을 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가하게 독서를 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만일 그녀가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아주 가끔씩 입니다. 그녀의 가족에 위기가 다가왔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지 별로 그녀의 마음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 또한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들은 주님의 재림에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들의 등불은 꺼져버립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가진 빈약한 관계는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 2:3) 왜 주님이 졸고 있는, 미지근한, 무관심한 추종자들이 천국에서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왜 그분께서 여기 이 땅에서 그분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 하나님에 관하여 지루해하던 자들, 교회나 그리스도와의 교제와 친밀함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자들 원하시겠습니까? 천국에서 우리의 목적은 영원히 주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여기에서 예수님과의 한 걸음 조차 견딜 수가 없다면, 어떻게 거기서 영원히 즐거워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자들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죽으면 문제가 달라지죠. 저는 순식간에 변하게 될 겁니다. 주님께서 그 순간에 저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시겠죠. 그럼 저는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게 될 겁니다.”
저의 대답은 그렇게 죽는 것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알려진 것처럼 그 때에도 알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여기서 지니고 있는 성품은 여러분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도 가질 똑 같은 성품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빈둥거린다면, 그 때도 여러분은 동일한 성품을 지닐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뿐인 냉담한 신자라면 심판의 날에 여러분은 어떻게 드러나겠습니까?
<데이빗 윌커슨 목사>
그리스도의 유일성(영적 전쟁의 이해) - 2
온 우주의 창조자께서 이렇게까지 깎아 내려지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더 이상 그리스도로서, 신성을 가지신 주(主)로서 인정 받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통합을 주창하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능력이나 부활과 같은 개념들은 어떤 것이든 없애버릴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탄의 세계 단일 종교로 편입시킬 것입니다.
사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은 전세계가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이것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탄도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을 세상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용합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이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이루신 일들을 격찬했습니다만 예수님의 신성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화려한 표현 중 일부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목사들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안에 숨어있는 사탄의 "사랑 함정"이 보이십니까?
마귀의 세계 통합 교회가 마침내 그 메시지를 온 지구상에 큰 소리로 퍼뜨릴 때에, 셀 수 없이 많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은 속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세계 교회 통합"은 좋은 일 일거야. 여기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는지 몰라. 이렇게 예수님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정통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이들이 틀림없어."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사탄의 그 마귀적인 연합의 바로 진짜 주문은 "예수, 예수, 예수" 일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벌써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모든 단체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거지? 어쨌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쟎아. 회교도들도 예수님을 선한 인간이자 위대한 선생으로 생각하고. 시크교도들과 힌두교도들도 예수님을존경해."
이쯤에서 잠깐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9월 11일의 비극으로 인해 일어난 국가적인 일치단결에 대해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믿음을 가진 미국인들이 일치단결한 국가로서 함께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연합이 우리의 슬픔이 다 가라앉은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종교간 통합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예견하고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예언가운데 있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태복음 7:22).
거의 모든 종교들은 축사(귀신을 내어쫓음)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데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들 중 많은 수는 축사, 가르침, 선행 등을 다른 예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셨듯이, 이런 사람들은 심판 때에 주장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당신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르노라. 그리고 너희들도 나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도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그럼에도 너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단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전했도다. 너희들은 나의 복음의 능력을 제거하려고 했느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예수는 틀린 예수니라. 이제, 내게서 떠나가라. 너희들은 나의 왕국에서 조금도 분깃이 없노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고린도후서 11:3). 이 절에서 ‘진실함과 깨끗함(simplicity)’의 헬라어 단어는 단일성(singleness), 유일함, 독점적임(exclusiveness)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신성을 가지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이 단일하고 유일한 진리에서 떠나 부패하게 될까 걱정스럽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린도후서 11:3).
그러고 나서 바울은 그리고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목사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린도후서11:4).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구나. 너희는 너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에 관해 듣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너희가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예수로 인해 타락하게 될까봐 두렵구나."
"너희는 모르고 있지만, 너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서부터 벗어나게 꾀임을 받고 있구나. 너희가 어떻게 그 사실을 용납하는지 나는 믿을 수가 없구나. 너희는 너희를 타락시키는 이 거짓 선생들을 잘도 참아주는구나. 너희는 심지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시험해보지도 않는구나. 바로 지금, 너희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너희는 귀신의 복음 아래 앉아 다른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그 다른 예수, 귀신의 복음이 어디로 너희를 꾀어 가는 지도 모르고 있구나."
