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2010

당신의 눈은 성한가? - 폴 워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 있는 곳에는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사람이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19-24)

앞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우선 해야 하는 일들과 사명에 대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절들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우선권으로 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지속적인 경계자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들에게는 늘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한 선택은  일시적이며  현혹시키는 것으로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합니다. 다른 것은 우리에게 모든 댓가를 치루게하는 좁은 길이지만, 그 보상은 영원하며 성경이 묘사한 것을 능가합니다.

하나님의 보물
우리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장 보배롭게 여기시는지를 안다면, 우리가 보배롭게 해야만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하나님과 우리들의 보물은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생애를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렇게 구별되게 한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께서 보배롭게 한 것만 보배롭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까? 단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그분의  영광임을 재빨리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모든 양상, 속성들, 그리고 창조로 알려진 일들 그리고 그분께만 속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찬양과 명예를 바라십니다. 다음 성경을 고려해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1:1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6:9-10). 

하늘과 땅의 모든 민족들과 창조물들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이 가장 높이 존중되는 것을 보시는 것이 하나님의 커다란 바람이시거나 보물입니다. 언뜻보면 이것이 자기중심적으로 보일런지 모르지만, 첫번째 시각들은 대개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무엇보다도 찾고자 하시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가장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랑의 깊이는 그나 그녀가 주는 값없는 선물로 설명되곤 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작거나 부서지기쉬운 자갈을 주었다면, 굉장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미디어에 경고하러 뛰어나가지 않을테고, 여러분에게 보여지고있는 이 위대한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기 위해 친구들을 부르지도 않을 겁니다.

여러분께서  말할 것도 없이  오랫동안 기억했던 것도, 여러분이 살아가는 내내 마음 속에 가까이 심겨진  뭔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이 살아가도록 그의 생명을 주었다면, 그것은 분명 그런 반응을 정당화하는 겁니다. 대중매체의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고 여러분의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그것에 대해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 전체에서 그런 사심없는  사랑의 행동인 보물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사랑의 척도는   그 사람의 선물의 크기로 나타납니다.

이제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던  가장 귀한 선물은 무엇인지?"
번영, 건강 혹은 하늘 조차도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을 위해 하신 최고의 사랑을 베푼 일은 그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드러내시고 설명하시기 위해서 무대 중앙에 모든 창조물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을 향해 그들의 눈과 마음을 고정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하실 때, 바로 이 이유때문에 창조물을 향해 가장 위대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스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님을 모르고 그분들 영화롭게도 못하고 그분의 진리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가장 가련하고 비참한 창조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선언합니다.(3:11).  

이런 무한한 마음의 상태는 오직 무한함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만  제공하고있는  모든 명성, , 권력 그리고 즐거움을 자신의 마음에 넣고자하지만 여전히 공허할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는 일시적인 것으로 채워질 수 없고, 무한은 한정된 것에 의해서 만족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별문제로 하고서, 인간은 빈곤하고 비참하며 공허합니다. 
 
요약하자면, 하나님의 보물, 그분의 가장 커다란 바람과 목적은 모든 나라에서 그분의 이름이 높아지고 그분의 이름이 성스럽게 되는 것, 그분의 나라가 세워져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커다란 목적이며 열정인가?" ..

우리는 밤에 눈을 뜨고는 많은 것들을 염려합니다. 많은 것들에 속타고 근심합니다. 우리는 강박관념이 일정도로 열렬히 광신적으로 주택, 토지, 직업, 승진, 명성과 좋은 평판, 욕구, 바램 그리고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듣지 못한 나라에 대한 우리의 염려로 인해 잠이 우리에게서 떠난  마지막 때는  언제였습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성스럽게 되지 못하고 그분의 나라가 너무도 더디 와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분의 뜻이 우선시되지 않는 곳들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이 둘로 나누어진 마지막 때는 언제 였습니까? 우리가 너무도 많은 일들로 인해 속타고 땀을 흘리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어떤 생각을 한 적은 있는지요

<출처:LTC>

예수를 아는 중에서 자라거라 - [손양원 목사님 설교집중에서]

