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시편 44편 26절)
가장 안전한 곳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 성경 공부를 금지시켰다.
만일 성경을 공부하다가 잡히면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아키바' 랍비는 계속 성경 공부를 시켰다.
사람들이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아키바 랍비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배고픈 여우가 강 옆을 걸으며 보니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어부들이 그물을 들고 자기들을 잡으러 다닌다고 말했다.
맛있는 생선요리를 기대하며 여우가 말했다.
“그러면 너희가 육지로 올라 올래? 내가 안전한 곳을 가르쳐줄게. 육지에는 어부들이 한 명도 없단다”
이말을 들은 물고기들이 말했다.
“이 어리석은 여우야, 너는 우리에게 이 물속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물고기에게는 위험하여도 물속이 좋은 것처럼 우리는 죽어도 성경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아키바' 랍비는 말했다. 고 한다.
6/28/2011
이기는 자에게는
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노라”(수24:15)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주님께서 싸워 이켜서 아버지 보좌에 앉은 것처럼 우리도 이기면 하나님 보좌에 앉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와 절망과 저주와 죽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이러한 것들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40주야를 금식하신 주님 앞에 마귀가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40주야를 금식하신 주님께서는 마귀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욕의 욕망을 이김으로 자신을 이기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서게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 내리라. 하나님께서 그 사자들을 보내어 너를 상치 않게 하시리라." 이말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조금도 상하지 않는 기적을 보이면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한마디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할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육의 모든 시험에서 자기를 극복하고 이기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으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여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굴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주님께서는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려는 우리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길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21,22)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주님께서 싸워 이켜서 아버지 보좌에 앉은 것처럼 우리도 이기면 하나님 보좌에 앉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와 절망과 저주와 죽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싸워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가 새삼스럽게 이러한 것들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요단강에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40주야를 금식하신 주님 앞에 마귀가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40주야를 금식하신 주님께서는 마귀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식욕의 욕망을 이김으로 자신을 이기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서게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 내리라. 하나님께서 그 사자들을 보내어 너를 상치 않게 하시리라." 이말은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조금도 상하지 않는 기적을 보이면 사람들이 그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한마디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이번에는 예수님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고 할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육의 모든 시험에서 자기를 극복하고 이기셨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으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여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굴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주님께서는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려는 우리 자신을 이겨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길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 보좌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3:21,22)
풍성한 은혜와 꾸짖는 사랑
풍성한 은혜와 꾸짖는 사랑. 베드로가 적의 귀를 잘랐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를 바로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적을 고쳐주십니다. 심지어 그가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고쳐주셨습니다. 게다가 이 '말고'라는 대제사장의 종이 예수님께 삼가를 표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칼을 집어 넣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의 행동에 동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꾸짖으십니다. "너희도 나와 성전에 함께 있었으니 내가 이렇게 위험한 범죄자가 아닌 것은 너희도 충분히 알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들의 외식을 드러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절대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에는 겨로가가 있고 심판 날에 모두 심판 받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칼을 집어 넣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자비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들의 행동에 동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꾸짖으십니다. "너희도 나와 성전에 함께 있었으니 내가 이렇게 위험한 범죄자가 아닌 것은 너희도 충분히 알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들의 외식을 드러내십니다.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절대로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에는 겨로가가 있고 심판 날에 모두 심판 받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의 시간이 올 때 어떻게 해야 될까?(눅22:47-53)
예수님께서는 군병들에게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이 오기 전에 제자들에게 기도로 무장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슬흠을 못 이겨 잠에 빠져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믿음이 없는 상태로 어두움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제자들은 무언가 해보려고 검을 들고 나서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잊고, 육의 힘으로 적을 이겨보려고 적의 귀를 자릅니다. 겉모습은 신실해 보였지만, 사실은 신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신실하게 행동하지 말고, 우리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란 가운데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환난이 왔을 때,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적이 왔을 때 정신없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테스트를 통과할 때 항상 예수님을 향한 초점을 놓치지 말고, 깨어서 믿음으로 뚫고 가야 합니다.
그 결과, 이들은 믿음이 없는 상태로 어두움의 시간을 맞이합니다. 제자들은 무언가 해보려고 검을 들고 나서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모두 잊고, 육의 힘으로 적을 이겨보려고 적의 귀를 자릅니다. 겉모습은 신실해 보였지만, 사실은 신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겉모습으로만 신실하게 행동하지 말고, 우리의 본질 자체가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란 가운데 해야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환난이 왔을 때,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적이 왔을 때 정신없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테스트를 통과할 때 항상 예수님을 향한 초점을 놓치지 말고, 깨어서 믿음으로 뚫고 가야 합니다.
믿음과 행함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 그리하면 야훼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출23:25)
흔히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르기 마련이고 그 행위가 우리 눈에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장 1절 12절까지를 보면 우리는 그와 같은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날,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와 그 집을 꽉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를 친구로 둔 네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들었고 그들은 "이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자. 그러면 중풍병이 고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풍병이 틀림없이 고침 받을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반석과도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들것에 병자를 싣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예수님 앞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묘안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지붕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남의 지붕을 부수어 구멍을 뚫는데 그것도 누운 침상이 내려갈 만한 크기이니 적어도 석자 혹시 여섯자 정도는 뚫어야 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항의와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환경들은 그들의 치료의 확신을 요동시키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18:20 )고 했는데 다섯 사람이 한 믿음으로 그 행위를 보였으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가 일어나서 곧 상을 가지고 걸어 나갔으며 이를 지켜본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은 행위를 통하여 실제로 나타나고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있거든 먼저 여러분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 1절 12절까지를 보면 우리는 그와 같은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날, 가버나움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와 그 집을 꽉 채우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를 친구로 둔 네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들었고 그들은 "이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자. 그러면 중풍병이 고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풍병이 틀림없이 고침 받을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은 반석과도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들것에 병자를 싣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예수님 앞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묘안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지붕을 뚫고 그 구멍을 통해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남의 지붕을 부수어 구멍을 뚫는데 그것도 누운 침상이 내려갈 만한 크기이니 적어도 석자 혹시 여섯자 정도는 뚫어야 했을 것입니다. 주인의 항의와 사람들의 비웃음과 비난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환경들은 그들의 치료의 확신을 요동시키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병든 친구를 예수님 앞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믿음은 행위를 통하여 실제로 나타나고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있거든 먼저 여러분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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