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2010

깨어짐의 과정 -마크 듀퐁

인간이란 십자가를 통한 깨어짐의 고통 없이는 사람 앞에서  항상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는 삶을 수밖엔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심령이 깨어진 고통을 경험하게 하신후 비로소 우리를 성숙케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욱 온전해 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를 수술하신다.  하나님은 마취제를 쓰시지 않고 수술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수술하실 우리에겐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수술을 통해 삶의 덩어리들이 제거된다.  그러나 우리가 수술을 받을 만약에 이때 아프다고 수술 도중에 수술실 밖으로 뛰쳐 나간다면 우리는 덩어리들을 몸에 달고 살아갈 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픈 수술과정을 우리는 깨어짐이라고 부른다.  깨어짐의 과정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이상이 산산조작 나고 야망과 자만감이  여지없이 부서지는 경험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한 심령이 되게 하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분노와 상처 그리고  교만과 욕망의 덩어리들을 제거하신다.

우리가운데는 자신의 건강과 지혜가 영원할 같은 착각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남보다 나음을 은근히 기뻐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적지 않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교만(pride)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이런 마음에 대해  예레미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17:9)

마음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길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짐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의 참된 모습을 있게 된다.  만일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를 거절하고 자신의 잘못된 눈으로만  자신을 과대 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픔을 겪게 된다.

1998 여름 어느날  나는 환상을 보았다. 나는 환상 가운데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서로 다가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아름다운 포장지로 조그만 크기의 선물 박스를 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포장 속에 귀한것이 들어 있다고 추측한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선물의 포장을 뜯었다.

포장속에는 손으로 만든 조그맣고 예쁜 컵이 들어 있었다. 값이 나가는 컵이었다. 그런데 컵에는 금이 있었기에 물을 담아 마시기에는 부적절하였다. 친구는 컵에 금이 것을 알아차렸다. 선물을 받은 친구는 자신에게 금이 컵을 선물하였을까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친구는 자신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물을 친구가 실망할까봐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그리곤 컵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금이 가서 물을 담을수 없는 컵을 어떻게 사용할 방법이 없어서 친구는 컵을 다시 박스에 넣어 다락방에 집어넣었다.

장면이 끝나자 다른 환상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컵을 가져다주었다.  주님은 조심스레 컵을 받아들고 사랑스런 컵을 바라보았다. 컵은 장면에서 것과 동일한 금이 컵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환상속에서 나에게  " 너는 컵이 나에게 소중한 컵인  아니?"  라고 물었다. 나는 " 모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환상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 컵이 깨어져 금이 컵이기 때문에, 안에 나의 영광을 담을수 있단다.

내가 나의 영광을 컵에 담으면 깨어진 사이로 나의 영광이 흘러나와 주위 사람들에게로 나의 영광이 흘러들어가게 할수 있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일단 자기중심적이 되면 가인이나 사울왕처럼 제일 좋은 것은 자기가 갖고  하나님에게는 그보다 못한것을 바치게된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심령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되면 하나님께 최고의 , 자기 자신을 바치게된다. 바로 " 자신 " 이라는 깨어진 컵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과 노력을 바칠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분의 위대한 계명을 지킬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쳐야만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상한 심령을 갖게된다는 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말은 우리가 점점 많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대신 하나님을 점점 많이 소유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또한 세례 요한이 외쳤던 소리 "그는 흥하여야하겠고 나는 망하여야 하겠다" 말을 매일 되새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상한 심령을 갖고 살아간다는 말은 " 나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는  삶을 살리라" 라는 결단을 매순간 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깨어짐의 상태는 하나님의 임재의 불로 점령당한 상태이다. 깨어짐의 상태는 또한 세상에선 결코 온전히 도달할수 없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보좌에 가고 싶어하는  하나님에 대한 향수병에 걸린 상태이다.   

<출처:마크 듀퐁/경험/사랑과진리교회>

가나안 종교 (성경: 바알신)

우리가 가나안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크게 보면 에집트의 북방 경계선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접경, 곧 유브라테스강에 이르는 지역을 모두 포함하여 말할 때에는 그 뜻이 넓고,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하였던 지역을 가리킬 때에는 좁은 뜻이 된다. 좁은 뜻으로 보는 가나안을 팔레스틴이라고도 한다. 이 글에서 말하는 가나안은 넓은 뜻으로 말하는 것이며, 현재의 팔레스틴과 레바논과 시리아 지방을 포함하는 지역을 가리킨다.