성도된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엄청난 핍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교회 통합은 엄청난 핍박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교회가 핍박하는 세력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의 문을 닫도록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를 그들 가운데서 완전히 몰아내기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똑같은 종류의 압력이 시작된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저는 잘 알려진 어느 복음전도자가 어느 TV 방송에서 가진 인터뷰의 녹화 테이프을 건네 받았습니다. 사회자가 그 목사님에게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교도들이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만일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해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그 복음전도자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베드로의 선언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이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언론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전도자는 자신의 대답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회교도들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그들 안에 예수님의 영이 있습니다. 회교도와 유대인들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그렇게 말하다니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굳건한 입장을 취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기피하고, 거부할 것이며 여러분은 조롱거리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과 다른 종교로부터 칭찬을 받는 목사는 누구이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럽힌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가오는 시대엔 온 세상이 이러한 구분을 짓는 질문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나요? 예수 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까요? 우리는 믿지않는 친구들, 동료들, 고용주가 될 사람들이 이 질문을 하는 것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꼭 문자 그대로 그런 말로 묻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질문 자체는 어쨌든 그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굳건히 입장을 취하고, "예, 나는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종교적 편협함에 사로잡힌 광신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롱을 당할 것이며 사회적인 면에서 관용이 없고 온당치 못하다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타임스 광장 교회는 반유대적, 반회교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 회교도, 동성애자, 무신론자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관해서는 이 모든 자들과 의견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음의 기초로 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핍박이 가까운 장래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러 종교 통합 운동 단체들은 세계 교회 통합을 위한 신학적 성명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예수 논쟁"이라 부르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EU(유럽국가연합)은 그 활동에 대한 어떤 비평도 금지하는 법안을 끌어내었습니다. 곧, 아무도 유럽국가연합(EU)에 대해 공공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분위기가 단일 세계 통합 교회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럽국가연합(EU)의 법률은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종교적인 편협함과 광신"을 금지하고 어떤 종교든 개종을 권하는 것을 불법으로 선언하는 것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거룩한 씨앗을 대적하는 사탄의 광분의 일부입니다. 사탄은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건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분노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점점 더 우리는 사탄이 군중들을 동원하여 예수님만이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자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적토록 할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돌연, 전에는 우리를 무시하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지목하여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오직 한 길이라고 믿나요? 난 착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갈 것이란 말인가요?"
진리를 사수하는 것 때문에 우리의 직업, 경력, 친구를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마가복음 14:61-62).
머지않아 전세계가 우리에게 다른 예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主)로서 믿는 우리의 신앙을 버리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희생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재림까지 이 모든 것을 부인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말을 이미 결정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내놓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저는 사랑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의 확신을 표명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뭘 믿느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믿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신에게라도 예배할 수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길을 따른다 해도 그것을 훼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내가 뭘 믿는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 외에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그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는 현재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될 지를 볼 수 있는 예언적 시각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크고 광채가 특심(特甚)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다니엘 2:31-33).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의 형상을 한, 밝고 빛나며 심히 두려운 거대한 신상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몸체 전부는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두 발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신상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진흙은 마지막 세상의 강대국이 얼마나 약한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다니엘 2:34-35).
다니엘이 여기서 설명한 돌은 다름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만세의 반석이십니다. 세상 모든 나라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세상이 볼 때에, 아무도 우리 주님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주님 앞에 절하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그러한 지독한 악함을 세상에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나라가 결국 모든 악한 세상 나라들을 부수고 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의는 위에 계신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올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잠에서 깨어 하나님의 심판보좌 앞에 서게 될 그날이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로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영원토록, 아름다운 여인들을 데리고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을 먹고 마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완전히 파괴시키려고 애쓰던 바로 그 이름이 이제 그들의 심판자로서 그들 앞에 서 계신 것을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제 메시지의 요지는 바로 이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여기서 선언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점적인 것입니다. 어떤 회교도도, 어떤 힌두교도도, 어떤 이방인도,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가 없습니다.
열 두 제자에게 물으셨던 것과 똑같이,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가복음 8:27).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가복음 8:28).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시는 진짜 질문은 그 뒤에 나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우리의 대답도 베드로의 대답과 똑같아야 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마가복음 8:29). 이 대답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온 세상 앞에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사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은 전세계가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사탄도 이것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탄도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을 세상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용합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이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이루신 일들을 격찬했습니다만 예수님의 신성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화려한 표현 중 일부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목사들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안에 숨어있는 사탄의 "사랑 함정"이 보이십니까?
마귀의 세계 통합 교회가 마침내 그 메시지를 온 지구상에 큰 소리로 퍼뜨릴 때에, 셀 수 없이 많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은 속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세계 교회 통합"은 좋은 일 일거야. 여기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는지 몰라. 이렇게 예수님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정통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이들이 틀림없어."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사탄의 그 마귀적인 연합의 바로 진짜 주문은 "예수, 예수, 예수" 일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벌써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왜 모든 단체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거지? 어쨌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쟎아. 회교도들도 예수님을 선한 인간이자 위대한 선생으로 생각하고. 시크교도들과 힌두교도들도 예수님을존경해."
이쯤에서 잠깐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9월 11일의 비극으로 인해 일어난 국가적인 일치단결에 대해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믿음을 가진 미국인들이 일치단결한 국가로서 함께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연합이 우리의 슬픔이 다 가라앉은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종교간 통합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예견하고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예언가운데 있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태복음 7:22).
거의 모든 종교들은 축사(귀신을 내어쫓음)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데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들 중 많은 수는 축사, 가르침, 선행 등을 다른 예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셨듯이, 이런 사람들은 심판 때에 주장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당신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르노라. 그리고 너희들도 나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도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그럼에도 너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단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전했도다. 너희들은 나의 복음의 능력을 제거하려고 했느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예수는 틀린 예수니라. 이제, 내게서 떠나가라. 너희들은 나의 왕국에서 조금도 분깃이 없노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고린도후서 11:3). 이 절에서 ‘진실함과 깨끗함(simplicity)’의 헬라어 단어는 단일성(singleness), 유일함, 독점적임(exclusiveness)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신성을 가지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이 단일하고 유일한 진리에서 떠나 부패하게 될까 걱정스럽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린도후서 11:3).
그러고 나서 바울은 그리고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목사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린도후서11:4).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구나. 너희는 너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에 관해 듣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너희가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예수로 인해 타락하게 될까봐 두렵구나."