본문 : 3:14-19, 1:19-11, 벧후3:18

생명을 가진 자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로 기독자는 중생한 채 생명으로 30, 60, 100배로 자라야 합니다. 그러자면 예수를 옳게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기독자가 있습니다. 하나 참 예수를 옳게 아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예수에 대하여 설명하는 자는 많되 예수를 아는 자 적고, 예수를 몇 십년 믿었다고 자랑하는 자는 많으나 예수의 생명 성장의 진보를 보이는 자는 드뭅니다. 성경책 속에 기록된 예수를 설명하는 자 많되 자기 속에 계신 주와 자라는 자가 희귀합니다. 예수를 두뇌 속에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누구로 알았으며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예수를 아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생명을 가진 기독자라면 그리스도를 아는데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를 앎으로 해서 얻는 5대 소득에 대하여

1) 예수를 아는 자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예수를 안다면서, 예수를 믿는다면서 근심과 걱정을 하는 자는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자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하고도, 나는 나대로 걱정과 근심에 잠겨 있다면, 아는 안 믿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맡겨 놓고도 걱정할 바에야 믿으나 마나 한 일이 아닙니까?

사죄받은 자리에 앉아서 죄의 고통을 하고 있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앉아서 세상의 썩은 면류관이 부러워 한탄하고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마귀의 신세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영원 축복을 얻는 자가 잠깐 세상의 것에 취하고자 하니, 이 어찌 참으로 예수를 알았다고 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참으로 예수를 아는 자리에 들어섰다면 그러한 모순된 일은 하지 않게 되고, 필연적으로 은혜와 평강을 맛보게 되는 법입니다.

2) 예수를 알아야 예수의 것을 내게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오직 예수에게 한하여서는 예수의 가지신 것을 내가 알아가는 대로 다 낱낱이 내 것이 되는 일입니다. 예수의 사랑, 인간 지혜에 넘치는 예수의 사랑의 그 넓이, 길이, 높이, 깊이의 모든 충만한 것을 내게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지신 것은 모두가 우리가 이해하고 또 믿는대로 우리 것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성결함, 선함, 거룩함, 지혜, 능력 등 다 내 것이 됩니다. 무엇이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예수의 곤고, 천대, 십자가의 죽음 같은 것은 우주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되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것으로 삼도록 합니다.

3) 예수를 알면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명령에 순종하여 나중에 고기를 많이 잡게 되고 나서는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했습니다. 바울도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하지 않았는가? 일본에 유명한 아오기 선생도나는 벌레이지 인간이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알아 갈수록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점점 작아 져 가는 나요, 천한 나요, 껍데기 뿐인 나요, 공허한 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들이 자기를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죄인 됨을 알고, 부족을 알고, 무능력함을 알고, 인간 자체를 깨닫는 것은 예수를 알아 가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인 것입니다. 예수를 알아 가는 겸손한 자에게는 예수의 충만이 그의 충만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멸망의 자식이다라고 할 때가 오히려 복된 때인 것입니다. ‘나는 어지간하다라고 자족을 느낄 때가 오히려 위험천만한 때입니다.

4) 예수를 앎으로 죄악과 환란과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예수를 알게 될 때에 세상을 알고 인간도 알고 악마도 알고 죄도 의도 선도 악도 구별해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범죄케 하는 모든 사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나도 싸울 계책이 나오게 되고 힘도 나게 됩니다.

5) 예수를 참으로 아는 자라야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여! 예수의 참맛, 참 예수를 알기 전에는 섰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3년이나 따르던 가롯 유다가 오늘의 우리들 보다 예수를 몰라서 팔았겠으며, 세상을 사랑하던 도마는 우리보다 예수를 몰라서 세상 영광에 취하였겠는가! 과거에 믿다가 낙심한 모든 성도가 우리보다 성경을 몰라서 그렇게 되었겠는가! 오늘날 조선에 목사 장로가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보다 못해서 그렇게 되는 줄 아는가?

예수를 알아 가자. 오늘날 우리들도 참 예수를 아는 일에 일로 매진합시다!

그러자면  예수를 아는 방법은 무엇인가
1) 기도로
2) 성경으로
3) 체험으로
4) 명상으로
5) 만물, 만사 만행중에서
6) 평범한 생활 중에서도 예수와 사귀이면 예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려고 일생을 산곡이나 암혈에서 지낸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나를 배우라고 하셨으니 더 말할 것이 무엇이랴! 예수를 알면 예수의 것이 아는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이니 이 어찌 복되지 않으랴!