역사가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나안에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적 가운데서 가나안의 여리고성은 가장 오랜(서기전8000년 경) 주거지라고 한다. 또한 레바논산을 업고 아라비아 사막지대를 바라보는 다메섹 (다마스커스)은 기름지고 살기 좋아 에로부터 에덴동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한 걸은 더 나아가 가나안은 전 인류 문화의 한 요람이기도 하다. 가나안에서 유일신 신학이 나왔고 (이스라엘 종교) 인류 역사상 첫 알파벳 문자(페니키아의 알파벳)도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제외한 가나안의 긴 역사와 종교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그 특수한 현상중 하나이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팔레스틴 지방에는 새로운 역사시대가 동텄다. 그때부터 셈족 계통의 한 민족이 팔레스틴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역사가들은 그들을 가나안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들은 시리아의 빈 들판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살던 아모리(Amorites)인이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모리족의 한 계통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16:3). 그때부터 가나안에는 농업 위주의 원주민과 목축업을 위주로 하고 살던 아모리족 유목민이 함께 어울려 살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고대 가나안의 종교나 역사를 소개하는 문헌과 자료는 그리 흔하지 못하다. 주로 구약성경, 필로의 역사서, 루시아, 및 논누스가 남긴 글이 있을 뿐이다. 그러던중 1927년 이후 많은 가나안의 고대문헌 (서기 15세기 경에 기록됨)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가릿 (Ugarit), 또는 라샤므라(Rasshamra)에서 발견된 고고학문헌들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하여 고대 가나안의 종교를 이어 소개한다.

2.가나안 종교의 특성 (자연종교)
가나안의 지형과 생산성은 지역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팔레스틴의 북서부 지방에는 기름진 땅이 있고, 그 밖의 지방에서도 농사를 지을만한 기후의 여건이 갖추어져 있어 흔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불렀다. 이에따라 에로부터 가나안 지방에는 농업과 관계가 있는 종교가 성행하였다. 그리하여 가나안의 종교를 바알의 종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이나 바알신은 가나안 종교를 대표하기에 이르렀다. 바알신은 농민의 신이었으며, 풍요와 다산의 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곧 바알신은 농살르 지을 수 있게 하여 주어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마시며 즐겁게 살아갈 것들을 풍성하게 마련하여 주며, 자손의 번성과 가축의 증식을 보장하여 주는 신이라는 뜻이다. 사실상바알이라는 말에는주인, 상전, 남편, 통치자라는 뜻이 있다. 그의 조상은 바알신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한 팔을 치켜들고 내려 치려는 자세를 하고 서 있는 것을 보아 그 신은 싸움에도 능숙하여 자기의 문도들을 그들의 대적에게서 보호하는 일까지도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구약시대에 엘리야라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갈멜산에서 바알신의 추종자들과 맞서 싸운 일이 있었다. 바알신의 추종자들은 그 신에게 비를 내려 해묵은 가뭄을 물리쳐 주기를 바라며, 기우제를 바알신에게 드렸다. 그러나 바알신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의 예언자 엘리야가 그 하나님에게 기도하였더니 하늘에서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던 것이다. 결국 두 신의 대결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다.

가나안 종교의 또 다른 특성은 성적(Sex)활동을 강조하며 자극하는 데에 있다. 역사가 필로와 구약의 예언자 호세아의 글에 나타나 있는 내용을 보면 바알을 섬긴 가나안의 사회는 풍기가 매우 어지러웠다 한다. 가나안 종교의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같은 꼴이 되었으며,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윤리적 파탄 상태에 들어갔고,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과 그 교회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한다. 모두 그 신을 즐겁게 하며, 그 신이 주는 풍요와 다산의 혜택을 얻기 위하여 몸과 정조를 서슴없이 그 신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회에는 품행이 깨끗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이런 사태를 미리 내다보고 여호와 종교는 극단적으로 바알종교를 반대하며 적대시 하였다.

