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2011

예수님은 마음의 동기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왔을 때 떡을 얻어먹은 무리들도 배를 타고 와서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무리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뒤쫓아 다니는 것은 이기적인 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마음을 폭로하십니다. 그 이유는 유치한 신앙에서 돌이켜 복음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영광과 지위와 욕심만을 위하여 산다면 썩는 양식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떡에는 관심이 많지만 오천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눈뜬 소경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에 바로 서서 봉사해야 바른 것이고, 믿음에 바로 서서 예배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당신은 어떠한 동기에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릇된 동기에서 나온 열심은 주님을 슬프게 합니다. 내면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하는 은밀한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세상의 유명한 사람들의 행보를 보면 요란합니다. 움직이는 곳마다 방송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집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보를 지켜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늘 은밀한 중에 행하십니다. 오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은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전도사역을 마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실 때, 늘 제자들과 다니시거나 아니면 혼자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행하시며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피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행보는 성공과 물질에 몰려있지만, 예수님의 관심과 행보는 오로지 하나님의 때를 따라 행하시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밀한 중에 물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시면서 은밀한 중에 움직이시는 예수님입니다(10절).

예수님처럼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러내어 은밀한 중에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밀히 행하는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은밀하게 행하는 중에 깊이가 있고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은밀함을 잘 활용하는 자가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련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8)


사랑은 반드시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그 시련이 사랑의 불길을 끄려고 폭풍처럼 다가옵니다우리의 사랑이 온실 속의 꽃처럼 연약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이 시련 뒤에는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이 다가오고 우리는 그 가운데서 기뻐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가정에 사랑을 심어 주시고 떠나신 뒤에 시련이 다가와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두 동생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나사로는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그들은 인편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급히 오시라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실 날만 학수고대 하였습니다그러나 오셔야 할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이제까지 믿고 의지하였던 오라버니 나사로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그 가정에 다시 절망이 다가왔습니다회의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소식을 받으시고도 우리를 이렇게 버려둘 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오라버니를 장사지낸 두 자매에게는 삶의 목표가 의미가 없는 절망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후에 예수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두 자매는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화를 통하여 사랑은 과거나 미래나 아니고 바로 현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25,26)

그리고 무덤으로 가셔서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사랑하시며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드시는 현재의 예수님이십니다마르다와 마리아는 이 시련을 통하여 바로 이 진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며 변치 않으십니다

비록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칠흑같이 어두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구름 위의 햇빛처럼 우리를 지키고 계십니다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불신앙을 버리고 현재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도록 하는 훈련이며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4:12,13)

‘두가지 고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태어났고 고난 속에서 살다가 고난 속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받아야 할 고난과 받지 않아야 될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지 않아야 할 고난 중의 첫째는 죄악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키고 자기 자신을 분열시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이 죄로 인하여 고난받은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죄값을 청산하셨습니다.

둘째는 병으로 오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질병으로 고난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오셔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병자를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유없이 가난하게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운 우주, 땅 위의 오곡백과를 다 가지신 부요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부요하게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적이 결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이유도 없이 실패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쁘게 받아야 할 고난도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축복을 끼치기 위해, 남에게 위대한 구속의 은총을 전하기 위해, 내가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있을 때 받는 고난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분으로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 고난으로 열 두 제자가 순교했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은 주의 복음을 위하여 필요한 고난이므로 하나님께서도 도와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죄와 질병과 가난과 실패로 인하여 고난을 받지 말되 주의 복음을 위하여는 감사함으로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베드로전서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