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환상과 꿈과 같은 예언적인 계시들에서의 "색깔"의 의미와 뜻을 성서적으로 참고하고자 하는 글입니다. 특히 꿈을 꾸는 분들과 예언적인 환상들을 보시는 분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리라 믿습니다.
붉은색 - 예님의 보혈(히9:12-14), 속죄(레17:11), 은혜의 언약(히9:15), 전쟁(계 19:11), 그리스도의 희생(습1:7-8, 행 20:28), 소멸하는 불(히12:29), 예수님의 인성(히12:2), 찬양의 제사(히 13: 15), 새 언약(히 8:12-13), 죄(이사야 1:18), 구속함(창 38:28-29) 피의 언약(눅 22:20), 유월절/보호(출12:23), 용서/구출(수 2:18,21), 용서(히 9:22)
녹색 - 영원한 생명(요 1 5:12), 건강, 치유, 영생(계 22:2), 번영, 신선함, 활력이 넘침, 결실이 풍부한, 생기가 넘침, 새로운 삶(시 92:14), 회복 (시 23:2) 새로운 시작, 하나님의 거룩한 씨(창1: 11-12), 보호 (시 52:8), 소중한 부부관계 (아가 1:16), 찬양: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입는 흉배의 세번째 조각으로서 녹색의 에메랄드이며 이것은 야곱의 세번째 아들 레위를 묘사하는 것이었다.(출 28:15,17), 주님께 기쁨으로 축하와 감사의 찬양을 올림(역대상 16:4, 역대하 29:30), 대제사장으로서 아버지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모범으로서의 찬양과 기도(히 2:12), 찬양과 감사 (히 13:15, 시 50:23), 보좌:천국의 하나님의 보좌에는 무지개가 둘러 있는데 대체로 녹옥, 녹색 에메랄드 빛이다(계 4:3), 백성들의 찬양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보좌 (시 22:3)
파랑색 - 천국의 주님의 자리(엡 2:6), 천국, 하나님의 보좌(에스겔 1:26), 하나님 계시, 계시의 지식(출 24:10), 은혜(살후 2:16), 제사장직 (출 28:6), 권세, 극복자, 정복자(계시록 12:11), 진리(요 1:14), 하나님의 말씀(벧전 1:23), 여호와의 영광(엡 1:17), 영광의 소망(골 1:27), 소망, 희망 (딤전 1:1, 엡 1:18)
자주빛(진홍빛) - 메시야의 왕위(요 19:2), 왕권 (삿 8:26, 막 15:17,20), 믿는 자들의 왕위(벧전 2:9), 제사장직(출 39:1-3, 28:15), 빛나는 왕의 위엄(에 1:6), 왕(아가 7:5, 3:10), 장막(출 25:4, 26:1, 27:16), 부유와 아름다움(잠언 31:22), 중재자(딤전 2:5), 왕국의 권세와 능력과 주권(겔 27:7), 하나님의 약속(고후 1:20), 상속과 순종(창 49:15),
노란색 - 축제, 축하(시 46:4-5), 빛(사 2:5), 영광의 나타남(롬 8:18), 하나님의 영광(겔 1:4), 영광과 기쁨(살전 2:20), 즐거움(시 30:5), 한 환상, 기름부음 (고후 1:21, 요1 2:20, 시6813)
주황색(Orange) - 추수 (마 9:38), 열매가 풍성함(골 1:9-10), 성령(마 3:11-12), 하나님의 불(시 97:3), 능력/성령 세례(행 2:3), 제물(레 3:3), 깨끗함/ 정련함(말 3:2), 소멸의 불(히 12:29), 용사(계 19:11)
분홍색 - 육신의 심장(겔 11:19), 충성됨 (살전 5:24), 겸손 (벧전 5:5-6, 디도 3:2), 친밀함 (아가 1:2), 샤론의 장미(아가 2:1), 하나님의 자녀(막 10:15), 어린아이 같은 믿음(마 18:3-5)
황갈색(Amber) - 하나님의 영광(겔 8:2), 하나님의 기름부음/성별됨(출 29:7), 예수님(겔 1:27)
옥색(Aqua)/청록색(Turquoise) - 상쾌함(Refreshing)(행 3:19), 성화/씻김(고전 6:11), 생수(요 4:10,14, 7:37-39), 삶을 성령님이 흐르시도록 내어 드림(사 11:2), 새 예루살렘 (계 21:1), 소원의 항구(시 107:30)
진주색 - 보물/사례/문 (마 13:44-46), 천국의 문(계 21:21)
맑고 투명한 색 - 물 세례(마 3:11, 요 3:3, 5-7), 생명의 강(계 22:1)