3.우가릿 문화
우가릿(Ugarit)은 지금의 시리아 나라 라타키아(Latakia) 지방에 있는 고고학적 지명이며, 라샤므라(Ras Shamra)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가릿 나라는 서기전 제2천년기 초엽(2000-1600 B.C)부터 서북부 가나안 지방의 해안도시로 찬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도시국가는 일천년 가까이 유지되었으나 그 나라의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시대는 그 역사의 마지막 2세기(1400-1180 B.C)에 관한 역사이며, 고고학자들이 수집한 점토판에 기록된 문헌은 이 시기에 작성된 것이다. 우가릿 문헌 중 신화와 종교에 관계가 있는 문헌이 알파벳 문자로 점토판에 기록되었다는 것과 우가릿 언어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쓴 히브리어와 아주 유사하다는 것은 흥미있는 사실이다. 우가릿 사회는 그가 갖고 있던 귀중한 종교적 전통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단 한 가지의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세게 역사상 최초로 30자로 구성된 알파벳 문자를 만들어 냈다. 서방 세게에서 그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리스, 로마, 및 구라파의 모든 나라가 지금까지도 쓰고 있는 알파벳 문자의 원조는 우가릿 알파벳 문자이다.

4.우가릿 신화
우가릿 고고학 문헌에 담겨 있는 가나안 신화로 미루어 보면 가나안의 종교는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가나안의 만신전(Pantheon)에는 33, 또는 34위의 신이 있었다. 서기전 14세기 경에 기록된 우가릿 신화는 그 시대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여러 신화를 바알신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우가릿 신화가 바알신을 노래하며 높이는 것을 보면 바알 중심의 신학을 정립하는 데에 그 글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게 된다. 우가릿 신화에 등장하는 주요한 신과 서로간의 관계 및 역할은 아래와 같다.

(1)(El) - 엘이라는 신은 우가릿 만신전의 으뜸가는 신이다. 그는 인격화된 신이며 그를힘있는 신, 황소, 신과 인간의 아버지, ()의 아버지, 거룩한 신, 자비로운 신, 가장 슬기로운 신등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나안의 이 신은 세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1)
그는 모든 신보다 높은 신이라는 뜻이 있다.
2)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엘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3)
그는 세상과 신, 및 인간을 창조한 신이며, 황소라는 별명이 있다. 황소는 남 성적 힘을 상징한다.

엘은 두 아내(아세라, 아낫), 또는 세 아내(아스다롯을 더함)를 거느렸다 한다. 엘과 아세라 사이에는 70위의 신이 태어난 것으로 언급된다. 그는 무서운 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 우라누스를 내쫓고 왕위를 빼앗았으며, 자기의 자식들의 목을 졸라 죽일 정도로 잔인한 성격을 갖은 신이었다.

그러한 괴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나안 신들의 부신(父神)으로 높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 신을 섬기는 사회의 부도덕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엘이 자신의 아버지를 폐위하였다는 구체적 뜻은 그의 지위만이 아니라 육체적 힘을거세, 또는 단종을 통하여 무력화하였음을 나타낸다. 전왕을 단종具하고 추방한 뒤 그의 짝이 되었던 여신을 차지함으로써 정치적 거사는 끝나게 된다.

(2)바알 - 바알은 엘의 70자녀 중 한 아들이다. 우가릿 시대에 그는 가나안 만신전의 주신이었고, 모든 신을 다스리는 실권자였다. 그를 다간(곡식)신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떼도 있었으나 그 말이 무슨 뜻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의 본명은 하닷(폭풍우의 신)이었다. 그밖에도 그에게는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 땅의 왕자, 힘쎈 신, 주권자등 여러 별명이 붙어 있었고, “알리얀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

바알은 풍요의 원천과 원리이며, 땅의 풍요를 가져다 주는 비와 폭풍우를 주관하는 신이다. 그의 목소리는 뇌성으로 나타난다. 그는 오른손에 망치를 치켜들고, 왼손에는 창살 모양을 하고 길게 생긴 번개를 들고 잔뜩 일어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 되었다. 바알의 서사시에서 얌(바다의 신)과 못(죽음의 신)은 바알의 대적이 되어 싸웠다. 광야의 신(메마름의 신)도 바알의 대적이었다.

바알신은 자연계에 내재하는 원리를 상징하는 신이기 때문에 자연계에 있는 변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 그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신도 세상의 한 부분이며, 한 원리이므로 그도 신화의 세계에서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나는 때가 있기 때문에 존경을 받는다. 이러한 뜻에서 바알은 신중의 신, 곧 신화의 세게에서 완자의 자리에 선다.

(3)
아낫(Anath) - 바알과 아낫은 한 쌍의 부부신이다. 이들은 변화무쌍한 자연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도권과 생존을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며 살아가는 패기에 찬 신들이다. 우가릿 신화의 주인공은 바알신이지만 아낫신도 그 남편의 최후의 승리(부활)를 위하여 몸을 바쳐 싸우는 사나운 여신이다.