과연 무엇이 성경적인 교회인가? 2

지난 주  부터 저희가 계속해서 성경적인 교회는  과연 어떤 교회인가? 성경적인 교회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죠? 왜 우리가 성경적인 교회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는가 하면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가 교회는 이런것이다 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란 이런것이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높여드리거나 교회생활을 하거나 그 무엇을 하던 간에 그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 우리의 삶이, 우리의 신앙이 결정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주부터 여러분들에게 성경적인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많은 교회를 다녀봤습니다. 제가… 정말로 은혜가 있다고 하는 교회, 성장한다고 하는 교회,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고 하는 교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하는 교회는 정말 부지런히 쫒아다녀 봤습니다. 그 교회에서 때로는 은혜를 받기도 했고 참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제 마음에는 이 교회다, 여기가 정말 성경적인 교회다, 이 교회를 좀 우리가 닮았으면 좋겠다 그런 교회는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모습이 되어야된다. 이런 모양이 되어야된다. 이렇게 되어야된다고 하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성경이 교회를  뭐라고 말하는가? 그렇죠 여러분, 이미 저는 여러분들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의 정의를 말씀드렸어요.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그런데 그런 샘플이 없다는 거죠. 그런 샘플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교회를 다녀도 어딘가는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영광스러운 교회라는 단어를 쓰죠. 성경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회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볼 수 없지만 반드시 그런 교회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소원도 사랑과 진리교회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이 보시기에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흠도 점도 없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말씀을 나눕니다. 지난 시간에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성경적인 교회, 주님이 꿈꾸시는 교회, 첫번 째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다 아멘,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는 성경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니까 성경적인 교회는 날마다 모이는 교회,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날마다 모여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날마다 모여서 교제하고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는 그런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문화는 성경적인 문화를 이루기가 아주 어려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에 역행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인 신앙생활하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이루어야만 합니다. 주님의 소원이기 때문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 모여서 뭐합니까? 모여서 사교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모여서 친교도 하지만 모여서 기도에 힘쓰는 교회, 모였을 때 마다 기도했습니다. 그죠? 기도를 통해서 항상 그들은 성령충만함을 경험했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고 기도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그들의 삶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교회는 기도에 힘쓰는 교회입니다. 

세번 째로 성경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성령이 충만한 교회입니다. 교회를 시작하신 분도 성령입니다. 교회를 존속시키시는 분도 성령입니다. 교회를 성장시키시는 분도 성령입니다. 궁극적으로 다시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시는 분도 성령님이시죠. 그러므로 교회가 다시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령충만해야되요. 성령충만한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에요. 사랑과 진리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인가? 우리가 정직하게 살펴보고 정검해봐야만 합니다. 아멘,

그러면 오늘부터는  성령충만한 교회의 특징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성령충만한 교회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다시말하면 그 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렇죠 여러분? 네. 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성령충만한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고 또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기일수도 있죠. 눈으로 보는 것 만으로는 우리가 다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성령충만한 교회들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의 특징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교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충만한 교회는 성령이 그 때에 주시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 성령의 음성에 열려있는 교회, 성령의 음성에 반응하는 교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교회가 바로 성경적인 교회에요. 우리가 그 말씀을 성경을 통해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오늘날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지어다. 그러나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있고 들을 수 없는 교회가 있습니다. 성경적인 교회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장 1절, 2절 말씀을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라고 누가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런 말입니다.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했잖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누가가 누가복음에는 여기에서 여기까지 기록했다 라고 말하죠.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그 사역을 시작하셔서 나중에 승천하시기까지 거기까지 내용을 기록했는데 이제 그 이유부터 사도행전에서 기록한다 그 얘기를 지금 하는거죠. 

지금 누가가. 그렇죠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누가가 아주 중요한 얘기를 했습니다. 뭐라고 말했냐하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명령하셨다.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표현을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2절에 보면, 보세요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그렇게 말하고 있죠.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말고 여기서 기다려야만 한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이 부어질 때까지 너희는 기다려야만 한다. 성령이 너희들에게 부어질 때 비로서 너희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이요 그리고 너희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금 말씀하신 내용이에요. 