"너희는 모르고 있지만, 너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서부터 벗어나게 꾀임을 받고 있구나. 너희가 어떻게 그 사실을 용납하는지 나는 믿을 수가 없구나. 너희는 너희를 타락시키는 이 거짓 선생들을 잘도 참아주는구나. 너희는 심지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시험해보지도 않는구나. 바로 지금, 너희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너희는 귀신의 복음 아래 앉아 다른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그 다른 예수, 귀신의 복음이 어디로 너희를 꾀어 가는 지도 모르고 있구나."
성도된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엄청난 핍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교회 통합은 엄청난 핍박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교회가 핍박하는 세력의 우두머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의 문을 닫도록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를 그들 가운데서 완전히 몰아내기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똑같은 종류의 압력이 시작된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저는 잘 알려진 어느 복음전도자가 어느 TV 방송에서 가진 인터뷰의 녹화 테이프을 건네 받았습니다. 사회자가 그 목사님에게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교도들이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만일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해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분명히, 그 복음전도자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베드로의 선언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이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언론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전도자는 자신의 대답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회교도들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그들 안에 예수님의 영이 있습니다. 회교도와 유대인들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그렇게 말하다니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굳건한 입장을 취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기피하고, 거부할 것이며 여러분은 조롱거리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과 다른 종교로부터 칭찬을 받는 목사는 누구이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럽힌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가오는 시대엔 온 세상이 이러한 구분을 짓는 질문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나요? 예수 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까요? 우리는 믿지않는 친구들, 동료들, 고용주가 될 사람들이 이 질문을 하는 것에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꼭 문자 그대로 그런 말로 묻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질문 자체는 어쨌든 그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굳건히 입장을 취하고, "예, 나는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종교적 편협함에 사로잡힌 광신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롱을 당할 것이며 사회적인 면에서 관용이 없고 온당치 못하다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타임스 광장 교회는 반유대적, 반회교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 회교도, 동성애자, 무신론자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관해서는 이 모든 자들과 의견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음의 기초로 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핍박이 가까운 장래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러 종교 통합 운동 단체들은 세계 교회 통합을 위한 신학적 성명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예수 논쟁"이라 부르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EU(유럽국가연합)은 그 활동에 대한 어떤 비평도 금지하는 법안을 끌어내었습니다. 곧, 아무도 유럽국가연합(EU)에 대해 공공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분위기가 단일 세계 통합 교회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럽국가연합(EU)의 법률은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종교적인 편협함과 광신"을 금지하고 어떤 종교든 개종을 권하는 것을 불법으로 선언하는 것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거룩한 씨앗을 대적하는 사탄의 광분의 일부입니다. 사탄은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건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분노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점점 더 우리는 사탄이 군중들을 동원하여 예수님만이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자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적토록 할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돌연, 전에는 우리를 무시하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지목하여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오직 한 길이라고 믿나요? 난 착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갈 것이란 말인가요?"
진리를 사수하는 것 때문에 우리의 직업, 경력, 친구를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마가복음 14:61-62).
머지않아 전세계가 우리에게 다른 예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主)로서 믿는 우리의 신앙을 버리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희생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재림까지 이 모든 것을 부인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말을 이미 결정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내놓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저는 사랑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의 확신을 표명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뭘 믿느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믿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신에게라도 예배할 수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길을 따른다 해도 그것을 훼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나 또한 내가 뭘 믿는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 외에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그 사랑의 증거입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는 현재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될 지를 볼 수 있는 예언적 시각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크고 광채가 특심(特甚)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다니엘 2:31-33).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의 형상을 한, 밝고 빛나며 심히 두려운 거대한 신상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 몸체 전부는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두 발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신상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진흙은 마지막 세상의 강대국이 얼마나 약한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다니엘 2:34-35).
다니엘이 여기서 설명한 돌은 다름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만세의 반석이십니다. 세상 모든 나라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세상이 볼 때에, 아무도 우리 주님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주님 앞에 절하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그러한 지독한 악함을 세상에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나라가 결국 모든 악한 세상 나라들을 부수고 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공의는 위에 계신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올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잠에서 깨어 하나님의 심판보좌 앞에 서게 될 그날이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로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영원토록, 아름다운 여인들을 데리고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을 먹고 마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완전히 파괴시키려고 애쓰던 바로 그 이름이 이제 그들의 심판자로서 그들 앞에 서 계신 것을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제 메시지의 요지는 바로 이 한 구절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여기서 선언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점적인 것입니다. 어떤 회교도도, 어떤 힌두교도도, 어떤 이방인도,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가 없습니다.
열 두 제자에게 물으셨던 것과 똑같이,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가복음 8:27).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가복음 8:28).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시는 진짜 질문은 그 뒤에 나옵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우리의 대답도 베드로의 대답과 똑같아야 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마가복음 8:29). 이 대답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온 세상 앞에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그리스도의 유일성(영적 전쟁의 이해) - 1
2001년 9월 20일 목요일, 미국 대통령 부시는 상하 양원 합동 회의장에서 강력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적인 테러에 대항한 전쟁을 미국이 수행하고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 전쟁을 자유와 종교적 테러리즘사이에 일어나는 전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인정하는 바 그것이 진정한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자리에 코란을 올려 놓으려 합니다. 그들은 이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단 한가지 종교, 이슬람 만을 강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은 이러한 갈등의 양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은 두 영원한 세력, 즉 한편에는 사탄의 정사와 권세, 또 다른 편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거룩한 그리스도 사이에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이 전쟁은 영원 전부터 하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 및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루시퍼 및 그와 동조해 반역을 일으킨 타락한 천사들 간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요한 계시록 12:7-9).
