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사33:22); 하나님의 훈계(시32:8); 항상 기뻐하라(빌4:4)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33:22)
하나님은 주권자이시지만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성경에서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인간의 행위를 포함한 모든 것을 명시하고 다스리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또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동일한 성경에 나란히 등장하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댈 같은 본문에 등장하기도 한다. 둘 다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보증된 것이며, 따라서 확실한 진리이다. 그 둘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늘 병립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이다. 또한 인간은 책임 있는 도덕적 행위자이지만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훈계(32:8)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과 말씀을 통해 우리를 훈계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된 언약의 축복으로서 삶에 대한 훈계의 형식으로 그들은 인도해 준다. 이것은 폭넓은 정책을 결정하는 일에서나 구체적인 의사 결정에 있어서나 다 해당된다.
         
하나님은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훈계를 통해서다.
어떻게 훈계하시는가? 우리의 환경을 형성하시기도 하시고, 우리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말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소화하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하신다.
         
따라서 일반적인 하나님의 인도 방법은 섭리와 훈계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특정한 경우에 우리의 의사 결정을 지도하고 격려하시는 그 이상의 일을 행하신다는 것은 앞으로 기대할 수도 없고, 과거를 돌아보며 일반화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만큼 겸손하고 온유하다면 언제나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항상 기뻐하라(4:4)
기쁨은 마음의 습관이며, 훈련을 통해 유지 된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습관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자연적 기쁨과 영적 기쁨, 모두 질풍이나 뜻하지 않은 흥분처럼 주기적으로 우리에게 임한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예기치 않은 입맞춤이다.
         
우리는 매순간 그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기쁨이 본질적으로 우리가 구한 다음 앉아서 기다리는 행복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쁨은 마음의 습관이며, 영구적인 삶의 특성으로서 기뻐하는 훈련을 통해 야기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기쁨은 기질적인 것이나 예측할 수 없는 섭리가 아니다. 기쁨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기쁨을 선택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뻐하는 활동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 기쁨은 개인적으로 체험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에 대한 갈망(시42:1);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요7:17); 하나님의 말씀(렘23:29); 하나님의 인도하심(막8:11-12)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에 대한 갈망(42:1)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열망한다. 성경을 믿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흥미와 열망을 일으키는 관심사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갈망은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한다.
         
우리가 중생이라고 말하는 마음의 변화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 뜻을 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은 생각만 해도 그들의 마음을 몹시 슬프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를 표하며 사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며 실로 그들이 열망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이 열망은 점점 더 강해진다. 따라서 자연히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행할 수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7:17)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의 말씀과 양심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주어진 환경에 주목함으로써, 자신의 상황 판단력과 옳은 것에 대한 통찰력을 점검해 보기 위해 타인의 조언을 들음으로써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문제는 보통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공감할 대 분명해진다. 사람의 내적 상태 역시 중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될 뿐아니라 정도에서 벗어났는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두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30: 21).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말씀(23:29)
성경은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지 않으신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셨고, 성경은 그의 기록된 말씀이다하나님은 역사의 무대에서 예언과 섭리와 기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셨다. 성경이 그것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한 자신의 뜻을 보여 준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성경에 영감을 불어 넣은 성령의 해석을 통해 이 계시가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굳은 마음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로, 쓸데없는 것들을 태워 버리는 불로, 생명을 낳는 씨앗으로, 성장을 가져다 주는 젖으로, 달콤한 꿀로, 부유하게 해주는 금으로 묘사된다. 성경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하나님의 인도하심(8:11-12)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특정 행위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도하심에 대한 참된 체험은 주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형식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터무니 없는 가정을 받아들인다. 즉 특정 행동이 옳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하는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체험이 없으면 아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도 후에 마음속에 강한 충동이 일어나면 그것을 하나님의 인도라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것은 옳은 일인가?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님의 인도에 관한 이런 생각은 선량한 사람들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하거나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때는 당황하고 초조해 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생각은 이제 다소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죄의 성격(시10:4); 지혜(단2:20); 참된 기도(눅22:42); 참된 신앙(요6:38-39); 철저한 회개(얘3:40)


