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2010

당신은 기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겠는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이웃 사랑 하나님 사랑의 근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부활의 능력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노력을 지닌다. 구원, 치유, 축사, 사역 위한 능력. 십자가의 능력, 구속하시는 예수의 보혈 능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재현되는 위대한 기사와 표적이다.

데릭 프린스의 말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십자가를 이해하고 십자가에 초점을 맞출 , 정결한 계시와 능력이 나타난다 한다. “마태복음 1624-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목숨(원문대로라면, 제혼(soul)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목숨( ) 잃으면 찾으리라.”

여기에 하나님의 역설이 있다. 자신의 혼을 구원(보호)하고자 하면 잃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 선행되어야 가지 과정이 있다. 첫째,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구와 이기적인 자아에 대한 단호한 결의로, 잘라 말해야 한다. ‘안돼!’,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사형선고를 수락해야만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발적으로 내려야 결정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십자가를 부과하시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마귀의 영향력이 우리 속으로 파고들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에 박히지 않은 우리의 자아는 속임수를 쓰는 마귀의 아첨에 언제든지 미혹당할 위험이 있다. 사단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 주요 타겟으로 삼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 안에 잠입하기 위해 사단이 사용하는 주요 방편은 아첨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에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적용해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 20절을 통해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우리 사람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이것이 내게도 사실인가?
내가 정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가?
아니면 여전히 혼적인 자아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하나는 바로 십자가에 집중하는 태도이다.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 매사에 자신감 있어 하며, 교회 혹은 규모 사역을 일구기 원하는 사람들은 나는 목격해 왔다. 때때로 그들 중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 온전히 사로잡히지 않는 이상, 그들이 쌓는 것은 나무며 전초며 지푸라기일 뿐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이기적인 야망에 대해 죽을 각오,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각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능력을 사용할 각오가 포함된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또한 복음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각오를 의미한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위하여 능력을 사용하거나,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사역하고자 한다면, 교만이 당신을 파멸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하려 한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다. 능력으로 사역할 , 순간의 패배라는 고통을 견뎌낼 당신은 비로소 환난 속의 승리를 맛보게 것이다.”

사람들이 기적과 치유로부터 멀리 떠나고자 하는 이유 일부는 실패가 안겨주는 고통 때문이다. 친구의 치유를 위해 그토록 간절히 기도했건만, 호전될 기미도 없이 그렇게 운명해버릴 , 크리스천들은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슬픔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치유사역에 등을 돌리고, 치유될 것을 믿으며 담대히 기도했던 모습도 멀리 더나 보내버린다. 그러나 패배-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보는 , 호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도해야 하는 쓰라린 마음을 감내하는 -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 메는 과정의 일부이다. 그리스도 역시 모든 것을 감내하셨고 결국 승리하셨다.”

랜디 클락의 말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치유해 주신다 믿지만 치유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주님을 따르는 일에는 기꺼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도 포함된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 당신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 삶을 재편하고자 , 당신 눈에 띄는 가격표가 있을 것이니 그것은 실망감이다. 가격표가 당신을 주저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이 치유되지 않고 가정과 재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다가오는 실망감 말이다.”

만일 당신이 능력의 증가를 얻기 원하고, 이를 위해 준비하고자 한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삶에는 고통이 수반되고 끊임없는 겸손의 훈련 과정이 따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기도사역을 받는 모든 사람이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터치를 갈망하지만 원하는바,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

<초자연적 능력의 회전하는 그림자/줄리아 로렌/ 존슨/마하쉬 차브다/순전한나드>

당신의 삶에 하나님 임재의 빛이 넘쳐나는가?


우리가 하나님 사랑의 빛에 노출되면 될수록 , 천국의 분위기를 어둠의 왕국까지 확장시키는 데에는 적은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 충분히 받아 누리는가? 하나님과의 친밀함 사모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만 듣는가 아니면 그의 미소도 바라보는가? 하나님의 빛이 당신의 삶을 통하여 흘러나오는가? 하나님의 능력만큼이나 그의 임재 안에서는 우리가 경험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초자연적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가 당면한 도전은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이다. “ 많은 능력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대신 당신을 많이 알게 하옵소서!”라고 외쳐라. 이러한 기도는 영혼의 용적을 더욱 확장시켜줄 것이며, 영적 민감도를 증가시켜 줌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듣게 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대로 행할 있게 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넘치는 것이 초자연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당신 자신의 임재가 넘쳐난다면 그것은 혼적 능력의 표출일 뿐이다. 고작 번째 하늘, 마귀가 역사하는 영역을 두드리는 정도로 끝나버릴 능력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원하는가? 당신은 당신의 뜻대로 성령의 은사를 풀어낼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실 수도 없고 움직이려 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지, 당신의 조작대로, 당신의 술수대로 움직이는 것을 원하시는 아니다.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많이 내어드릴수록, 미적지근한 충성의 그림자 영역에 빠져들고 넘어지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많은 하나님 임재의 빛을 방출하게 것이다. 주님과의 깊은 관계 가운데 기름부음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이제 세상이 목도하게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더욱 견고한 믿음 안에서 성장해감에 따라,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초자연적 능력과 그들이 영위하는 주님과의 친밀함은, 상거가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친밀함과 능력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로 수렴된다는 -역자주).

