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2009

정체성의 위기 – “높아지려거든 낮아지라”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다는 이유 외에, 우리가 진실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겸손은 더 깊은 게시를 향한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 겸손한 사람들은 지혜와 계시를 받는다. 교만하고 오만하며, 스스로 지혜로운 체 하는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것들을 받는다. 예수님은 겸손한 자들이 영광스러운 일을 경험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25). 여기서 어린아이들이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나이와는 상관이 없고, 영적인 태도와 성숙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열린 마음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부어 주신다. 또한 하나님의 가장 커다란 비밀들을 계시해 주신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비범한 기름부음을 허락하시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드러내신다. 왜 이렇게 하실까?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것을 보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성경 속에 슈퍼스타들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성경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라. 모든 경우에 하나님은 평범하다.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두 가지이다첫째는 그들 삶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와 강력한 기름부음이다. 둘째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겸손하고 순종적인 태도이다.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다(childlike)’는 것을 주의하자. 이것은 유치한(childish)’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미성숙함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겸손하며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강력한 믿음의 표현들은 어린아이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나는 전 세계에 있는 어린아이들의 삶에 임하는 그리스도의 강력한 임재로 인해 계속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많은 아이들은 놀라운 기적과 표적과 이사를 나타내고 있다. 내가 가는 모든 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가지고, 우리 자신이 진보하는 것에 있어 그분이 우리보다 더 큰 열망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한 최고의 것들을 항상 가지고 계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고 계시다. 그것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신다. 게다가 그분의 생각은 우리를 향한 평안과 소망과 밝은 미래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발걸음과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돌보신다. 당신의 아픔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을 세심하게 돌보신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꿈을 돌보신다. 그 꿈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그 꿈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싶어하신다.

어느 날 하나님은 나에게 매우 고무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나의 백성들은 그들이 머리로 아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머리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과 손으로 옮겨 놓으신다. 우리는 말씀을 그저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1:22).

이제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려놓을시간이다. 성령님께서 당신의 삶의 전적인 통제권을 내어들릴 시간이 되었다. 내려놓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은 마귀가 당신을 속이기 위해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탁월하게 당신의 삶을 이끌어 가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요한의 권면을 들으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의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4:4). “그들이라는 말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거짓 선지자들을 뜻한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참된 신자이며 제자라면 성령님은 당신 안에 내주하시고, 당신이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풀어 놓아 주실 것이다. 그 삶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다니엘 11 32절은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고 말하고 있다. 마귀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이 마귀를 두렵게 한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때문에 마귀가 당신을 두려워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가? 마귀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이 마귀를 일대일로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당신은 항상 패배할 것이다. 야고보의 권고를 기억하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당신이 겸손하게 하나님께 복종하며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질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은 당신이 마귀를 성공적으로 내어 쫓을 수 있는 힘을 주신다.

여정 가운데 당신의 마음이 성령의 조명하심에 완전히 굴복되어, 당신의 시작이 완전하게 변화되도록 하라.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은 교리와 신학만으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교리와 신학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왜 믿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적인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삶은 철저히 실제적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행동하는 신학이며, 움직이는 교리이다. 그 삶은 행함이 있을 때에만 진실되다. 그것은 행함 있는 사람이다. 크리스천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매일의 삶을 통한 행함으로 함께 어우러져 주님의 추수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열쇠는 그리스도로 새롭게 된 영적인 마음과 생각을 갖는 것이다. 당신의 길을 계시적인 빛으로 비추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발에 등불이 되게 하고, 당신의 길에 빛이 되게 하라(119:105). 빛 가운데 걸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둠 가운데서 넘어져 있는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왜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헤매고 있는가? 시간이 많지 않다. 추수할 것이 많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새로운 일을 행하고 계시다. 더 이상 마귀의 거짓말과 세상의 쓸데없는 화려한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마라.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성령님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정체성의 위기를 벗어나라. 당신이 누구인지 받아들여라. 당신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이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으라. 당신은 지금 평범해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특별하게 사용하고 싶어 하시는 소중한 그릇이다!

