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삿6:22-23); 인도하심의 방법(잠15:22); 자유 행위권(신30:19);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욥36:26); 죄의 극복(마18:8)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6:22-23)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긴급 직통 전화를 사용하지 않으신다. 성경은 개인적인 하나님의 인도에 관해서 긴급 직통 전화나 관제탑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 체험을 기대하라고 하지 않는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는 모든 신자들에게 약속된 것이며, 실제로 성경이 나오는 몇몇 인물들은 직접적인 인도를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것과 비범한 것, 일상적인 것과 특별한 것, 법칙과 예외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종[사역자]들을 인도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인 일에 직통 전화 같은 계시를 기대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 된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니다가 될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대화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들은 모두 언뜻 보아도 이례적인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인도에 관한 성경의 모델은 매우 다양하다.

☆하나님의 뜻 알기: 인도하심의 방법(15:22)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결정을 하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비행기가 구름 속에서 맹목 비행을 할 때 공항의 관제관이 무전으로 하는 지시보다는 오히려 상담가에게 받는 결혼 지도나, 자녀 지도, 직업 지도에 더 가깝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장래의 일을 알기 위해 점을 보거나 예언자나 점성학자, 또는 투시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날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방침을 선택해야 할 때 선택 사항들을 깊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내적 체험은 일반적으로 놀라운 표적을 보거나 어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자유 행위권(30:19)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권과 책임을 주신다. 자유 행위권은 그 자체가 인간의 상징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자유 행위자이다. 인간은 도덕적 행위자이며,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하나님과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담도 그러했다. 그가 범죄하기 전이나 후나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우리도 그렇다.
         
은혜 안에서 견고케 된 성도들도, 더 이상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거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볼 때 그렇다.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천국의 영광과 기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성을 없애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즉 영광을 입은 성도들은 여전히 그들의 자연적인 성품에 따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선하고 옳게 된다고 해도 그러한 선택은 여전히 인간의 자유 행위권의 산물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알기: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36:26)
하나님의 뜻에 관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 훨씬 더 많다. 아인슈타인은 어린아이의 언어를 사용하여 두 살짜리 아이에게 자신을 상냥하고 친절한 어른으로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사상을 알릴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 살짜리 아이와 같다.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 즉 인간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가치관, 우선 순위, 가능성에 대한 판단에 관해서 하나님이 진리라고 알고 계신 대부분의 것들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위대하고 제한 받지 않는 하나님으로서, 욥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모든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해 줄 의무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뜻 알기: 죄의 극복(18:8)
죄를 극복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어쩌다가 부지중에 바진 죄는 극복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반면에, 기질상의 죄들이나 상습적인 죄들을 극복하는 일은 긴 세월 동안 지속되는 치열한 싸움이다. 영적인 현실주의자라면 그 누구도 감히 달리 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우리 안에 존재해 왔던 기호와 습관들을 부인하고, 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고통과 한탄은 분명히 수반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죽기를 원치 않고 죽이는 과정도 결코 즐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죄를 극복하는 것은 한쪽 눈을 빼어 버리거나 손과 발을 잘라내는 것, 즉 자신을 불구로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낄 수 있다고 하셨다. 자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어떤 것에 작별을 고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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