성도들은 자신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세상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풀어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초자연적 능력의 실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치유의 은사, 예언과 계시적 통찰력의 은사, 기적 베푸는 은사로 무장한 실력자가 것이다.

<초자연적 능력의 회전하는 그림자/줄리아 로렌/ 존슨/마하쉬 차브다/순전한나드>

당신은 왜 더 많은 능력을 원하는가?

표적, 치유, 계시와 예언적 통찰력은 예수의 증거하는 놀라운 은사들이다. 이러한 은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사역자의 진실성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혹은 하나님이 총애하시는 사역, 축복하시는 사역임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표적과 기사는 당신의 입지를 견고케 하지 않으며 진리를 정당화하는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능력을 원하는가?

지금은 작고했지만, 사역 가운데 표적과 기사와 계시의 능력을 행했던 데릭 프린스는 그의 사역팀원들과의 대화 가운데 크리스천들이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가 사역에 몸담았던 수십 동안 그는 능력의 남용과 오용의 사례들을 목격해왔다. 그리고 가지 서로 다른 영의 영향력-성령의 기름부음과 마귀의 기름부음 -으로 역사하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여러 저서를 통해 데릭 프린스는 성경에 등장하는 사울 왕의 예와 윌리엄 브랜엄(William Branham) 치유하역을 비교하며, 가지 서로 다른 영에 의해 움직이는, 서로 다른 사람을 설명하였다. 프린슨의 경고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뿐만 아니라 지식적으로 도움이 된다.

만일 당신이 능력에 관하여 설교한다면, 오늘날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능력 받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필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로 나아올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처럼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나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던 사역자들이 마지막에 가서 문젯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를 여러 동안 많이 목격했다. 종종 그들의 사역과 삶의 끝은 오류 마감되었다.

능력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무언가이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능력을 향한 내면의 갈망이 인간이 갖고 있는 최고의 갈망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말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참조). 그리고 이어서 말하길 (전도) , 나는 성령께서 능력 가운데 임하시리라 확신한다.” 했다.

프린스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영광 안에 머무십시오. 스르로의 영광을 구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한다.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 그의 임재 안에 머무르려는 노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을 모방하는 마귀의 속임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있었다.

아래는 프린스의 말이다. “성경은 표적과 기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매우 무섭습니다. 성경은 모두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을 펴시고 9절부터 시작되는 구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9-12)

여기서 바울은 거짓 기사와 표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는 참된 표적과 자가 표적이 공존합니다. 표적은 진리를 증거합니다. 거짓 표적은 거짓을 증거합니다. 사단은 초자연적인 기사와 표적 모두를 펼쳐 보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은사주의자들은 초자연적인 것이면 무조건 하나님에게서 기인한 것인 줄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들의 태도를 지지해주는 말씀은 없습니다. 사단은 자신의 거짓말을 증거하기 위해 강력한 표적과 기사를 만들어낼 압니다. 사람들이 여기에 속는 이유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유혹으로 역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두려운 진술 하나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강한 유혹을 역사하게 하신다면, 당신은 미혹에 빠질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 가장 호된 하나라고 생각합니다그들은 저주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믿지 않았고 불의 가운데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진리가 입증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아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진리를 알고 적용하는 외에는 미혹으로부터 벗어날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초자연적 능력의 회전하는 그림자/줄리아 로렌/ 존슨/마하쉬 차브다/순전한나드>

한판 승부를 위해 준비할 수 있다

적진으로 잠입하여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풀어내는 사역으로 크리스천들을 훈련기키고 준비시키는 선지자들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젊은(다양한 나이의) 선지자 생도들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더그 에디슨, 스테이시 켐블, 잭슨 그리고 매트리샤 킹은 이러한 사역에 있어서 선두주자들이다(신비사술자들에게 손을 뻗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한다). 원수와 맞서 싸우기 위한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던 은사주의자, 오순절 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교화적으로 사역할 있는지, 현대판 바알 숭배자들과 맞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우고 있다.

잭슨은 장차 일어나게 한판승부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중요한 점들을 이야기 한다. 모든 선지자-모세로부터 다니엘에 이르기까지, 바울로부터 버가모 교회에 이르기까지- 어둠의 능력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사악한 영적 흐름이 평범하게 여겨질 , 대중매체는 마귀적인 요소로 가득찰 것이다. 주술은 재미있고 마음이 가는 화제로 부상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민첩하게 일어나야 한다.

