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경배에 관한 지식들 중 두 번째 말씀으로서 찬송에 대해서 알아볼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두 방면으로 구성 되어 있듯이 찬송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그 이름을 높이며 존귀히 여기고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사무엘 하 6장을 읽어 보면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삼하6:5) 다윗 왕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을 친 후에 법궤를 메어 올 때에 그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던 중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떨어질까 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었습니다(삼하6:6-7)
그러므로 다윗 왕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벳에돔 집에 석달을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벳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는 것을 보고 다윗이 다시 다윗성으로 법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다윗이 베로 만든 에봇을 입었음으로(삼하6:14-15) 속살이 드러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 미갈이 창문 너머로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사무엘 하 6장 20절을 보면 미갈이 다윗 왕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다윗의 답변은 21-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로서 다윗 왕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 성에 들어올 때에 다윗 왕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법궤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습니다. 그 때에 베로 된 에봇을 입었기 때문에 하얀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본 미갈이 다윗 왕을 업신여겼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미갈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또 출애굽기 15장 1-2절을 보면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고 기록하고 있고 출애굽기 15장 20절 보면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찬송하거나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사야 43장 19-24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로와하였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 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아니하고 네 죄 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천년왕국 때는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할 것인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으실 때에 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하여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찬송의 나라를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괴로워하였으며 하나님을 공경하지도 않았으며 만족케 하지도 않았으며 죄 짐으로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며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 짐으로 인하여 수고하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괴로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삶이란 먼저 죄악을 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찬송은 입술로 부르는 찬송이 아니라 찬송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공경하며 만족을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죄와 악을 버리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찬송하는 그릇으로 지어졌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 하나님은 괴로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때로는 다윗이나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모든 체면 염치 버리고 춤을 추며 수금과 비파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을 뜻을 향한 합당한 마음을 품고 중심으로 하나님 인정하고 찬양하며 그 이름을 부르고 존중히 여기는 삶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는 입술의 찬송은 거짓된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입술의 찬송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찬송하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찬양의 두 방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수금과 소고와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을 말하고 또 하나는 죄를 끝내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죄를 끝내고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향기로운 번제의 삶을 살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예수님따라가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