<출처: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 바비 코너>

정체성의 위기 – “영적인 생각”


고린도전서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생각과 영적인 생각을 대조하고 있다. 육신적인 생각은, 죄오 인해 더렵혀지고, 영적인 것들에 대해 무디고 어두워져있다. 하지만 육신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매우 밝다. 지적으로 훌륭하지만, 영적인 실체에 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딤후3:7). 바울은 육신적인 마음으로는 성령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2:14). 영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영적인 생각이 있어야 한다.

모순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전히 육신적인 생각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도 고투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여전히 세상과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나는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영적인 생각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11:40).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이 말씀을 하기 직전, 마르다는 예수님의 명하신 대로 무덤 문을 열어 놓으면 악취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르다는 육신적인 관점으로 보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관점을 바꾸시고,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셨다.

육신적인 생각은 내가 보면 믿겠다라고 말한다. 영적인 생각은 내가 믿으면 보리라고 말한다. 바울은 우리의 마음이 영적으로 밝아지는 것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1:17-18).

오직 하나님의 빛 안에서만 빛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게시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걷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지성이 있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이 없이는 하나님에 관한 가장 단순한 개념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영적인 것에 대한 지식은 지적인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신적인 게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고백하는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6-17)라고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영적인 생각과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능력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이미 주어져 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된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13:16). 영적인 마음을 기경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푹 잠겨야 한다. 계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달라고 간구하라. 지적인 지식과 추구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을 주셨고, 그것을 사용하기는 기대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인간적이고 지적인 지혜를 성령보다 의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영적인 마음으로 채워진 사람에게 큰 은혜를 주시고 능력으로 기름을 부으신다.

<출처: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 바비 코너>

구원의 두 방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을 보는 눈을 열기 위한 준비로서 구원의 두 방면에 대해서 말 할 것입니다

믿을 때 이미 얻은 구원
에베소서 2 8절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믿는 자들이 이미 구원을 얻었답니다. 이것은 불의 형벌에서 구원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구약적으로 말하면 세상으로 비유되는 애굽에서 구원 얻어 세례로 비유되는 홍해를 건넌 후에 광야로 비유되는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교회 생활하는 있는 믿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유황 불 못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십 세 이상의 남자만 육십 만 명이었으나 두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 간 것처럼 교회생활을 한 자 중에서 천국에 들어 갈 자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가는 아주 소수의 무리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믿고 구원 얻은 자가 앞으로 이룰 구원
빌립보서 2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고 앞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은 변화를 말합니다. 열매 맺은 자나 변화 받은 자나 거룩하게 된 자나 이기는 자라고 하는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그 증거는 아래 성구를 읽어 보시면 압니다.

[ 21: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므로 구원의 두 방면이 있습니다. 신약의 믿는 이들도 이스라엘과 똑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믿는 이들의 위치는 애굽에서 나왔으며 광야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 같이 유황 불 못에는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완전하게 변화 되고 거룩하게 되지 않으면 천국에는 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갔던 바깥 어두운 곳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이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니 믿는 자들이 자기는 구원 받았다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함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은 조건부 적이었음 
출애굽기 19 5-6절을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계 열국 중에 하나님의 나라로 택함을 받았고 언약을 받았을지라도 조건부 적이었습니다. 내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가 되겠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지 못하며 제사장 나라가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지키지 못함으로 버림 받았음 
고린도 전서 10 1-1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이 언약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새 언약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언약은 이스라엘의 믿는 이들에게 했지만 믿는 우리에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했고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광야란 시험의 장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시험하고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한 자들이 남자의 수만 육십만 명쯤 되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가 광야에서 엎어져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 영접이 후 세례를 받고 교회생활을 합니다. 이 교회생활이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같습니다. 형제님들은 지금 시험 보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형제님들 학교 다닐 때에 시험 보다 말고 여행 다녔습니까? 아니면 시험 보다가 잠잤습니까? 아니면 시험 보다가 텔레비전이나 보고 놉니까? 지금의 여러분의 행동이 영원을 결정합니다.
 