아낫신은처녀,거룩한 여신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는 그러한 미명을 미끼로 하여 종교적 매춘 행위를 자행하는 부도덕한 여신이다. 그는 아름다움과 색욕과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다. 흔히 조산(彫像)에서 그는 벗은 몸으로 그려진다. 또 그는 사자의 등에 올라서서 한 손에는 백합화를, 다른 쪽 손에는 뱀을 움켜 쥐고 있어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4)
바알신의 싸움 - 자신의 아들인 바알에게 밀려 왕의 자리에 쫓겨난 엘신은 땅 속에 있는 깊은 물 속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은 얌신(해왕신, 또는 용왕신)의 세게였으므로 엘신은 얌신을 세워자기의 합법적 후계자로 삼으려는 게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바알신과 얌신은 패권 계승 문제를 놓고 결투를 벌이게 된다. 얌신은 바알신이 도사리고 있는 북쪽의 산에 나타나 모든 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바일신과 결전을 벌였다. 두 신은 서로 위협하며 항복할 것을 종용하여 보았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바알신은 바다의 신()에게 굴하지 않고 나가 싸워 이겼다. 바알신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눈부시게 싸웠다. 바알의 서사시는 그의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알은 바다의 왕자의 머리를 쳤다
법관의 강의 이마를 때렸다
바다의 신은 비틀거렸다
그는 땅에 쓰러졌다
그의 뼈마디가 모두 흔들렸다
그의 몸체가 거꾸러졌다
바알은 얌을 붙잡아 마셔 버렸다
그는 법관의 신을 끝장냈다

(5)죽음의 신과 싸움 - 바알은 바다의 신을 정복하였으나 아직 그의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신들의 모임에서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직은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지 못하였다. 바알은 첫 싸움을 이기고 나서 자축하는 잔치를 베풀기로 하였다. 그는 죽음의 신도 연회석에 초대하기로 하고, 두 사신을 죽음의 신이 있는 지하의 세게로 보냈다. 그러나 초대에 응하기는 커녕 죽음의 신은 바알을 비난하며 사형선고를 내렸다. 바알이 바다의 신을 죽인 행위를 그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바알을 벌하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바알은 죽음의 신이 내린 사형선고를 승복하려 들지 아니하였다. 결국 바알은 자기의 모든 세력을(구름, 바람, , 번개, 벼락 등)규합하여 이끌고 죽음의 신과 싸우기 위하여 명부(지하의 세계)로 쳐들어 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죽음의 신을 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바알은 죽음의 신의 타격을 맞고 땅에 쓰러져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우가릿 신화에서 바알은 7년동안 죽어 움직이지 못하며, 7년동안 땅에는 가뭄과 기근이 든다고 적혀 있다.

7
년동안 바알은 움직이지 않았다
8
년이나 구름을 타는 신은 죽어 있다
이슬도 소낙비도 끊어졌다
두 바다에는 물이 몰려오지 않는다
바다의 음성이 헤택을 주지 않는다
이 글은 바다의 신과 바알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연계가 메마르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바알의 죽음을 막아주지는 아니하였으나 바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엘신은 슬퍼하며 울부짖었다. 그는바알이 죽었다지, 이제 인간은 어찌되는 거냐? 다간의 아들이 죽었으니 중생은 어찌 되는거냐?”고 통곡하며 근심에 쌓였다.

(6)바알의 회생 - 바알의 죽음은 그의 미망인인 아낫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그 여신은 죽은 남편의 시신을 찾아 죽음의 세계로 내려갔다. 그는 태양신의 도움으로 바알의 시신을 끌고 죽음의 세계를 빠져 나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북쪽산에 남편의 시신을 묻고나서 그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나서 그 여신은 남편을 죽인 죽음의 신에게 복수할 것을 마음에 굳게 다졌다. 그녀는 아무말도 없이 죽음의 신을 찾아서 그에게 대들어 결단을 냈다. 본래 아낫은 전쟁에 능한 신이기 때문에 죽음의 신과 싸워 이길 수가 있었다. 우가릿 서사시는 아낫의 싸움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엘의 아들 죽음의 신을 붙잡았다
그녀는 칼로 그를 쪼갰다
그녀는 키로 그를 키질했다
그녀는 불로 그를 불살랐다
그녀는 맷돌로 그를 갈았다
그녀는 밭에 그를 흩어버렸다
(죽음의 신)의 죽음은 바알신의 회생(부활)의 전주곡과도 같다. 그가 죽은 뒤에 엘신은 바알이 부활할 것을 희망하였으며 그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 불가피한 사정이었다. 이것은 곧 풍년이 오는 것을 뜻한다. 바알의 부활과 때를 같이하여 하늘에서는 단비가 내렸으며 메말랐던 골짝에는 시냇물이 흘러내렸다. 초장도 대지도 푸른 옷을 입고 활기가 가득찼다.