그 내용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누가가 뭐라고 기록했냐하면 예수님이 그 말씀하실 때 성령으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분의 말씀을 전한게 아니라 성령으로 말씀하셨다는 거에요. 성령의 말씀하시게 함을 따라 말씀하셨다는 거에요.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씀하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아들인 그 분 자신도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말씀하셨다는 거에요. 말씀인 자신도, 말씀이 육신이 된 자신도 성령으로 말하셨다는 거에요.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25절에 보면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여러분 이 내용은 시편 2편 내용이죠. 다윗이 시편2편에 기록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누가가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다윗이 시편2편을 기록했지만 그 내용은 다윗이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위탁하셔서,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사용하셔서, 다윗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다윗이 기록한 것 뿐이다. 그러면 그것은 누구의 말이에요? 성령의 말씀이에요. 다윗의 말이 아니고 성령의 말이라는 거에요.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님은 다윗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느냐. 사도행전 28장 25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하면 이사야는 구약을 기록한 선지자입니다. 그죠? 그런데 이사야가 구약을 기록할 때 자기말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이 이사야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말하면 이사야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사야이다. 

그런데 그 말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향하여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이요 그래서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것이다.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기록했지만 이사야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이다. 이렇게 말한거죠. 누가는 지금 사도행전을 통해서 뭘 말하려고 하냐하면은요 성경적인 교회는 성령이 지속적으로 말씀하신다는 거에요. 성령이 과거에 다윗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사야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성경적인 교회는 성령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9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분도 뭐라고 말했냐하면 나는 내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아버지께서 내가 할 말을 알려주시고 명령하여 주셨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의 말을 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에요. 놀랍지 않아요? 

그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면서 그 분은 그 분의 말을 하신적이 없다. 그 분은 아버지의 말을 전달하신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는 거에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그 내용이 요한복음 3장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 34절에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죠.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하나님의 보내신이가 누구에요? 예수님이죠. 예수님 자신을 가르켜서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본인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여기에 비결이 있어요. 여기에 열쇠가 있어요.

여기에 KEY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그 분의 말씀을 하시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에요? 성령이 한량없이 부어지실 때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그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예수님은 한량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실 수 있었던 거에요. 그러므로 비결은 하나님의 성령이 한량없이 부어지는 거에요. 

이게 무슨 말이냐하면은요 하나님의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는 제한적으로 부어진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성령이 어떤 사람에게는 부분적으로 부어질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께는 하나님의 성령이 without measure, without limit, 제한없이 무제한 한없이 부으셨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께 한없이 부어지니까 그 분이 계속해서 한없이 성령충만하시고 그 분이 한없이 성령충만하시니까 그 분은 한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실 수 있었다는 거에요. 그게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입니다. 성령이 한없이 부어주시는 것, 그러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성령의 말하게하심을 따라서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었다 그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은요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약 39명이라고 하는 성경기자가, 성경은 사람이 기록했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잘아는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누구의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이에요. 그런데 그 말을 전달한 매체는 구구에요?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을 전달했어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글로 기록한 책이 성경이에요.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책이에요.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성경은 끝도 없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보기위해서는 성령의 감동하심이 필요한거에요.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 성경을 보면 그것은 문자요 지식일 뿐에요. 그것은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때도 성령의 감동하심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제가 오늘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겁니까? 성경적인 교회하고 이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성경적인 교회는 마치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처럼 마치 초대교회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성경적인 교회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것이 성경적인 교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키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성경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실례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라고 하는 집사가 나오죠. 이 분은 일곱 집사님들 중에 한 분입니다. 사도행전 8장 29절에 보니까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말이죠. 빌립은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죠? 빌립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순종했기 때문에 이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복음이 그 나라 전체에 확산될 수 있었던 그 출발점이 바로 여기죠.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빌립이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9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잘아는 것처럼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사람들이 너를 와서 찾으니까 그 사람들과 같이 가라. 그래서 그가 그들과 함께 고넬료의 집에 가서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여지고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시작이 되잖아요. 그죠? 베드로가 성령이 말씀하셨다고 그랬어요. 또한 11장 12절에도 보면 ‘성령이 내게 명하사’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명령하셨다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베드로나 빌립이나 또는 이 외의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가 성령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보시면 안디옥교회 이야기가 나오죠.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교회 전체가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이 교회 전체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은거에요. 그러니까 성령님은 빌립에게도 말씀하시고 베드로에게도 말씀하시고 바울에게도 말씀하시지만 성령님은 교회 전체에도 말씀하신다는 거에요. 

