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하고 깨끗한 예언과 계시의 물줄기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속에 흐르고 있다. 뉴에이지 심령술사들은 종종 계시의 영적 영역을 가리켜 ‘영’, ‘거룩한 영’(소문자 holy spirit) 혹은 ‘영적 가이드’라고 말한다. 물론 이들이 사용하는 위의 개념들 사이엔 아무런 구분이 없지만 심령 술사들도 이와 같이 성령을 언급한다. 이러한 이유로 심령술사의 말을 듣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필히 기독교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크리스천 리더들 중, 사역 가운데 그리스도의 성품과 열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받은 계시와 능력의 근원을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
자, 누가 진정한 성령의 계시를 받았는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 성령을 가리켜 단지 하나의 ‘힘’ (또 다른 종류의 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둘째 하늘의 거짓 계시 영향력 아래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성령을 ‘인격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선지자가 보이는 능력의 근원이 그 자신(선지자)이 아니라, 모든 영들 위에 뛰어나신 주 하나님임을 안다.
루우벤 아처 토리(R. A. Torrey)는 비록 성령과 친밀한 사역자들이지만 그들 가운데 드러나는 미묘한 차이점을 분별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만일 성령이 하나의 힘이라면 우리는 그 힘을 소유하려 할 것이다. 만일 성령이 인격이라면 우리는 그가 우리를 소유해주시길 바랄 것이다. 만일 성령이 힘이라면 우리는 성령이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일해 주길 원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신성한(divine) 인격이라면 우리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하면서 더욱더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만일 성령이 힘이라면 우리는 성령을 소유했다는 사실에 자만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우월감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겸손히 그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인격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로 결정한 그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정한 선지자의 사역에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난다. 이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 검증된 사실이다. 성령을 ‘하나님’으로 알고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정한 능력을 받고 또 점점 더 많이 그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름과 같은 특징의 성격과 삶을 소유하게 된다. 사랑, 겸손, 절제, 기쁨, 온유, 순종, 통제, 욕구로부터의 자유. 1장에서 살펴보았던 리처드 포스터의 ‘참된 능력의 표식’과 동일하다.
‘거룩한 영’(소문자 holy spirit) 혹은 ‘힘의 도 다른 근원으로서의 영’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이 맺는 열매는 마귀와 신비사술로 점철된 능력의 표식을 나타낸다. 증오, 교만, 고비 풀린 능력 사용, 우울, 질투, 다른 이를 이해하거나 다른 이의 조언을 듣는 능력의 부재, 남을 통제하려는 열망.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왔음을 또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위로자로서, 모사로서 또 예수의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는 분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선사하시는 분으로서 우리 가운데 죄정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든다. 신비사술을 배후로 하고 그 능력을 통해 활동하는사람들 역시 자신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은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있어서 ‘행위 무능력자’이다.
진정한 계시와 능력 가운데 사역하는 선지자라면 성령께서 인격체임을 안다. 그리고 성령(Holy Spirit)을 가리켜 주의 성령(Spirit of the Lord), 지혜와 이해의 영(Spirit of Wisdom and Understanding), 모사와 능력의 영(Spirit of Counsel and Power), 지식의 영(Spirit of Knowledge), 주를 경외하는 영(Spirit of the Fear of the Lord)으로 이해할 것이다(사11:1-3).
성경은 성령을 가리켜 단지 ‘또 다른 형태의 영’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그보다 훨씬 자세하고 놀라운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성령의 여러 가지 이름, 속성, 능력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자.