5.맺는 말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가릿 신화에는 (1)가나안 지방에 가끔 있는 7년 대한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창세기 41장과 사무엘하24장 참조) (2)죽음의 보편성을 신화의 세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3)여신의 총애를 받아야 행복할 수 있다. (4)풍요와 다산의 신 바알의 궁극적 승리를 확실하다고 알고 그를 믿으며 섬겼다. (5)바알 신학을 통하여 낙관적 및 향락적 인생관을 얻을 수 있었다.

가나안에서는 천신()을 다른 신의 조상으로 믿었으나, 그는 각박한 신화의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였다. 그는 상징적 존재일 뿐 세상일과 아무런 관게가 없었다. 바다의 신은 메마른 지방이나 사막에서 사는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었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도 가나안 사람의 생활에 큰 헤택을 주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바알에게 굴복한다. 또한 가나안 사람들은 사납게 물결치는 바다에서 오는 불안감을 씻어버려야만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끝으로 죽음의 신은 누구나 두려워 하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생의 현실이다. 그러나 자연게는 스스로 회생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자연계는 구름, 바람, 우로 등 바알신이 주는 혜택으로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현실게에서 가장 귀중하며 존경을 받을 신은 바알이다.

그리스도의 유일성 - 영적 전쟁의 이해 데이빗윌커슨목사님 By David Wilkerson October 29, 2001

2001 9 20 목요일, 미국 대통령 부시는 상하 양원 합동 회의장에서 강력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테러에 대항한 전쟁을 미국이 수행하고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전쟁을 자유와 종교적 테러리즘사이에 일어나는 전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종교적 믿음을 세계에 강요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그것이 진정한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자리에 코란을 올려 놓으려 합니다. 그들은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한가지 종교, 이슬람 만을 강요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쟁은 이러한 갈등의 양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은 영원한 세력, 한편에는 사탄의 정사와 권세, 다른 편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거룩한 그리스도 사이에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전쟁은 영원 전부터 하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루시퍼 그와 동조해 반역을 일으킨 타락한 천사들 간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었습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용이 내어 쫓기니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요한 계시록 12:7-9).

우리가 사탄이라고 부르는 루시퍼는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반역한 하늘의 천사 삼분의 일과 함께 땅으로 내쫓겼습니다. 이제 전쟁은 땅에서 치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들과 더불어 비밀한, 지하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악한 인간의 몸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사탄은 자신이 사로잡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계적 조직체로 통합하여 자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창시하였습니다. 그는 마귀에 사로잡힌 자들을 선지자, 교사, 심지어 국가의 통치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내어 그의 불경한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회심자들을  얻을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으로는 어느 누구도 확신을 주거나 설득시킬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을까요? 사탄의 가르침에는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가르침은 평안이나 기쁨을 수도, 인간을 노예처럼 만드는 죄를 극복하는 능력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전쟁에 의존할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력과 두려움을 그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탄은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의 군대를 일으킨 것입니다. 마귀는 피에 굶주린 군대를 사용하여 세계를 양도 받았습니다. 마귀는 세계를 그의 악마적인 통치아래 두고, 이들 나라들로부터 수백만의 선교사들을 풀어 그의 가르침을 전파하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세계 단일 종교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사탄이 벌인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그리스도] 낳은 여자[교회] 핍박하는지라"(요한계시록 12:13). 핍박은 광야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탄은 애굽의 바로왕을 사로잡아 이스라엘을 고된 노동으로 파괴시키려 했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계보에서 탄생하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자" 탄생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을 말살시키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 독수리" 급히 내려와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자가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뱀의 낯을 피하여 때와 때를 양육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을 신령한 보호의 날개로 덮으셨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명기 32:9-12).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마치 성난 어미 독수리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건져내시고 모든 고난을 홍해에서,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견뎌내게 하셨습니다. 주님만이 그리스도를 생산할 "여자" 지키시고 보호하셨고 보호하실 계획이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을 미혹하기 위해 사탄이 유혹의 미끼를 어떻게 홍수처럼 퍼부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용이 이스라엘에 마귀의 권세를 퍼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요한계시록 12:15). 이러한 사탄의 임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을 숭배하도록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방의 나라들이 각종 음란함으로 이스라엘을 미혹하려고 하는 것을 때에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있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사탄의 물결은 열왕기를 거쳐 선지시대를 통틀어 이스라엘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다윗은 불경한 사람들과 깊은 물의 홍수에 휩쓸릴뻔한 경험을 설명한 있습니다. 동일하게 이사야도 "대적이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 기록하였습니다(이사야 59:19).