☆하나님의 뜻 알기: 죄의 성격(10:4)
죄는 하나님의 뜻보다 나의 뜻을 앞에 둔다. 성경은 죄를 인간 본성의 전반적인 일그러짐으로 본다. 신구약 성경은 죄의 윤리적인 성격을, 하나님의 다스림에 반항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표를 벗어나며,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자신을 더럽힘으로 하나님의 정결함을 손상시키고,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서게 하는 것으로 나타낸다. 이 도덕적 일그러짐은 동적인 것이다.
         
, 죄는 비이성적이고 부정적인 힘,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대한 반항적 태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려는 정신으로 드러난다. 죄의 부리는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적의이다. 이것은 아담의 첫번째 범죄에서 나타나는 정신이다. 그리고 악한 행동 배후에는 언제나 우리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어떤 식으로든 고집스러운 반대를 표하는 타락한 마음의 생각과 동기와 열망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지혜(2:20)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돕는 것이다. 성경에서 지혜는 가장 좋고 귀한 목표와 함께 그것을 이루는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첫번째 근본적인 의미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 또는 섭리이다. 이것이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다. 두번째 부차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명령, 즉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되고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교훈이다. 이것은 교훈에 관한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에서 우리를 불리한 처지에 있게 하는 순종이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미리 예정된 계획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뛰어나고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참된 기도(22:42)
참된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다르게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고 지속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공감하게 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대로 하라고 요구함으로써 끝맺는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 원한다면, 우리의 임무는 우리에게 확신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간구한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스스로 이끌어 낸 확실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절박한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는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겟세마네에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던 예수님의 기도를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참된 신앙(6:38-39)                 
참된 신앙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다. 자기 중심성은 타락한 인간성 안에 들어 있는 사탄의 핵심적인 모습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창조주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자로 여기기 싫어하고, 모든 것의 중심에 자신이 있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전통 기독교는 자기를 주장하고 숭배하는 증세를 교만이라 칭한다. 이 자기 중심적 교만은 기독교의 모습을 취할지라도 기독교의 본질과 정신을 파괴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조종하여 우리의 목적을 위해 일하게 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신앙을 마술로 전락시킨다. 반면 하나님 중심성은, 근본적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기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를 예배한다. 이것이 진정한 경건의 기초이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옮기는 변화가 없으면 어떠한 종교적인 모습도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 알기: 철저한 회개(3:40)
회개는 매일, 그리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는 훈련은 어느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거룩한 생활의 기초이다. 비록 오래된 고해성사의 관습에 잘못된 점들이 있을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죄에 맞서고 죄를 저버리고 죄와 투쟁하는 것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거룩한 삶으로 나아갈수록 자신의 마음 자세에서 회개해야 할 죄를 더 많이 발견할 것이다. 우리의 한결 같은 내적 헌신이 제자의 질을 나타내는 진정한 표시이듯, 매일의 철저한 회개는 헌신의 질을 타나내는 진정한 표시이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삿6:22-23); 인도하심의 방법(잠15:22); 자유 행위권(신30:19);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욥36:26); 죄의 극복(마18:8)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6:22-23)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긴급 직통 전화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성경은 개인적인 하나님의 인도에 관해서 긴급 직통 전화나 관제탑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 체험을 기대하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는 모든 신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며, 실제로 성경이 나오는 몇몇 인물들은 직접적인 인도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것과 비범한 것, 일상적인 것과 특별한 것, 법칙과 예외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종[사역자]들을 인도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인 일에 직통 전화 같은 계시를 기대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 된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대화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들은 모두 언뜻 보아도 이례적인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인도에 관한 성경의 모델은 매우 다양하다.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의 방법(15:22)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결정을 하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비행기가 구름 속에서 맹목 비행을 할 때 공항의 관제관이 무전으로 하는 지시보다는 오히려 상담가에게 받는 결혼 지도나, 자녀 지도, 직업 지도에 더 가깝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장래의 일을 알기 위해 점을 보거나 예언자나 점성학자, 또는 투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날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침을 선택해야 할 때 선택 사항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내적 체험은 일반적으로 놀라운 표적을 보거나 어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자유 행위권(30:19)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권과 책임을 주신다. 자유 행위권은 그 자체가 인간의 상징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자유 행위자이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자이며,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하나님과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담도 그러했다. 그가 범죄하기 전이나 후나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은혜 안에서 견고케 된 성도들도, 더 이상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거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볼 때 그렇다.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천국의 영광과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을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즉 영광을 입은 성도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연적인 성품에 따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선하고 옳게 된다고 해도 그러한 선택은 여전히 인간의 자유 행위권의 산물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36:26)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 훨씬 더 많다. 아인슈타인은 어린아이의 언어를 사용하여 두 살짜리 아이에게 자신을 상냥하고 친절한 어른으로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사상을 알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 살짜리 아이와 같다.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 즉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가치관, 우선 순위, 가능성에 대한 판단에 관해서 하나님이 진리라고 알고 계신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위대하고 제한 받지 않는 하나님으로서, 욥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모든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줄 의무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죄의 극복(18:8)
죄를 극복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어쩌다가 부지중에 바진 죄는 극복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반면에, 기질상의 죄들이나 상습적인 죄들을 극복하는 일은 긴 세월 동안 지속되는 치열한 싸움이다. 영적인 현실주의자라면 그 누구도 감히 달리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우리 안에 존재해 왔던 기호와 습관들을 부인하고,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고통과 한탄은 분명히 수반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죽기를 원치 않고 죽이는 과정도 결코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죄를 극복하는 것은 한쪽 눈을 빼어 버리거나 손과 발을 잘라내는 것, 즉 자신을 불구로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자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것에 작별을 고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심판(롬2:6); 심판과 찬양(계19:1-3); 양심(행24:16); 영생에 대한 소망(고전15:32); 영속적인 기쁨(전5:18)