† 천지창조의 때, 수면을 운행하신 하나님의 신9창1:2]
† 사울 왕으로 예언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신9삼상10:10
† 에스겔에게 환상을 주신 하나님의 신(겔11:5)
† 요셉과 다니엘에게 꿈과 환상의 해석 능력을 주신 영(창41:12-13, 단1:17)
† 예수님으로 하여금 귀신을 쫓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영9마12:38]
† 계시와 예언을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신(욜2:28)
†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슥4:6, 눅24:49, 행1:8, 살전1:4-5)
† 계시, 치유, 능력의 은사를 베푸시는 영(히2:4, 고전12:1-11)
† 길을 안내하시는 영(롬8:14)
† 쉼을 주시는 신(사63:14)
† 생명을 주시는 영(요6:63)
†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일으키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영(롬8:18)
† 자유를 주시는 주의 영(고후3:17)
† ‘거룩함’이신 하나님의 영(롬1:4)
† ‘말씀(the Word)을 살아나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
† 자신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고후3:1-3)
† 두려움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가정으로 우리를 입양시키시는 ‘양자의 영’(요15:26)
† 아버지로부터 나온 진리의 영(요15:26)
†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시는 예수의 영(갈4:6)
† 세례 받는 예수님에게 강림하신 아버지의 영, 예수님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인정(approval)과 그리고 권세(authority)를 나타내주시면서 사역을 위해 예수님께 능력을 부어주신 영(눅3:21-22)
† 하나님의 말씀을 ‘감동시키신’ (계시하여 주신) 영(벧후1:21)
† 예수가 ‘주’(主)이심을 나타내시고 위대한 계시를 보여주시는 영(고전12:3)
†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주시는 신(겔39:29)
† 위로자이신 영(요14:16)
이 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높은 곳으로부터의 능력을 부여받는다. 그들은 또한 진정한, 참된 예언의 은사를 받게 된다. 요엘 2장 28절을 보라. 아버지 하나님은 약속하시길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1장 4절엔 제자들을 향해 예루살렘에 머물 것을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수님의 약속에 따르면 제자들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약속하신 선물을 받게 된다–성령 세례.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은사)을 받고 그것으로 사역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성령의 권세와 기름부음 안에서 사역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전12장 참조)
‘계시’라는 초자연적 영역 소게 둥지를 튼 ‘회전하는 그림자’(어두운 회색 그림자)는 여러 교회 및 사역단체 가운데 성령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성령으로 가장한 사단이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고대-근대 철학을 건공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이름난 영국출신의 성경 교사이자,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기독교 사상가인 데릭 프린스(Derek Prince)는 크리스천들에게 성령과 사단의 차이점을 분별하고 또 진정한 하나님의 기름부음 가운데 사역하는 사람들을 확인하라고 강권하면서 성령을 가장한 사단의 역사 등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하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요한복음 16장 13-14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과 활동에 대해 어렴풋이 이야기하셨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성령님은 전달할만한 자기 자신의 메시지를 갖고 계시지 않다는 뜻이다. 이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그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만을 우리에게 보고해주실 뿐이다.”
“둘째, 성령의 목적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 에게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도 아니다. 성령님은 항상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모든 이의 주의를 예수님께 향하도록 인도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두 번째 중요한 시금석이다.”
“자 이제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획기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성령에게 초점 맞추고 또 성령을 영화롭게 하는 영은(그것이 어떤 영이든 상관없이) 성령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성품과 목적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당신의 눈이 열려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맺은 ‘관계’의 본질을 인식한다면 성령님께 절대로 부탁이나 명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일 성령께서 무언가를 해주시기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간구를 아버지께 혹은 아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성령 세례는 돈을 버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선물이 아니다. 크리스천, 치유자, 사역자 혹은 선지자들이 경영하는 사업과 사역을 돕는 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도 아니다. 이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성부와 성자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 그 계시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들은, 그것을 받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주되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열방으로 제자를 삼도록 힘을 북돋아주는 능력의 은사이다(행1:8).
성령의 은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이것 외의 다른 용도나 동기가 있다면, 해당 은사를 사용하는 선지자나 능력자는 그 스스로가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혹은 혼적인 계시의 근원에 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 스스로가 마귀에게 내어준 바 된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자신의 명령에 반응하는 객체로 성령님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애석하게도 그는 잘못된 길로 걷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대로 능력을 나타내며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영이 있다면 그는 분명 성령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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