마침내, 구약의 끝부분에 이르면, 교회는 치명상을 입은 듯이 보입니다. 사탄의 물결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물리치기 직전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예배는 음란과 우상숭배가 섞여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심히 타락한 상태로 인해 하나님은 백성들을 향해 소리쳐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말라기 1:6).

제사장들을 향해 하나님은 우뢰와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말라기 1:6-7, 10; 2:8, 14, 17).

그러나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의 부분에서 우리는 줄기 빛을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말라기 4:2-3).

하나님은 고통 받는 교회를 위한 치료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의로운 해가 승리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옥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 하늘에서 외침이 있었습니다.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다. 두려워 말라. 지옥의 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사탄이 홍수처럼 밀려들 것을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향한 사탄의 홍수가 교회를 삼키기 전에 간섭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은 도움의 손길이 오고있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땅이 여자를 도와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요한계시록 12:16). 도움의 손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왔습니다. 땅이 입을 벌렸을 땅은 메시야를 붙잡고 있던 무덤을 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땅밑에 가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무덤을 여시고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부활은 사탄의 홍수 같은 능력을 삼켜버렸습니다. 십자가의 승리는 지옥의 모든 저항이 끝나게 것을 예정해 놓았던 것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12:17).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우리들, 바로 교회입니다. 마귀는 지금,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과 다시 전쟁 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탄의 공격은 세상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거룩한 자손,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는 남은 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 믿으며 선포하는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쟁에는 오직 하나의 쟁점과 명분이 있을 뿐입니다.

전쟁의 핵심 쟁점은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그리스도, 아버지의 독생자,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세상의 구세주이신가? 아니면, 단지 많은 선을 행하며 다닌 다른 선지자인가? 신성을 입으신 영광 중에 하나님과 함께 앉아계신 부활의 구세주가 아닌 평범한 사람인가?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이렇게 증거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유일하다고 했습니다. 하늘아래 다른 이름으로서는 영원한 구원을 얻을 없고,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신성을 갖추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어떤 존재와도 영광을 나누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이 선포했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에베소서 1:19-22). 바울은 예수님은 모든 위에 유일하신 머리시라고 덧붙였습니다. " 만물을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1:22, 23).

바울은 또한 모든 피조물이 어느 예수님을 유일한 주로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9-11).

모든 피조물의 혀가 무하마드도, 알라도, 힌두교의 만신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할 것입니다. 이것이 전쟁의 핵심 쟁점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단지 이름을 놓고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 예수님의 신성을 놓고 벌이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세계 교회 통합을 추진하는 타락한 교회들은 세계 단일 교회라고 하는 사탄이 꾸며놓은 품안으로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결국, ‘세계 통합 교회라는 것이 세계의 주요 종교들을 포함하게 것입니다. 카톨릭, 그리스 정교, 회교, 불교, 힌두교, 심지어 개신교까지 말입니다. 사탄은 종교간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 타협점을 마련하게 것입니다. 무엇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물론, 이들 집단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예수라는 이름은 다른 복음의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은 한때는 복음주의적이었던 종파들로 하여금 이런 미명 하에 다른 종교와 연합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적어도 가지는 동의할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사였고 선지자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존재하고 있는 좋은 인간적 성품을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분을 거룩한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우주의 창조자께서 이렇게까지 깎아 내려지는 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이상 그리스도로서, 신성을 가지신 ()로서 인정 받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통합을 주창하는 교회들은 예수님의 능력이나 부활과 같은 개념들은 어떤 것이든 없애버릴 것입니다. 대신에 그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사탄의 세계 단일 종교로 편입시킬 것입니다.