☆하나님의 뜻 알기: 심판(2:6)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공로나 자신의 타락을 근거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의를 사랑하고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는 것을 배운 거듭난 사람들은 인정을 받고, 그리스도의 구속과 공로를 근거로 상급을 받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선택한 불 경건한 삶의 양식에 상응하는 운명이 주어질 것이며, 그 운명은 그들의 과실을 근거로 임할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를 보여주고 또 마침내 그 정당성을 입증할 것이다. 죄인들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권자이신지 의심이 대두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이 의에 대하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는 의심에 대한 하나님의 마지막 자기 변호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심판과 찬양(19:1-3)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세상을 타락시킨 모든 자들에 대한 심판은 공정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히 성화되고 천사들의 마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온전히 합한 마음으로 천국에 이를 때, 비로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신 그 자비를 영원히 즐거워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도전하는 자들에 대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또한 즐거워할 것이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믿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불완전하게 성화된 죄인들은 다른 죄인들에 대해 상당히 공감을 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심판을 통해 그분이 영화롭게 되시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자비뿐 아니라 그의 심판을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배우는 일은, 거룩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훈련의 일부로서 모든 성도들이 기대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양심(24:16)
우리의 양심은 성경적으로 판단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양심은 우리 자신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마음에 내장된 능력이다. 우리의 태도와 행동, 반응, 생각, 계획을 승인하거나 반대하고, 우리가 행한 일이 옳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그로 인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해 준다. 마음의 다른 능력들과는 달리 양심은 아주 독특하다. 마치 우리 자신과 분리된 한 사람인 것 같다.