우리가 사탄이라고 부르는 루시퍼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반역한 하늘의 천사 삼분의 일과 함께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이제 그 전쟁은 땅에서 치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들과 더불어 비밀한, 지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악한 인간의 몸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사로잡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계적 조직체로 통합하여 자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창시하였습니다. 그는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선지자, 교사, 심지어 국가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어 그의 불경한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회심자들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주거나 설득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탄의 가르침에는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가르침은 평안이나 기쁨을 줄 수도, 인간을 노예처럼 만드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전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력과 두려움을 그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탄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의 군대를 일으킨 것입니다. 마귀는 이 피에 굶주린 군대를 사용하여 전 세계를 양도 받았습니다. 마귀는 세계를 그의 악마적인 통치아래 두고, 이들 나라들로부터 수백만의 선교사들을 풀어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세계 단일 종교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사탄이 벌인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그리스도]를 낳은 여자[교회]를 핍박하는지라"(요한계시록 12:13). 이 핍박은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애굽의 바로왕을 사로잡아 이스라엘을 고된 노동으로 파괴시키려 했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계보에서 탄생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큰 독수리"가 급히 내려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신령한 보호의 날개로 덮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9-12).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마치 성난 어미 독수리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건져내시고 모든 고난을 홍해에서,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견뎌내게 하셨습니다. 주님만이 그리스도를 생산할 "여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셨고 또 보호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미혹하기 위해 사탄이 유혹의 미끼를 어떻게 홍수처럼 퍼부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용이 이스라엘에 마귀의 권세를 퍼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요한계시록 12:15). 이러한 사탄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을 숭배하도록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방의 나라들이 각종 음란함으로 이스라엘을 미혹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탄의 물결은 열왕기를 거쳐 선지시대를 통틀어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다윗은 불경한 사람들과 깊은 물의 홍수에 휩쓸릴뻔한 경험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동일하게 이사야도 "대적이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올 것"을 기록하였습니다(이사야 59:19).
마침내, 구약의 끝부분에 이르면, 교회는 치명상을 입은 듯이 보입니다. 사탄의 물결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예배는 음란과 우상숭배가 섞여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심히 타락한 상태로 인해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향해 소리쳐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라기 1:6).
또 제사장들을 향해 하나님은 우뢰와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말라기 1:6-7, 10; 2:8, 14, 17).
그러나 구약의 마지막 장 말라기의 끝 부분에서 우리는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말라기 4:2-3).
하나님은 고통 받는 교회를 위한 치료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의로운 해가 승리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때, 하늘에서 외침이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다. 두려워 말라. 지옥의 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사탄이 홍수처럼 밀려들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탄의 홍수가 교회를 삼키기 전에 간섭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도움의 손길이 오고있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요한계시록 12:16). 도움의 손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왔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렸을 때 땅은 메시야를 붙잡고 있던 무덤을 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땅밑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덤을 여시고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사탄의 홍수 같은 능력을 삼켜버렸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지옥의 모든 저항이 끝나게 될 것을 예정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2:17).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들, 바로 교회입니다. 마귀는 지금,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과 다시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의 공격은 세상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룩한 자손,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는 남은 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믿으며 선포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전쟁에는 오직 하나의 쟁점과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이 전쟁의 핵심 쟁점은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그리스도, 아버지의 독생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가? 아니면, 단지 많은 선을 행하며 다닌 또 다른 선지자인가? 신성을 입으신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앉아계신 부활의 구세주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가?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즉 하늘아래 다른 이름으로서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신성을 갖추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어떤 존재와도 그 영광을 나누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이 선포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에베소서 1:19-22). 바울은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유일하신 머리시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1:22, 23).
바울은 또한 모든 피조물이 어느 날 예수님을 유일한 주로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9-11).
모든 피조물의 혀가 무하마드도, 알라도, 힌두교의 만신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전쟁의 핵심 쟁점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단지 이름을 놓고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신성을 놓고 벌이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세계 교회 통합을 추진하는 타락한 교회들은 세계 단일 교회라고 하는 사탄이 꾸며놓은 품안으로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결국, ‘세계 통합 교회’라는 것이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다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카톨릭, 그리스 정교, 회교, 불교, 힌두교, 심지어 개신교까지 말입니다. 사탄은 종교간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타협점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겠습니까?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물론, 이들 집단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그 예수라는 이름은 다른 복음의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른 이름은 한때는 복음주의적이었던 종파들로 하여금 이런 미명 하에 다른종교와 연합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한 가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교사였고 선지자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존재하고 있는 좋은 인간적 성품을다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인정하는 바 그것이 진정한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자리에 코란을 올려 놓으려 합니다. 그들은 이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단 한가지 종교, 이슬람 만을 강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은 이러한 갈등의 양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은 두 영원한 세력, 즉 한편에는 사탄의 정사와 권세, 또 다른 편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거룩한 그리스도 사이에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이 전쟁은 영원 전부터 하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 및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루시퍼 및 그와 동조해 반역을 일으킨 타락한 천사들 간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요한 계시록 12:7-9).