사실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은 전세계가 받아들일 있습니다. 사탄도 이것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사탄도 인간에 지나지 않는 예수님을 세상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것은 수용합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이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이루신 일들을 격찬했습니다만 예수님의 신성은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지금까지 쓰여진 가장 화려한 표현 일부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목사들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모든 안에 숨어있는 사탄의 "사랑 함정" 보이십니까?

마귀의 세계 통합 교회가 마침내 메시지를 지구상에 소리로 퍼뜨릴 때에, 없이 많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은 속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판단할 것입니다. "세계 교회 통합" 좋은 일거야. 여기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에 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는지 몰라. 이렇게 예수님에 관해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정통 그리스도 신앙을 지닌 이들이 틀림없어."

이보다 잘못된 생각은 없습니다. 사탄의 마귀적인 연합의 바로 진짜 주문은 "예수, 예수, 예수"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벌써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모든 단체들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없는 거지? 어쨌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쟎아. 회교도들도 예수님을 선한 인간이자 위대한 선생으로 생각하고. 시크교도들과 힌두교도들도 예수님을 존경해."

이쯤에서 잠깐 분명히 것이 있습니다. 9 11일의 비극으로 인해 일어난 국가적인 일치단결에 대해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믿음을 가진 미국인들이 일치단결한 국가로서 함께 일어설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이러한 연합이 우리의 슬픔이 가라앉은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종교간 통합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예견하고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예언가운데 있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태복음 7:22).

거의 모든 종교들은 축사(귀신을 내어쫓음)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들 많은 수는 축사, 가르침, 선행 등을 다른 예수의 이름으로 행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적하셨듯이, 이런 사람들은 심판 때에 주장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는 모든 일을 당신의 이름으로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23).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을 모르노라. 그리고 너희들도 나를 모르는 것이 분명하도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그럼에도 너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고 전했도다. 너희들은 나의 복음의 능력을 제거하려고 했느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예수는 틀린 예수니라.  이제, 내게서 떠나가라. 너희들은 나의 왕국에서 조금도 분깃이 없노라."

바울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지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고린도후서 11:3). 절에서진실함과 깨끗함(simplicity)’ 헬라어 단어는 단일성(singleness), 유일함, 독점적임(exclusiveness)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는 매우 단순하다. ,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는 신성을 가지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단일하고 유일한 진리에서 떠나 부패하게 될까 걱정스럽다." "뱀이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린도후서 11:3).

그리고 나서 바울은 그리고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목사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때에는 너희가 용납하는구나"(고린도후서11:4).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구나. 너희는 너희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아닌 다른 예수에 관해 듣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너희가 진정한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예수로 인해 타락하게 될까봐 두렵구나." 

"
너희는 모르고 있지만, 너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서부터 벗어나게 꾀임을 받고 있구나. 너희가 어떻게 사실을 용납하는지 나는 믿을 수가 없구나. 너희는 너희를 타락시키는 거짓 선생들을 잘도 참아주는구나. 너희는 심지어 그들이 말하는 것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시험해보지도 않는구나. 바로 지금, 너희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너희는 귀신의 복음 아래 앉아 다른 예수를 찬양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다른 예수, 귀신의 복음이 어디로 너희를 꾀어 가는 지도 모르고 있구나."

성도된 거룩한 남은 자들에게 엄청난 핍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탄의 교회 통합은 엄청난 핍박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리고 통합된 교회가 핍박하는 세력의 우두머리가 것입니다. 지금도 러시아 정교회는 러시아에 있는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의 문을 닫도록 러시아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적인 기독교를 그들 가운데서 완전히 몰아내기 원하고 있습니다.

여기 미국에서도 똑같은 종류의 압력이 시작된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저는 알려진 어느 복음전도자가 어느 TV 방송에서 가진 인터뷰의 녹화 테이프을 건네 받았습니다. 사회자가 목사님에게 노골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회교도들이 구원 받을 있을까요? 유대인들은 만일 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해도 구원 받을 있을까요?"