흰색 - 신부의 예복(계 19:8), 순수함(계 3:18, 단 12:10), 구원(단 12:3), 빛 (마 17:2), 천사들 (요 20:12), 성도들(단 12:3), 먼 옛날(단 7:9), 모든 열방들로부터의 군중들(모든 색을 내포한 흰색, 계 7:9), 극복자(계 3:5, 요 15:5), 승리(요 20:12), 주님께 성결함(레 6:10, 출 39:27), 공의 (계 19:8), 충실/진실/정의(계 19:11), 하나님의 군대 (계 19:14), 성령/기사와 표적(롬 15:18-19), 영광(요 16:14), 의로움(사 61:10), 정결함(시 51:7), 복종함 (엡 5:21), 환희/기쁨(시 118:24), 평화(벧전 3:11), 승리(시45:4-5)
무지개 빛 - 극복자/정복자(계 21:7,27), 언약의 무지개(계 4:3), 귀한 돌/숨겨진 보배(계 21:11-19)
검은색 - 죽음/형벌/기근/고통(애 4:8), 사망/공포(계 6:5), 재난/비탄(렘 8:21), 죄(요 3:19-20), 회개(계 3:19), 흑암(유 13), 속박(시 107:14), 화해의 중재자(롬 5:10, 계6:5), 겸손/자아의 죽음(벧전 5:5), 빛이 없음/ 색이 없음
갈색 - 하나님의 자녀(사 11:1, 렘 23:5), 겸손, 복종, 회개(벧전 5:5, 마 11:21)
황갈색(Tan) - 빵, 친교, 예수님의 몸(눅 22:19)
검붉은색(Wine) - 새 포도주(눅 5:38), 즐거움( 시 118:15),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히 2:10), 새 언약의 잔(눅 22:20), 성령의 충만(엡 5:18), 사랑(아가 1:2) 풍성한 삶(요 10:10) 축복(욜 2:24, 겔 34:26), 기쁨(시 16:9), 풍성함/부유함(엡 3:20), 예언(욜 2:28), 항복(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성령께서 우리를 시험하시에 대한, 출 16:4)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주를 으깨야만 한다.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다 부서져야만 포도주가 될수있다. 영적으로 말하는 것은 육적인 찌꺼기 다로 남아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기도하다. (출 17:7, 마 4:5-7)
청동색, 놋색, 담황색, 구리빛, 적갈색 - 심판(단 2:39), 불시험(벧전 4:12-13), 예수님의 발(계 1:15), 세탁(출 30:17-21), 제물(출 27:1-3), 힘(욥 40:18), 죄값/용서(신 21:9) 장막의 보수(출 38:30)
은색 - 구속(신 18:15-16, 레 5:15, 27:3-6), 하나님의 말씀(히 4:12), 지혜(골 2:2-3, 잠언 2:1-5), 강한 믿음(빌 4:13), 순수함(시 66:10)
금색- 아름다움(아 5:11), 귀중함(벧전 1:7), 영원한 하나님(시 21:3), 신격(계 14:14), 영광(겔 21:23, 겔 1:4), 하나님의 영광의 빛(계 21:23), 위엄찬(유 8:26), 불의 심판(벧전 1:7), 자비(출 25:17), 명예(마 2:11), 제련된(출 37:2,6), 왕(시 21:3), 승리( 21:1-3), 추수(계 14:16), 하나님의 본성(계 3:18), 천사들은 금빛 허리띠를 차고 천국의 성소에서 사역한다(계 15:6), 성경적으로 금 목걸이는 큰 권세아래 있는 사람의 권위의 상징이다.(창 41:42, 겔 16:11), (단 5:29), 사도 요한은 천국에서 예수님의 머리에 금으로 만들어진 왕관이 씌워 있는것을 보았다. (계 14:14), 희랍어에서 왕관이 권세와 명예와 축복의 수단이며 승리의 화관으로 보는것에 익숙하다
번역:한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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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2009
색깔과 상징의 예언적 의미들
1.색깔과 상징의 의미들 -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색깔들과 의미들의 목록들을 찾는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충분한 목록들을 포함하기위해 노력했지만 성경에 관계되지 않은 것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검은색 - 고통, 노예, 암흑, 죽음, 사악, 죄, 슬픔. - 검은색은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들을 되돌려 보낼 수 있다. 이것의 기원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리고 암흑(검은) 하나님이 창조한 하늘과 땅의 밖에 있는 공허함(어두움)이다.