우리가 사탄이라고 부르는 루시퍼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반역한 하늘의 천사 삼분의 일과 함께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이제 그 전쟁은 땅에서 치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들과 더불어 비밀한, 지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악한 인간의 몸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사로잡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계적 조직체로 통합하여 자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창시하였습니다. 그는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선지자, 교사, 심지어 국가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어 그의 불경한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회심자들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주거나 설득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탄의 가르침에는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가르침은 평안이나 기쁨을 줄 수도, 인간을 노예처럼 만드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전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력과 두려움을 그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탄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의 군대를 일으킨 것입니다. 마귀는 이 피에 굶주린 군대를 사용하여 전 세계를 양도 받았습니다. 마귀는 세계를 그의 악마적인 통치아래 두고, 이들 나라들로부터 수백만의 선교사들을 풀어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세계 단일 종교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사탄이 벌인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그리스도]를 낳은 여자[교회]를 핍박하는지라"(요한계시록 12:13). 이 핍박은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애굽의 바로왕을 사로잡아 이스라엘을 고된 노동으로 파괴시키려 했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계보에서 탄생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큰 독수리"가 급히 내려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신령한 보호의 날개로 덮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9-12).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마치 성난 어미 독수리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건져내시고 모든 고난을 홍해에서,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견뎌내게 하셨습니다. 주님만이 그리스도를 생산할 "여자"를 지키시고 보호하셨고 또 보호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미혹하기 위해 사탄이 유혹의 미끼를 어떻게 홍수처럼 퍼부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용이 이스라엘에 마귀의 권세를 퍼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요한계시록 12:15). 이러한 사탄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을 숭배하도록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방의 나라들이 각종 음란함으로 이스라엘을 미혹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탄의 물결은 열왕기를 거쳐 선지시대를 통틀어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다윗은 불경한 사람들과 깊은 물의 홍수에 휩쓸릴뻔한 경험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동일하게 이사야도 "대적이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올 것"을 기록하였습니다(이사야 59:19).
마침내, 구약의 끝부분에 이르면, 교회는 치명상을 입은 듯이 보입니다. 사탄의 물결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예배는 음란과 우상숭배가 섞여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심히 타락한 상태로 인해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향해 소리쳐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라기 1:6).
또 제사장들을 향해 하나님은 우뢰와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말라기 1:6-7, 10; 2:8, 14, 17).
그러나 구약의 마지막 장 말라기의 끝 부분에서 우리는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말라기 4:2-3).
하나님은 고통 받는 교회를 위한 치료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의로운 해가 승리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때, 하늘에서 외침이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다. 두려워 말라. 지옥의 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사탄이 홍수처럼 밀려들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탄의 홍수가 교회를 삼키기 전에 간섭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도움의 손길이 오고있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요한계시록 12:16). 도움의 손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왔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렸을 때 땅은 메시야를 붙잡고 있던 무덤을 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땅밑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덤을 여시고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사탄의 홍수 같은 능력을 삼켜버렸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지옥의 모든 저항이 끝나게 될 것을 예정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2:17).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들, 바로 교회입니다. 마귀는 지금,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과 다시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의 공격은 세상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룩한 자손,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는 남은 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믿으며 선포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전쟁에는 오직 하나의 쟁점과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이 전쟁의 핵심 쟁점은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그리스도, 아버지의 독생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이 세상의 구세주이신가? 아니면, 단지 많은 선을 행하며 다닌 또 다른 선지자인가? 신성을 입으신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앉아계신 부활의 구세주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가?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즉 하늘아래 다른 이름으로서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신성을 갖추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어떤 존재와도 그 영광을 나누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이 선포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에베소서 1:19-22). 바울은 예수님은 모든 것 위에 유일하신 머리시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1:22, 23).
바울은 또한 모든 피조물이 어느 날 예수님을 유일한 주로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9-11).
모든 피조물의 혀가 무하마드도, 알라도, 힌두교의 만신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전쟁의 핵심 쟁점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단지 이름을 놓고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신성을 놓고 벌이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세계 교회 통합을 추진하는 타락한 교회들은 세계 단일 교회라고 하는 사탄이 꾸며놓은 품안으로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결국, ‘세계 통합 교회’라는 것이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다 포함하게 될 것입니다. 카톨릭, 그리스 정교, 회교, 불교, 힌두교, 심지어 개신교까지 말입니다. 사탄은 종교간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타협점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겠습니까?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물론, 이들 집단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그 예수라는 이름은 다른 복음의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른 이름은 한때는 복음주의적이었던 종파들로 하여금 이런 미명 하에 다른종교와 연합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한 가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교사였고 선지자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존재하고 있는 좋은 인간적 성품을다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
성경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한다" (2)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시내산의 계명에 기초를 두고 국[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이러한 국법은 816여개의 조항으로 국민들이 지키도록 서기관들이 만든 것을 바울이 말하는 율법(노모스)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는 이스라엘의 '국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기관들이 만든 국법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시내산의 계명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된다.' 면서 구원문제에서 행위를 등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행위(엘곤)를 강조합니다.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엘고이스)과 함께 일하고 행함(엘곤)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여기서 믿음과 행함이란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믿음이라는 씨는 행함으로 자라게 된다는 말씀이므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자라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엘곤)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믿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의롭게 거듭나야 들어갑니다. 행하지 않으면 의로와 질 수가 없으므로 믿음만을 강조하면 그 믿음은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으로] 죽은 자라" 하신 것입니다.(계3:2)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엘곤)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이 죽은 영혼은 마지막 때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20:13,14).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못이라는 두 번째 사망으로 떨어진다는 교훈이 진리요 성경의 경고입니다.(계20:15).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엘곤)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도 베드로는 심판주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므로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였는데, 지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삶입니다. 살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계3:2~3) "(2).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된 것을 굳게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엘가)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여기서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심판주 예수께서 믿는 자들이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첫째는 주님이 강림하시는 시기라는 Timing을 알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휴거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환난에 남겨집니다. 둘째는 그러한 신자의 믿음은 죽게 된다고 하십니다. 죽은 자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겠습니까?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엘가)대로 갚아 주리라."