문제는 성령께서 교회 전체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느냐, 성경적인 교회는 바로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라는 거에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바울의 예를 한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도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바울의 생각에는 아시에서 복음을 전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러 갈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막으셧다는 거에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방향을 돌려서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더니 또 그 다음 말씀에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 그랬어요. 성령은 곧 예수의 영입니다. 예수의 영은 곧 성령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무슨말이에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어느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을 막았다는 거에요. 그렇죠 여러분? 성령께서 그 때 그 때 바울에게 지시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사도행전 23장 23절에서 ‘오직 성령이 각에서 내게 증거하여’ 도시 가는 곳 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여주시고 증거하여 주셨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령님은 초대교회에 교회 전체에도 말씀하셨고 그리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도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교회를 섬기는 일곱집사에게 말씀하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늘날에도 교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요 교회는 말이죠 성령님의 말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사람의 음성을 따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사람의 생각을 쫓게 되어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는 반드시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매 시대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리고 그 메세지를 듣는 교회는 살아나잖아요. 

그 메세지를 듣는 교회를 통해서 주님은 역사를 이끌어가시지 않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회가 있지만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가 바로 성경적인 교회. 계속해서 여러분 보겠습니다.

성령님은 교회에  말씀하셨고 성령님은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충만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이것을 가르켜서 오늘 본문 말씀에 ‘성령으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성령으로 말씀하셨다. 분명히 예수님은 말씀하시지만 성령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한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6장 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스데반이 말을 합니다. 스데반이 말을 하는데 성경에 성령으로 말을한다. 

성령과 지혜로 말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도저히 스데반을 감당할 수 없었더라. 왜요? 성령께서 스데반을 통해서 말씀하시니까. 사람의 지혜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이 도저히 스데반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했어요? 돌로 쳐서 죽였어요. 스데반이 말을 하지만 그는 그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을했다. 성령의 충만하심을 따라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다는 거죠. 사도행전 11장 28절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나오죠.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아가보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는데 그 분이 성령으로 말했다. 성령으로 말했는데 뭐라고 말했느냐하면 천하에 크게 흉년이 들것이다. 이건 뭘 말해요? 예언을 말하죠. 

아가보가 예언을 했는데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렇게 예언을 했더니 성경이 글라우디오 때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고 있죠. 여러분 성경적인 교회는 바로 이런 교회에요. 성경적인 교회는 성령으로 말하게하는 사람을 따라 장래일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성경적인 교회에요. 성경이 그렇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그런가하면 두로에 있는 제자들 얘기가 사도행전 21장에 나와요. 

사도행전 21장 4절에 보면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이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말했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바울이 누구입니까? 누가 감히 사도바울에게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어요? 제가 무슨 말씀을 하냐하면 사도바울은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죠? 그런데 이 두로에 있는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서 바울에게 말을 하는거에요.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거에요. 아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으니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거에요. 성경적인 교회는요 성령의 음성이 계속해서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교회 전체에게도 말씀하시고 우리 개개인에게도 말씀하시고 영적인 지도자들에게도 말씀하실 때에 우리가 거기에 따라서 반응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것을 보게되는데 그 역사의 결과들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는 거에요. 여러분이 사도행전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말했을 때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했을 때 복음을 전했을 때 항상 나타났던 역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반드시 초자연적인 역사가 따라왔다는 거에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죠? 병든자들이 고침을 받았죠? 귀신이 쫓김을 당했죠? 그리고 구원얻는 자가 날마다 교회에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뭘 말하냐하면은요 성령충만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성령의 음성이 살아역사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나타나는 역사를 통해서 나올 수 있다는 거에요.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키가 바로 성령의 부어주심이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항상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하냐 하면 사랑과 진리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가 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이 교회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된다.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주셔야 됩니다. 성령께서 이 교회에 주시는 음성을 저도 들을 수 있어야되고 중보기도자들도 들을 수 있어야되고 여러분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는거죠.

