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2010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생명을 일깨우는 리더의 역할), 안셀름 그륀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1. 선한 말을 건넨다
사물을 다루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섬세함이라면 성 베네덕토는 인간관계에서 특히 겸손을 요구한다. 겸손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거나 환심을 사려는 태도가 아니다. 그 보다는 라틴어 ‘humilitas’로서 자신의 인간성과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토착화에  응답할 수 있는 용기다. 다른 사람을 이끄는 사람은 자신도 인간이며 땅에서 나왔고 전 적으로 현세적 욕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심연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사람들에게 군림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 지 않으며 남의 행동에 대해 시비를 따지지 않는다. 또한 자기 자신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할 것이다

말한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모욕적인 말은상 대방을 아프게 한다. 품위를 떨어뜨리는 말은 상대방에게 자기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한다. 이렇듯 말만으로 도 활력을 빼앗거나 해방시킬 수 있고 굴복시키거나 일어서게 만들 수 있고 용기를 잃어버리게 하거나 힘을 북돋 게 할 수 있고 상처를 주거나 치유할 수 있고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선한 말은 선한 것을 꿀어내고 우리로 하여금 선한 것을 그대로 믿도록 도외준다. 선한 말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선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잘 받아들일 뿐 아니라 긍정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그런 분위기는 일을 능률적으로 하도록 사람들을 이끈다. 다른 사람을 이끄는 사람은 특히 칭찬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칭찬은 그 사 람에 대해 좋게 말하는 것 그 사람에게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선한 것을 거론하는 사람은 그 사 람 안에서 선한 것을 꿀어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비판과 통제보다 선한 말 한마디로 동료들을 고무시킨다. 

선한 말은 건설적이며 따뜻한 관심과 상냥함을 선사한다. 선한 말은 동료를 격려할 뿐만 아니라 작업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회사를 탄탄하게 하고 기업의 토대가 된다. 선한 말은 따뜻한 관심과 그 사람을 향한 상냥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사람은 마음을 다해 일에 몰두하지만 거절당한 사람은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일마저 피하려 든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일에 몰두할 수 없다. 

2. 모든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개입함으로써 저항 세력이 생겨나게 해서는 안 된다. 팀장이 어느 분야에서나 가장 큰 힘을 행사하는 회사가 많다. 그런 사람은 모든 분야의 정보를 열심히 모으고 기회있을 때마다 경쟁자에 맞서서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를 내놓는다. 그는 어디에나 은밀히 관여한다. 이렇게 상관이 모든 일에 관여하고 끼어들면 효율적인작업을기대할수없다.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놓아둘 줄도 알아야 한다. 자기에 게 맡겨진 과제에 만족하고 그 과제를 잘 수행하는 것이 회사가 발전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 상관이 간섭하는 것은 일을 방해하고 능률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남의 잘못을 찾느라 자기 과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3. 정보를 전한다.
 상관은 동료들 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동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들어 줄시 간을내야한다. 상관은 동료들에게 경청과 존중, 경의와 예의, 존경을 표함으로써 그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동료의 양분을 착취하는 대신 자양분을 공급하는 경영 방식이 사람들을 성장시킬 수 있다. 이렇듯 친절한 태도와 행동은 오늘날 경영의 주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나쁜 행동과 말은 분위기를 망치고, 영혼을 병들게 한다. 예의바른 태도와 행동은 가장효과적인 해독제이자 영혼을 위로한다”고 시크리턴은 말한다.

사람들은 상관이 진지하게 대해주고,자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며, 품위를 존중해 주고 사정이 어떤지 마음 써주길바란다. 

4. 존중한다.
 관리자가 동료를 내려다보듯이 대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상관이 동료들 위에 군림하고 자신이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권위적이라는 인식을 동료들에게 심어주어서는 안된다. 동료를 내려다보듯이 대하지 않고 올려다보듯이 대함으로써 그들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만이 아니라 겸손이 요구된다.

오만한 사람은 콧대를 쳐들고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 상관한테서 굴욕적인 취급을 당해 자존심을 상하고 가치 절하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들은 분노로 어쩔 줄 몰라하고 활력을 빼앗긴다. 이러한 분노는 공동작업을 방해하고 필요 이상으로 직원들을 결속시켜 더 이상 통제할수없다.

동료를 내려다보듯이 대하는 태도는 기다리게 하는데서 잘드러난다. ‘약속시간을잘지키는것이 왕의 미덕’이 라는 격언처럼 왕은 부하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다. 오늘 날 책임자들 중에는 이런 덕목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는 부하 직원들을 가능한 한 오래 기다리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정치인들은 대부분 약속시간에 늦게 오는 것이 보통이다.