푸른색 - 하나님의 계시, 믿음, 충실함, 은총, 하늘, 하나님의 사랑, 진리
빛나는 색깔들 - 은혜, 주님의 기쁨
청동색 - 하나님의 심판
갈색 - 영적인 죽음
금색 - 모든 성도들, 영원하신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거룩한 삶, 청결, 정화
회색 - 슬픔
녹색 - 자비, 영원한 삶, 건강, 희망, 번영, 봄, 삼위 일체
자홍색 - 기쁨, 열정
오랜지색 - 가을 추수, 치료, 찬양
핑크색 - 새로운 삶
자주색 - 왕의 신분, 왕국의 권위, 주권, 귀족, 힘, 왕권
빨간색 - 속죄, 예수의 피, 용기, 사랑, 순교하는 성도들, 구속, 희생, 주권자의 힘
장미색(담홍색) - 메시아
주홍, 진홍색 - 그리스도 희생의 양, 용기
은색 - 속죄, 구속의 대가, 조화, 지혜, 하나님의 말씀
보랏빛 - 사랑, 열정, 회개, 슬픔, 고통
흰색 - 그리스도의 정의, 창조자 하나님, 거룩함, 순결, 깨끗함, 정직, 성도들
노란색 - 기쁨, 영적 계몽
2. 육체적 의미, 사물, 상징들 - 많은 사람들은 구조들, 장식들, 깃발 모양의 것, 그리고 어떤 것들의 상징들에 대해서 의문들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목록들이 그런 의문에 약간의 도움은 될 것이지만 이것은 그 의미의 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짠 직물(브로케이드) - 왕들이 입는 옷
흰색의 내의류(세마포: 리넨) - 예수님의 순수, 성도들의 정의들, 왕족과 사람들의 계급에 의한 옷
천등이 얇은 재료들 - 자유와 밝음, 주님의 존재속에서의 우리들의 즐거움
다이아몬드들 - 영속적인, 중요한 가치, 하나님의 성도들,
번쩍이는 돌들과 보석들 - 하나님의 빛, 영광의 하나님
진주들 - 영속적인, 중요한 가격
종(벨)들 - 거룩한 장소속에 있는 고위 성직자들의 운동, 찬양과 경배속에서의 승리
양초 - 예수님 - 인류에게 비취는 빛
십자가 - 예수님의 죽음 위로의 승리, 우리들의 믿음
왕관 - 영관의 왕관, 생명의 왕관, 정의의 왕관
예수님 - 모든 하늘과 땅 위의 왕, 승리
비둘기 - 성령
불꽃 - 성령
꽃들 - 하나님의 사람들의 “활짝 핀” 풍성한 열매들, 예수님 - 샤론의 장미와 골짜기의 백합화
열쇠들 - 영적인 영역 위에 있는 영적인 권위
어린양 - 예수님 - 우리의 죄들에 대한 희생
등불 - 지혜와 지식
다윗의 별 - 이스라엘의 백성들
태양 - 예수님 - 정의의 아들
장식술(Tassels) - 거룩함, 하나님의 명령들을 복종하도록 생각나게 하는 것
번역 : 한동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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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 고통, 노예, 암흑, 죽음, 사악, 죄, 슬픔. - 검은색은 하나님의 창조의 행위들을 되돌려 보낼 수 있다. 이것의 기원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리고 암흑(검은) 하나님이 창조한 하늘과 땅의 밖에 있는 공허함(어두움)이다.