종종 양심은 조용이 있었으면 할 때 말하고, 또 우리가 듣고 싶지 않는 것을 말한다. 양심은 가장 높은 기준에 의해 우리를 판단하므로, 영혼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양심이 악을 선으로 간주하도록 조건화되거나 반복되는 죄로 인해 무감각해질 경우에,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될 수 없다. 양심의 특별한 판단은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의 법에 일치될 때에만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영생에 대한 소망(고전15:32)
기독교 신앙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영생에 대한 소망이다. 죽음은 인간의 근본 문제이다. 죽음이 끝이라면, 방종 외에는 어느 것도 행할 가치가 없다. 죽음에 굴복할 수 없는 철학이나 종교는 실제로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기독교가 두각을 나타낸다. 기독교는 세상의 모든 신념과 주의가운데 유일하게 죽음을 정복된 것으로 본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고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근거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그 소망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즉 역사가 멈추고 세상이 끝날 때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3:21)는 것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예수님의 삶이 지상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삶이었는지를 보여 달라고 간구하라.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예수님을 바라보라. ♡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 알기: 영속적인 기쁨(5:18)
기쁨은 일상적인 경험 가운데 찾아온다. 기쁨은 근심이 없는 것과 다르다. 사람들이 해변가에 드러누워 한가로이 일광욕을 하고 있는 광경을 보여 주는 광고는, 휴가 때 도시 생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기쁨의 비결이라고 설득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에 동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휴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삶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와 골치 아픈 일들 침울하게 만드는 일터,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들, 반복되는 실망-로 다시 돌아갈 것이며, 더 이상 근심이 없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기쁨은 그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기쁨은 단지 매년 며칠 동안의 휴가 때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 도피적인 기쁨의 관념이다.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므로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성경의 빛(사50:10); 성공의 우상(대하26:16); 성령의 인도(갈5:18);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4); 시민의 의무(벧전2:17)


☆하나님의 뜻 알기: 성경의 빛(50:10)
성경은 우리가 한걸음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성경은 흑암 중에 여행을 해야 하는 자들에게 빛을 비춰준다.  우리는 흑암 중에 거친 시골길을 횡단하는 위험한 상황에 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고, 길을 잃고 큰 재난을 당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우리에게는 발 앞을 비춰 줄 빛이필요하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에게 그런 빛을 주셨다.

그러나 왜 말씀이 태양이 아니라 등불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성경의 빛으로 길을 걷는 것은 낮에 길을 걷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 못한다. 사실 모든 의미에서 우리는 종종 흑암 중에 있고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바로 다음에 내디뎌야 할 곳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성공의 우상(대하26:16)
성공을 중시하는 경향은 교만과 절망으로 이끈다. 성공이 우상이 될 때, 교만은 언제나 강해진다. 교만이 자라면 반드시 쓴 열매를 맺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목표를 가시적인 성공으로 여기게 하고 많은 현대인들에게 극히 감각적인고 상업적으로 보게 하는 움직임은 스스로 성공한 자로 여기는 현세적인 허영심과 스스로 실패한 자로 여기는 현세적인 절망의 온상이 되며, 천박하고 피상적인 것의 근원이 된다.
         
성경적으로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적절한 수단을 채택하고, 우리가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어디까지 이르렀는지 할 수 있는 한 잘 판단하며, 우리가 판단한 바에 따라 잘못된 것을 수정한 후에,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적절하다고 보시는 성공의 척도를 알지 못하고 또 알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겸손하고 건전한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성령의 인도(5:18)
성령은 우리의 모든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성령은 우리가 지켜야 할 성경의 지침, 목표로 해야 할 성경의 목표, 닮아야 할 성경의 모델을 가르쳐 줌으로써 인도하신다.

2). 성령은 독실한 생각과 조언을 통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성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따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3).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 안에서의 성장을 바라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리하여 영적인 우선권에 대한 안목이 더욱 더 선명해지고, 다음 일을 결정할 대 지혜와 경험의 자원이 계속해서 증가한다.