그런데 이  역사가 실제적으로 가시적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원리이기도 하고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런데 성령님은 꼭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을 찾고 계신거에요. 다시말하면 여러분 사람의 말은 영을 표현하며 영을 전달하는 수단과 매체가 된다는 거에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 말을 여러분들에게 좀 설명을 드리기 원합니다. 

그건 뭐냐하면 요한복음 6장 63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이요 생명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라고 말했습니다.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they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무슨 말이냐하면은 예수님의 말씀은 영이 그 말씀을 전달하고 있다는 말이고 영이 그 말씀을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사람의 말은 영을 전달하고 영을 표현하고 영의 생각을 형상화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들으셔야 됩니다. 사람은 그 말을 통해서 반드시 영적인 소스를 전달하게 되어있어요. 그 실례를 제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니까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습니다. 뭘 받았다고요? 성령충만함을 받았어요. 제자들이 성령충만함을 받았을 때 나타났던 현상이 뭐냐하면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니라. 

이 외에도 사도행전에 성령이 부어주시는 다섯개의 현장가운데 세 군대기 똑같이 말했어요. 그들이 성령이 충만했을 때에 나타나는 현상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을 하거나 예언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면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다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면 성령님이 맨먼저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곳이 바로 우리 입이라는 거에요. 우리 말이라는 거에요. 우리 입술이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원하시고 하나님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사람의 말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의 말은 성령을 전달하는 성령의 통로가 될 수 있고 다른 영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영적인 세가지 소스가 나오죠. 사람의 영, 세상의 영, 하나님의 영, 그죠? 그러면 사람의 말은 이 세가지의 영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는 거에요. 여러분이 성령이 충만하면 누구의 말을 전달해요? 하나님의 말을, 여러분이 사람으로 충만하면 누구의 말을 전달해요? 세상의 말, 세상의 임금, 공중의 권세잡은자 마귀의 말을 전달하게 되요.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사실이에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잘 생각해보면 때로는 내가 내 입을 통해서 성령충만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이 세상의 말이 전달될 때도 있고 때로는 마귀의 말이 전달될 때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신약성경에 보면은 귀신들린 사람 얘기가 나오잖아요. 귀신들린 사람은 귀신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잖아요. 그쵸? 성령충만하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마귀로 충만하면 마귀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영으로 충만하면 여러분이 말하게 함을 따라 말하고 그렇죠? 그래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해야 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거의 대부분 성령충만할 때 받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성령충만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요. 성령충만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려요. 그렇죠? 성령충만할 때 내가 주님의 음성을 더 clear하게 분별하게 되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반대로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을 때 한번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성령충만하지 않을 때는 둘 중에 하나에요. 여러분 자신으로 충만할 때, 자기의로 충만할 때, 자기영으로 충만할 때, 다시 말하면 사람의 영으로 충만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사람의 영도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어요. 사람의 영이 강한 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의 말에 우리가 빨려들어가죠. 그 사람 말을 우리가 자꾸 듣게되죠. 

그러나 자기 영이 강한 사람이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말을 듣게 되요. 그리고 나서 후회해요. 내가 왜 그랬지? 그렇죠? 여러분, 종종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 세일즈 맨이 뭘 사라고 오잖아요, 세일즈맨은 그런 교육을 받거든요. 진짜로 받거든요. 그래서 세일즈맨 가운데 자기영이 아주 강한 사람은 상대방 듣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가지고 사지않고는 못견디게 만들죠. 그러면 그 사람들은 많이 팔게되죠. 그러니까 세일즈맨 조차도 자기영으로 충만해야 가능하다는 얘기에요. 그런가하면 꼭 세일즈맨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얘기할 때 그 사람만 말하면 이상하게 나는 할 말이 없어지고 그 사람말만 꼼작없이 듣고 나중에 이렇게 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죠. 그죠? 그 사람 자기영이 강하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기영이 강한 사람은 두 종류에요. 아주 노골적으로 강한 사람이 있어요.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말로 기선을 제압하는 사람이 있어요. 세상 사람들 기가 강하다고 그러죠? 기, 기가 강하다는 말이 영이 강하다는 말이에요. 사람의 영이 강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하고는 말로 안되요. 아까 말로 안될 때는 어떻게해요? 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보면은요 다 무엇을 많이 하냐하면은요 자기 개발, 자기 들어간 것을 많이 해요. 그렇죠 여러분? 맞죠? 그래서 돈도 많이 벌어요. 사실…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뜻을 펼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이루어 나가는 거에요. 그건 자기영이 충만할 때 가능한 거에요. 