동료들을 기다리게 해놓고 심지어 비디오카메리를 통해 지켜보는 대단히 비열한 상관들도 있다. 대부분 회의실에서 사장을 기다릴 때 사람들은 긴장한다. 그런데 사장은 누가 말을 잘 듣고 누가 반항적인지 사장을 비판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진다. 또 동료들을 지치게 만들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쉽게 관철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비열한행동은누구에게도도움이 안된다.
상관이 동료들을무시하는 것은 곧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다. 동료들은 상관을 두려워할 뿐 존경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상관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낼 것이며 사소한 실수에도 상관의 자리는 위협받게 될 것이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은 동료의 활기를 빼앗는다. 부하 직원들은 존경하는 상관을 위해서는 불속에 뛰어들 수도 있지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상관이 위험에 처했다면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다. 

5. 화나게 하지 않는다.
화나게 하다’에 해당되는 라틴어는 ‘scandalizo’로 원래는 덫을 놓다’라는 뜻이다. 나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은 하루 종일 그 일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동료 직원들을 화나게 하고 자기 힘을 과시함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상관들이 많다. 동료나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상관은 그들에게 시간을 내는 것이 은총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어쩔 줄 모르는 분노나 체념, 상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갖게 한다.

이런 태도는 귀중한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니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내적 동기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계속 아래로 전해져 모든 팀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함으로써 자기들의 힘을 과시한다. 회의에 늦게 참석해 이목을 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태도 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린다.

선한 상관은 이러한 함정을 간파하고 그 함정을 피하며 정시에 회의를 시작한다. 기다리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조직이 상관에게 기다리게 하는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관의 이런 처사에 대해 동료 직원들은 저항할 수 가 없다. 따라서 동료들을 기다리게 함으로써 화나게 하고 어쩔 줄 모르는 분노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대단히 비열한짓이다. 

6. 영혼을 격려한다.
영혼을 이끈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 을 존중하고,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모습에 유의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다룰 때는 그가 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하느님이 원하는 대로살아가도록도와주어야한다. 진정한 경영은 인간의 영혼에 감동을 주고 활기차게 한다. 인간의 영혼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경영은 상상력과 일 할 의욕을 상실하게 하고 내면의 샘을 차단해 창의력을 저하시킨다. 영혼에 감동을 준다는 것은 창의력에 공간을 마련하고 시크리턴의 말처럼 ‘성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여 창의력으로 이끄는 상관은 실패했다고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유익한 경험으로 가치 평가되는 ‘성전’을 만들어야 한다" 

7. 생명을 준다.
성 베네덕토는 여기서 라틴어 ‘augmentatio’에 대해 말 하면서, 자신이 권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준다. 권위 Autoritat는 늘리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augere’에서 나왔다. 아빠스는 각 사람을 성장시키고 각 개인과 공동 체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한다. 

생명을 준다는것은 우리가 함께 성장할때 곧 한사람을밀어 주면서도 다른 모든 이들에게 유익할 때만 그 의미가 있다.

8.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는다.
책벌함에 있어서는 현명하게 할 것이며 너무 지나치게 하 지 말 것이니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바라보며 '부러진 갈대를 꺾 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악습을 기르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각 사람에게 유익한 방법에 따라 현명하게 사랑하는 태도로 악습을 근절시키라는 말이다. 그리고 두 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랑받기를 힘써야 한다.

부산떨거나 소심하지 말 것이며 과격하거나 고집하지도 말고 시기하지 말며 의심하지도 말 것이니, 그렇게 하 면 잠시도 안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령할 때는 신중하게 갚이 생각할 것이다

9.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랑에는 현명함이 뒤따라야 하고 책임자는 지나치게 질책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지 않게’라는 라틴어 격언처럼 책임자는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나 지나치면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도승들의 말에 따르면 과도한 것은 모두 악마한태서 온다고 했다. 지나치게 개선 하려는 사람은 사태를 악화시키고 심하게 질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심리학자 폴 와츠라 위크(인간 의사소통의 실질성을 연구함)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점점 더 그 문제 속에 빠져드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 점점 더 많은 성과, 더욱빠른 속도, 점점 더 많은 상품, 더욱 많은 매상을 요구한다면 총체적인 붕괴만 가져올 뿐이다. 