푸른색 - 하나님의 계시, 믿음, 충실함, 은총, 하늘, 하나님의 사랑, 진리
빛나는 색깔들 - 은혜, 주님의 기쁨
청동색 - 하나님의 심판
갈색 - 영적인 죽음
금색 - 모든 성도들, 영원하신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거룩한 삶, 청결, 정화
회색 - 슬픔
녹색 - 자비, 영원한 삶, 건강, 희망, 번영, 봄, 삼위 일체
자홍색 - 기쁨, 열정
오랜지색 - 가을 추수, 치료, 찬양
핑크색 - 새로운 삶
자주색 - 왕의 신분, 왕국의 권위, 주권, 귀족, 힘, 왕권
빨간색 - 속죄, 예수의 피, 용기, 사랑, 순교하는 성도들, 구속, 희생, 주권자의 힘
장미색(담홍색) - 메시아
주홍, 진홍색 - 그리스도 희생의 양, 용기
은색 - 속죄, 구속의 대가, 조화, 지혜, 하나님의 말씀
보랏빛 - 사랑, 열정, 회개, 슬픔, 고통
흰색 - 그리스도의 정의, 창조자 하나님, 거룩함, 순결, 깨끗함, 정직, 성도들
노란색 - 기쁨, 영적 계몽
2. 육체적 의미, 사물, 상징들 - 많은 사람들은 구조들, 장식들, 깃발 모양의 것, 그리고 어떤 것들의 상징들에 대해서 의문들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목록들이 그런 의문에 약간의 도움은 될 것이지만 이것은 그 의미의 전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짠 직물(브로케이드) - 왕들이 입는 옷
흰색의 내의류(세마포: 리넨) - 예수님의 순수, 성도들의 정의들, 왕족과 사람들의 계급에 의한 옷
천등이 얇은 재료들 - 자유와 밝음, 주님의 존재속에서의 우리들의 즐거움
다이아몬드들 - 영속적인, 중요한 가치, 하나님의 성도들,
번쩍이는 돌들과 보석들 - 하나님의 빛, 영광의 하나님
진주들 - 영속적인, 중요한 가격
종(벨)들 - 거룩한 장소속에 있는 고위 성직자들의 운동, 찬양과 경배속에서의 승리
양초 - 예수님 - 인류에게 비취는 빛
십자가 - 예수님의 죽음 위로의 승리, 우리들의 믿음
왕관 - 영관의 왕관, 생명의 왕관, 정의의 왕관
예수님 - 모든 하늘과 땅 위의 왕, 승리
비둘기 - 성령
불꽃 - 성령
꽃들 - 하나님의 사람들의 “활짝 핀” 풍성한 열매들, 예수님 - 샤론의 장미와 골짜기의 백합화
열쇠들 - 영적인 영역 위에 있는 영적인 권위
어린양 - 예수님 - 우리의 죄들에 대한 희생
등불 - 지혜와 지식
다윗의 별 - 이스라엘의 백성들
태양 - 예수님 - 정의의 아들
장식술(Tassels) - 거룩함, 하나님의 명령들을 복종하도록 생각나게 하는 것
번역 : 한동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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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두 방면
지혜란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의 두 방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하여 많은 학문을 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지혜가 미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8-21절을 보면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셨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 것으로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9-21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만약 관원들이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혜를 말하되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닌 오직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데 이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골로새서 2장 2-3절을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이십니다. 비밀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모두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소경이라는 그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27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아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는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의 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비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감추어진 책입니다. 영의 안목으로 봐야 합니다. 육의 안목으로 그냥 봐서 안다고 하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의 눈을 떠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성경이 비밀인 것은 거의 모두가 두 방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공개된 부분과 은밀하게 감추인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시는 분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으로서의 또 하나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나타내는 방법은 계시입니다. 세례요한도 하나님의 어린 양을 알아볼 때에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로 알았었습니다(요1:32-33) 그러므로 아들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의 눈을 떠서 성경을 통해서 아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서 아는 방법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12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학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깨닫고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지식이나 모든 것들을 똥으로 여기고 다 내어버린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믿는 이들은 그와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사람의 말을 교훈삼는 자들은 유식한 자 같으나 사실은 미련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의 말이라도 그것은 초등학문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 한 권이면 족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에는 두 방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지혜로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요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썩어버린 이유는 사람의 지혜대로 행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의 눈을 떠서 성경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있고 계시를 통해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중심 삼지 말고 유명한 사람들의 말로 교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하라고 하신 누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랑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비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어야 합니다.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아멘!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고린도 전서 1장 19-21절을 보면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만약 관원들이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혜를 말하되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닌 오직 비밀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데 이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골로새서 2장 2-3절을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비밀이십니다. 비밀은 아무나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십니다. 그 비밀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모두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소경이라는 그 자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27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들을 아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는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들의 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비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기 위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감추어진 책입니다. 영의 안목으로 봐야 합니다. 육의 안목으로 그냥 봐서 안다고 하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의 눈을 떠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성경이 비밀인 것은 거의 모두가 두 방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공개된 부분과 은밀하게 감추인 부분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시는 분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으로서의 또 하나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나타내는 방법은 계시입니다. 