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은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거스려 말한다는 이유로 스데반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흥분하여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향해 스데반은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거스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임을 거침없이 선포합니다.
과거 애굽 시절, 바로 밑에서 힘든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 가운데 모세가 나게 하시고, 기적적인 섭리를 통해 바로의 공주에게 양육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삼았느냐?’며 밀치며 완악하게 거부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조상들이 모세를 거부하고 거역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모세가 예표했던 참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또 다시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어리석음과 죄악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그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막무가내로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마음 중심에 모셔 들여서 그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하는 일부터 지금 시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순종에서부터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조상들의 역사를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죄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바로의 압제 하에 고난 받고 있던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리석게도 구원자인 모세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미디안 땅에서 더욱 단련하시고, 준비시키셔서 때가 되었을 때 다시 보내셔서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이 신실하신 구원의 하나님,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자신들의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믿는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만 관심이 많고, 크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과 구원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열심히 배움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 그 배운 역사대로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열심을 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길만이 우리를 잘못된 편견과 고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나아가 거듭되는 영적인 침체로부터 우리를 건져내는 일이 될 것입니다.
9/04/2011
오직 성령의 인도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8 : 26~ 40
*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27절) : 구약에서 ‘스바’라 불렸고(왕상 10:1), 애굽 남방 나일강 상류지방의 넓은 지역으로 구스 족속(사 11:11) 후손의 나라. 간다게는 국왕의 칭호임.
* 내시(28절) : 일반적으로 거세된 자라는 의미보다 국가관리의 직위였음.
빌립을 통하여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에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이 사건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져가는 상징과 같은 사건입니다. 복음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파되어가고 있습니까?
오직 성령의 인도함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음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마리아를 뒤로 하고 광야로 내려가라는 성령님의 지시는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좀 할 만한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 집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광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수레를 타고 가던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고관을 만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다시 한 번 수레로 가까이 나아갈 것을 명하셨고, 이번에도 빌립은 순종하여 나아갑니다. 다른 민족, 다른 인종, 다른 신분, 다른 직업 등 차이점이 많았지만 성령님이 가라 하시니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하여 나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 빌립은 황량한 광야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읽고 있던 말씀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깨달은 말씀에 힘들더라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복음에 접근할 때 이루어집니다.
빌립의 전도 과정은 처음과 끝이 모두 상대방에게로 다가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먼저 광야로 내려갔고, 수레로 가까이 다가갔고, 상대방이 읽고 있던 그 책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하겠다 했을 때, 격식을 따지지 않고 그 현장에서 세례를 베풀어 그 믿음을 견고히 세워줍니다.
철저하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빌립을 철저히 낮추셔서 에디오피아 고관의 눈높이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이 여왕의 고관만이 아니라 훗날 에디오피아 온 나라에 전파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음 전파가 힘든 이유는 성령에 민감하지 못하고, 한 영혼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를 위해 그의 관점까지 우리가 철저히 낮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그리고 빌립처럼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고 헌신하며 섬기는 역사가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복음 역사가 놀라운 생명력을 갖고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출처:매일선교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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