수년간, 스스로 혹은 사역팀을 파송하여 적진에 진입했었다. 뉴에이지 박람회, Burning Man 축제, Mardi Grass(사육제), Haunted Happenings in Salem, 메사추세츠의 다양한 영화제, 언급하기 조차 힘에 벅찬 수많은 국내, 해외 행사들로 잠입했었다. 결과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과거 우리는 적들과 ‘OK 목장의 결투 벌였다. 그러나 지금 정면으로 결투에 나설 하나님의 백성은 거의 없다. 간략히 말하자면,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후방 지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포괄적으로 보면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은사를 받았다고 하나님의 방법-언제, 어디서, , 어떻게- 아는 것은 아니다. 어둠의 권세 아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과 대면했을 ,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기 위해선 아래의 다섯 가지 기본 지침을 따라야 한다.

1.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기 , 우리는 먼저 영적으로 정결해야 한다. 우리가 깨끗하지 못한 만큼, 마귀는 그만큼 우리의 허점을 파고들 것이다.

2.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절대적으로 확신해야 한다. 다른 신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심에 대해 의심하는 만큼, 마귀는 그만큼 우리 삶의 허점을 파고들 것이다.

3. 교전수칙은 우리가 정한다. 대적이 교전수칙을 정해서는 된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결코 원수로 하여금 경계선을 긋도록 허락하는 법이 없다.

4. 우리가 하나님의 길로 행할 , 하나님을 우리 대신 하늘과 땅을 움직이실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길 기대하라.

5.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을 죄인의 친구로 소문나게 했던 바로 사랑으로, 사랑은 불꽃을 일으키는 성냥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꽃을 향해 모여들 것이다.

우리가 대적에 대해 두려워하는 번째 이유는 오늘날 교회의 문화 때문이라고 있다. 교회는 크리스천들에게 뉴에이지 관련자들, 주술하는 사람들, 종교인들, 이를테면 불교신자나 힌두교도들을 멀리하십시오.”라고 가르쳐왔다. 결국 크리스천들은 그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더럽힘을 입거나 귀신들릴 거이라고 믿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교육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보다 그들 안에 있는 마귀가 존재라고 잠정적으로 가르치고,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것밖에 안된다.

성경은 반대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성령을 믿는가? 어둠의 세계가 빛의 세계와 충돌할 ,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하는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1.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소유한 능력의 권세를 알아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심지어 타락하게 존재마저도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입었다. 정의상, 피조물은 결코 조물주보다 없다.

2.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곧바로 사용할 있는 분이 바로 성령이심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신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분위기를 일구고 안에 거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 곁에 ,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것이다. 그들의 영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할 것이다.

4. 우리는 어둠 주관자들의 한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미 출애굽기에 나타난 자기 재앙을 통해 어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나타났다.

5. 우리를 통해 성령의 능력이 발현되는 만큼, 어둠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사용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쇠할 것이다.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 “회개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은 친절이다.” 밉살스럽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랑을 표현했을 , 특히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되어 사랑이 표현되었을 , 수백 명이 구원받는 일을 목격한 있다.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스바냐 11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장차 세상에 임할 어둠의 때를 말하고 있다. 영적 배교(背敎), 자연 재해, 기술로 인한 재해, 그리고 두려움의 급증. 어둠의 때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누가복음 1133-36절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빛과 임재를 세상에 풀어낼 , 어둠 가운데 빛이 증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 선지자들은 어둠의 때가 지금 우리에게 임했고 시대의 마지막을 달려가고 있는 가운데 위세가 점점 강력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그렇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임재를 운반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갈망하는 사람에게 예언의 말씀, 치유, 격려, 장래의 , 기적을 경험케 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믿음을 키우고 두려움을 감소시켜야 하는 역시 우리가 따라야 동일한 명령이다.

우리는 엘리야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다. 예후와 바알의 선지자들의 대면이 어
떻게 귀결되는지 알고 있다. '시대의 끝'으로 라벨 붙여진 이 시대의 이야기 역시 어떻게 끝
날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서문에서 그레이엄 쿡이 말했듯이, 우리는 승리의 고지에 서서
세상의 그림자들을 물리쳐낼 것이다.

사실 갈멜산의 한판승부는 시작되기 전에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엘리야는 승리는 얻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적과 싸움을 벌일 , 그는 이미 승리의 고지 위에 있었다. 그가 올라선 승리의 고지는 바로 하나님의 존전이다. 당시 백성들이 목격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남자의 심장으로부터 흘러나온 장면이었다. 남자(엘리야) 성령의 기름부음이 주님과 맺은 친밀함의 관계로부터 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패배는 불가능했다. 이것이 갈멜산 사건의 핵심이다.”

<초자연적 능력의 회전하는 그림자/줄리아 로렌/ 존슨/마하쉬 차브다/순전한나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