세례요한도 하나님의 어린 양을 알아볼 때에 하나님의 환상과 계시로 알았었습니다(요1:32-33) 그러므로 아들을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의 눈을 떠서 성경을 통해서 아는 방법이 있고 또 하나는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서 아는 방법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7-12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학식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을 깨닫고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지식이나 모든 것들을 똥으로 여기고 다 내어버린 자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의 믿는 이들은 그와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사람의 말을 교훈삼는 자들은 유식한 자 같으나 사실은 미련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의 말이라도 그것은 초등학문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 한 권이면 족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에는 두 방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의 지혜로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이요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썩어버린 이유는 사람의 지혜대로 행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영의 눈을 떠서 성경을 통해 아는 방법이 있고 계시를 통해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을 중심 삼지 말고 유명한 사람들의 말로 교훈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의하라고 하신 누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랑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비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어야 합니다. 그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여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아멘!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영광의 뜻의 두 방면
이제 경배에 관한 지식들 중 세 번째 말씀으로서 영광에 대해서 알아 볼 것입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영광의 뜻도 두 방면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말하고 또 하나의 뜻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뜻하는 영광에 대한 성구들
[겔 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출 33:18-23]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아버지 하나님은 영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에 싸이신 분이시며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볼 때 죽음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실체의 형상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서의 본체는 실체나 실상을 말하고 형상이란 정확한 복사나 재 묘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정확하게 복사하듯 그대로 그러내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체가 계시고 본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계시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은 본체이시고 그 본체의 모습을 똑같이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를 뜻하는 영광에 대한 성구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영광의 뜻은 원래 무게를 뜻하는 말인데 그것은 곧 중요한 것이나 가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영광의 뜻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시되 찬송의 그릇으로 지으셨습니다(사43:21) 그러므로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시며 자신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영광이란 두 방면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말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볼 수 없는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아들이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영광의 뜻은 무게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서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 같은 귀한 것을 말합니다. 아멘!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뜻하는 영광에 대한 성구들
[겔 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 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출 33:18-23]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아버지 하나님은 영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에 싸이신 분이시며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볼 때 죽음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광이란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실체의 형상을 볼 수 있도록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서의 본체는 실체나 실상을 말하고 형상이란 정확한 복사나 재 묘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을 정확하게 복사하듯 그대로 그러내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본체가 계시고 본체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계시는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은 본체이시고 그 본체의 모습을 똑같이 그대로 드러내신 분이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를 뜻하는 영광에 대한 성구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영광의 뜻은 원래 무게를 뜻하는 말인데 그것은 곧 중요한 것이나 가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영광의 뜻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시되 찬송의 그릇으로 지으셨습니다(사43:21) 그러므로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시며 자신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영광이란 두 방면의 뜻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말합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볼 수 없는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아들이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영광의 뜻은 무게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로서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나 명예 같은 귀한 것을 말합니다. 아멘!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립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찬송의 뜻의 두 방면
이제 경배에 관한 지식들 중 두 번째 말씀으로서 찬송에 대해서 알아볼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두 방면으로 구성 되어 있듯이 찬송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높이며 존귀히 여기고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사무엘 하 6장을 읽어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삼하6:5) 다윗 왕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친 후에 법궤를 메어 올 때에 그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던 중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떨어질까 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습니다(삼하6:6-7)