그런데요 이거보다 오늘날 가장 위험한게 뭐냐하면 이 세상의 영이에요. 이 세상의 영, 한번 따라해보세요. 이 세상의 영, 이 세상의 영은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 마귀, 이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이 세상의 문화를 통해서 그의 생각과 그의 생각을 펼쳐 난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거에요. 우리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여러분이 매일 뭘 듣고 뭘 봅니까? 여러분이 듣는 것과 여러분이 보는 것은 대부분 세상의 영의 영향력을 받는 거들이에요. 음악을 먼저 얘를 들어보겠습니다. 음악, 여기 음악하는 분들 많이 있죠? 음악은 반드시 그 소리를 통해서 영을 표현하게 되어있어요. 영을 전달하게 되어있어요. 성령충만한 사람이 연주를 하면 뭐가 전달이 되요? 하나님의 영이 전달되죠. 아멘, 그러니까 은혜가 충만하죠. 

그러나 마귀가 충만한 사람이 연주를 하면 뭐가 전달이 되요? 세상의 영이 전달되고 마귀의 영이 전달되죠. 그렇잖아요 여러분, 끝난 것 아니에요? 여러분이 대학다닐 때, 나이트크럽을 다닐 때 가보셨잖아요? 여러분이 나이트크럽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아..주의 은혜까 너무 충만합니다. 주의 음성이 막 들리세요? 제가 아침에 1부 예배를 드릴때 그런 음악을 들으면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자극이 된데요. 충동이 된데요. 뭐하고 싶은 자극요? 죄짖고 싶은 자극, 나이트크럽에 가서 여러분 거기서 성경공부 할 일이 있습니까? 그렇죠 여러분, 음악은 소리에 불과하지만 영을 전달하는 통로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무슨 음악을 듣느냐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거에요. 세상의 영은 반드시 세상문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음악이 그 부분이다. 음악뿐이에요? 미술, 미술도 마찬가지에요. 성령충만한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면 어떻게 되요? 은혜가 오잖아요. 예를 들어서 그 이름 뭐죠? 아키아나, 제가 아는 미국 친구 와이프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분도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오면 그 영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그 그림을 보면 정말 은혜가 되요. 그 그림을 보면 주님의 임재가 느껴져요. 그 그림을 보면 주님의 사람이 느껴져요. 그 그림을 보면 주님의 성품이 느껴져요. 그런데 마귀가 충만해서 마귀의 영감을 받은 그림을 보면 어때요? 섬뜩하죠. 그죠?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면 죽고싶은 충동을 느낀데요.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데요. 왜그러냐하면은요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그 그림을 그릴 때 자살의 영으로 충만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거에요. 그래서 그 그림을 보면 죽고싶은 거에요. 여러분, 왜 죽고싶은지 검사좀 해봐요. 내가 지금 무슨 음악을 들을 때 그런가. 여러분 어떤 음악을 들으면 슬펴지죠? 슬퍼지면서 눈물이 나죠? 인생은 허무한거야. 

이게 다 마귀가 하는 일이에요. 이게 다 세상의 영이 하는 일이라구요. 이것을 우리가 분별해야 됩니다. 그런가하면은요 여러분 현실로 돌아오겠습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우리가 사역자 훈련을 합니다. 사역자훈련을 할 때 우리가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한 다음에 성령께서 우리 지체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 때 그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 마음이 어때요?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고 소망이 생기고 그러죠? 그렇죠? 그런데 이제 성령의 약기운이 좀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지체하고 좀 다투었어요. 그럴 때는 어떤 말이 나와요? 어떤 말이 나와요? 여러분 참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여러분이 다툴 때 녹음을 한 번 해보세요. 