10. 의사여야 한다.
상관의 궁극적 책임은 동료들을 치유하는 데 있다. 치유란 상관이 동료들에게 삶의 의욕을 고취시킬 때 일어난다. 재미있는 일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이끄는 사람이 동료를 존중하고 동료의 상처를 진지하게 여기며 더 이상 파헤치지 않을때 치유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각 사람의 내면에 대해 묵상 하고, 그 사람이 생명을 회복하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숙고하는 데서 치유가 일어난다.

생명을 이끌어 내고 삶의 기쁨을 부추김으로써 이끄는 사람은 정확하게 진단하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동료를 치유할 수 있다. 훌륭한 경영이 만들어 내는 건전한 기업 분위기는 상처를 낫게 하는 약이 된다. 그러나 무시하고 모욕하면 상처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으며 암덩어리처럼 퍼져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상관은 동료들의 건강에 책임이 있다. 

11. 자신의 약점을 안다.
오늘날 수많은 경영자들이 동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장도 자기의 모든 것을 숨길 수는 없다. 요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 때문에 동료들은 실망하게 되고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다. 사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온갖 요구를 하고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하면서 정작 자신에겐 모든 것을 허용하고 어떤 도덕 원칙도 지키지 않는다면 동료들은 분노할 것이다. 가혹하게 다루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남에게 엄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외면하고 싶어한다.  

내가 나 자신의 약점(라틴어 ‘fragilitas’는 ‘허익함·변화무쌍’한 의미를 지님)을 안다면 실수한 동료를 더욱 부드럽게 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동료들에게 군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악하며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염세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이러한 한탄은 아무 도움이 안 되며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하는것이다. 

12. 진실과 대결한다.
오늘날 당면한 현실 문제에 관해 대회를 나누지 못하는 수도원 공동체나 회사가 많다. 그들은 현명하고 성의있게 말할 줄 모른다. 공격적이고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격적인 분위기에서는 사람들을 아프게 할 뿐 그 어떤 것도 기대할수 없기에 경영자는 공동체가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치유하며 정화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각 그룹을 역동적으로 이끌어어야 한다. 

13. 마음으로 생각한다.
명 한 사람은 자신을 뛰어넘어 바라볼 줄 안다. 오류나 잘못에만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고 잘못도 커다란 맥락 안에서 바라본다. 현실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 다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침착하게 결정한다. 성급하고 소란스런 가 운데 반응하지 않고 사려 갚고 침착하게 대응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할 때도 그 사람이 자기 입장을 설명하면 침착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준다. 곧장 판단하지 않고 사안 자체를 아무런 평가 없이 살펴본다. ‘현명한’이란 뜻을 지닌 독일어 ‘klug’은 원래 ‘섬세한, 민감한, 우아한, 교양있는, 정신적으로 세련된, 용기있는, 대담한이란 의미를 지녔다. 현명한 사람은 섬세한 감각을 지닌다. 아무 것도 그 섬세한 감각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섬세하지 못한 사람은 피상적인 것만 인식하고, 섬세한 사람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배경이나 분위기를 꿰뚫어 본다. 따라서 현명함은 사랑과 결부된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과 교류를 잘하려면 그 사람 안 에 있는 좋은 것을 보고 그 사람안에 좋은것이 있다고 믿으며 그 좋은 것을 표현해야 한다. 한 사람을 칭찬함으로써 그 사람 안에 있는 좋은 것을 일깨울 수 있다. 부정적인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녹을 지우려다 그릇이 앓아져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과 같다. 

14. 두려움을 몰아내고 사랑을 일으킨다.
사장들은 대부분 직원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두려움은 활력을 빼앗는다. 두려움이 지배하 는 분위기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리 없고,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이 이루어질 리 없다. 사람들은 오로지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이어주는게 아니라 분열시킨다. 비판받지 않고 잘 버티려고 애쓰기 때문에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렇게 되면 불신과 의심하는 분위기가 조성 된다.

적의를 품고 몰려다니는 분위기가 오늘날 수많은 회사에 만연되어 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 원인은 궁극적으로 책임자의 경영 방식에 있다고 하겠다. 동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두려움과 분열을 일으키고 서로 투쟁하게 한다. 이런 분위기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맞서는 것이다. 가장 약한 사람을 속죄양으로 삼는다. 그 속 죄양을 살육하자마자 사람들은 또다른 속죄양을 찾아 나선다.