그러므로 다윗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벳에돔 집에 석달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벳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보고 다윗이 다시 다윗성으로 법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다윗이 베로 만든 에봇을 입었음으로(삼하6:14-15) 속살이 드러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미갈이 창문 너머로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사무엘 하 6장 20절을 보면 미갈이 다윗 왕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다윗의 답변은 21-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로서 다윗 왕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에 다윗 왕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법궤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그 때에 베로 된 에봇을 입었기 때문에 하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본 미갈이 다윗 왕을 업신여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15장 1-2절을 보면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고 기록하고 있고 출애굽기 15장 20절 보면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송하거나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19-24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천년왕국 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할 것인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실 때에 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하여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찬송의 나라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로워하였으며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았으며 만족케 하지도 않았으며 죄 짐으로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며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 짐으로 인하여 수고하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괴로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삶이란 먼저 죄악을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찬송은 입술로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공경하며 만족을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와 악을 버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찬송하는 그릇으로 지어졌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은 괴로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때로는 다윗이나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든 체면 염치 버리고 춤을 추며 수금과 비파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을 뜻을 향한 합당한 마음을 품고 중심으로 하나님 인정하고 찬양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존중히 여기는 삶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는 입술의 찬송은 거짓된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찬송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찬송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찬양의 두 방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수금과 소고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죄를 끝내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향기로운 번제의 삶을 살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사무엘 하 6장을 읽어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삼하6:5) 다윗 왕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친 후에 법궤를 메어 올 때에 그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던 중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떨어질까 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습니다(삼하6:6-7)
그러므로 다윗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벳에돔 집에 석달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벳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보고 다윗이 다시 다윗성으로 법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다윗이 베로 만든 에봇을 입었음으로(삼하6:14-15) 속살이 드러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미갈이 창문 너머로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사무엘 하 6장 20절을 보면 미갈이 다윗 왕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다윗의 답변은 21-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로서 다윗 왕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에 다윗 왕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법궤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그 때에 베로 된 에봇을 입었기 때문에 하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본 미갈이 다윗 왕을 업신여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15장 1-2절을 보면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고 기록하고 있고 출애굽기 15장 20절 보면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송하거나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19-24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천년왕국 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할 것인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실 때에 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하여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찬송의 나라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로워하였으며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았으며 만족케 하지도 않았으며 죄 짐으로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며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 짐으로 인하여 수고하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괴로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삶이란 먼저 죄악을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찬송은 입술로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공경하며 만족을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와 악을 버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찬송하는 그릇으로 지어졌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은 괴로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때로는 다윗이나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든 체면 염치 버리고 춤을 추며 수금과 비파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을 뜻을 향한 합당한 마음을 품고 중심으로 하나님 인정하고 찬양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존중히 여기는 삶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는 입술의 찬송은 거짓된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찬송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찬송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찬양의 두 방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수금과 소고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죄를 끝내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향기로운 번제의 삶을 살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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