똑 같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금의 믿는 이들과 똑 같습니다. 구약은 육체의 법이고 신약은 영의 법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저울추로 달아보시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저울추는 두 개 일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번제단의 요구는 넓고 낮지만 향단의 요구는 좁고 높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이 거의 모든 것이 두 방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원도 두 방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제단의 요구란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연약합니다. 비유로 말하면 여자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먹고 연단을 받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고 변화 받아 거룩하게 되는 것은 향단의 요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함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지옥도 두 방면이 있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과 유황 불 못이 있습니다. 안 믿는 자들은 유황 불 못에 가게 되고 믿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변화 받지 못하고 거룩하게 되지 못하면 바깥 어두운 곳에 가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으로 비유되는 애굽에서 구원 받아 세례로 비유되는 홍해를 건너 교회로 비유되는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시험을 받았지만 천국으로 비유되는 가나안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둘 외에 모두 광야에서 엎어져 죽었습니다. 그 광야가 지금의 교회입니다. 구원 받았다고요? 성경에는 이미 이룬 구원과 미래형 즉 앞으로 이룰 구원을 수없이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구원의 두 방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시대 말의 과도기 때에는 법이 바뀜
이제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때는 신실하여 자기 목숨만큼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다 유황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시대 말에 있을 두 가지 저주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는 문제와 666표를 받는 것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평화의 이름으로 올 것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기독교 즉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합하여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자가 선지자의 이름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믿는 자들 중의 우두머리 즉 대표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믿는 자라도 여기에 속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즉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으면 영원토록 불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해야 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을 때도 그랬듯이 과도기 때는 법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이것에 대비함이 없습니다. 그 실체를 아십니까? 그 표는 어떻게 새길 것 같습니까? 적그리스도의 실체는 누구이며 그 일은 어떻게 나타날 것 같습니까? 이 두 가지 법을 지키지 않으면 끝장입니다. 영원토록 불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을 떠야 합니다. 예언이란 때가 되면 세상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마지막 때가 되었다면 지금 눈을 들어 보십시오. 이미 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은 이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한 계시록을 통해서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들은 이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말을 해도 믿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 14: 9-12]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아버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되어지기 원합니다.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

제사장의 두 방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 눈을 뜨게하기 위한 준비로서 제사장의 두 방면에 대해서 말 할 것입니다.

현재 거룩하게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제사장이라 함
베드로 전서 2 9절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을 선택하신 이유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덕은 업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은 그러나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8절에서 걸려 넘어지는 불순종자들을 언급한 다음에 9절에서는 그와 정 반대되는 순종자들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접인 그러나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여기까지는 올바른 해석을 위한 바로잡음이었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하자면 여기에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선택에 기초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택하신 백성은 끝까지 견인할 것을 믿고 그 전제 하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아래 성경 구절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2 5절을 보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거룩한 제사장들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믿는 이들이 제사장들이 아직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의 두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아직 못 된 자들이 있고 이미 이룬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제들에게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는 베드로 형제는 현재 거룩한 제사장직을 수행하고 있고 요구 받는 형제들은 아직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그 다음에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장의 두 방면이 있습니다. 믿고 신앙생활을 한 후 열매를 맺은 또 다른 말로 변화되고 거룩하게 되어야 제사장으로 세워집니다. 구약에서도 나이 30세가 되어야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장성해야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5 16절을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형제가 자신의 복음 전파하는 것을 제사장 직무를 한다고 말하였고 이방인들을 구원시켜 순종케 하는 것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믿는 이들을 두 무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믿어 순종케 된 자들을 제물이라고 하였고 바울 자신이 하는 복음전파를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왕 같은 제사장이란 성전 된 성도들이 건축되고 거룩하게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일꾼 된 삶을 사는 자를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천년왕국(제사장 나라)에서 보상으로 주시는 왕 권
요한 계시록 20 4-6절을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현재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나중에 주님 재림 후에 보상으로 주시는 제사장 직분을 말합니다. 그들은 천년 동안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이제 다시 정리하자면 제물이란 죽임을 다하여 각을 떠서 번제단에 불에 태워 흠향할 향기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복음을 전파해서 수많은 믿는 자들이 생겨도 그 자아가 파쇄 되어 죽은 자가 되지 못하면 그는 제물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제물이란 살아 있는 상태로 번제 단에 올려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을 원합니다. 제물이란 자아가 파쇄 된 자를 말합니다. 이는 순교자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어떤 형제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다가 죽임을 당한 자만 순교자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엔 어떤 자가 육의 몸이 살아 있더라고 그의 자아가 파쇄 되어 죽은 자의 생활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죽은 자요 그런 자가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여 이런 제물을 바치는 자를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제사장에게 보상으로서 주님 재림 후에 왕국 통치권을 주실 것입니다(20:4-6)