이런 분위기는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한다. 누구나 다음 속죄양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두 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능하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순 응한다. 이런 분위기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데 80퍼센트의 에너지를 낭비하므로 효율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가운데 일할 수 있는 에너지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두려움이 활력을 빼앗고 사람들을 갈리놓는다면 사랑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일에 대한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만든다. 사랑과 존경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관은 인격적 으로 조회를 이루고 또 사람들한태서 사랑받으려고 전전 긍긍하지 않을때 비로소 사랑받게 될 것이다. 동료들에게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드러내는 상관은 그 사랑을 얻기 위해 부하 직원을 인정하거나 우대한다. 그러나 상관이 자유 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료들에게 다가갈 때 사랑을 얻게 된다. 사랑을 줄 때 사랑을 받게 된다. 대가를 지불하고 사랑을 얻는 사람은 헛되이 사랑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닌다. 서로 사랑하는 분위기라면 상관뿐만 아니라 동료를 위해서도 일하게된다.

사랑은 서로 통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사랑은 일에 대한 의욕을 일깨운다. 자기 일을 통해 존중받고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기꺼이 일하는 사람은 몸이 아파서 쉬는 일이 훨씬 적을 것이고 의욕에 넘치게 될 것이다. 공포를 조장하는 사장을 위해서는 기꺼이 일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서는 시간 외 근무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장을 위해서라면 시간에 개의치 않을 것이며 그런 곳이 라면 신명나게 일하고 싶어할 것이다. 

15. 중도를 실현한다.
소심해서 는안된다. 소심한사람은 불안을조성한다. 과격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도 안 되고 지 나치게 엄격하거나 정확해서도 안 되며 너무 빨리 해서도 안 된다. 지나치면 동료 형제들이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다. 자신들이 열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반대쪽 입장은 드러나 지 않게 억압되고 그때부터 주변에 부정적인 분위기가 형 성된다. 아빠스는 적당한 도를 실현해야 한다. 아빠스는 서로 다른 성향 · 감정 · 경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 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다른 쪽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사람 들을이끄는사람은자신의 내면에 있는모순을 알고균형을 유지해야한다. 

16. 시기하지 않는다.
 질투심이 많은 상관은 질투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에너 지를 몽땅 빼앗아 일에 대한 의욕을 꺾어버린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낀다. ‘질투’를 뜻 하는 독일어 'Eifersucht’는 ‘매운 쓴, 짧은’이란 의미와 연관이 있다.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주위에 노여움을 퍼뜨 린다. 노여움의 독성은 작업 분위기를 망치고 동료들을 병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은 질투심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야만 동료들을 인정하며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역량을 함께기뻐할 수 있다.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라틴어 'suspiciosus’는 ‘관점을 갖고 보다, 뭔가를  몰래 보다, 혐의를 두다’라는 뜻이 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의혹이나 의심이란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망상이란 안경을 통해 본다면 어디서나 허깨비를 보는 셈이다. 어디서나 자신에 대한 음모와 거부와 비판을 발견하며 풍차처럼 다가오는 병적인 망상에 맞서게 된다. 음모로 생각되는 것들을 견제하 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짓 싸움은 에너지를고갈시킨다. 

 이처럼 의심하거나 불안한 분위기에서는 좋은 것이 나올 리 없다. 직원들은 오히려 불신하게 된다. 상관이 자기 문제에 매달리느라 직원이나 현안을 제대로 살펴 객관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만한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다. 책임자는 스스로 과도한 부담을 갖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경영 과제는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책임자는 많은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불안을 핑계 삼는 책임자도 있다. 그들은 비판 받지 않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 직원들은 상관이 모두를 위해 헌신하지만 과도한 부담에 눌려 안정을 찾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런 책임자는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 그런 상관은 기껏해야 직원들의 동정심을 유발할 뿐 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새로운 것을 지시함으로써 직원 들에게 불안감을 전할 것이다. 그러나 직원들은 상관의 이러한 태도가 분명한 비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 때문 이라는 것을 금세 꿰뚫어본다. 그렇게 되면 모든 변화의 시도는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17. 분별과 절도가 있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결정도 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어떤 방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분별력에 따라, 곧 옳은것에 대한 내면의 직감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 온갖 정보를 만들어 내고 무수히 많은 논증을 고려한다고 해서 훌 륭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책임자가 자기 직관을 신뢰할 때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다.

자기 직관을 따르는 사람은 무엇이 옳은지 안다. 그런 사람은 그 결정이 옳은 이유를 정확히 규명할 수는 없다. 머리가아니라 온몸으로결정을내렸기 때문이다. 그런사람은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직감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분별력’이다. 