분명히, 복음전도자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베드로의 선언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이 구원을 얻을 있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자신이 멸시를 당하게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언론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전도자는 자신의 대답으로 인해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회교도들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그들 안에 예수님의 영이 있습니다. 회교도와 유대인들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들은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가 그렇게 말하다니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굳건한 입장을 취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을 기피하고, 거부할 것이며 여러분은 조롱거리의 표적이 것입니다. 반면에, 세상과 다른 종교로부터 칭찬을 받는 목사는 누구이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럽힌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저는 다가오는 시대엔 세상이 이러한 구분을 짓는 질문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믿나요? 예수 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질까요? 우리는 믿지않는 친구들, 동료들, 고용주가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것에 맞닥뜨리게 것입니다. 그들이 문자 그대로 그런 말로 묻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질문 자체는 어쨌든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굳건히 입장을 취하고, ", 나는 오직 예수님 분만이 구원할 있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종교적 편협함에 사로잡힌 광신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롱을 당할 것이며 사회적인 면에서 관용이 없고 온당치 못하다고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타임스 광장 교회는 반유대적, 반회교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대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 회교도, 동성애자, 무신론자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관해서는 모든 자들과 의견을 함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믿음의 기초로 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핍박이 가까운 장래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러 종교 통합 운동 단체들은 세계 교회 통합을 위한 신학적 성명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예수 논쟁"이라 부르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EU(유럽국가연합) 활동에 대한 어떤 비평도 금지하는 법안을 끌어내었습니다. , 아무도 유럽국가연합(EU) 대해 공공연히 이의를 제기할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분위기가 단일 세계 통합 교회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럽국가연합(EU) 법률은 발자국만 내딛으면 "종교적인 편협함과 광신" 금지하고 어떤 종교든 개종을 권하는 것을 불법으로 선언하는 것이 됩니다

생각으로는, 이것은 지구 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거룩한 씨앗을 대적하는 사탄의 광분의 일부입니다. 사탄은 어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건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분노하게 함으로써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점점 우리는 사탄이 군중들을 동원하여 예수님만이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자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대적토록 것임을 알게 것입니다. 돌연, 전에는 우리를 무시하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지목하여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오직 길이라고 믿나요? 착한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것이란 말인가요?"

진리를 사수하는 때문에 우리의 직업, 경력, 친구를 잃어버리게 지도 모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미 목숨이 걸린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여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네가 찬송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라고 물었을 ,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마가복음 14:61-62).

머지않아 전세계가 우리에게 다른 예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세주와 ()로서 믿는 우리의 신앙을 버리라고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희생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재림까지 모든 것을 부인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모든 것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말을 이미 결정해놓았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내놓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저는 사랑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의 확신을 표명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느냐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믿지 않을 권리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신에게라도 예배할 있고, 아니면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어떤 길을 따른다 해도 그것을 훼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또한 내가 믿는가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 외에는, 하늘 아래 우리가 구원 받을 있는 다른 이름이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야말로 사랑의 증거입니다."

전쟁의 승자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는 현재의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지를 있는 예언적 시각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다니엘이 꿈을 해석했습니다. "왕이여 왕이 신상을 보셨나이다크고 광채가 특심(特甚)하며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철이요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다니엘 2:31-33).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의 형상을 , 밝고 빛나며 심히 두려운 거대한 신상에 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몸체 전부는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나, 발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신상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진흙은 마지막 세상의 강대국이 얼마나 약한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니엘은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곳이 없었고 우상을 돌은 태산을 이루어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2:34-35).

다니엘이 여기서 설명한 돌은 다름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만세의 반석이십니다. 세상 모든 나라들을 멸망시키려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입니다. 일이 일어나는 것을 세상이 때에, 아무도 우리 주님의 신성을 부인할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주님 앞에 절하고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를 ()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그러한 지독한 악함을 세상에서 제거할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나라가 결국 모든 악한 세상 나라들을 부수고 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는 위에 계신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잠에서 깨어 하나님의 심판보좌 앞에 서게 그날이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로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영원토록, 아름다운 여인들을 데리고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과 향기로운 술을 먹고 마실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연 깨닫게 것입니다. 자신들이 완전히 파괴시키려고 애쓰던 바로 이름이 이제 그들의 심판자로서 그들 앞에 계신 것을 말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요지는 바로 구절로 요약될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예수님이 여기서 선언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독점적인 것입니다. 어떤 회교도도, 어떤 힌두교도도, 어떤 이방인도,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수가 없습니다.

제자에게 물으셨던 것과 똑같이,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가복음 8:27).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가복음 8:28).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시는 진짜 질문은 뒤에 나옵니다. "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8:29).

우리의 대답도 베드로의 대답과 똑같아야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마가 8:29).
대답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세상 앞에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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