(계20:13)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어떤 이들은 한번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고집하지만, 심판주께서 직접 행위대로 갚아준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이설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반드시 흐리지 아니한다는 말은 절대조건이 아니라. 요구조건 입니다. 절대조건일 경우에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구조건일 때는 주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지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요구가 4절에서 합당한 행위로 입는 흰 옷입니다. 그러므로 요구대로 흰 옷을 입은 사람의 이름은 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구하는 흰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의 이름은 지우겠다고 암시하셨습니다.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리라.(매차하)"
'매차하' 는 '닦아 없애다, 씻어버리다' 등이므로 이미 기록된 이름일지라도 요구대로 따르지 않으면 기록된 이름이 지워집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범죄, 곧 어떤 죄를 말합니까? 다음 구절들을 참고하기면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엘가조마이)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자와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ㅡ의인과 악인(마13:49~51)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벌거벗은 자]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17:10)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신판대(베마티) 앞에 서리라."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삼판대(베마토스)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24:42~51) "[주님이 오심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 악한 자들에게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마21:33~41)
(마25:51)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계21:8)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포네우신-프로노)하는 자들, 술객(팔마코이스-약물)하는 자들, 우상숭배 자들,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2:15)
아니~, 그러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해당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죄가 많아서 심판하고 영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하시고 영벌하십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일5:16~17)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영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막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브라스페니아)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니라" (마12:32)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브라스페니아)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3:9)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사망에 이르는 죄는 근본적으로 회개케 할 수 없다 하였으므로 회개될 수 없습니다. 성령훼방(브라스페미아) 죄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을 자기 뜻과 사상에 맞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향하여 '욕설, 중상, 모독, 모욕, 또는 명예롭지 못한 칭호를 붙여서 성령의 사역이 위축되거나, 훼방을 받게 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피하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는 행위(엘곤)를 말합니다.
여러 종류의 불의가 죄가 됩니다. 따라서 죄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지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회개는 입으로 잘못을 고백한다고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나타내야 회개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따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남을 죄라 합니다.
그러므로 회 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지 아니한데서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회개입니다. 지음을 받은 목적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고백일 뿐이지 회개는 아닙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받고 영벌받는 것입니다. -아멘- <장죠셉목사>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는 이스라엘의 '국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기관들이 만든 국법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시내산의 계명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된다.' 면서 구원문제에서 행위를 등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행위(엘곤)를 강조합니다.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엘고이스)과 함께 일하고 행함(엘곤)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여기서 믿음과 행함이란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믿음이라는 씨는 행함으로 자라게 된다는 말씀이므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자라나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엘곤)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믿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의롭게 거듭나야 들어갑니다. 행하지 않으면 의로와 질 수가 없으므로 믿음만을 강조하면 그 믿음은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으로] 죽은 자라" 하신 것입니다.(계3:2)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엘곤)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이 죽은 영혼은 마지막 때에는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계20:13,14).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못이라는 두 번째 사망으로 떨어진다는 교훈이 진리요 성경의 경고입니다.(계20:15).
(벧전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엘곤)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도 베드로는 심판주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므로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였는데, 지낸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삶입니다. 살아가는 행위를 말합니다.
(계3:2~3) "(2).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된 것을 굳게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엘가)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여기서 두 가지를 설명합니다. 심판주 예수께서 믿는 자들이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첫째는 주님이 강림하시는 시기라는 Timing을 알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휴거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환난에 남겨집니다. 둘째는 그러한 신자의 믿음은 죽게 된다고 하십니다. 죽은 자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겠습니까?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엘가)대로 갚아 주리라."
(계20:13)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어떤 이들은 한번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는 심판이 없다고 고집하지만, 심판주께서 직접 행위대로 갚아준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이설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반드시 흐리지 아니한다는 말은 절대조건이 아니라. 요구조건 입니다. 절대조건일 경우에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구조건일 때는 주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지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요구가 4절에서 합당한 행위로 입는 흰 옷입니다. 그러므로 요구대로 흰 옷을 입은 사람의 이름은 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구하는 흰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의 이름은 지우겠다고 암시하셨습니다.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생명]책에서 지워버리리라.(매차하)"
'매차하' 는 '닦아 없애다, 씻어버리다' 등이므로 이미 기록된 이름일지라도 요구대로 따르지 않으면 기록된 이름이 지워집니다. 그렇다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범죄, 곧 어떤 죄를 말합니까? 다음 구절들을 참고하기면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마7: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엘가조마이)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13: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자와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ㅡ의인과 악인(마13:49~51)
(마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벌거벗은 자]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17:10)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신판대(베마티) 앞에 서리라."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삼판대(베마토스)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24:42~51) "[주님이 오심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 악한 자들에게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을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마21:33~41)
(마25:51)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계21:8)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포네우신-프로노)하는 자들, 술객(팔마코이스-약물)하는 자들, 우상숭배 자들,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2:15)
아니~, 그러면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해당되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죄가 많아서 심판하고 영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심판하시고 영벌하십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일5:16~17) "(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영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막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브라스페니아)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니라" (마12:32)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브라스페니아)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계3:9)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사망에 이르는 죄는 근본적으로 회개케 할 수 없다 하였으므로 회개될 수 없습니다. 성령훼방(브라스페미아) 죄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을 자기 뜻과 사상에 맞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향하여 '욕설, 중상, 모독, 모욕, 또는 명예롭지 못한 칭호를 붙여서 성령의 사역이 위축되거나, 훼방을 받게 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피하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막는 행위(엘곤)를 말합니다.
