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2/2011

당신안에 고귀한 하나님이 계시는가?

내 안에 문제가 많아 삶이 힘들다면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은 믿음을 성장시킨다.

기독교, 즉 하나님의 교회는 여러 세기 동안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왔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전했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을 선포했고, 하나님을 공경했고, 하나님을 높였고, 하나님을 증거했다. 성삼위(聖三位) 하나님을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 기독교에는 심각한 손실이 발생했다. 고상한(고귀한) 신관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현재 많은 교회들에서 전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너무나 저급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누(累)를 끼치며 기독교에 불명예를 안겨준다.

기독교는 위엄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위엄의 개념과 예배의 거룩한 기술을 잃어버렸다.
기독교는 또한 '내적(內的)인 것들'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이 '내적인 것들'이고, 우리가 얻은 모든 것이 '외적인 것들'이라면 사실상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교회의 영적 상태가 이토록 비극적으로 쇠퇴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엄위로우신 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A.W. 토저/ 갓 하나님 중에서....

당신에게 예수님은 주인님인가?, 하인인가?

예수님이 당신의 주인인가?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 인생의 모든 것을 징발할 수 있는 주인님으로 믿는가?
집도 징발하고, 재산도 징발하고, 자식도 징발하고, 당신 자신도 징발할 수 있는 주인님으로 믿는가?

당신에게 예수는 주인인가, 하인인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예수를 믿느냐 당신 자신을 믿느냐고 물어도 벌써 믿음의 지반이 내려앉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 믿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이 있다.
주인님이신 예수를 믿지 않으니까, 주인님이신 예수의 말을 따르지 않으니까. 번번이 실패하고 유혹에 지고 세상의 속삭임에 놀아나서 인생의 방향을 모르는 자리, 하나님의 진로의 자리에 빠지는 것이다.

십계명을 다 지켰고 십일조생황을 착실히 했고 매일 큐티 했고 특별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님으로 믿어야 함을 얻을 수 있다.

예수를 '주' 主,Lord로 믿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안 믿는다는 문제이다. 그동안 내 자아를 믿고 내 배경을 믿고 내 지식과 경험을 믿었고 세상의 사부들을 믿어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으리 말씀이 항상 결론인가?
예수님의 말씀이 자기 인생의 결론이 아니라면 당신은 왜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착각하는가? 자기 경험에 늘 '아멘'하고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늘 코너에 몰려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당신의 주인님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님으로 대접해 본 일도 없으면서 "주여!"라고 함부로 부르지 말라.

당신은 이미 노하우를 알고 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임재할 때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행동'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아야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능력은 지식과 실천력이 결합될 때 나온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능력이지 아는 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능력이 될 수 없다.

근대에 들어와서 중국은 서서히 서양에 역전당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왜 서양에 뒤쳐지게 되었을까?
19세기와 20세기에 서양문명은 동양권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1840년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중국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럼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이 왜 갑자기 종이호랑이로 전략해버렸을까?

중국은 앞선 문명과 다방면의 지식을 가지고도 그것을 백방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서양과 같이 멀러 뻗어나가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말씀대로 삽니다"라고 하면서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사실은 우상숭배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로 잘 믿는다면서 내 양심을 달래는 우상, 잘 믿는 척하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변화를 요구한다.
말씀을 듣는 자의 책임성을 강조하며 '실천하라'고 소리지른다.

진정한 믿음은 나의 변화를 추구하는 믿음이다.
나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행동하는 믿음이다.
믿음이란 마음속으로만 믿고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은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결국 내가 변화될 것이며
내 행동이 변화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불타는 생의 이념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욥8:6)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목표는 아무것이나 그럴 듯한 표어를 내걸어 놓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타는 생의 이념과 삶의 철학에서 비롯됩니다.

거지 바디매오는 평생에 한번이라도 좋으니 세상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비록 오늘은 길 가에 앉아 구걸을 하여도 장차 언젠가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길거리를 활보하리라고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기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에 들으니 나사렛 예수가 기적적인 능력을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거지 바디매오는 목표는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곁으로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군중들 입에서 "나사렛 예수"라는 이름이 들렸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허공에 대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고함쳤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허공을 울리는 소리 같았지만 바디매오에게는 초점과 목표가 있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대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잘 살아야 되고 가치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불타는 생의 이념을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이념과 목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그것을 극복하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의 목표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저금 통장을 갖고 살수 있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불타는 생의 이념이 없이는 아무도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최대의 이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로새서 3:1)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최대 이념은 그리스도를 찾고 섬기는 것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마가복음 10:51)

새로운 삶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1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의 새로운 모습의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죄의 포로가 되어 마귀에게 짓밟히며 병들고 저주와 죽음의 노예가 되어 비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도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새로 찍혀진 사진의 모습을 여러분의 마음 벽 위에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볼 때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린도후서 3:18)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대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찍어주신 새로운 나의 모습을 아침, 점심, 저녁 24시간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그 모습을 닮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롯을 떠나 보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보이는 땅'을 주겠다고 하셨지 '보이지 않은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병든 모습, 굶주린 모습, 사업에 실패한 모습, 절망한 모습, 낭패한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놓고 하루종일 그 사진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되면 도적질하고 죽이는 마귀의 영이 와서 병들게 하고 굶주리게 하며 사업에 실패하게 하고 낭패케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가 없고 마귀를 이겼으며 병에서 놓여남을 받았고 저주에서 속량되고 죽음에서 이겼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라고 하면서 그 사진만 바라보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이 바라본 대로 변화 시켜주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떠한 모습을 걸어놓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운명을 바꾸려면 먼저 새로운 모습을 마음의 창문 위에 걸어 놓아야 합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야고보서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