4).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그것을 기뻐하게 만듦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세상의 빛과 소금(5:13-14)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름받았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처음으로 요구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도덕 기준에 순종하고, 사랑을 행하며, 부끄러운 행동을 피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기반으로서 세상의 가치 체계와 생활 양식과 결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가 계속되는 가운데, 하나님이 그의 부정한 세상을 보호하시고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종류의 합법적인 인간 활동에 몰두해야 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가치 체계와 인생관에 의해 행동하여 인간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자신의 소명을 이해할 때, 기독교는 변화를 일으키는 문화적 힘이 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시민의 의무(벧전2:17)
성경은 시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명령한다. 하늘나라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이다. 신약성경에는, 시민의 의무가 하나님을 섬길 의무와 함께 단호하게 명령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잠깐 체류하는 외국인으로 여길지라도, 좋은 정부가 제공하는 이득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이런 이득을 극대화하는 일에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법을 지킴으로써 안정된 정부를 지지하는 것과 개인적 참여를 통해 정부의 역할 수행을 돕는 것은, 요셉, 모세, 다윗, 느헤미야, 모르드개, 다니엘 등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절한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내면에서 나오는 거룩함(시119:47); 매일 용서받는 삶(느9:17); 본성 바로잡기(엡2:8-9);선악에 대한 분별(왕상3:9); 성경 말씀(출32:16)


☆하나님의 뜻 알기: 내면에서 나오는 거룩함(119:47)
거룩함은 내 마음과 관련이 있다. 거룩함은 사람의 내면에서, 즉 올바른 행위를 통해 거룩함을 나타내려는 올바른 목적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일을 행하는 행동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나를 자극하여 그것을 행하게 하는 동기의 문제인 것이다. 거룩한 사람의 동기가 되는 목적, 열정, 욕구, 열망, 포부, 목표, 충동은 어떤 일을 행함으로써, 또는 어떤 일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피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선한 일은 완전히 깨어 있는 삶의 특성인 찬양과 예배, 그리고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악한 일은 이런 일들을 소홀히 하고 무관심한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내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애써야 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매일 용서받는 삶(9:17)
나는 매일 용서받으며 산다. 은혜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 하는 절망적인 운명에서 해방되어 용서를 받으며 살게 되었다. 따라서 삶의 모든 면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했어도 넘어진 지점에서 자신을 일으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타고난 기질인 교만은 자신을 방어하고 스스로 의롭다 하며 허영심이 강하므로,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실패의 충격을 다시 겪지 않으려고 다시 시도하기를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의 겸손은 그러한 억압을 모른다. 매일매일 그리스도인의 잘못은 사함을 받고, 기쁨이 회복된다.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이 셀 수 없이 용서받는 삶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본성 바로잡기(2:8-9)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일그러진 본성을 바르게 하실 수 있다. 기독교가 인간의 선천적인 선함을 강조하고 더 좋게 행하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개인의 가치를 찬미한다는 사상이 널리 펴져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는 개개인을 도덕적으로 왜곡되고 영적으로 파멸된 자로 진단하며, 그 어두운 배경에 반하여 우리의 일그러진 본성을 바르게 하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를 지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자신의 도덕적, 영적 형상으로 다시 만드시는데, 이것은 우리의 자원과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우리 각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필요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흐트러진 삶을 다시 정돈할 수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 진리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선악에 대한 분별(왕상3:9)
타락한 세상에서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하여 선과 악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주를 진정으로 선하게 만드셨다. 물질 세계, 육체적 생활, 감각적인 쾌락은 쓸모 없고 악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단이다. 여러 세기를 거쳐 오면서 이단은 기독교 사상을 늘 따라다니면서 괴롭혔고, 많은 추악한 것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간 세상으로 도덕적, 영적으로 일그러진 인간 본성에 의해 악하게 되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타락의 쓰라린 결과, 지금 인간 관계들이 잔인함과 폭력과 이기주의로 인해 붕괴되고 있고, 과학은 이기적인 야망을 위해 만들어지며, 정교한 기술은 도덕성을 손상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 본래 창조된 인간 생활의 가치가 후천적인 부패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세상에서 바르게 행동하는 법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성경 말씀(32:16)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완전히 인간적이면서 또 완전히 신성하므로 성육신의 깊은 신비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래서 성경 안에 있는 모든 내용들-역사, 예언, , 노래, 지혜서, 설교, 통계치, 서신 등- 성경 기자들이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경외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말씀을 선물로 받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더하여 양심적으로 자신의 믿음과 삶의 기초를 전적으로 그 말씀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대로 그 분을 높여 드리고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 알기: 거룩함(마23:27); 균형잡힌 삶(잠4:27); 기도응답의 약속(마26:39); 기쁨으로 지키는 율법(신5:1); 꿈이 있는 사역(시143:10)