그래가지고 여러분이 뭐라고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러분이 동의가 되실 거에요. 어머, 어떻게 한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지…, 예수님이 그러셨죠. 한 입에서 찬송가 저주가 나오는구나. 한 입에서 어떻게 쓴 물과 단 물이 나오나. 그래요, 한 때는 우리가 성령충만해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한 때는 내가 충만해서 네, 그런 말 하잖아요 여러분, 그럴 때 여러분의 말과 입은 성령의 통로가 아니라 세상의 영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거에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어떤 말은 우리 지체를 살리기도하고 어떤 말은 우리 지체를 죽이기도하고 왜요? 그 말을 통해서 영이 전달되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해요…얼마나 중요해요…그런데요, 하나님은요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을 이 세상에 이루기 원하세요.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만 가능하냐하면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해요.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만 가능하냐하면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해요. 그러니까 누구에게 성령의 생각이 전달되고 누구에게 성령의 음성이 전달되고 성령의 뜻이 표현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에요. 똑같은 원리로 마귀도 그 뜻을 이 땅에 펼치기 위해서는 마귀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문제는 누구의 영에 영향을 받느냐, 누구의 영의 씌임을 받느냐, 누구의 영의 생각을 표현하느냐의 전쟁인 거에요. 
모든 것이 다 그래요. 뉴스도 그렇죠, 미디어도 그렇죠, TV도 그렇죠, 인터넷도 그렇죠, 매거진도 그렇죠, 책도 그렇죠, 모든 것이 앞을 다투어서 뭣을 해요? 누구의 생각을 이 세상에 표현하느냐, 누구의 생각을 전달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느냐, 마귀의 영향력을 세상영을 통해서 전달하느냐, 하나님의 영을 성령을 통해서 전달하느냐, 여기에 달려있는 거에요. 그 바로 한 중앙에 교회가 서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수단이 되야 되는 거에요. 그렇죠?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느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성령충만한 방법 밖에는 성령충만해서 내가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어요. 

내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 말을 전달하고 그 말을 좇아 행하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린 것 처럼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에요.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도행전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의 얘기요.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얘기요, 성령님을 통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 그 얘기로 가득하잖아요.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성경적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성령에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되요.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전달해야되고 성령의 뜻을 조치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되요. 교회는 비로소 성경적인 교회가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요 하나님의  영을 전달하기 위해서에요. 하나님의 성령을 표현하기 위해서에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사랑과 진리교회 성도 여러분, 다른 것 없습니다. 첫째도 성령충만, 둘째도 성령충만, 세째도 성령충만, 사랑과 진리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면 성경적인 교회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성령충만한지 어떻게 압니까? 말을 들어보라는 거에요. 오늘 첫번째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특징이 뭐에요? 말이 변했는가? 그 말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이 전달되는가, 아니면 사람의 말이나 아니면 세상의 영의 말이 전달되는가,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아멘.


<출처:LTC/벤자민 오>

사랑하는 하나님 - 묵상말씀 - 유다서 24-25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 24-25)

믿겨지세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앞에 기쁨으로 당신을 서게 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마지막 날에, 천사가 와서 말을 건네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오늘이 심판 날인데, 떨리나요?" 저는 대답할 것입니다. "떨리냐고요? 전혀요! 저는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너무 좋은 걸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심판날을 생각하면 몸이 움츠러드시나요?
하나님께서 모든 사탄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당신을 책망하실까 두려우세요?
심판 날을 떠올릴 때, 여러분을 지배하는 가장 큰 감정은 무엇인가요?
만약 두려움과 공포심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서 하나님을 복수심을 품으신, 절대 웃지 않으시는 구주로 떠올리시나요?
당신의 심장은 심판 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금이라도 뛰시나요?
그분의 선하심이 그분의 진노보다 더 오래간다는 것을 아시나요?
심판 날이 나쁜 것만이 아닌, 당신의 마음에 선한 동기가 드러나는 날이라는 것도 생각하시나요?

나의 기도
하늘에서 당신 앞에 서게 될 순간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채워집니다. 저를 보듬어 주시는 당신의 미소와 저를 향하여 환영한다고 말씀하시며 벌리신 그 두 팔을, 이 두 눈으로 보기 원합니다. 당신이 허락하신 의의 선물이 있기에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그 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집니다!

* 당신은 오래된 골방을 발견하여 그곳에 재앙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최후의 심판이 지나간 후에야 골방에서 나오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은가? *

<출처:사랑하는 하나님/마이크 비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