 ‘분별력’은 절도와 분별력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처럼 절도 없는 시대에 인간에게 알맞은 정도를 알 고있는 경영은 참으로유익하다. 알맞은정도를지켜야만 장기적인 면에서 바람직하고 효율적으로 일할수 있다. 경영자는 다른 사람의 기준을 자기에게 맞추어서는 안된다. 쉬지 않고 일만 하는 사장은 직원들도 자기처럼 해주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

경영이란 각 사람의 수준을 알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고 편안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그들의 수준을 알 수가 없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도 록 요구한다. 그들이 한계에 봉착하면 그것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사람 안에 있는 잠재력을 꿀어 내야한다.

오늘날에는 지나친 요구를 해올까봐 한계를 좁게 설정 하는 직원이 많다. 그들은 어디서나 많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자기 한계를 설정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내 수준을 한번은넘어야한다. 나의 한계를 모른다면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8.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 
강한 사람들은 자신이 열망하는 바를 찾아야 한다. 도전에 응하면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힘을 길러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 약한 사람들은 힘들다고 해서 물러나서는 안된다. 공동체를 강자와 약자로 나눈다면 그 공동체는 분열되고 만다. 내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할 때 그들은 약하게 되고 모두들 가장 약한 사람의 본을 따를 것이다.

책임자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요구를 동시에 따라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다. 강한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나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자와 약자가 서로 의존하는 것이다.

강한사람이 약한사람의 짐을 짊어지고 약한사람을 지지하며 자기 힘과 신뢰와 능력을 약한 사람에게 전해줄 때 강한 사람의 힘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약한 사람도 일에 대한 의욕을 갖고 자기가 할 수 있 는 만큼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강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하게 되고 장기적으로 볼 때 공동제의 축복이 된다

우리는 우리 안에 무엇이 강하고 또 무엇이 약한지를 분 별해야 한다. 그리고 양쪽과 화해해야 한다. 우리 안에서 강한 면만을 본다면 약한 면을 밀어내게 된다. 내면에서 분리시킨 것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 그러면 주위에 분열이 일어난다. 어디에나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분열을 일으 키는것이다.

이것을 경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강하고 또 누가 약한지, 누가 사장을 위해 일하고 누가 비판적 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경영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끈다는 것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르고 함께하는 것과 일에 대한 기쁨을 모두에게 전해주며 모든 사람이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회사가 능력있는 사람들만 남기고 약한 사람들을 내보 낸다면 처음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약해서는 안 된다는 불안이 회사 분위기를 지배하게 된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약점을 갖고 있다. 내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강해질 수 있다.

따라서 기대에 못 미치는 직원들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 경영 과제다.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기를 앓어버리게 해서는 안된다. 일을 함께하는 이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권리가 있다. 이런분위기에서 ‘약자들’은 자기의 장점을 살리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기업에 축복이 된다. 

기독교의 절대성 - 역사적 종교 (3) - 종교 다원주의를 비판함

이 글은 세상에 특별한 종교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면서, 모든 종교는 대등하고 대동소이 하다고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의 계속이다.

지난번 글에서, 나는등산의 비유를 이용하여,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확실하게 다르고, 특별한 종교라는 것을 설명 하였다. 오늘 이 글에서는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 라는 명제를 가지고, 기독교의 특이성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러면 역사적 종교란 무엇이냐 ? 다른 모든 종교들과는 달리, 기독교의 중심교리(신조) 들은 이 세상의 역사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에 관한 것이다. 그 역사적 사건에는 하나님이 친히(in person) 개입하시고 동참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33: 14-23, 34: 5-6) 그러므로, 다른 종교들의 경전과는 달리, 기독교의 신구약 성경은 역사 이야기로 차 있다. 이 차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종교들의 경전은 주로 명상과 철학적 이론으로 차 있다 .명상과 철학 이론은 결국 인간의 생각이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참여하신 사건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 것을 말하면, 구약성경에서는 <출애급>때의 사건들이며,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the Incarnation)과 십자가 사건이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과 형상, 그리고 인간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30년간 인간세상에서 살며 활동하신 것을 말한다.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으로 끝났다. 이 역사적 사건들과, 역사적 인물 그리스도가 기독교의 중심교리를 이룬다. 그래서 기독교는역사적 종교라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이 특성은 다른 종교들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종교들의 근본 사상 및 성격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 말은 세상의 타 종교들과 대표적 철학사상이, 한결같이 역사와 시간을 멸시하며, 무 시간적인(timeless), 영원한 세계만을 사모하고 추구하고 있는 사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이들 종교와 철학사상이 시간과 역사를 멸시하는 이유는, 시간의 세계인 현세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고, 썩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라고 가르친다.