그러므로 제사장의 두 방면이 있습니다. 지금 현재 믿는 이들 중에 거룩하게 되어 영 안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뿐 아니라 복음전파를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순종케 하는 자들을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자임을 알게 하소서이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

하나님의 나라의 두 방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평강 가운데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때가 가까웠고 마지막 때에 복을 주는 책인 요한 계시록을 풀어 온 세상에 알리라는 부탁을 받아 지금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지금은 성경을 보는 눈을 뜨게하기 위한 준비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두 방면에 대해서 말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나중에 나타 날 하나님의 나라
누가복음 19 11-27절을 보면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므나의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나중에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해하는 그들을 향하여 므나 비유를 베풀어 교훈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열 므나를 맡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에게 한 므나씩 동일하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어떤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종들은 믿는 자들입니다. 므나는 화폐를 말하나 구속을 상징합니다. 모세의 성막에서 사용 된 재료들을 보면 바깥 뜰에 해당되는 기명 기구들은 놋으로 만듭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또 바깥 뜰에 상관된 것을 제외한 받침이나 갈고리는 은으로 만듭니다. 은은 구속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그 이름에 답이 있습니다. 은 받침은 받쳐주는 것을 말하고 갈고리는 걸어 매어 붙잡아 주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받쳐주거나 붙잡아 주는 것을 상징하는 받침대나 갈고리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의 구속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 명의 종에게 열 므나를 주셨다는 것은 각각 한 종에게 똑같이 한 므나 씩을 주었다는 말인데 이것은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뜻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는 다릅니다. 달란트는 금입니다. 금은 거룩을 상징합니다. 그 달란트는 각각 재능을 기준으로 하여 주셨는데 재능이 많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주셨고 재능이 적은 자는 두 달란트나 한 달란트 즉 적게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달란트 비유는 재능을 기준으로 하여 각각 달란트를 달리 주셨고 므나 비유는 구속을 기준으로 하여 똑같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오실 때까지 장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우리는 모두 구속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남기지 못한 자는 버림을 받을 것이요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 므나 비유에서는 이스라엘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을 구할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으로서 나중에 재림하신 후에 모든 종들의 행위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공개적으로 나타 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우리 안에 은밀하게 현재 임한 하나님의 나라
요한복음 18 36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속한 정치에 관심을 두고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사단의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행위입니다.
 
누가복음 17 20-21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지금 현재 임재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나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에 소속 된 자들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모두 사단의 나라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나라는 하늘에 속한 나라요 지금 현재 주님을 사랑하여 그의 법을 지키는 자들 속에 은밀하게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나라를 말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붙어 있는 가지요열매를 맺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쭉정이는 이 비밀을 알지 못할뿐더러 인정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자기 속에서 법을 성취해 가시는 주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 방면은 주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 안에 은밀하게 오셔서 현재 그 사랑하시는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 삼으셨습니다.
 
또 한 방면으로는 예수님 다시 오실 때에 이 땅에 나타날 나라를 말합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이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11:15)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두 방면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타날 나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더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열매를 맺기 어렵습합니다. 주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출처:예수님따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