여러 종류의 불의가 죄가 됩니다. 따라서 죄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행위책에서 죄가 지워지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입니다. 그런데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회개는 입으로 잘못을 고백한다고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나타내야 회개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따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남을 죄라 합니다.
그러므로 회 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지 아니한데서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회개입니다. 지음을 받은 목적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선한 일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고백일 뿐이지 회개는 아닙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아서 심판받고 영벌받는 것입니다. -아멘- <장죠셉목사>
성경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한다" 하십니다 (1)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어느날 심판주 앞에 서는 날이 있다는 교훈이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 모두가 심판을 받는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되 심판받을 행위를 한 사람만 심판을 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셨습니다.
(계20;13~15)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예수님의 말씀은 행위대로 심판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심판을 받지 않을까요?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고 세상에 태어나면서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와 임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에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셨는데, 이것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입니다. 일에 대하여 '엘고이스 하가도이스'라 하였는데, 이는 '좋은 일, 옳은 행위, 바른 행동' 등은 행위(엘곤) 입니다.
(엡3:9~10)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하심이니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하심이니..."
교회는 이방인이거나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머스테리온)은 '숨은 원리, 숨은 뜻, 비밀, 신비' 이므로 이는 영혼의 구원사업 입니다. 그리고 경륜(오이코노미아)은 '청지기직, 집안관리, 사명, 뜻' 등이므로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군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Fellowship 이라 하고, 우리말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인 신자들의 집결체인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사람이 준행해야 될 절대조건입니다. 절대조건은 구원이냐 영벌이냐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곧 신자가 해야 될 행위는 요구조건 입니다. 요구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저주가 주어지는데, 이것이 마지막 때에 심판장 앞에서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게 됨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문제와 거듭남(성화)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과 거듭남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구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세 가지 다른 표현을 사용하였음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세소스 메노이)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2:40)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얻]으라(소데테)"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소테리안)"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었었나니'로 표기된 '세소스 메노이'는 '소조'의 완료형 수동태 입니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오던 원죄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서 원죄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원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Justification)으로 대속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주신 선물이라고 교훈합니다.(엡2:8~9) 이것은 거듭나기 이전 상태입니다.
사도행전 2장 40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으라'는 '소데테'는 '소조'의 현재형 수동태 이므로 내적인거룩함과 외적인 의를 이루는 삶으로써,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자기를 성화시키며 살아감을 말합니다. 이는 육신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인 성화(Sanctification)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남 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이루라'는 '소테리안'은 '소테리아'의 미래형 목적격이므로,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성화를 이루고 생을 떠나 죄가 다스리지 않는 영의 세계인 낙원(파라데이스), 왕국(바실레이아), 시온, 예루살렘, 어디든 갈 때 죄의 현존으로부터의 구원인 영화(Glorification)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위의 두 구절에서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 거듭남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원죄를 사함 받았다 할지라도 현재의 삶에서 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거듭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했으면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가 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이므로 행위가 따르지 않는 다른 해석이라면 그것은 비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는 새롭게 거듭나라 할 때 행위(엘곤)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엡4:23~24) "(23).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그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주님의 경고는 예수를 주로 믿는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디로 갑니까?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갑니다. 그래서 믿는 자라 할지라도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원죄 사함으로 얻은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버린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라는 뜻은 거듭난 사람을 말하고, 없는 자라는 뜻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으므로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교회의 일원은 될지라도 성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다(All)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는다 하거나, 교회가 다(All)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하거나, 교회가 다(All) 심판을 받지 않는다 하는 말은 비진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성경을 상고할 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정죄함이 없다."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등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원죄 사함을 받은 자가 성화, 곧 거듭났을 때에 해당되는 구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인하여 심문받고, 무엇으로 인하여 정죄 받게 됩니까?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이럼에도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된다."고 인식하지만, 예수님은 행위를 강조하셨습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엘곤)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믿는 자들이 행위(엘곤)책에 심판받을 죄목이 기록된다 했습니다. 따라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행위(엘곤)로 거룩함과 의롭게 거듭나야 됩니다. 또한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합니까?"
(엡2:8~9) "(8).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엘곤)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갈2:16)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함이라.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3:2)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위의 말씀들을 읽으면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율법이라는 문맥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한번 구원 받으면 심판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말하는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잘못을 범하지 아니합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국법의 행위(초리스 엘곤 노모우)'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붉은 색 문맥은 중요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서기관들이 제정한 이스라엘의 헌법, 곧 국법(초라 노모스)을 말했던 것입니다. '초리스'는 국가요, '노모스'는 법이므로 '헌법'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은 "국법대로 행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국법을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노모 데테오)'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노모(법)' + '데테오(하나님의 명령)'을 말합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모세에게 '하나님(데오스)'께서 '명령(데테오)'하신 '법(노모)'이 계명인데, 성경번역에서 하나님의 명령(데테오)을 빼고 법(노모스)자만 표기됐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3장 28절에서는 분명하게 '국법(초리스 노모스)'이라 했는데도 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노모스)는 '법, 규칙, 표준, 윤리' 등으로 쓰이는 서기관법입니다.