그 종교들(예를 들면 불교와 힌두교)은 춘하추동의 4계절과 밤 낮이 반복 하듯이, 시간도 수레바퀴와 같이 반복하여 회전한다는 시간이해, 즉 회전적(주기적: cyclical) 시간이해를 갖고 있다. 이 종교들은 인간이 시간의 세계로 부터 벗어나는 것을 구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시간 이해는 시간의 성격의 일면 만을 보고있는 것이다. 시간 안에서는, 늙고, 죽고, 썩고 없어지는 현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안에서는, 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과 새로운 이념들 (예를 들면 인권, 자유평등, 사회정의, 인간존엄, 민주주의) 이 생기고, 새로운 문명과 종교, 정치적, 사회적 제도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선행과 사랑도 시간 안에서 하는 것이며, 인간의 고상한 인격도 시간 안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미래의 시간은,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인간이 거기서 그의 자유를 행사하고,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여, 가치있는 것들을 만들고 실현해 나가는열려있는 지평이기도 하다.

성경은, 시간이 무의미한 회전을 무한히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보지않고, 비유컨대 마치 활을 떠난 화살이 표적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날아 가듯이,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목표 (정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성경은직선적인시간 이해를 갖고 있다. 시간의 이런 성격 때문에, 시간의 세계인 인간역사 안에서 의미있는 새로운 역사적 사건들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도 시간과 역사의 세계인 인간 세상에 여러번 찾아 오셔서, 참여 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이 친히 참여하신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인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의 중심교리와 신조의 내용이 되고 있으므로,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 라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이 특성은 다른 모든 종교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대동소이 하고 특별한 종교는 없다는, 종교 다원주의는 거짓된 사상이라는 것이, 다시한번 확인되었다.

역사적 종교인 기독교를 다른 민족들 보다 먼저 일찍 받아들이고, 그 사상에 따라 시간과 역사의 세계를 중요시 한 서구 민족이, 약진을 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모든 분야에서 인류역사의 주역이 된 이유와 그 의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구문명에 접하기 이전의 다른 민족들의 후진성을 고려한다면, 기독교의 특이성과 우수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의 특이성과 우수성은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사실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실이 더 있다. 기독교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별하는 또 하나의 특성은 기독교의 선명한 인격 신관 이다. (God as a person)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역사안에 개입하신 하나님을 경험 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격적인 하나님 (a personal God) 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계시 (self-revelation)의 결과다. 여기서인격적 하나님이란, 인격적 존재인 인간 개인 또는 인간집단과 계약체결, 대화, 사랑,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 과 같은 관계를 맺고 유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인간의 경우, 친구와 친구의 관계, 부부간의 관계는 인격적 관계인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도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유지 할 수 있다. 이런 선명한 인격 신관도 기독교의 특성이다. 이 특성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별하는 세번째 특성이다. 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각 종교의 신관은 서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불교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신도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하나님이요, 야웨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야웨>는 그의 이름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니 이름이 있다. 하나님은 <야웨>라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시면서, 자기 소개를 하셨다. “야웨라, 야웨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사랑과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 ( 34: 5-6) 이 것도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인격신 만이 자신을 남에게 계시 하실 수 있다.

야웨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안에 6823번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또 자기가 유일의 참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셨다.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야웨가 아니냐.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나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사야 45: 21-22)

사람이 이 유일의 참 하나님에게 나아 가는데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것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나니라” (요한 14:6).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러 종교 가운데서 특별한 종교이면서, 또한절대적인종교다. < 다음 호에 계속 >

*** 신앙인이 싸워야 할 것 10가지 ***


1. 자아속에 감춰진 죄의 본능과 싸워라.(롬7:23 내적 갈등)


2. 세상적 유혹과 싸워라.(벧전 5:8 외적 갈등)


3. 게으름과 싸워라.(시간을 아끼라) 


4. 열등의식과 싸워라.(주님을 바라보라)

5. 자신이 생각 하는 불행과 싸워라.(환경의 어려움 극복)

6. 자신을 괴롭히는 병과 싸워라.(육신의 가시 극복)

7. 물질을 낭비하는 습관과 싸워라.(지혜로운 물질관리)

8. 편한하고자 하는 욕망과 싸워라.(딤후1:7)

9. 소극적인 성격과 싸워라.(호12:3,4 야곱과 같이...)

10. 사람에게 의지 하려는 마음과 싸워라.(시146:5 )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