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2011

예수님의 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유월절 어린 양처럼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피는 아홉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사흘 간에 걸쳐 이 아홉가지의 의미와 능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어린양 예수의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25절에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언약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시 민족들은 항상 피로써 언약을 맺었습니다. 두 부족의 족장이 나와 팔을 베고 거기에서 나온 피를 술잔에 담아 함께 마셔야 비로소 형제 부족이 되어 서로 의리를 지키면서 상부 상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인간을 대표하여 피를 흘리시고 새로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사람이 세운 언약도 변치 않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이 변하겠습니까? 이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치고 피곤할 때, 그리고 마귀에게 공격을 당할 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도와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피는 죄사함의 피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스스로 죄값을 갚아야 한다면 한 사람도 구원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이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와 절망과 저주와 죽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피는 칭의의 피입니다.
성경에는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로마서 5:9)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도 받았습니다. 의로움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이요, 마귀의 참조를 받지 않는 보증이 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이 아니고 구원받은 의인입니다.

예수의 피는 이처럼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하고 죄를 사함받게하고 의롭게 하심을 주시기 때문에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 보배로운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우리들은 이제 마귀의 공격이나 참소를 받을 때 담대히 이와 마서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자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요한계시록 5:9)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쉬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좋은 사람 혹은 미혹케 하는 사람, 심지어는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은 바로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기는 했지만 예수님의 형편없는 학벌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란 인물은 나사렛의 목수로서 랍비에게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지 못한 시골뜨기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서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습니다. 보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육신의 눈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히려 흠모할 만한 고운 모양이나 풍채가 없으신 분입니다( 53:2).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세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외모만 보고 판단하게 되면 중요한 것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독자인 이삭을 번제물로 받치라 하실 때 이미 그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런 시험을 하지 않으셔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줄 아셨을 테데, 그것은 사랑을 확인하고 싶고.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또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남.여가 사랑을 할 때도 사랑하는 걸 알지만 사랑하느냐고 묻고 또 사랑한다고 수 없이 말하는 것처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듣고 싶고 확인하고 싶기 때문인 것처럼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사랑의 고백을 받으시고 믿음을 또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길 원하십니다.
사랑합니다, 고백을 듣고 싶으시고 확인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평생에 한 번만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지만 그러나 그 말은 자주 할수록 좋은 것이니까요 사랑이란 못 믿어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자꾸만 듣고 싶고 많이 확인될수록 행복해지기에 하나님께로 향한 사랑의 고백을 자주 하므로 하나님께 행복을 드리고 나도 행복해 지면 좋겠죠....

비워짐의 행복

나는 전에는 내가 가르치던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별로 기분이 즐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내가 그곳을 소개하고 인도한 곳이라고 해도 그들이 거기서 배운 메시지와 사역자를 너무 좋아하면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조금 달라진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비로소 세례요한이 말했듯이 나는 쇠하여야 하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 하는 메시지의 의미를 조금 알것 같습니다. 지금은 누군가 어디에서 은혜를 입었다고 하면 너무나 행복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나는 전에 그렇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즐거운 듯이 보이려고 했지만
깊은 속에서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10여년의 사역을 한 후에야 나는 이것을 깨닫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비워져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분량의 사역을 한다는 것.. 그 비워진 만큼 행복하고 자유로와진다는 것..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미숙한 사역자들에 대하여 비난하지만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역을 하면서 나는 선배 사역자들과 다르다.. 그리고 다를 것이다..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를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좀 더 그들을 판단하고 좀 더 그들보다 교만했었다는 사실 뿐입니다.

자신의 깨달음과 신앙에 대하여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의이며 주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었기 때문입니다.

비워짐은 해방입니다.
낮아짐은 행복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의 뜻에만 엎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자가 되시도록 하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 속성 말입니다.
보통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때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자신의 틀린 생각으로 상대방을 정죄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정당한 상대방을 부당한 자신의 생각으로 정죄해 버리는 것인데 자신의 잘못으로 잘못 없는 사람을 잘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법률용어로는 무고죄가 성립되는 것이지요,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황…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몹시도 억울한 심정이 되어보셨습니까?
그때는 그저 눈을 들어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답답해 터질듯 한 가슴으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으시겠지만 차라리 침묵하시고 끝없는 간구로 심판하시고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만 앙모하십시오,
그러면 족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면,악한 자의 머리위에 숯불을 올려주면, 진심으로 축복하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혹 자신의 그릇된 생각으로 멀쩡한 생사람을 잡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늦기 전에 돌이키십시오.
그의 피눈물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서둘러 보응하시고 속히 원수를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강하신 편 팔이 당신을 내려치시기 전에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체함도 없이 이루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정답입니다.

<예수님의 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