(계20;13~15) "(13).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사망, 곧 불못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예수님의 말씀은 행위대로 심판한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심판을 받지 않을까요?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고 세상에 태어나면서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의무와 임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에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인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셨는데, 이것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입니다. 일에 대하여 '엘고이스 하가도이스'라 하였는데, 이는 '좋은 일, 옳은 행위, 바른 행동' 등은 행위(엘곤) 입니다.
(엡3:9~10) "(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하심이니라. (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하심이니..."
교회는 이방인이거나 유대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머스테리온)은 '숨은 원리, 숨은 뜻, 비밀, 신비' 이므로 이는 영혼의 구원사업 입니다. 그리고 경륜(오이코노미아)은 '청지기직, 집안관리, 사명, 뜻' 등이므로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군의 모임을 말합니다. 이것을 영어로 Fellowship 이라 하고, 우리말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인 신자들의 집결체인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사람이 준행해야 될 절대조건입니다. 절대조건은 구원이냐 영벌이냐 갈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곧 신자가 해야 될 행위는 요구조건 입니다. 요구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상으로 주어지는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저주가 주어지는데, 이것이 마지막 때에 심판장 앞에서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게 됨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문제와 거듭남(성화)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과 거듭남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구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세 가지 다른 표현을 사용하였음을 먼저 알아야 됩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세소스 메노이)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2:40)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얻]으라(소데테)"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소테리안)"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었었나니'로 표기된 '세소스 메노이'는 '소조'의 완료형 수동태 입니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오던 원죄가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서 원죄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원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Justification)으로 대속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주신 선물이라고 교훈합니다.(엡2:8~9) 이것은 거듭나기 이전 상태입니다.
사도행전 2장 40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받으라'는 '소데테'는 '소조'의 현재형 수동태 이므로 내적인거룩함과 외적인 의를 이루는 삶으로써,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자기를 성화시키며 살아감을 말합니다. 이는 육신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인 성화(Sanctification)라 합니다. 이것이 거듭남 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말하는 구원을 '이루라'는 '소테리안'은 '소테리아'의 미래형 목적격이므로,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성화를 이루고 생을 떠나 죄가 다스리지 않는 영의 세계인 낙원(파라데이스), 왕국(바실레이아), 시온, 예루살렘, 어디든 갈 때 죄의 현존으로부터의 구원인 영화(Glorification)라 합니다. 이것이 완전한 구원입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위의 두 구절에서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 거듭남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원죄를 사함 받았다 할지라도 현재의 삶에서 성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거듭날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했으면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가 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이므로 행위가 따르지 않는 다른 해석이라면 그것은 비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는 새롭게 거듭나라 할 때 행위(엘곤)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엡4:23~24) "(23).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그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주님의 경고는 예수를 주로 믿는다 할지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디로 갑니까?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갑니다. 그래서 믿는 자라 할지라도 행위가 온전치 못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 원죄 사함으로 얻은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버린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라는 뜻은 거듭난 사람을 말하고, 없는 자라는 뜻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으므로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생명이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교회의 일원은 될지라도 성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다(All)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는다 하거나, 교회가 다(All)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하거나, 교회가 다(All) 심판을 받지 않는다 하는 말은 비진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성경을 상고할 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정죄함이 없다."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등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원죄 사함을 받은 자가 성화, 곧 거듭났을 때에 해당되는 구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무엇으로 인하여 심문받고, 무엇으로 인하여 정죄 받게 됩니까?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엘가)대로 심판을 받고...."
이럼에도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된다."고 인식하지만, 예수님은 행위를 강조하셨습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엘곤)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믿는 자들이 행위(엘곤)책에 심판받을 죄목이 기록된다 했습니다. 따라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행위(엘곤)로 거룩함과 의롭게 거듭나야 됩니다. 또한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 합니까?"
(엡2:8~9) "(8).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엘곤)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갈2:16)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함이라.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3:2)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위의 말씀들을 읽으면 구원을 얻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율법이라는 문맥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한번 구원 받으면 심판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말하는 '율법의 행위(엘곤 노모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야 잘못을 범하지 아니합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국법의 행위(초리스 엘곤 노모우)'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붉은 색 문맥은 중요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율법은 서기관들이 제정한 이스라엘의 헌법, 곧 국법(초라 노모스)을 말했던 것입니다. '초리스'는 국가요, '노모스'는 법이므로 '헌법' 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말은 "국법대로 행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국법을 시내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노모 데테오)'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노모(법)' + '데테오(하나님의 명령)'을 말합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모세에게 '하나님(데오스)'께서 '명령(데테오)'하신 '법(노모)'이 계명인데, 성경번역에서 하나님의 명령(데테오)을 빼고 법(노모스)자만 표기됐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3장 28절에서는 분명하게 '국법(초리스 노모스)'이라 했는데도 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노모스)는 '법, 규칙, 표준, 윤리' 등으로 쓰이는 서기관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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