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2011

하나님께 귀를 기울인다는 게 무슨 뜻인가?

어느 날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여성 세미나에 참석하기 전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경건의 시간에 말씀을 적용하면서 나는 ‘운전 조심’이라고 썼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영적이거나 심오한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둔 채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향했기 때문에 과속의 유혹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는데도 약속 장소까지는 아직도 15분을 더 달려야 했다. 나는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계속해서 빨간 신호등에 걸리는 것 같았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초조해지고 조급해졌다. 1마일을 더 가자 긴 내리막길이 나타났고 나의 방어벽은 무너졌다.

두 개의 빨간 신호등을 그냥 지나쳤을 때 경찰이 나를 불러 세웠다. 60달러짜리 딱지를 끊었고 시간도 더 지체되었다. 그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미리 경고하셨는데도 그분께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눈물을 글썽이며 레스토랑 주차장에 들어가보니 친구들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날 나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에 관해 큰 교훈을 얻었다.  

듣기 위한 노력
 ‘귀를 기울인다’(listen to)는 게 무슨 뜻인가? 사전은 귀를 기울인다는 말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들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주의를 기울인다. 조언을 받아들인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일 때도 이와 같은 개념이 적용된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인다는 말에는 수용적이고 주목하며 듣고 조언을 받아들이거나 들은 바에 순종한다는 의미가 포함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정말 혼란스럽다. 뿐만 아니라 대개는 어느 쪽의 이야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삶은 방해물과 소음과 대화해야 할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할 때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비교적 방해로부터 자유롭고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는 것이다. 편안한 의자나 책상이 있고 전화기가 없는 방이 이런 곳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의 한적한 레스토랑도 이런 곳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곳이든 간에, 그곳은 주의를 집중해서 하나님께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귀를 기울이려 할 때 따르는 또 다른 문제는 ‘시간’이다. 상호적이며 성장하는 모든 관계에서 가장 큰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매일 아침 구체적인 양의 시간을 따로 떼어두며, 이 시간을 나와 하나님간의 개인적인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전날 밤 하루일정표에 이 시간을 집어넣고 다음날 이 시간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 계획하며, 그런 후에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듯이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을 따로 떼어두었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킨다. 이 시간에, 나는 나의 생각과 기도의 제목들을 자세히 기록한 후 시편을 네다섯 편 읽는다.

그리고는 내가 주님과 나누는 것에 대해 내게 위로나 확신을 주는 구절도 기록한다. 나는 그분이 내게 반응하고 계시며 내가 그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느낀다.  규칙적인 공부와 묵상과 암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친숙해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전부이다. 

귀를 기울인다는 말의 두 번째 정의, 곧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당신이 들은 것을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은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거나 우리의 생활방식이나 행동에 관해 구체적인 인도나 깨달음을 준다. 이때 우리는 들은 바에 반응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 각자가 그분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을 가까운 친구의 음성처럼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할 때, 당신은 그분이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당신은 당신의 일상적인 생각 속에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진리를 당신에게 일깨우고 가르치시는 그분의 성령을 분별하는 데까지 자랄 것이다(요 16:13). 당신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당신의 주의를 그분의 가르침으로 돌리려고 당신의 가족이나 목회자나 가까운 크리스천 친구들이나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정기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일 때, 신앙 서적이 힘이 되고 방향을 제시해줄 때가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데는 유순한 태도, 곧 주어진 조언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도 포함된다. 일단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면 기꺼이 순종하겠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셔야 하는 말씀을 듣기를 두려워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분의 음성을 피하려 할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또는 당신이 그분의 음성을 들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솔직하게 답해보라.  

나는 그분의 음성을 아는가? 예수님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른다고 말씀하셨다(요 10:2-5). 목자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귀를 기울이는 첫 단계이다.

나의 귀는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운가?
내 삶에서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죄가 있는가? 내가 용서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그분이 내게 말씀하실 때 나는 기꺼이 순종하겠는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기 위해, 매일 조용한 장소와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해둠으로써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게 하라. 그곳에 있을 때뿐 아니라 하루 종일 주의를 집중하라. 그리고 정기적으로 “태도를 점검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분이 정말로 귀를 기울이고 계시는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시편에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달라고 말하는 지속적인 간구와 요청을 담고 있다. 시편 전체에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의 응답이야말로 그분이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증거라고 거듭 말한다(시 10:17 ; 18:6 ; 23편 ; 86편).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응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야고보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약 1:5). 요한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들고 나와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모든 죄에서깨끗하게 하시리라고 말한다(요일 1:9).

신약성경의 수많은 책들이 우리에게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촉구한다(히 10:22).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께 구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는 중에 일어난 많은 기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는 이들이 반드시 특별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선택받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역할 모델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소수에게만 접근을 허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당신의 필요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뢸 뿐 아니라 그분의 말씀과 성령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는 대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라. 시간을 따로 떼어두고, 기꺼이 배우려는 유순한 태도를 취하며, 그분의 응답을 기다려라!

진정한 감사의 삶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3:18)



성경을 통해 우리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세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과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 구원받고 문제를 해결 받으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고 평탄하고 안락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너무 쉽게 감사를 잊어버립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복되고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 배불리 먹게 하실 때,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하여 내신 야웨를 잊지 말고 야웨를 경외하며 섬기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신6:10-1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은혜를 마음판에 새기고 늘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외하며,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둘째로,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할 일이 있으면 감사하다가도 고난이 닥치면 즉시로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고난이 하나님께서 주실 복의 전주곡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와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이 오면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고난을 이기고 복을 얻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며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 예비하신 우리의 영원한 기업인 하늘나라로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세상살이를 하면서도, 믿음으로 인하여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성도가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처소를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는 사망이나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며, 풍성하고 아름다운 낙원이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본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이 세상 나그네 길을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신8:7~10)

오늘의 Daily Bread는 (http://blog.naver.com/paul_jhkim)에서 다시 보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