☆하나님의 뜻 알기: 거룩함(23:27)
거룩함은 금욕주의나 형식주의, 율법주의에 의해 얻어지지 않는다. 금욕주의의 어떤 형태는 거룩한 사람의 삶에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하지만, 금욕주의 자체- 자발적인 절제, 자기 박탈, 엄격한금욕- 는 거룩함이 아니다. 거룩함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르지만, 형식주의는 말과 행동에 있어 하나님이 세우신 기준에 외적으로 순종한다는 점에서 거룩함과 같지 않다.
         
율법주의 또한 하나님의 호의를 얻기 위해 또는 이미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행한다는 점에서 거룩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으나, 예수님이 그들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진실과 그들의 가정된 경건이 불충분한 것임을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는 그들은 매우 거룩한 사람들로 간주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거룩함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감히 잊어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 알기: 균형잡힌 삶(4:27)
균형을 잃으면 한 가지 악에서 떠나도 또 다른 죄악에 빠지게 된다. 줄타기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비결은 균형이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결이기도 하다. 줄타기 곡예사가 떨어질 수 있는 방향은 늘 두가지, 오른쪽과 왼쪽인데 이것은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정책을 구상하거나 행동 방침을 계획하는 모든 시점에서 피해야 할 두 극단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양 극단을 피하는 일에 너무 서투르다.

우리는 풀밭에 있는 뱀을 보고 피하듯 자신이 어떤 것을 싫어하고 멀리한다는 사실을 알거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그것을 계속해서 주시한다. 이런 식으로 뒤로 물러서다 보면 곧 그것과 반대되는 극단에 이르게 되고, 그것은 또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또 반대편으로 치우치게 된다. 이런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기도응답의 약속(26:39)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가지고 갈 때 끈덕지게 하나님께 간청할 수 있다는 것과 또 하나님은 그러한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의 구체적인 요청을 거절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치유하시기를 거절하셨던 것처럼(고후12:7-9)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선택을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에 맡기며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의 선함을 믿는 믿음을 가장 명백하게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기쁨으로 지키는 율법(5:1)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율법에 순종하도록 도우신다. 인간은 자율적인,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인간은 창조자의 법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 만들어 졌다. 이것은 결코 압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감사하며 순종함으로써 최상의 기쁨을 얻도록, 예수님의 경우처럼 의무와 기쁨이 일치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율법이고, 게다가 하나님의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들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그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기 원할 뿐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이전에 결코 없었던 마음에서 우러나 오는 순종을 하게 하시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뜻 알기: 꿈이 있는 사역(143:10)
꿈을 가지고 일할 때 사역이 이루어진다. 일하지 않고 꿈만 꾸는 것은 공상가를 만든다. 즉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에 잠겨 있게 한다. 꿈이 없이 일만 하는 것은 고역이다. 즉 아래만 바라보고 이 땅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꿈을 가지고 일할 때에만 사역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꿈이 절대 사라지지 않기를, 또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연약하고 불안전한 피조물의 사역을 축복하시는 날에 하실 수 있는 일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당신의 꿈을 명확히 가지고 그것을 붙잡으라! 날마다 당신의 꿈에 다시 초점을 맞춤으로써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고, 날마다 주님께서 오늘도 당신을 인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생활하라. 당신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 일을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